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백년의 약속)-9
마차한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림산으로 향하는 관도를 달려가고 있다.
마차에는 별다른 장식도 없이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심지어 마차를 모는 마부와 말들까지 검은 옷과 검은 말들이라
마치 시체를 운반하는 마차처럼 음참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마차 안는 4명 정도가 들어가면 적당한 크기인데
은색으로 반짝거리는 머리까락을 가진 여인과 눈매가 날카로운 사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놈들이 림산에 있다고 했나.”
여인이 무심한 눈길로 창밖을 바라보며 앞에 있는 사내에게 질문한다
. 여인의 목소리는 어찌 들으면 한없이 맑고 깨끗하고 들리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차갑고 강인한 의지가 느껴지는 목소리다.
“예! 조사에 의하면 놈들은 림산에 있습니다.”
“우리도 오늘 중으로 림산에 도착하겠지. 다른 사람들은 어디쯤 있지.”
“지금쯤이면 이영(二影)과 삼영(三影)은 림산에 도착해 있을 겁니다.
저기 그런데...인원이 너무 적지 않겠습니까?”
“우리 5명만으로 어렵다는 뜻인가?”
“물론 막주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놈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했던 놈들과는 차원이 틀립니다.”
“나도 알고 있어. 그래서 우리 5명만 가는 거야.
다른 놈들을 데려가야 도움도 되지 않고 희생만 커질 거야.”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천인대 정도는 함께 가는 것이...”
“그만! 이미 결정된 일이다. 너도 림산의 상황을 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천인대를 끌고 가면 다른 이들의 이목(耳目)을 끌게 된다.
놈들도 우릴 경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린 조용히 놈들만 제거하고 림산을 벗어나야 한다.”
무사는 여인의 단호한 말에 입을 다물었다.
‘천인사도 냉하상’
그녀는 탁원한 지도력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위기에 처한 천인살막을 지금까지 무리 없이 이끌어 왔다.
만일 그녀가 없었다면 천인살막은 배화교에 의해 전멸했거나
사막의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다.
마차는 속력을 높여 림산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
자신들의 근거지를 버리고 군산으로 출발했던 흑룡방 일행의 앞에
장강수로십팔채의 총채가 있는 군산이 나타났다.
음동기는 각배에 흑룡방기와 함께 백기를 올리라고 명령했다.
장강수로십팔채는 배화교 및 사해방과의 전투이후 신경이 곤두서있기 때문에
아무연락도 없이 군산앞바다로 접근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흑룡방 배들이 백기를 걸고 군산 앞바다로 들어가자
장강수로십팔채의 순시선 한척이 대장기가 걸려있는 음동기일행이 탄 배로 접근했다.
“너희들은 누구냐. 흑룡방이냐?”
상대편 배의 지휘부에서 누군가가 음동기의 배를 향해 고함을 지른다.
음소빈은 아버지 대신 자신이 앞으로 나섰다.
“음소빈 입니다. 약속대로 흑룡방을 이끌고 왔습니다.”
음소빈이 약간의 내공을 모야 말하자 상대편 배가 음동기의 배로 바짝 접근하더니
지휘부에 있던 사내가 음동기의 배로 날아왔다.
음동기의 배로 건너온 사내는 운상각이었다.
“운상각님 안녕하세요.”
“음낭자로군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먼저 소개부터 할게요. 이쪽은 흑룡방주님이고 좌우에 계신 분들이 좌우호법입니다.”
음소빈이 자신의 아버지와 좌우호법을 소개하자
음동기와 좌우호법이 운상각에게 인사를 한다.
운상각은 간단한 인사가 끝나자 흑룡방 배들을 인도하여 군산으로 향했다.
녹립대탑에 있는 대전에 음동기를 비롯한 좌우호법,
삼대사령 등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조철봉은 의자에 앉아 무심한 눈길로 음동기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한 조철봉의 옆에는 조옥선이 다소곳이 서 있었다.
“자네들이 투항하겠다고 했나.”
“예~ 흑룡방 전체무사들과 배들을 이끌고 왔습니다. 무조건 장강수로십팔채에 투항하겠습니다.”
