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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철 명의도용사건
해운대지역 마을 노인복지회관, 점심시간을 막 넘긴 오후 1시10분, 여느 때와 다르게 많은 노인네들이 휴게실에 모여 앉아 무엇인가 숙덕거리고 있었다. 여남은 개 되는 테이블마다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지하식당에서 올라온 노인네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잇달아 테이블 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 바람에 테이블마다 네 개씩 놓아둔 의자는 다 차버렸고, 나머지 사람들은 삼삼오오 테이블 주변에 서서 입심 좋게 얘기를 하고 있는 한 노파에게 귀를 기울였다.
때마침 회관에 들렀던 작가 조민수는 전에 없이 노인네들이 모여 있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평소 같으면 집안 식구들, 특히 며느리 눈치를 피해 조용히 복지관에 와서 간편한 점심 식사를 한 후 소리 소문 없이 어디론가 가던 노인네들이었다. 아마 부근 소공원이나 좀 객기가 있는 노인네면 서면 정도라도 지하철을 타고 나가서 되돌아오는 코스로 한 바퀴 지하산책 같은 나들이를 할 때였다. 평균 수명이 팔십을 육박하는 지금 세태에 이런 노인네들은 쉽게 눈에 띄는 존재가 되어갔다. 그만큼 하릴없이 집 밖을 나돌아야 하는 신세가 되고 있는 것이다. 노후 복지정책이 제대로 따라가 주지 못하는 고령화시대의 단면이었다.
오늘 이 노인복지회관 휴게실의 모습은 이런 일상을 깨트리는, 유달리 눈길을 끄는 현상이었다. 조민수는 며칠 전에 출간한 소설집 몇 권을 들고 왔다가 그냥 갈 판이었다. 그 정경을 봐서 읽을거리라며 소설집을 내놓을 처지가 아니었다. 복지회관에 올 때는 동네 노인네들 중에 교사나 교장 출신이 있어서 소설집 몇 권쯤은 기증할 속셈이었다. 그런데 노인네들의 표정이 하도 진지해서 책을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한 채 그도 그들의 자리에 합류했다.
테이블을 중심으로 삥 둘러앉은 노인네들의 시선을 받고 있는 노파는 자기 친구가 며칠 전에 당한 일이라며 자기 일처럼 열을 올리고 있었다. 얘기인즉 친구는 그날 자기와 만날 약속을 해놓고 막 외출을 하려던 참에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가 낭패를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휴대폰에서 어떤 남자가 아들이 빚을 갚지 않아 할 수 없이 납치했다면서 아들을 살리려거든 2천만원을 지정하는 통장에 바로 입금시키라는 말을 들었다. 만약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게 되면 아들의 목숨은 없을 줄 알라고 협박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겁에 질린 친구는 그때부터 덜덜 떨면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범인은 친구의 이런 불안심리를 이용하여 아들의 목소리라고 녹음을 들려주면서 입금을 서두르라고 윽박질렀다.
7순 노모는 “아이고 우야꼬 우야꼬.”를 되풀이하다가 농장에 넣어둔 자기 통장을 꺼내봤다. 아들이나 며느리가 용돈으로 주는 것을 통장에 넣었다가 빼 쓰는 것이 습관이 되었지만 통장 잔고는 이미 바닥이 나서 농장에 쳐 박아두었다. 그것을 열어본들 없는 잔고가 살아날 리가 없었다. 다급하고 초조한 순간이었다. 빈껍데기 통장만 잡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퍼뜩 숙이네가 생각났다. 큰딸의 초등학교 동창으로서 어릴 적부터 엄마 엄마 하며 따랐기 때문에 만만한데가 있었다. 얼른 달려가서 문을 두드렸다.
“숙아! 숙아! 문 좀 열어봐라.”
친구 노모가 웬일인지 다급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네 나가요.”
숙이네가 문을 열고 내다봤다. 노모가 새파랗게 질린 채 서 있었다.
“엄마 왜 그래요?”
“숙이네 니 돈 좀 있나?”
“돈은 머 할라꼬예?”
“큰 일 났다. 아들이 빚이... 아이 아이다. 내가 급하게 빚을 갚아야 되는데 지금 있는 대로 좀 빌리조.”
“무슨 빚을 그리 급하게 갚는다 쿱니꺼? 내한테 한 2백만원 밖에 없는데예. 얼마나 필요합니꺼?"
“나중에 이야기할꺼마. 그거라도 빌리도고.”
노모는 아들 목소리를 들었으니까 빚쟁이 얘기가 틀림없다 싶었다. 얼른 은행에 가서 빚쟁이가 불러 준 통장 계좌로 무통장 입금을 했다. 그래놓고 빚쟁이에게 전화를 했다. 나머지는 곧 돈을 구하는 대로 입금하겠으니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이 사이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친구가 나타나지 않자 노파는 친구를 만나러 왔다. 노파는 친구에게서 사정 얘기를 듣고 아들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친구는 통화가 되자 휴대폰을 귀에 바짝 대고 물었다.
“여보시오. 니 경수 맞나?”
“그래 맞아요. 와 무슨 일 있소?”
“아니 야가... 니 별 일 없나?”
“별 일은 무슨 별 일... ?”
친구는 그 말을 듣고 한 대 얻어맞은 사람 같았다고 했다. 주변 노인네들은 노파 얘기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들이었다.
조민수는 보이피싱이 애꿎은 노인네들을 상대로 사기 친다더니 실제로 저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는 옛날 젊었을 적에는 눈감으면 코 배가는 세상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눈을 뜬 채로 안방 장롱에 있는 통장까지 도둑맞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탄하며 발길을 돌렸다.
고창덕은 탈북자 브로커인 성시우를 만나 연말에 한건 할 생각을 했다. 성시우 하면 탈북자 사회에서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하는 정도는 잘 알려져 있었다. 해서 고창덕은 그에게서 무슨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오랜만에 종로로 나가서 낙원상가 옆 순대 전문 식당에서 아바이 순대를 놓고 소주 한잔을 할 생각이었다.
“여보시오. 거기 성시우씨요? 내레 고창덕이오. 기레... . 연말이 다가오니 출출해서 소주 한잔 생각나지 않겠소. 그래서 성형 좀 볼려고... . 기래 기래.”
“아 고 선생, 오랜만임다. 고럼 한잔 돟디요. 아바이순대요.... 네 고향 생각 나지비.”
