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상념/靑石 전성훈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비는 오는데 빗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는 듯 가는 듯 소리 없이 내리는 가랑비나 이슬비도 아니다. 한바탕 쏟아붓는 여름철 장대비나 소나기도 아니다. 그렇다고 가을을 재촉하는 반가운 빗소리도 아니다. 정신을 어딘가에 팔고 멍한 눈동자로 하늘을 쳐다보는 얼빠진 사람처럼, 밍그적거리며 추적추적 내린다. 우산을 쓰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는 아니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면 감기 걸리기에 십상이다.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거실 창문을 조금 열고 하늘을 쳐다보니, 맑고 깨끗하던 하늘은 어디로 가고 어둡고 침침한 하늘이 보인다. 하늘만 어둡고 우중충한 게 아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도 유쾌하지 못하고 우울하다. 젊은 시절 좋아했던 폴 모리아 악단의 ‘우울한 사랑’(Love is Blue)이 저 하늘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듯하다.
가을의 징검다리 9월에 들어서면서 무탈하지 못하다. 9월 첫째 토요일 모처럼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서 인사를 했는데, 다음 날 고열에 온몸이 쑤시는 불청객이 찾아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달 만에 또다시 코로나 검사를 받으니 다행히 음성이다. 그동안 무료 검사였던 코로나 검사비용이 9월부터는 본인 부담이다. 몇 달 만에 모임 날짜를 잡아, 명동 한적한 횟집에서 정갈한 회를 먹으며 어민들과 수산업 종사자들에게 용기를 불어주자고 했던 고등학교 친구들과 약속, 옛 직장 선배와 동료들과 모임도 그리고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과의 점심 약속을 취소할 정도로 몸 상태가 아주 엉망이다. 동네 단골 내과 의사는 염려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는데 일주일 정도 약을 먹어도 회복이 안 된다. 매일 다니던 근린공원조차 가지 못하고 아침마다 하는 체조도 정상적으로 할 수 없는 지경이다. 게다가 좋지 않은 것은 어지럼증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전문가가 아닌 소시민의 생각으로는 몸 상태가 나빠지면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이곳저곳에 잠복하고 있던 문제가 재발하는 것 같다. 전부터 좋지 않거나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병이 다시 꿈틀대면서 몸도 마음도 힘들고 지치게 하는 게 아닐까. 늙고 병들어가는 자연스러운 모습 같다. 칠십 대에 들어서 그런지 회복되는 속도가 너무나 더디다. 몸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서 서서히 기력을 회복하는데 몸을 빌려 쓰는 인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보다. 환절기 계절병인 알레르기 비염이 올가을에도 잊지도 않고 찾아와 맑은 콧물이 쏟아지고 연거푸 재채기한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무력감이나 무료함을 달래려고 책을 펴보기도 하지만 한두 페이지를 넘기면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리고 여지없이 피로감이 찾아온다. 평소 점심을 먹고 한두 시간 후에 잠시 낮잠을 즐기는 편인데, 피로감에 오전에도 오후에도 낮잠을 자기도 한다. 다행히 낮잠을 잔다고 밤에 잠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오후 10시 전후로 고마운 밤손님이 찾아온다. 칠십이라는 나이는 여기저기 몸이 아프고 쑤시는 게 정상인가 보다. 우리 세대가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게 착각일지도 모른다. 세월과 더불어 자연의 이치와 흐름에 맞추어 살아가는 게 우리의 몫이 아니고 누구의 몫이런가.
오후 들어서 다시 창문을 내다보니 그칠 듯하던 비가 반갑지도 않은데 꾸역꾸역 칠칠맞게 내린다. 떨어지는 빗소리는 듣는이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누군가에게는 꿈과 용기를 주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슬픔과 원망 그리고 절망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우산 위로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숲길을 걸으면 종일토록 비를 머금은 칙칙한 흙냄새가 코끝으로 찾아올 게 틀림없다. 어서 기운을 되찾아서 해맑은 산새 소리가 들리는 초안산 숲길을 묵주기도를 바치며 걷고 싶다. 울적할 때도 조금 들떴을 때도, 언제나 마음이 푸근해지고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따뜻한 엄마 품속 같은 초안산이 그립다. (2023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