“투항이라?..사실 자네들에게는 갚아야할 빛이 많아. 자네들 손에 죽은 우리 식구들이 많거든.”
조철봉의 말에 음동기일행은 더욱 깊숙이 머리를 조아린다.
조철봉의 말대로 흑룡방 무사들의 손에 죽은 장강수로십팔채 무사들은 헤아릴 수없이 많다.
또한 배화교 놈들과 함께 군산에서 행한 악행(惡行)들을 생각하면
흑룡방 놈들을 산채로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것이다.
하지만 장강수로십팔채의 은인(恩人)이자
차기 총재주로 내정된 풍운이 흑룡방의 용서를 간곡히 부탁했고,
다른 채주들도 흑룡방의 투항을 받아주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기 때문에
이제는 아무리 미워도 흑룡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지금 와서 떠들어야 모두 부질없는 짓이겠지..
그래! 이미 결정된 일이니 다른 소리는 안하겠다. 옥선아.”
“예!”
“이번 일은 사위와 네가 추진한 일이니 마무리도 내가 해라. 난 피곤해서 그만 쉬어야겠다.”
“저에게 흑룡방에 대한 전권을 주시는 겁니까?”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다. 구워먹던 삶아 먹던 너 마음대로 해라.”
조철봉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전을 빠져나간다.
옥선은 아버지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쓸쓸하게 보였다.
대륙의 강과 수로를 지배하는 장강수로십팔채 총채주로써의 위엄과 기상은 찾아보기 힘들고
이제는 늙고 병든 노인을 보는 느낌이다.
아마도 군산대진 이후일 것이다.
아버지는 장강수로십팔채의 총재주이면서도 군산대전에서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었다.
풍운과 십이사 그리고 채주들의 활약을 멀리서 지켜보며 격려하는 일이 역할의 전부였다.
그리고 이제 채주들과 장강수로십팔채 무사들은
총채주인 아버지보다 풍운을 더욱 믿고 있다.
옥선은 아버지가 대전을 완전히 빠져나가자 길게 한숨을 쉬고 자신이 앞으로 나섰다.
“어서오세요.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일단 처소를 마련해 드릴 터니 편안히 쉬세요.”
“저기...저희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음동기가 살며시 고개를 들고 불안한 눈으로 옥선을 마라보며 물어본다.
흑룡방 무사들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록 투항했다고는 하지만 장강수로십팔채 무사들 중에는
자신들에게 원한이 많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정확한 결론이 나겠지만 최소한 여러분의 안전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 참고로 말씀드리면 여러분은 새롭게 편성되는 군산의 외관경비업무를 담당하게 될 겁니다.”
“가...감사합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저에게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단지 어떤 분의 부탁을 받고 그분을 대신하고 있을 뿐입니다.”
“.......................”
“이제 그만 물러가세요. 밖에 나가면 여러분을 처소로 안내해줄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 그리고 음소빈님은 잠깐 남으세요. 저랑 할 이야기가 있거든요.”
흑룡방 무사들은 옥선의 말대로 대전에서 물러갔고
이제 대전에는 음소빈과 옥선만 남게 되었다.
옥선은 대전에 꿇어앉은 음소빈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고마워요. 흑룡방을 투항시켜 주셔서...”
“아..아닙니다. 오갈 때 없는 저희들을 받아주셔서 저희들이 더 고맙죠.”
“우리 서로 미워하지 말고 잘 지내봐요
.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본채의 무사들과도 쉽게 융화(融和)될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저는 옥선님과 풍운님만 믿겠습니다. 참~ 풍운님은 어디계시죠.”
“운랑은 십이사 분들과 함께 림산에 갔어요.
배화교와 사해방이 대륙상회를 노리고 있어서 그걸 막으려 가신 거죠.”
“그...그래요. 풍운님은 바쁘시네요. 알겠습니다. 저에게 더 하실 이야기라도 있으세요.”
“피곤하실 거니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이야기해요.