얼마 후 두 사람은 탑골공원 입구에서 만났다. 반가운 낯으로 서로 손을 맞잡고 함박웃음을 터뜨린 후 공원담장을 끼고 낙원상가 쪽으로 가다가 상가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털어 국밥집 골목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중간쯤에 ‘아바이순대’라고 쓴 간판 글씨가 특이한 국밥집에 자리를 잡았다.
고창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성형 요새 탈북자들 어때요?”
“늘 그렇지 앵이오. 정은이가 독기를 부려서 국경 연선에 경비가 철통 같다요.”
“탈북 안내자들 밥벌이가 어렵게 됐구만. 쯧쯧쯧.”
“조선족 밀수꾼 아아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앵이오. 조교 아아들이 공안 앞잡이 노릇을 하지 안슴둥. 그것도 모르고 있다가 같은 조선 민족이라고 잘못 접근했다간 큰 코 다치지비.”
두 사람은 순대국과 소주가 놓이자 서로 잔을 권했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순대국몇 숟갈로 입가심을 하고 나니 거기 향수가 묻어났다. 성시우는 알콜 기운이 돌자 한숨을 푹 쉬었다.
“후우- 탈북한지도 6년이 됐지만 고향 소식 모르기는 마찬가지지비. 오마니가 올해 칠십이 됐는데 한번 만나보지도 못했슴둥. 브로커하느라 쫓아다니다 보니... .”
“기레, 상기 고향에 못가 보았나? 남의 일 하느라 기렇게 됐구만.”
고창덕은 짐짓 성시우를 걱정해주는 체 했다.
“오마니가 막냉이라고 유독 나를 귀여워해 주셨는데 눈물 많은 할마이 눈이 마를날이 없지비. 자나 깨나 막냉이 걱정에 시름시름 앓지나 않으신지 걱정이꼬망.”
그러면서 성시우는 젖어오는 눈시울을 훔쳤다. 이때를 놓칠세라 고창덕은 눈물가루를 뿌렸다.
“고향에 오마니가 아들을 보고 싶어 고요한 밤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지을끼요. 살아 생전 효도 못한 거이 한이 돼지요. 한이 돼.”
그 말을 들은 성시우는 그만 울컥했다.
“오마니... 으으흑흑... 오마니... .”
고창덕은 이때다 싶었다.
“내레 오마니를 여읜지 오래 됐지만 상기 잊을 수 없디요. 어른이 돼도 오마니의 따뜻한 품은 그리운거디요. 기래서 고향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는 거이지.”
이윽고 성시우는 식탁에 머리를 박고 움직이지 않았다. 고창덕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한 동안 가만히 있었다. 울컥하는 기분을 가라앉힌 성시우는 고개를 들더니 소주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그리고는 굳은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언젠가는 오마니를 남한으로 모셔 오갔시오. 기 때까지 돈을 좀 모아야 하겠시오.”
“고럼 돈을 개지구 있어야 오마니를 모셔올 수 있디. 성 동무 공화국 자금 모금에 협조하면 내레 한 몫 생각해 주갔어.”
“네에? 무시기 좋은 방법이 있음둥?”
“있고 말고. 협조만 잘 해 주면 오마니를 모셔올 자금뿐만 아니라 남한에서 먹고 사는데 충분한 돈을 주갔으니까니 내 말 잘 듣고 시키는 대로 하기오.”
성시우는 무슨 좋은 수가 있는가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조민수는 그 동안 단편을 쓰면서 늘 아쉬웠던 것은 장편, 아니 대하 장편소설을 써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지구상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의 디아스포라 역사를 배경으로 보다 차원 높은 한민족통합소설을 써보고 싶었다. 그러자면 방대한 자료를 섭렵해야 할뿐만 아니라 직접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의 발자취를 찾아 현지를 답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박경리의 '토지'처럼 대하소설을 엮어내려면 이만저만한 시간과 자금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이렇듯 한민족의 발자취를 더듬어 한민족통합을 위한 대하소설을 쓰려고 관심을 가진 것은 기자시절부터였다. 그는 언론 현직에 있을 때 탈북자와 조선족 관련 기사 취재를 위해 소위 간도지방과 연해주 지방을 다녀온 뒤 한민족 디아스포라라는 현상을 낳은 역사적 현실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한민족 디아스포라는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고려인은 물론 멀리 중남미, 특히 멕시코 애니깽으로부터 하와이 이민, 독일 파독 광부와 간호사 출신, 불가리아 등 동유럽 망명객들에 이르기까지 보다 넓은 지역에 걸쳐 분포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그의 눈은 확대경처럼 커지더니 시야가 널따랗게 펼쳐졌다.
그때부터 시간 나는 대로 푼푼이 여비를 모아 가까운 중국 동북아지역과 러시아 연해주지역 선조들의 발자취를 찾아다녔다. 그러면서 그가 느낀 것은 개인적으로 대하소설을 쓰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한계를 느꼈다. 그는 언제나 의욕에 못 따라주는 현실 앞에서 좌절감을 느껴왔다. 그러던 중 고진감래라던가, 해묵은 가뭄 끝에 내린 비처럼 청량한 뉴스가 쏟아졌다.
평소 친근한 사이인 탈북 작가 오동수가 그에게 대하소설 공모 소식을 전해 주었다. 한동안 뜸하던 그가 자신에게 전화를 하고서 좋은 소식이 있으니 한 턱 내라며 만나자고 했다. 조민수는 근황도 궁금하고 해서 점심이나 같이 하자며 그를 만났다.
“오 선생 오랜만이군. 왜 그 동안 소식이 뜸했지?”
오동수는 속으로 뜨끔했다. 혹시 자기가 며칠 동안 곤욕을 치른 일을 알기나 한 것인가, 하고 말이다. 그럴수록 시침을 떼는 것이다.
“아 네 시골 바람도 좀 쏘이고 작품 구상도 하다 보니... .”
“그래요. 좋은 작품 기대해요. 헌데 무슨 좋은 소식이 있다면서... .”
“선생님께 딱 들어맞는 소식이 있어요. 뭔가 하면... .”
“뭐 그리 뜸을 들여. 좋은 소식이면 내가 한턱 내지.”
“자그마치 거금이 걸린 거에요.”
