이제 2주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오늘의 말씀을 통해 1독서에 ‘닦아라’, 복음의 말씀은 ‘내어라 이렇게 말씀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닦아라‘ 무엇을 ’내어라’할 것인가. 닦아라 하는 것은 마음을 닦아라, 이렇게 저는 해석을 해보고, 내어라는 것은 몸을 잘 활용하라 이런 뜻으로 저는 알아봤습니다.결국은 마음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회개가 되어지고, 몸 고통을 통해서 우리 보속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그렇게 우리는 제 2독서에서 제일 아름다운 단어가 끝 부분에 ‘애쓰십시오’ 하는 사도 베드로의 말씀을 듣습니다.이렇게 마음을 잘 닦으며 우리는 새 하늘을 만나, 몸을 잘 닦으면 새 땅을 만나게 된다.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데, 이렇게 새 하늘과 새 땅은 어쩌면 새 하늘을 만나는 것은 세례자 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푼다. 이렇게 볼 수 있고, 이제는 새 땅을 만난다는 바로 예수님께서 성령의 세례를 베푼다는 이렇게 해석을 해보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오늘의 말씀의 핵심적 단어는 바로 회개하라 내적인 회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온전히 자기 수련에 온 힘을 다 기울여라. 이런 말씀으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림 첫째 주간은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부족과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살 때 구세주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재림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과 함께 우리도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준비할 시기라는 말씀을 올렸습니다.우리는 장례미사를 드릴 때 세상을 떠나신 이를 위해서만 미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살고 있는 삶도 함께 미사를 드리고 것입니다.죽은 자의 미사와 산 자의 미사를 함께 드린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바로 예수님의 탄생도 예수님의 탄생과 우리의 탄생이 함께 이루어진다.이런 측면에서 알아두면 참 좋겠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겨울에 추운 눈바람이 몸에 스며들면 그 업무가 채워지지 않은 아쉬움과 허전함을 느끼면서 한 해를 되돌아보고 그동안 걸어온 길을 살펴보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지난날의 잘못이나 고통스러웠던 체험은 회상하고 지키지도 않을 것이며, 더욱이 마음의 아픈 상처는 없었던 일로 영영 잊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자식이 어미 산모를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났듯이, 한 인간이 성숙하게 하고 새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난날의 아픈 체험을 기억해야 하고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한 신앙인으로서 하느님과 형제들로부터 받은 무한한 은혜에 감사하고 얼마나 하느님의 뜻에 따라 충실하게 살아왔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한 인간의 성장과 성숙에는 반드시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과 뉘우침이 있어야 하고, 하느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는 기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 세례자 요한에게는 광야에서 우리에게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까.인간의 성숙은 회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전하고 싶은 것입니다.
회개는 우리의 삶의 방향을 하느님께로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 인간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고 하느님의 섭리에 따를 때 우리는 참된 신앙인으로서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으며, 우리가 기다리는 구세주 예수님께서 나와 우리 가정에 임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렇다고 우리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참된 신앙인이 되고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거기에 끊임없는 자기 수련과 노력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기다리는 구세주 예수님께서 내 안에 임하시기 위해서는, 또 진정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길을 성실하게 닦아야 할 것입니다.그러므로 오늘 하느님께서도 예언자 이사야 입을 통해 그리고 세례자 요한의 입을 통해 말씀하십니다.하느님께서 오신다. 사막의 길을 내어라. 우리 하느님께서 오신다.광야에 큰길을 닦아라.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깎아 내려라. 절벽을 평지로 만들고 비탈진 산골길을 넓혀라.