그리고 다른 분들이 불안해하시는 모양인데 편하게 지내라고 말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아버님과 다른 분들께 옥선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음소빈은 옥선에게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흑룡방과 장강수로십찰채의 통합작업은 별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 이미 채주들과 장강수로십찰채 지도부가 승인한 사항이며
장강수로십팔채의 영웅이 된 풍운의 부탁도 있었기 때문에
장강수로십찰채 무사들도 원한을 잊고 흑룡방 무사들을 따뜻하게 받아주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흑룡방도 배화교의 협박에 이용만 당한 피해자 중 하나일 뿐이다
. 장강수로십팔채 사람들도 그걸 알기에 흑룡방과의 통합작업이 잡음 없이 이루어졌는지도 모른다.
옥선은 군산의 외관을 경비하는 부대를 새롭게 만들어 흑룡방에게 전담하도록 했다.
하지만 서로 생활방식이 틀리고 문화가 틀린 2개의 조직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옥선은 당장이라도 풍운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군산에서 처리해야 할일이 많았기 때문에 군산에 잡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
곽지향일행은 림산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풍운에게 받은 신호탄을 터트렸다.
신호탄은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하늘높이 날아오르더니 공중에서 화려하게 폭발했다.
곽지향과 금막비일행은 혹시 몰라 나무위에 올라가 몸을 숨기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은색무복을 입은 사내들이 날렵한 동작으로 나타나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천마마련 사람인 곽지향은 사내들의 복장을 보고
그들이 천마마련의 은마마령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곽지향은 금막비에게 눈짓을 보내고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 은마마령군은 곽지향을 보고 경계자세를 취한다.
“누구지. 내가 신호탄을 터트린 사람인가?”
“누군지 모르시겠어요. 천독마가의 곽지향입니다.”
“곽지향...그럼 구사님? 죄송합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인사는 나중에 하고 저랑 같이 온 분들을 소개하죠. 금박비님...당령님 내려오세요.”
곽지향의 말에 금막비와 당령 그리고 귀왕사영도 나무에서 내려와 인사를 했다.
대충 인사가 끝나자 은마마령대는 곽지향 일행을 흑도연합군의 본대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어서오세요.”
거대하고 화려한 군막(軍幕)으로 들어서니 초하벽이 곽지향 일행이게 반갑게 인사를 한다
. 곽지향일행도 초하벽에게 인사를 하고 탁자를 사이에 두고 자리했다.
“처남은 바쁜 모양이죠.”
“일사님은 무경님과 함께 악양왕부로 가셨습니다.”
“우리도 림산의 상황을 들었어요. 그런데 처남이 왜 악양왕부로 간 거죠.”
“악양왕이 이번 사건의 모든 열쇄를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음~ 대충 무슨 말이지는 알겠군.
악양왕이 누굴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번 사건의 방향이 틀려진다는 뜻이군요.
그런데 금산반은 죽었잖아요.
대륙상화에서 금산반을 대신한 사람이라도 있나요.”
“자세한 것은 저도 몰라요
. 다만 무경님은 금산반이 살아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최소한 무슨 대책을 세워두었을 거라고 하셨어요.”
“무슨 말이지 모르겠네요.”
“저도 모르겠어요. 일사님의 명령에 충실한 뿐이다.”
“그래...그냥 소식이나 전하려 찾아온 것은 아닌 것 같고...저에게 부탁할 거라도 있나요.”
곽지향은 풍운이 써준 서찰을 초하벽에게 건내 주었다.
초하벽은 서찰을 천천히 읽어보더니 입맛을 다신다.
“쩝~ 우리보고 뒤치다꺼리나 하라는 말이군.”
“예? 그게 무슨 말씀인지...
제가 알기로 일사님은 대륙상회 상인들을 구해 달라는 부탁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무림군도 자기들이 처리하겠다. 대륙상회 일도 자기들이 처리하겠다
. 중요한 일은 자기혼자 다해먹고 나보고는 상인들 구출하는 일이나 하라.
그게 뒤치다꺼리라는 말이죠. 쩝~ 그렇다고 처남 부탁인데 거절할 수도 없고 말이야.”
“저기...일사님은 흑도연합군이 전면에 나서게 되면 일이 복잡해지고
잘못하면 흑도연합군까지 위험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화급(火急)을 다투는 일이 아니면
흑도연합군이 나서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도 알아요. 그냥 투정을 한번 부려본 겁니다.