호기심을 잔뜩 부추켜 놓고는 그에게 눈이 번쩍 띄는 소식을 전했다. 그의 말로는 한 재벌 소속 문화재단에서 한민족 통합을 위한 대하소설을 공모하는데 문단 경력 5년 이상 작가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조민수는 언론사를 떠나면서 바로 등단하여 올해 6년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원숙한 인생경험을 바탕으로 한번 도전해 볼만 했다. 그는 그날부터 서재에 틀어 박혀 꼬박 일주일을 씨름한 끝에 작품 기획안을 완성했다. 그날 그는 바람도 쏘일 겸 가까운 박훈성 작가와 함께 노인복지회관을 찾았다. 동행 작가는 이미 복지회관 식당 단골이어서 그와 함께 가면 편했다. 그날의 식단은 비교적 부담이 안 가는 것이었다. 미역국에 배추김치, 시금치나물, 동태찌개, 멸치볶음 등 노인네 건강식으로는 먹을 만 했다.
식사 후 휴게실에 들러 커피를 한잔했다. 웬만한 사람들은 가고 식후 환담을 나눌 노인들만 삼삼오오 테이블 주위에 모여 앉았다. 박훈성 작가는 단골이라서 아는 노인네가 많았다. 그는 인품이 후덕한데다 입심이 좋아 자리에 한번 앉으면 많은 사람을 끌어 모았다. 커피 잔을 들며 사근사근 풀어가는 그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누구나 구수한 분위기에 빨려 들어갔다. 그래서 그런지 소문에는 노인복지회관에 가면 박 작가의 애인 노파가 있다고 했다. 박 작가 맞은편에 앉은 60 중반의 노파는 이따금 그에게 의미 있는 미소를 보내곤 해서 조민수는 그녀가 소문의 장본인인가 보다 하고 짐작했다. 박훈성씨가 한 동안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자 좌석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듯 했다. 모두들 편안한 자세로 환담을 주고받기 시작하자 맞은 편 노파가 입을 열었다.
“박 선생 보소, 요새 세상인심이 우찌나 야박한지 늙은이 뺨치고, 속 간꺼정 빼묵는다 카대요.”
“영도댁 니 인자 그런 얘기하나? 세상이 야박하게 돌아가도 분수가 있지, 너무 야박하게 돌아간다 아이가. 참 한심한 세상이 돼 삐린기라.”
“맞아. 내 어제 들은 이바구 한번 들어 볼래. 참 내 기가 막혀서... .”
노파가 털어놓은 얘기는 요즘 한창 그늘에 독버섯처럼 번져가는 보이스피싱 얘기였다. 노파의 친구는 어느 날 아들이 산 땅을 잃게 됐으니 빨리 돈을 입금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50대 장년 목소리였다. 무슨 일인지 물어 보니까 아들이 토지 계약은 해놓고 돈을 입금하지 않는 바람에 2억원 짜리 땅을 잃게 되었다고 다급한 목소리로 전해왔다. 그는 통장 번호를 알려주고는 시키는 대로 하라면서 딴 사람한테 말하면 아들을 못 보게 되고 땅도 날아가 버린다고 위협했다. 초조해진 노모는 농장 깊숙이 숨겨둔 노후자금 통장을 은행에 가지고 가서 알려준 통장으로 이체했다. 은행 직원이 어디 쓰려고 하느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일을 끝낸 노모는 한숨을 돌렸다. 헌데 집에 돌아오니 아들이 전화를 했다. ‘방금 니 때문에 땅값을 주고 왔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금시초문이라고 했고, 이에 놀란 노모는 하늘이 노래지면서 까무러져버렸다는 것이다.
조민수는 지난 번 얘기와 비슷한 사건이 또 터졌구나 하고 혀를 찼다. 요즘 휴대폰이 일반화되더니 휴대폰을 이용한 범죄가 생각보다 많은데 놀랐다. 휴대폰이 문명의 이기라고 좋아할 일만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조민수는 박훈성과 보이피싱 사기사건을 두고 얘기를 나누었다.
“어째서 수사기관에서 이런 놈들을 잡지 못하는지... .”
“들리는 얘기로는 대부분 중국에 근거지를 두고 한국 내에는 인출책만 두어 돈을 빼내 가니까 손을 쓰지 못한다고 해요.”
조민수는 자기처럼 늙은 사람도 인터넷을 하면서 어떤 사기수법이 있는지 알고 있는데 젊은 사람들이 사기를 당한다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 같으면 절대 안 당하지. 우찌 그런 사기꾼한테 당하노. 몇 마디 해보모 어떤 놈인지 대번에 알 수 있을 낀데... .”
“앗따 누가 알아요. 멀쩡한 사람도 재수 없으모 당하는데... 사기라는 게 진짠 줄 알고 깜박 속는 것 아인기요.”
“나는 절대 사기꾼에 안 당한다. 그놈들 농간에 내가 넘어 갈 줄 알고... 천만에 만만에 말씀이다.”
고창덕은 10월로 접어들 무렵 평양에서 새로운 지령을 받았다. 뜻밖의 내용이었다. 외화벌이 현지 지도원을 서울로 보내 새로운 외화벌이 창구를 개척하니 적극 지원하라는 것이었다. 그 후 열흘도 지나지 않아 평양에서 내려온 지도원이라며 접선 요령을 알려왔다. 이메일로 보낸 접선 요령에 따라 청색 트레이닝 복장을 하고 빨간 야구모에 조그만 배낭을 멘 채 종로타워 지하 만남의 광장에 앉아 있었다. 조금 후 등산모를 쓴 40대 여인이 접근하면서 쪽지를 건네주었다. 그길로 청계천으로 가서 지도원을 만나 같이 걸으며 서울에서 외화벌이 공작에 관한 지령을 받았다. 그는 노동당 통일전선부에서 내려온 외화벌이 지도원 강도길이었다.
“동무는 서울서 외화벌이 공작임무를 수행라는 지도자의 지령을 개지구 왔디. 이거이 특급지령이야, 알간. 한 눈 팔다가는 바로 처단하가서.”
서울에서 직접 보이스피싱 사기단을 조직하여 멋모르는 시민들을 상대로 자금을 모으라는 것이었다. 강도길은 실눈을 뜨고 그를 응시하며 한마디 덧붙였다. 사실은 그가 장성택에게 충성을 바친 정보를 최근에야 확인한 정찰총국이 그를 바로 처단하려고 했으나 제일위원장 서기실에서 말렸다는 것이다. 대신 외화벌이공작만 성공하면 살려주기로 했다고 엄포를 놓았다. 고창덕은 일단 지령을 접수하고 볼 일이었다. 탈북자 사회에 침투하여 첩보활동을 해온 그는 나름대로 속셈이 있었다. 벌써부터 감시조가 붙는 것 같았는데 자신이 올가미에 걸려든 것을 확인했다. 본격적으로 살길을 찾기로 했다. 그 후 그는 독자적인 공작을 펼치기 시작했다.