하느님께서 내 안에 임하시고 우리가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게으르고 나태한 사막에서 벗어나 주어진 직무에 충실해야 하고, 무지의 벌판에서 눈을 크게 뜨고 사물을 보아야 하며, 인색한 골짜기를 메워 가난한 형제들에게 손을 뻗어야 하며, 교만과 위선의 삶과 언덕을 깎아내려 삶에 진실해야 하며, 좌절의 절벽에서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하고, 아집과 편견의 비탈진 산골들을 넓혀 세상을 넓게 보아야 한다는 말로 들립니다.물론 이것은 매우 힘든 일이며 고된 수련이 필요합니다.그러나 그것이 하느님을 가르침이요, 인간 성숙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착한 목자로서 당신 양들에게 풀을 뜯기시고, 당신의 두 팔로 우리를 안아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굳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그리고 구세주와 함께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굳게 믿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신앙인으로서 매 순간을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그 누구도 한 사람의 성장과 성숙을 예언할 수는 없습니다.다만 우리는 하루속히 성숙한 신앙이 되도록 각별히 노력하고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우리는 척박한 광야 생활 중에 주님의 은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우리 삶의 황폐한 구원의 기쁜 소식을 더욱 더 갈망하게 만듭니다.주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세상은 진정한 평화와 안식이 없기에 우리의 영혼은 하느님, 나의 물증을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시도록 죄의 골짜기를 메우고 고집과 자만심이 가득한 언덕들을 낮추어야 하겠습니다.그러면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찬란한 영광과 위로를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새끼 양들을 팔로 보호하고 품에 안으시는 목자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소박한 사람들은 회개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만, 이 세상의 권력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거부합니다.회사의 명예에 집착하는 사람들, 자만에 빠져 있는 사람은 예기치 못한 순간을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들은 놀라움과 공포, 절망과 오해로 가득한 종말을 맞게 될 것입니다.주님의 날이야 잘 맞이하는 지름길은 회개와 신심 생활에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고 싶습니다.그러므로 우리 오늘 베드로 사도께서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셔서 속히 성숙한 신앙이 되도록, 티와 흠이 없이 살면서 하느님과 화목하는 사람이 되도록 우리가 애쓸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구세주 예수님께서 내 마음과 내 가정에 임하시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회개와 귾임없는 자기 수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강론의 요지는 회개와 자기 수련입니다. 이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고 싶습니다.주님께서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신앙생활을 출발 할 수 없습니다.주님께서는 나와 함께 있다, 주님께서는 나와 함께 있다는 화살표 방에 있습니다.여기에 대한 부르심이라면 이것의 응답은 나도 주님과 함께 말해야 됩니다.주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주지만 않습니다. 주는 것을 부르심이라고 한다면, 받는 것을 응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주님께서는 나에게 내가 무엇을 했기를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그 바라는 것을 우리는 하지 않고도 적당히 넘어가는 그러한 삶이 있다고 착각에 빠지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제가 사제의 길을 간 것, 사제란 너를 살리기 위해서 내가 죽는 것입니다.저는 교회의 사제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사제입니다.공통부분은 우리 모두 사제입니다. 여러분 또한 너를 살리기 위해서 내가 죽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들 예수님과 함께 나는 함께 공통분모가 되어서 부활도 함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꾀를 부리지 마십시오. 꾀부리는 사람은 자기 꾀에 넘어갑니다.조금 우둔하게 살 것을 여러분에게 주문 드리고, 바보스럽게 살 것을 여러분에게 주문 드립니다.오늘도 김수환 추기경님을 누구든지 그리워하는 것은, 나는 바보야 나는 바보야 하고 항상 손해 보는 모습으로 살았기에, 오늘도 김수환 추기경님이 보고 싶고 그 목소리가 그립습니다.그리움에만 있지 말고, 나 자신도 김수환 추기경처럼 타인에게 밥이 되고, 타인에게 바보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보에도 급수가 있습니다. 지혜로운 바보가 있고 어리석은 바보가 있습니다. 지혜로운 바보는 나를 위해서 죽지 말라. 어리석은 바보는 나를 위해서 죽습니다.이 점을 잘 발견하시고 화살표 방향이 바로 상대를 향해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예수님께서 황금율을 표하면서 남에게 받은 대로 해 주어라 하셨고, 나는 남을 위해서 이 땅에 왔노라 했는데도 그 말을 전혀 못 알아듣고, 아직도 나 중심적으로 산다면 그가 바로 패망의 길을 걷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드립니다.왜 그럴까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자기 개발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이제는 항상 머리에 두고 나는 사제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절대로 잊지 말아야 됩니다.여러분들은 다 사제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사제로 일하고 여러분들은 세상에서 사제역할 한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들어도 잊혀지는 강론 말씀
복습했습니다.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