서둘러야겠군요. 이왕 구해주려면 확실하게 구해줘야죠.”
초하벽은 흑도연합군 무사들을 상인으로 변장시키고 림산으로 보냈다
. 림산은 육철량이 이끄는 사해방과 대륙상회
그리고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는 무림군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아예 상인으로 변장을 시킨 것이다.
-----------------------
육철량이 금산반을 죽이고 림산을 장악한지 하루가 지났다.
하루라는 시간은 느끼는 사람에 따라 길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하지만 림산에 살던 대륙상회 사람들은 하루가 마치 백년처럼 느껴졌다.
하루 사이에 엄청난 피바람이 몰아쳤기 때문이다.
사해방 무사들의 손에 점포는 박살나고 남편과 동거 동락했던 점원들이 죽었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잊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과 같이 땀 흘리던 점원들이 비명횡사를 한 것이다.
더구나 이런 만행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던 절친한 이웃인 사해방 무사들이라는 것에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운 좋게 살아남은 대륙상회 사람들은 이제 공포에 질려 간단한 짐만 챙겨 림산을 떠나려 했다.
육철량과 사해방 놈들이 또 무슨 만행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림산을 떠난다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사해방 놈들이 림산에서 외부로 통하는 모든 통로를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우성상은 림산에서 건어물을 팔던 상인으로 대륙상회 회원이다.
그는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사해방 무사의 도움으로 다행히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었다
. 하지만 언제 또다시 사해방 무사들이 들이 닫칠지 모르기 때문에
간단한 옷가지와 돈만 챙기고 림산에서 도망치기로 했다.
그는 악양으로 통하는 샛길을 선택했다
. 이 길은 워낙 왜진 곳에 있는 길이라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 우성상이 부인과 아이들의 손을 잡고 샛길에 들어서자
수풀에 숨어 있던 사해방 무사들이 나타났다.
“건어물집 우씨 아닌가? 지금 어딜 가시려고 하는 건가?”
사해방 무사들은 허리에 차고 있던 검(劍)을 빼내면 당장이라도 목을 칠 기세다.
우성상은 사해방 무사들 앞에 바로 무릎을 꿇었다.
“제발 살려주게...자네와 나는 이웃사촌 아니가? 한번만 눈감아주면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네.”
“이틀 전까지는 이웃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바꿨다는 것을 알아야지.”
“한번만...한번만 눈감아주게...자~ 여기 가진 것을 모두 주겠네.”
우성상은 등에 있던 보자기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풀어본다.
보자기에는 금덩이와 각종 패물이 들어 있었다.
사해방은 무사들은 탐욕스러운 눈길로 금덩이들을 내려보더니 검(劍)으로 우성상의 머리를 내리쳤다.
“네놈이 죽으면 어차피 우리 것인데...네놈 부탁을 들어줄 필요가 없지.”
우성상은 눈을 감았다.
햇빛에 반짝이는 검(劍)이 자신의 목을 향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끝인가? 내가 좋으면 가족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우성상의 머리에 순간적으로 수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깡~”
“이봐~ 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 인정을 베풀어야지.
일단 죽이고 보자는 식은 곤란하지.”
수풀이 갈라지면 상인복장을 한 5명의 사내가 걸어 나온다
. 그들 중 한명은 작은 돌을 들고 있었다.
사해방 무사의 검(劍)을 중간에서 차단한 것이 방금 전까지 사내에 손에 들려 있던 조각돌인 모양이다.
“너희들은 누구냐. 누군데 우리 일을 방해하는 거지.”
사해방 무사들은 새롭게 나타난 사내들을 바라보면 경계자세를 취했다.
상인 복장을 한 사내들은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사해방 무사들을 향해 돌격했다.
대답한 가치도 없다는 식이다.
사해방 무사들은 재빨리 검(劍)을 뽑아 자신들에게 돌격하는 사내들을 공격했다.
공기가 갈라지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시퍼런 검(劍)이 돌격하는 사내들의 목과 가슴을 향해 날아간다
. 하지만 사내들은 귀신같은 신법으로 검(劍)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금나수로 검(劍)을 잡고 있는 사해방 무사의 팔을 비틀었다.