조민수는 11월 말이 다가올 무렵 한민족평화연대로부터 한민족 통합 대하소설 공모 최종 심사 결과를 통보 받았다.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중심으로 국내외 민족통합을 주제로 한 플롯이 심사위원들의 격찬을 받은 결과 만장일치로 자신의 작품이 선정되었다고 했다. 그는 우선 노인회관에서 만나기로 한 박성훈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점심을 같이 했다. 이날도 자리를 같이 한 영도댁은 ‘소설가들이 돈벌이가 잘 안 될 건데 큰 돈을 받게 됐으니 축하한다’며 박수를 쳤다. 그날 저녁에는 오동수와 박성훈을 송도 횟집으로 데리고 가서 한턱 톡톡히 냈다.
곤드레 만드레가 되어 돌아온 그는 이틀이 지나자 숙취에서 벗어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난 그는 가까운 시골로 나와 작품 줄거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원고를 쓸 준비를 했다. 마침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어 부산으로 갈까 하고 하던 참에 박성훈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간이 되면 한번 왔다 가라는 전갈이었다. 해운대 문화회관에서 작가 초청 강연이 있는데 회관 측에서 조민수 선생을 초청했다는 것이었다. 조민수는 점심 식사를 한 후 부산으로 나갈 작정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구상한 줄거리를 다시 훑어보던 중이었다. 막 커피를 한잔 타서 마시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상대방을 확인했다.
“조민수 선생님 맞습니까?” “네 맞아요. 어디세요?”
“서울지방경찰청 금융사기사건 담당입니다. 몇 가지 물어 볼 것이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시간이 괜찮습니까?”
“무슨 얘긴데요? 얘기하세요.”
이렇게 해서 조민수는 난생 처음 바보가 되는 통화를 하느라 시간을 뺏겼다.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낯선 사람과 진지한 통화를 했다. 그것도 무려 2시간 45분 동안이었다. 그가 바보통화를 한 그날 사건 진행을 돌이켜 보면 참 어처구니없었다.
10시40분:막 커피를 마시는데 휴대폰이 울려 화면을 봤다. 서울 전화번호였다. 02-1600-7246. 모르는 전화여서 미심쩍었다. 그러나 무슨 전환가 싶어 받았다.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조민수 선생이십니까? 서울지방경찰청 금융사기사건 담당 경찰입니다.”
경찰이 무슨 일로 전화하나 싶었다. 하지만 서울지방경찰청이라는 바람에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지요?”
“선생님이 김명철금융사기사건 피고발인으로 되어 있어서 신분을 확인하려고 전화했습니다.”
“무슨 얘깁니까? 내가 왜 피고발인으로 되어 있어요?”
“선생님이 ㄱ은행 통장을 쓰십니까?”
“네 전에 썼습니다만 작년에 고객 정보 유출사건이 터져 해지했어요.”
“서울에서 김명철이란 사람이 선생님 통장으로 남의 돈을 인출해간 사건이 생겨 신원을 확인하려고합니다. 몇 가지 묻는 말에 대답해주세요.”
“네 말하세요.”
그는 조민수 본인임을 확인한 후 ㄱ은행 통장을 서울에서 쓴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서울까지 가서 ㄱ은행 통장을 쓴 일이 없었다. 필요하면 카드를 사용하면 되지 서울에서 통장 거래를 할 필요가 없었다.
“서울에서 그 통장을 쓴 적이 없는데요.”
“네 알았습니다. 정황으로 봐서 선생님은 선의의 피해자인 것 같습니다. 금융사건 담당 팀장을 바꿔 주겠습니다. 지금 말한 그대로 얘기하세요.”
잠시 기다렸더니 뜻밖에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울지방경찰청 금융사건 담당 팀장 최미영입니다. 신원을 확인할 테니 묻는 대로 대답해주세요.”
서울 말씨에다 젊은 여성이라 그대로 믿었다. 앞에서 확인한 대로 다시 신원관계를 물었다. 그리고는 김명철이라는 사람이 ㄱ은행 통장을 가지고 사기를 쳐서 2백명이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그 사람이 조 선생님 통장도 이용해 돈을 인출했기 때문에 선생님도 선의의 피해자가 된 것이 확인됐습니다. 더 이상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금융감독원과 연계해 빨리 보안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유달리 빨리란 말에 힘을 주는 것 같았다. 조민수는 속으로 자기 통장이 사기에 이용당했으니 빨리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목소리로 봐서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데다가 유창한 서울 말씨를 써서 경찰관이란 것을 의심할 수 없었다. 그 다음부터 그녀가 말하는 대로 따랐다. 먼저 서울지방경찰청 홈페이지부터 열도록 했다. 검색창에 서울지방경찰청을 치고 홈페이지를 여니까 팀장이 물었다.
“거기 홈페이지에 피해 신고란이 있습니까?”
홈페이지 란을 쭉 훑어 봤다. 지방경찰청은 맞는데 피해 신고란이 보이지 않았다.
“어! 홈페이지가 맞는데 그런 메뉴가 없네요.”
“없어요? 그러면 제가 경찰청 주소를 불러 드릴테니까 그대로 입력하세요. 334 293 114.”
“한글로 서울지방경찰청이라고 입력하면 되는데 또 숫자를 입력합니까?”
“거기는 피해 신고란이 없으니 홈페이지 주소를 입력하는 것이 빠릅니다. 입력하셨습니까? 지방경찰청이 뜨지요.”
“아 네 떴네요.”
“그럼 피해신고를 클릭하세요. 그 다음 신고란에 사건 제목란이 있지요. 거기에 2014-0130 형재 명의도용사건이라고 입력하세요. 그리고 피해자 조민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세요.”
최미영 팀장이 시킨 대로 입력을 한 조민수는 언뜻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사람이 경찰 운운하면서 사기사건 얘기를 하면 믿지 말라고 했는데 이 사람은 경찰청 홈페이지 주소를 제대로 말했으니 괜찮겠지.’
조민수가 누군가? 그는 우리나라에 인터넷이 막 보급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부터 연산동 컴퓨터도매시장에 컴퓨터를 손수 들고 다니며 PC생활을 익혀 온 사람이다. 해서 비교적 일찍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문화에 접했기 때문에 나이답지 않게 컴맹권에서 벗어난 사람이었다. 기관을 사칭한 사기 같은 얘기는 이미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 만큼 지금 이 시간에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사실 말이지만 기관을 사칭한 금융사기 수법은 다 알아요. 해서 처음 서울지방경찰청이라고 했을 때 신분 확인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정확하게 홈페이지 주소을 알고 있길래 믿고서 그만 두었어요. 안 그러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지.”
