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리도(躍鯉圖) 116.5 x 62.5cm 조선시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TV에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을 보니 정말 새해를 실감합니다. 항상 이맘때가 되면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동해 바다에 모여 해를 기다립니다. 매일같이 늘 떠오르는 태양이지만 왠지 새해 일출은 뭔가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언 손을 호호 불며, 발을 동동거리면서도 새해 첫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동자에는 희망이 어려 있습니다. 빨간 태양이 차가운 바다를 뚫고 올라오는 모습에 우리의 희망과 소망도 둥실 떠오를 것만 같습니다.
새해 당신의 소망은 무엇인가요? 늘 괴롭히는 병마가 조금은 나아지기를 바랐나요? 가족들의 무탈함을 빌었나요? 아니면 알뜰살뜰 챙기는 작은 가게가 더 반짝이길 바랐나요?
바다를 가르고 솟아오르는 태양을 보니 불현듯 떠오르는 그림이 한 점 있습니다. 새해 함께 감상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그림이 없을 듯하여 당신께 보여주고 싶습니다. 바로 국립민속박물관 소장된 민화풍의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입니다.
그림은 매우 단순한데 주인공인 물고기 한 마리가 거친 바다를 힘차게 헤엄쳐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물고기 머리가 떠오른 태양을 향해있어 마치 해를 향해 뛰어오른 것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넘실대는 거친 바다는 가는 붓으로 섬세하게 그렸는데 일렁이는 파도를 잘 표현했습니다. 물고기의 머리와 비늘은 마치 그라이데이션 처리한 것처럼 농담을 점점 달리하며 그렸습니다. 물고기가 튀어 오르며 일어난 물보라도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고, 물 밖으로 내민 물고기 눈동자도 태양을 향해 그려져 무엇인가를 바라는 간절함을 잘 표현했습니다. 해는 따로 그리지 않고 주변을 선염하여 색을 입혀 해 부분만 하얗게 나타내는 방법으로 그렸는데 이는 조선시대 내내 전해온 전통회화기법입니다. 채우지 않음으로써 채우는 동양화만의 멋입니다. 오른쪽에 ‘신묘년 가을에 자련(紫璉)이 그렸다’라고 적혀있는데 아직 자련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조선회화 중 이렇게 바다에서 물고기가 해를 보기 위해 솟구치는 그림을 ‘고기가 변하여 용이 된다’는 뜻의 ‘어변성룡도’라 합니다. ‘어변성룡도’에서 물고기는 잉어를 가리키는데 잉어가 힘차게 뛰어오르는 그림이라는 뜻으로 ‘약리도(躍鯉圖)’라 부르기도 합니다. 잉어가 용(龍)이 된다는 급격한 비약(飛躍)을 의미하는 그림으로 그 내용으로는 조금 모순이 있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잉어는 큰 저수지나 강에 서식하는 민물고기로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잉어라는 것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왜 잉어는 바다에서 솟아오르게 표현했을까요? 이 그림 내용의 출처는 중국 한대 역사서인 ‘후한서(後漢書)’에 실린 ‘이응전(李膺傳)’에 기인합니다.
“선비 중에 만남이 허락되는 사람을 일러 ‘등용문’이라 했다. -물고기로 비유한 것이다. ‘용문(龍門)은 하수(河水)의 아래 입구로 지금의 강주(絳州) 용문현(龍門縣)이다. 신씨삼진기(辛氏三秦記)에서 이르기를, 하진(河津)은 일명 용문(龍門)이다. 물이 험하고 좁아서 물고기와 자라의 무리가 강과 바다로 오를 수 없다. 큰 물고기들 수천 마리가 용문에 이르지만 오르지 못한다. 오르면 용이 된다’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그냥 물고기로만 표현했고 잉어라는 표현은 없었는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사람들은 그 물고기가 잉어라고 인식하였습니다. 명대에 저술된 ‘명의고(名義考)’에 “세상 사람들은 잉어(鯉)가 변화하여 용이 된다고 하는데, 잉어 또한 전(鱣)이라 부르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물고기를 잉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바다에서 뛰어오르는 물고기가 잉어인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하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등용문’의 내용처럼 간절히 무엇인가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잉어가 용으로 탈바꿈하듯이 본인의 능력이 일취월장하여 원하는 바를 꼭 성취한다는 뜻이겠지요. ‘어변성룡도’는 ‘입신출세’의 뜻으로 조선후기에 격려와 응원의 의미로 상당한 인기를 누리며 그려졌습니다. 주로 조선시대 선비들이 과거를 앞둔 벗들에게 선물용 그림으로 많이 그렸는데 ‘어변이 창파를 헤치고 폭포를 뛰어넘어 용이 된다’는 뜻으로 ‘등용문(登龍門)’ 즉, 과거에 급제하여 성공하기를 축원하는 그림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저마다 바라는 소원은 달랐겠지만 그 소원이 무엇이든 이러한 아름다운 그림을 주고받으며 서로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옛 어른들을 상상하면 슬며시 미소가 지어집니다. 오늘날도 새해 겨울바다에서 두 손을 모은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도 모두 다르겠지요. 아픈 가족이 병환을 이겨내라는 바람도 있을 것이고, 하루빨리 취업에 성공하여 고생하신 부모님 어깨를 덜어드리고 싶은 바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더 펼쳐나가길 바라는 부모님의 소원도 있을 것이고, 올해 사랑하는 연인과 좋은 가정을 이루는 꿈을 품은 젊은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스님들은 새해 어떤 소원을 빌고 계실까요? 하루빨리 도를 깨우치기를 발원하셨나요? 그런 바람이 있어 안동 봉정사 영산암에도 ‘어변성룡도’ 벽화를 그려놓았겠지요.
그러나 잉어가 용이 되는 것이 정말 어렵고 힘든 만큼, 우리의 소원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나 쉽게 소원을 이룬다면 아무도 추운 겨울바다에서 해를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니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없더군요. 아무리 작은 소원도 하루하루 묵묵히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요. 소원성취는 어떤 환경에서도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고귀한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새해 첫 마음을 잊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자만이 새해 소망을 이룰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새해 첫 마음으로 일 년 내내 살아가길 바라봅니다. 그런 의미를 곱씹으며 그림을 다시 보니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민 잉어가 우리에게 묻는 듯합니다. “당신의 소원은 무엇입니까?”라고 말입니다.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thson68@hanmail.net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