사해방 무사는 검(劍)을 놓치지 않기 위해 손에 힘을 주려했지만
손목을 타고 엄청난 진기가 솟아져 들어오니
자신도 모르게 검(劍)을 떨어트리고 다리가 휘정거렸다.
무사의 손목을 붙잡고 있던 사내는 무사의 다리가 휘어지자
반대편 손으로 무사의 목을 잡고 힘을 주었다.
“우두두둑~”
뼈가 부려지는 소리와 함께 사해방 무사는 혀를 길게 빼내며 그대로 절명(絶命)했다
. 무사 한명을 처리한 사내가 주위를 돌아보니 사해방 무사들은 모두 바닥에 쓰려졌고
자신과 함께 온 사내들과 아직도 바닥에 엎드려 떨고 있는 우성상가족의 모습이 보인다.
“일어나세요. 우리랑 함께 갑시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피하기나 합시다.”
상인복장을 한 사내들은 우성상가족을 데리고 림산 근교에 있는 야산으로 향했다
. 그곳은 바로 흑도연합군의 본진이 있는 곳이다.
우성상가족에게 일어났던 일이 림산 곳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흑도연합군이 풍운의 부탁대로 림산에 있는 대륙상회 상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
섬서성에 있는 대륙상회 점포들을 박살내고 혁린무일행은 한중으로 향하고 있었다.
혁린무는 한중으로 이동 중에 사안으로부터 림산의 상황을 보고받았다.
“모두 멈추고 이살과 삼살은 마차로 들어와”
혁린무는 사안의 보고를 받고 진군을 멈추라고 지시했다.
사안의 보고의 의하면 대륙상회의 대륙금위들이 자신들을 잡으려 섬서성으로 출발했고
육철량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금산반을 죽이고 림산을 장악했다고 한다.
“부르셨습니까?”
“림산으로 간다. 모두 준비해.”
“예? 한중이 아니고 림산입니까?”
“육철량이 림산을 장악했으니 우리 할일은 끝났다.
이제 림산에 들어가서 육철량의 목줄을 잡어야 한다.”
“예! 육철량의 목줄을 잡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인지...”
“변소 갈 때 틀리고, 나올 때 틀리다는 말이 있다.
육철량이 다급해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했지만 지금은 얻을 것을 모두 얻었으니
우리에게 아쉬운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손놓고 있으면 남 좋은 일만 시켜준 꼴이 된다.”
“육철량은 본교와 손을 잡기로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놈 말을 어떻게 믿어. 가장 확실한 방법은 놈이 완전히 대륙상회를 장악하기 전에
놈의 목줄을 잡아야 한다.”
“일살일행는 어떻게 합니까?”
“일살에게도 전서구를 보내 림산으로 오라고 해. 우리도 지금 바로 림산으로 출발한다.”
한중으로 향하던 혁린무일행은 말머리를 돌려 림산으로 향했다.
혁린무일행이 대륙상회 점포들을 공격한 것은
금산반을 지키고 있던 대륙금위를 금산반으로부터 때어놓고
금산반의 신경을 분산시키기 위해서였다
. 육철량의 계획대로 대륙금위는 림산을 떠났고 육철량은 금산반을 죽이고 림산을 장악했다.
다시 말해 혁린무의 역할은 끝났으며
육철량 입장에서 혁린무에게 더 이상 아쉬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혁린무는 육철량을 믿지 않는다.
그가 배화교에 협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공염불로 끝날 가망성이 다분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육철량이 배신을 꿈도 꾸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이 기회다.
육철량은 아직 대륙상회를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했으니 허점이 많을 것이다.
지금 림산으로 들어가 육철량의 약점을 움켜잡아야 한다.
----------------------
섬서성으로 향하던 대륙금위들에게 전서구들이 날아들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전서구에는 림산의 상황이 요약되어 있었다.
다음으로 도착한 전서구에는 혁린무일행의 이동경로에 대해 요약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도착한 전서구는 금색으로 밀봉된 것이라
대륙금위의 수장만 볼 수 있어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대장님..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림산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대장이 심각한 얼굴로 대장에게 질문한다.