“아네. 그렇겠지요. 미심쩍으면 1600-6843으로 전화해 보세요.”
“네 알았어요.”
“다 입력하셨습니까? 그러면 선생님이 거래하시는 은행별로 필요한 사항을 입력하시면 됩니다.”
조민수가 입력에 열심인 동안 최미영 팀장은 참고 얘기를 하고 있었다.
“보이스피싱 사기수법을 보면 대부분 휴면통장을 이용하거나 대포통장을 산 후 사기대상에게서 통장 비밀번호 등을 알아내어 대포통장에 이체해놓고 인출책이 바로 인출해 가지요.”
기본사항의 입력을 마친 조민수가 한마디 거들었다.
“맞아요. 거래도 하지 않은 통장 주인에게 돈을 얼마 주고 대포통장으로 이용한다고 그러데요. 다음엔 은행 아닌 증권회사는 입력 안합니까?”
“증권회사도 입력할 겁니다. 먼저 자주 거래하는 은행부터 입력하세요.” “다른 은행은 거의 거래하지 않고 ㅈ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하고 있어요. ㅈ은행부터 입력하면 되지요?”
“네 그렇게 하세요. 공인인증 비밀번호는 입력 안 하셔도 되고요, 통장 번호와 통장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그래놓고 조민수가 빈칸을 메워나가는 사이 그녀는 묻지도 않은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참 사기꾼들 수법이 많이 발전했어요. 요즘 보이스피싱 사기 수법이 지능화되어 그냥 피싱이 아니라 컴퓨터를 악성코드에 감염시켜 조작한(pharming) 후 금융정보를 빼내는 수법을 쓰는데 이 경우 진짜 사이트를 클릭해도 해커가 중간에 정보를 탈취해 간다던데요. 이때는 꼼짝 못하고 당하는 수 밖에 없다고 해요. 이런 수법을 파밍이라고 한다나... . 참 귀신 곡할 노릇이지요.”
조민수는 은행 관계란에 입력하느라 신경을 집중하면서도 별스런 사기수법에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요? 파밍이라고요? 참 무슨 농사짓는 것도 아니고 파밍수법이라니... .”
최 팀장은 혼자서 중얼중얼 하다가 중간 확인이라도 하듯 물었다.
“그대로 입력을 하고 있습니까? 문제는 없어요?”
“네 말한 대로 입력했습니다. 주거래은행이 ㅈ은행이니 ㅎ투자증권에 있는 돈을 ㅈ은행으로 이체해야 되지요? 한데 모아야지.”
“네 그렇게 하세요.”
조민수는 금융감독원이 보안조치를 취하려면 주거래은행으로 돈을 한데 모아야 편리할 것이란 생각에 ㅎ투자증권에 있는 돈을 ㅈ은행으로 이체를 시도했다.
최미영은 또 혼자서 사기수법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들어 보세요. 사기수법 중에 스미싱(sms+fishing)이라고 하는 것도 있어요.”
“그래요? 파밍도 처음 들어 봤는데 스미싱이라니... 참 희한한 사기도 다 있구만.”.”
“스미싱수법은 무료쿠폰, 돌잔치 초대, 결혼 초대, 무단쓰레기투척 신고, 범죄행위 CCTV적발신고 등 관련 사이트의 주소를 발송하여 이를 클릭하면 악성코드가 깔리게 되고 개인정보와 금융정보를 빼내 소액결제를 하여 계좌이체한다고 해요. 참 지능적이지요.”
물어보지도 않는데 팀장이라는 사람이 자꾸 사기 얘기를 하는 것이 이상했다.
이때가 오후 12시28분. 서울지방경찰청이란 전화를 받고서 거의 두 시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걸린 것은 최 팀장의 잡담 때문이기도 했다. 곧 이어 ㅎ투자증권 고객센터에서 인증번호를 입력하라는 안내 전화가 와서 휴대폰에 뜬 인증번호를 해당란에 입력했다. 그러니까 ㅎ투자증권의 잔고가 ㅈ은행으로 이체됐음을 알려주었다.
오후 12시34분 무렵에는 ㅈ은행에 입금이 됐다는 확인 전화가 왔다. 이제 통장에 있던 지원금 5천만원을 포함해 잔고가 모두 ㅈ은행으로 모인 셈이다. 최 팀장은 이 사실을 조민수로부터 듣고는 다시 카드사와 증권사의 정보를 입력하도록 요청했다. 조민수가 두 개 카드사와 두 개 은행 관련 정보를 입력하는데 17분이 걸렸다. 이 사이 최미영은 계속해서 금융사기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간간이 입력사항을 확인하곤 했다. 조민수는 10시40분부터 두 시간 넘도록 컴퓨터를 붙잡고 씨름하듯 하느라 진이 빠져가고 있었다. 이때 최미영은 금융감독원에서 지금 정보를 받아서 처리하고 있으니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1시30분이 되자 1577-1006 번호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사이렌에 접속, 정보유출 여부를 확인하라 해놓고 사이렌 사이트로 들어가서 가입절차를 밟고 있는 중 갑자기 전화가 끊어졌다. 뭐 다른 일을 하는가 보다 하고 기다리다가 귀찮다는 생각에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다시 전화오기를 기다리던 중 무언가 찜찜했다.
이때가 1시32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최미영이 전화했던 02-1600-7246으로 전화했다. 응답이 없었다. 그래도 기다렸으나 계속 받지 않아 점심시간이 넘어서 전화를 끊고 밥 먹으러 간 줄 알았다. 해서 피곤해서 쉬고 있었다.
1시51분, 02-3702-46xx번으로 어떤 남자가 전화를 했다. 관련자인가 싶었다. 그런데 그는 뜻밖의 말을 했다. ㅅ은행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며 보이스피싱 피해를 본 것 같다고 했다. 깜짝 놀란 조민수는 다그쳐 물었다.
“네에? 보이스피싱요?”
그는 그렇다며 빨리 1588-15xx로 신고해 나머지 돈이라도 지급 정지시키도록 하라고 일러주었다. 순간 이렇게 빨리 알려주는 것을 보면 사기꾼 일당이 사기 사실을 알려 준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했다. 해서 누구냐고 물으니까 ㅈ은행 직원이라고 했다. 놀란 조민수는 1시 54분, 56분, 58분 등 세 번에 걸쳐 1588-15xx(ㅈ은행 콜센터)로 전화했으나 모든 상담원이 상담 중이라고 해서 통화를 하지 못하고 말았다.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콜센터 전화라 어쩔 수 없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때 아까 최미영이 확인 전화를 해보라고 알려 준 전화번호가 생각났다.
