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명 | 남해(南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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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명 | 진씨(陳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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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소재지 | 경상남도 남해군(慶尙南道 南海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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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명 | 진우(陳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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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연혁
남해(南海)는 현재 경상남도 남해군 지역의 옛 이름이다. 690년(신라 신문왕 10)에는 전야산군(轉也山郡 : 轉伊山郡)으로, 757년(경덕왕 16)에는 남해군으로 이름을 바꾸어 강주(康州 : 晉州)에 속했고, 난포현(蘭浦縣 : 內浦縣)과 평산현(平山縣 : 平西山縣, 西平縣)을 관할하였다. 1018년(현종 9)에 남해현으로 강등되었고, 1358년(공민왕 7) 왜구의 침략이 극심하여 행정관서를 진주목의 대야천부곡(大也川部曲 : 하동군 북천면)으로 임시로 옮겼다. 1404년(태종 4)에 진주로 이관한 지 46년 만에 남해현을 복구하고 남해읍성을 구축하였다.
1413년(태종 13) 하동과 병합되어 하남현(河南縣)이라 칭해지다가 1414년 하동현이 독립하면서 진주 금양부곡과 합하여 해양현(海陽縣)이라 불렸으나 1417년 남해현으로 환원되었다. 1419년(세종 1)에는 다시 곤명현(昆明縣)과 합하여 곤남군(昆南郡)이 되었다가 1437년(세종 19) 복구되었다. 별호는 전산(轉山) · 화전(化田) · 윤산(輪山)이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의 남해군이 되었다가 1896년 경상남도에 편입되었다. 1906년 창선도(昌善島)가 면으로 승격하여 남해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 남해고속도로와 남해대교가 개통되어 육지화되었다. 1979년 남해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성씨의 역사
진씨(陳氏)는 중국 송(宋)나라 복주(福州) 사람인 진수(陳秀)가 우윤(右尹) 벼슬을 지내다가 요금(遼金)의 난을 피해 고려에 건너와 여양현(驪陽縣) 덕양산(德陽山) 아래에 정착, 세거한 것이 시초라 할 수 있다. 남해진씨의 시조 진우(陳禑)는 고려조에서 벼슬이 예빈시사(禮賓寺事)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전하는 문헌이 없어 선계(先系)나 본관의 유래 등을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남해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