사해방의 역도(逆徒)들이 회장인 금산반이 죽이고 림산을 피바다로 만들고 있으니
당장 돌아가 육철량의 목을 배고 반란을 진압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장은 대답도 없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대장님 무슨 말씀을 하셔야죠.”
부대장은 대장이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자 답답한 모양이다.
“한중으로 가던 배화교놈들이 이쪽으로 반향을 돌렸다고 한다.
우리는 놈들이 지나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배후를 친다.”
“예?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림산이 피바다가 되었습니다.
당장 달려가서 육철량의 목을 베고 동지들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배화교 놈들을 섬멸(殲滅)하라는 명을 받았다.”
“명령을 내린 회장님은 돌아가셨습니다.”
“명령은 명령이다.
회원들에게 연락해서 배화교 놈들의 이동경로를 철저하게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해라.”
“대장님! 이미 돌아가신 분의 명령보다는 당장 눈앞에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닫쳐라. 지금 항명(抗命)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대장이 벌컥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자 부대장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인다.
대장의 명령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항명은 할 수없다.
항명은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부대장이 말없이 돌아서자 대장은 손에 진기를 주입해서 쥐고 있던 마지막 서찰을 태워버린다.
대장만 볼 수 있는 금색으로 밀봉된 서찰은 금산반이 보낸 서찰이었다
. 금산반은 대장에게 림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동요하지 말고
배화교무리를 처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대장은 전서구들에 대해 고민했다.
림산의 상황을 정리한 전서구와 금산반의 서찰이 같은 시간에 도착했다.
더구나 회장이 사용하는 전서구는 다른 전서구들보다 크고 튼튼하여
똑같은 시간에 출발해도 다른 전서구들보다 빨리 도착한다
. 림산의 상황을 정리한 서찰에는 회장이 죽었다고 했다.
그럼 회장의 전서구는 누가 보냈을까? 죽은 회장이 보낼 수는 없지 않는가?
혹시 다른 사람이 회장이름을 도용해서 보낸 것일까? 아니다. 그건 불가능하다.
회장이 보낸 밀봉된 서찰에는 회장의 직인이 찍혀 있었으며 글씨체도 회장의 글씨체였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미루어보면 회장은 살아있다.
회장이 살아있다면 회장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대장은 부대장의 뒷모습을 보며 쓰게 웃었다.
(미안하네...자네들에게 사실을 말해주어야 하는데...나중에 정식으로 사과하겠네.)
대장이라고 왜 부대장의 심정을 모르겠는가? 자신도 당장 림산으로 달려가고 싶다
. 림산에 가족이 살고 있는 무사들도 많기 때문이다.
----------------------
림산에서 철수한 무림군은 개방으로부터 한중으로 가던 배화교 놈들이
섬서성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란은 이동하는 마차 안에서 십이사들에 대한 생각을 접고 배화교를 상대할 계책을 세우고 있었다.
배화교 놈들은 군산전투에서 대패하고 대륙상회 점포들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
아마 사해방의 사주를 받았을 것이다.
란은 혁린무가 지휘하는 배화교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해 보았다.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배화교의 숫자는 일천명 정도이며 두 패로 나누어져 있다.
대륙상회 점포들을 공격한 부대는 구백 정도로 파악되며
나머지 일백은 포양호에서 림산으로 이동 중에 있다고 한다.
그들 각자가 어느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파악되지 않는다
. 군산총채를 공격했을 때는 기습 공격이었고, 군산대전은 해전이었다.
그리고 대륙상회 점포들을 지키던 점주나 점원들은 무림인들이 아니다.
배화교 무사들은 신강에서 왔다.
해전보다 육지전투에 강점을 가진 무사들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전투다운 전투를 한번도 치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란은 머리가 지끈거린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배화교 소탕할 수 있을까?
“휴~ 정보가 너무 부족해. 상대의 실력을 알아야 대책을 세우지.”
란이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으니 홍인일행이 마차로 들어왔다.
“어서들 오세요.”
란이 인사를 하자 홍인일행도 인사를 하고 홍인과 현원자가 란의 앞에 앉고
화원명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오늘저녁이면 섬서성에 도착할 겁니다.