정각 2시, 서울경찰청 전화번호라는 1600-6843으로 전화했다. 남자가 받았다.
“여보세요 거기 서울지방경찰청이지요?”
“네 누굴 찾습니까?”
“최미영 팀장을 찾는데요. 금융사건담당 팀장이라고 하던데요.”
“기다려 보세요.”
잠시 옆 사람에게 묻는 듯 하더니 말했다.
“그런 사람 없는데요.”
조민수는 그제야 확실히 보이피싱 사기를 당한 사실을 깨달았다. 눈앞이 노랗게 되어갔다. 부산으로 나가려고 미리 차렸다가 옆에 제쳐둔 밥상을 보고도 먹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죽 빠지면서 머리가 혼란해졌다. 한동안 벽에 기대어 눈을 감은 채 마음을 가라앉혔다.
2시15분, 어차피 신고는 해야 할 일이므로 다시 1588-15xx로 보이스 피싱 피해 신고를 하려 했으나 안내에서 같은 소리를 해 신고를 하지 못했다. 무슨 콜센터가 이런지 화가 나서 열이 올랐다. 빨리 신고해야 하는데 어쩌나 하고 생각하다가 ㅈ은행 거래지점에 직접 전화하면 되겠다 싶었다.
2시27분, ㅈ은행 통장에서 전화번호 051-747-49xx을 확인하고 해운대지점으로 전화하니까 바로 통화가 되었다. 보이스피싱 피해 신고와 동시에 지급정지조치를 하도록 하고 이체 은행에도 통보를 했다고 알려주었다. 이렇게 빨리 조치를 할 수 있는데 왜 그 사람이 1588로 전화하라고 했는가, 원망스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거래은행에다 바로 신고하라고 하지 않은 것이 석연찮았다. 은행원이면 이런 바쁜 전화를 콜센터에 하면 바로 연결되기가 어려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콜센터로 몇 번 전화를 시도하는 바람에 적어도 36분이 지연되었다.
2시51분, ㅈ은행 콜센터에서는 그제야 조민수한테 전화해서 보이스피싱 사기사실을 확인하고 있었다.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었다.
얼마 안 있어서 해운대지점에서 전화가 왔는데 사기범이 ㅅ은행으로 이체해 간 돈 중 85만연원과 0협 목포지점으로 이체해간 돈 중 2만 여원만 인출하지 못하고 잔고로 남아 있다고 알려주었다. 조금만 빨리 신고절차가 이루어졌더라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을 지급 정지시킬 수 있었을 것 같아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기왕 당한 것이지만 사후 대처만 제대로 되었더라면... .’
조민수는 체념한 상태에서도 아쉬움을 달래지 못했다. 보이피싱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벌써 오래 전부터 알려져 온 일인데 사후대처를 이렇게 밖에 못하게 하는가, 관계당국이 한심스러웠다. 며칠 후 일상을 되찾자 컴퓨터가 등장하여 보이스피싱 사기에 이용되기까지 컴퓨터 악용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중 흥미를 끈 것이 ‘뻐꾸기 알’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클리포드 스톨이 미국 로렌스버클리연구소 컴퓨터 시스팀 책임자로서 초기 해커를 추적, 적발한 경험을 전한 것이다. 이미 1986년에 독일 해커들이 활동을 하기 시작, 1987년에 미국 주요 기관의 컴퓨터에 뻐꾸기알(위장 프로그램)을 심어 정보를 빼내고 소련에 팔아먹은 스파이를 1년 동안 끈질지게 추적하여 잡아냈다. 이렇듯 해커 얘기는 오래 된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1994년부터 정보고속도로니 멀티미어니 해서 정보화사회가 다가온다고 떠들썩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미 피시뱅킹이니 폰뱅킹, 텔레뱅킹이 등장하여 오늘날의 보이스피싱이란 악의 씨앗이 자라기 위한 터전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해킹에 대한 방비가 소홀하여 2천 년대 들어와서 10년 사이에 보이스피싱 사기사건이 정점에 달했다. 가장 많았던 때는 1년에 6천 건이나 발생했었다. 그 후 차츰 감소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여전히 사기범은 활개를 쳐 개인정보 유출 사기 피해액이 연간 787억원에 달한다. 누군가 애꿎은 시민이 이렇게 막대한 금전상의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2013년 3월20일에는 케이비에스, 엠비씨 방송사와 농협, 신한은행의 컴퓨터 5만 여대가 한꺼번에 해킹을 당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조민수는 이를 보고 장차 북한에 의한 국가전산망의 침공 가능성 앞에서 공포를 느꼈다.
이른 봄 마당에 피었던 매화꽃이 질 무렵 벚꽃 봉오리가 물을 머금고 제법 볼록볼록해져 봄기운이 산골에 퍼지는 것을 실감했다. 춘래불사춘이라고 으스스했던 기운도 사라지고 만물이 기지개를 켜는 것을 본 조민수는 자신도 따라 활개를 활짝 펴고 깊은 숨 호흡을 했다. 역시 묵은 해의 때를 씻어버리고 나니 새로운 희망에 가슴이 부풀었다.
새해 들어 두 달 동안 새 작품 구상에 신경을 썼다가 이제 대망의 동유럽행 준비에 바빴다. 지난 연말 뜻밖의 우환을 털어 버리고 수년래 별러왔던 작품 취재여행을 위해서였다. 3월 한 달 동안 여행지 정보 수집 등 각종 준비를 마친 그는 드디어 이스탄불행 여객기에 몸을 싣고 상공을 나르고 있었다. 영종도공항을 벗어난 여객기는 서해에 지는 해를 옆으로 끼고 남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안전벨트를 푼 조민수는 가볍게 목운동과 팔운동을 한 후 창밖을 내다 봤다. 수평선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던 해는 발갛게 잔영을 남기며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는 수평선의 노을을 바라보며 지난 연말의 참담한 경험을 되돌아보았다. 60평생에 많은 일을 겪어 봤지만 그 일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의 평생 역작을 위한 진정한 노력이 결국 헛되지는 않았다. 조민수가 지원금 5천만원을 사기당하고 망연자실한 채 넋을 놓고 있던 때 뜻밖에 한 줄기 빛이 스며들었다.
1월에 들어와 모두들 새해랍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느니, 새 출발을 한다느니 하고 있는데 조민수는 풀 죽은 삼베처럼 후줄근한 모습을 벗어날 수 없었다. 오늘도 박훈성을 만나 예의 노인회관을 찾았다. 심란할수록 노인들 틈에 앉아 노후 인생살이 얘기나 듣는 것이 편했다. 박훈성이 좋아하는 영도댁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렸다.
“그 할매가 나오기로 했는데... . 안보이네.”
조민수도 조금 서운한 듯 했다. 언제나 만나게 되면 심심찮게 수다를 떨던 사람이 없으니 그럴만 했다. 박훈성이 커피를 주문한 후 조민수에게 사기사건 후 소식을 물었다.
“그 뒤 경찰서에서는 아무 연락도 없소?”
“연락이 있어 봐야 별 수 없지 뭐. 만날 수사를 계속 중이란 얘기 밖에 더 있겠어.”
“보이스 무엇인가 하는 그 사기꾼들은 그렇게 못 잡나? 안 잡나?”
그러고 있는데 지하계단 쪽에서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영도댁이 빈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박훈성이 반갑게 손짓을 했다. 엉겁결에 조민수도 미소를 띠며 손짓을 했다. 그들을 얼른 알아 본 영도댁이 오메! 소리를 지르며 다가왔다.
“영도댁 오늘은 안 오는 줄 알고 서운했소.”
조민수가 먼저 알은 체를 했다.
“아이구 선상님 오랜만이네요. 서울에 사촌동생이 내려와서 만났다 온다꼬 늦었네예.”
그러자 박훈성이 물었다.
“사촌 동생 누고?”
“노인호라꼬. 지난번에 전화로 별 희한한 소릴 하길래 오늘 만나 물어봤지예.”
“와 뭐라 카는데?”
“뭐라 쿠느냐 하모 요새 돈 조심하라 안카요. 그래 와 그런 소리 하노 물어본께네
북에서 돈이 필요한께네 간첩들이 와 갖꼬 남한 돈을 사기쳐서 뺏아 갈라쿤다는 말이 있다카데예. 내참... .”
“노인호라꼬? 그라모 그 사람이 북한 간첩이 내려와서 돈 사기칠끼라꼬 조심하라 캤다 말이가?”
“하모 예.”
이때 조민수는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돈 사기라면 보이스피싱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건과 관련한 정보를 미리 안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구린내가 나는 곳과 연결이 된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 정보원을 캐 들어가면 구린내를 풍기는 곳을 찾을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해서 그는 노인호의 신상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아 봤다. 그리고 경찰서 지능범죄팀에게 연락했다.
1월이 다 갈 무렵 수사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은행대출로 사기당한 돈을 메우려고 하던 조민수에게 지능범죄팀이 수사 결과를 미리 알려주었다. 내일이면 수사과장이 공식 발표를 하게 되지만 피해 당사자인 조 선생에게 하루 먼저 알려주는 배려를 해 준 것이다.
지능범죄팀이 조민수의 연락을 받고 노인호를 불러 족쳤으나 윗선이 누구인지 밝혀내지 못했다. 그는 우연히 알게 된 성시우라는 탈북 브로커가 자신에게 접근하여 돈 많은 사람을 물색해 달라고 하길래 마침 부산에 사는 누나로부터 들은 얘기를 해주었을 뿐이라고 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아처럼 된 그를 엄마처럼 보살펴 준 사촌 누나에게 가끔 안부전화를 했는데 그날 영도댁으로 불리는 그 누나에게 성시우에게서 들은 얘기를 전했다. 그때 돈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은 누나는 조민수라는 사람이 통장에 돈을 많이 넣어놓고 있다던데 그 사람에게도 알려주어야겠다고 하더란 것이다. 그래서 용돈을 벌기 위해 성시우에게 조민수의 존재를 알려주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모른다고 잡아뗐다. 성시우의 행방을 추궁했으나 그가 먼저 연락해 만났을 뿐 평소 만나는 사이가 아니라 연락처도 모른다고 했다.
지능범죄팀은 수사가 노인호선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않자 성시우를 지명 수배하는 한편 같은 수법 전과자를 찾아 나섰다. 일단 노인호로부터 성시우의 인상을 들은 수사팀이 그의 행방을 좇았다. 탈북자들을 만나 성시우의 얼굴 그림을 보여주며 수소문했다. 그러다가 그가 잘 가는 아바이순대집을 찾아냈다. 순대집 아주머니에게 성시우 얼굴 그림을 보여주고 최근에 들린 적이 있는지 물었다. 가금씩 들린다는 말을 듣고 잠복한지 일주일만에 그를 체포했다. 수사관이 용의주도하게 추궁하자 겁에 질린 성시우는 하루 밤을 자고난 뒤 사건의 내막을 털어 놓았다.
노인호가 잡히는 바람에 자신에게도 수사망이 좁혀올 것이라고 짐작한 나머지 그 동안 잠수를 타고 있었다. 신문 방송을 유심히 봤지만 조민수사기사건 기사가 보이지 않았다. 제대로 수사를 하지 못하고 있구나 하고 마음이 놓이자 순대에 소주 한잔 생각이 나서 아바이순대집에 들렀던 것이다. 지난 해 가을 느즈막에 이 식당에서 고창덕을 만나 보이스피싱 공작에 가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창덕은 성시우에게 긴급 임무라면서 고액을 사취할 수 있는 대상을 물색하라고 지시했다.
“성 동무 지난 번 얘기대로 한건 할 길이 생겼으니까네 동무는 적당한 사람만 골라서 알려주면 되가서. 시간이 없으니까니 서둘라우.”
성시우는 처음 만났을 때 고창덕으로부터 들은 얘기도 있고, 최근 연변을 다녀온 브로커 얘기로 탈북자금만 마련되면 곧 어머니를 모셔올 수 있다고 해서 고창덕 말대로 서둘러 한건 하기로 했다. 우선 평소 마음에 찍어둔 그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수첩을 뒤져 그 사람 연락처를 찾느라 한참 걸렸다. 오다가다 얘기를 듣고 별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남의 심부름이나 한다든가, 궂은일에 끼어들어 술값이나 버는 논단이라고 말하던 기억만 있었다. 그가 뒤적뒤적하다가 깨알 같이 적힌 주소록 속에서 노인호 아닌 노짱을 찾아냈다. 그 동안 전화번호가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싶었지만 일단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여보시오 거기 노짱이요? 노짱... 아 그래 노인호 맞구만. 나 성시우지비. 반갑수다레. 급한 일이 있슴메. 날래 만나자우.”
그는 노인호를 처음 만나고 난 후 문득 노짱이라는 말이 떠올라 가끔 그를 만날 때 노짱이라고 불렀다. 사회에서 노짱이라는 말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주 오르내리던 때였다. 왠지 그렇게 부르는 것이 친근감을 주는 것 같이 여겼다. 그 바람에 수첩에 노인호 대신 노짱이라고 적어 두었던 것이다. 그는 바로 노인호를 불러내어 달콤한 미끼를 던졌다. 아는 사람 중에 돈깨나 있는 사람의 정보를 알려주면 봉투 하나 두둑이 받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성시우로부터 연락을 받은 고창덕은 노인호를 만나 미아리고개 부근에 있는 안가로 갔다. 단독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옛날 동내로 들어서자 개울 옆으로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고, 거기서 골목으로 20여 미터 들어 간 곳에 2층 철대문 집이 있었다. 저녁때가 되자 30대 남녀가 나타났다. 이들은 사흘 동안 공작 지도원이란 사람으로부터 세뇌공작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배를 탄 동지적 감정을 공유하며 인천공항으로 직행했다.
상해에서는 기존 외화벌이 일꾼들을 피해 보이스피싱 사기조직단을 찾았다. 고창덕이 비밀리에 이들과 접선하여 특수훈련을 부탁해놓았던 것이다. 북한 식당 모란봉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지하에서 실시한 특수훈련 과정에서 30대 후반의 여성이 서울경찰청 금융사기사건팀장을 맡고, 30대 중반의 남성이 금융사기사건 담당 형사를 맡아 50대 후반 남성을 조민수 대역으로 삼아 실제상황과 똑 같은 사기공작 훈련을 강도 높게 벌였다고 털어놓았다. 성시우가 옆에서 보기에도 어떻게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역할을 실연하는지 놀랄만한 것이었다. 이 두 사람은 서울 토박이 같았다고 했다. 성시우는 노인호를 통해 범행대상을 물색한 후 실제 상황에서 노인호와 둘이 인출책으로서 역할을 맡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고창덕이 핑계를 대며 주기로 한 돈을 주지 않고 차일피일해 경찰에 고발하려고 했다고도 했다. 수사관이 수상하게 여겨 추궁했다.
“고창덕이 무슨 핑계를 대고 돈을 주지 않았어?”
“평양에서 온 지도원 동지가 외화벌이 한 돈은 몽땅 평양으로 보내야 한다고 해서 돈을 주지 못한다고 했어요.”
“그럼 사기한 돈을 지도원에게 다 주었단 말인가?”
“그건 모르겠시요. 아이구 미치겠시라요. 북에 있는 오마니를 데려와야 하는데... . 고창덕이 그 놈이 오마니를 데려오도록 해준다 해놓고... 등을 돌렸는지... .”
“공범자들도 돈을 못 받았나?”
“모르겠시요. 그 후로 고창덕이 소식이 없어졌시요.”
조민수를 대상으로 선택한 고창덕은 보이스피싱조를 조직하여 5천만원을 사취하는데 성공했다. 이어 잠수를 타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강도길의 손길로부터 벗어날 속셈이었다. 이때까지 10년 동안 고첩활동을 하면서 한 번도 당성에 대한 의심을 받은 적이 없었다. 장성택라인이었던 그가 졸지에 감시를 당하게 되자 강한 반발심을 가졌다. 그 후 업친데 덮친 격으로 장성택이 처형되는 것을 보고 신변에 위험을 느끼던 때 강도길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는 얘기를 듣고 도피자금을 마련할 절호의 찬스가 생겼다 싶어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 위조여권을 마련한 후 현금 5천만 원을 달러로 바꾸려고 암달러상과 접촉을 시도했다. 그는 등산모를 푹 눌러 쓰고 남대문 보신탕집에 들어섰다. 대낮이라 손님이 별로 없었다. 맨 안쪽 의자에 앉아 국밥을 주문했다. 주방이 바로 앞이라 솥에서 무럭무럭 올라오는 김이 얼굴에 닿았다. 더운 김을 쏘이며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50대로 보이는 사나이가 혼자 개고기와 소주를 놓고 홀짝거리고 있었다. 만나기로 한 암달러상을 찾았다. 가운데쯤에 앉아 있던 사나이가 싱긋 웃으며 알은체를 했다. 고창덕도 미소로 응답하고는 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식사 후 나가면 그 사나이가 뒤따라오게 되어 있었다. 옆의 50대 사나이는 소주를 반병 정도 남겨놓고 일어섰다. 그때 3, 40대로 보이는 사나이 둘이 수근거리며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50대 사나이는 계산을 하고 나가다 말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 들어오고 있는 두 사람이 옆을 스치자 고창덕 등어리를 가리켰다. 그들이 안쪽으로 다가섰다. 고창덕은 국밥을 먹다 말고 그들을 흘끔 올려다보았다. 그때 앞에 선 사나이가 손을 앞으로 쑥 내밀며 외쳤다.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고창덕이 미처 손을 쓸 새도 없이 총구 앞에서 얼어붙었다. 그와 만나기로 한 암달러상은 이미 대공수사팀에서 수사협조 통지를 받은 상태였다. 고창덕의 연락을 받고 바로 수사팀에 알려주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현금을 전액 압수했다.
한낱 백일몽처럼 원대한 작품을 구상했던 조민수를 궁지로 몰고 갔던 보이스피싱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평양에서 온 외화벌이 지도원 강도길은 붙잡지 못했다. 아마 서울에서 감행하려던 외화벌이공작의 실패로 강제송환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어두운 그림자를 훨훨 떨쳐버리고 이역만리 붕(鵬) 정(程)에 오른 조민수는 취재수첩을 꺼내 이스탄불에서 소피아로 갈 여정을 검토하고 있었다. 일제시대 창간된 잡지 ‘개벽’의 창간호에서 읽은 불가리아 얘기가 떠올랐다. 러시아 문호 이반 투르게네프 원작 ‘그날 저녁’을 각색한 시나리오 ‘격(隔)야(夜)’에서 모스크바에 온 불가리아 청년이 독립을 염원하는 얘기를 하던 장면이 어른거려 소피아 지도를 새삼 꺼내 보았다.(끝)
첫댓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마당골님은 연세가 좀 있으신 분 같네요.
감사히 읽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케이퍼물도 잘 쓰실 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