배화교 놈들도 섬서성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니 잘하면 오늘밤 안에 놈들을 만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린 놈들이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모르잖아요. 놈들이 중간에 방향을 바꿔버리면 힘들죠.”
“놈들의 이동경로를 보면 대충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 지도를 보세요.”
란은 홍인과 현원자 앞에 지도를 펼쳤다.
지도에는 배화교의 이동경로가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악양에서 안강을 거쳐 한중으로 가던 배화교는 발길을 돌려 다시 안강으로 이동하고 있다.
즉 자신들이 갔던 길을 뒤돌아 오고 있는 것이다.
“배화교의 이동경로로 볼 때 놈들은 석천을 지나 안강, 평리로 올 겁니다
. 물론 주번에 다른 곳으로 통하는 길이 있지만 가던 길을 되돌아온다는 것은
무언가 목적이 있기 때문에 되돌 오는 겁니다. 제 판단이 정확할 겁니다.”
“그럼 현재 우리 위치가 섬서성 입구니까
지금 속도로 달려가면 오늘 밤에 안강 근방에서 만날 수 있겠군요.”
“그렇게 되겠죠. 하지만 우리는 안강까지 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평리에서 함정을 파고 놈들을 기다릴 겁니다.”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것은 좋은데....만일 군사의 판단이 틀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놈들이 중간에 딴 곳으로 빠지면 어떻게 하실 거냐는 겁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저를 한번 믿어 주세요.”
“.............................”
란이 강력하게 주장하자 현원자나 홍인도 별다른 말이 없다.
란은 무림군의 군사다.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하고 누굴 믿겠는가?
“홍인님..홍인님께서는 배화교의 실력이 어느 정도라고 판단하세요.”
“글쎄요. 장강수로십팔채와 십이사에게 패한걸 보면 대단한 놈들 같지는 않더군요.”
“그게 홍인님께서 잘못 판단하는 겁니다.
대부분의 무림인들이 그렇지만 배화교도 해전보다는 육전에 능한 무사입니다.
그런데 배화교는 장강수로십팔채와 군산앞바다에서 싸웠어요.
이건 무장을 해제하고 적(敵)과 싸운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죠.”
“지금 무슨 말씀을 하는 겁니까? 우리가 십이사들보다 못합니까?
놈들이 박살냈던 놈들인데 우리가 질 것 같아요.”
“자신감은 좋은 것이죠.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며
되도록이면 우리가 유리한 상황에서 싸워야 쉽게 이길 수 있는 겁니다.
놈들은 군산해전에서의 피로가 풀리기도 전에 악양에서 섬서성으로 이동하며
대륙상회 점포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어요.
놈들도 인간인 이상 피로가 누적되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 하지만 우리 상황도 비슷합니다.
십이사들을 쫓아다니느라 무사들의 피로가 누적되었어요.”
“복잡하군요. 간단하게 말합시다.
상대방의 실력도 모르고 우리도 지쳤으니 놈들 쫒아 다니기 보다는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다가 피로에 지친 놈들을 섬멸하자는 말이죠.”
“예~ 간단하게 요약하면 그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저는 찬성입니다.
대신 배화교 놈들이 다른 길로 빠져서 시간이 지체되면 군사님이 책임지세요.”
“알겠습니다. 책임은 제가 지도록 하죠.
대신 저의 명령에 충실히 따라주세요. 홍인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현원자님과 군사님이 찬성한 일이니 굳이 반대할 필요는 없겠죠. 군사님 뜻대로 하세요.
참~ 화원명님의 의견을 물어보지 못했군요. 화원명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도 군사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군사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어요.”
“그럼 결정되었군요. 조금만 더 가면 평리에 도착합니다.”
홍인이 이끄는 무림군은 평리에 도착하여 란의 지시로 관도에 몇 개의 돌탑과 구덩이를 팠다.
혁린무일행이 지날만한 곳에 진을 설치한 것이다.
----------------------------
육철량은 자신의 방에서 이름들이 빼곡하게 젖힌 책자를 펼치고 붉은색 먹으로 줄을 긋고 있었다.
육철량이 보고 있는 책자는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작성해 두었던 살생부(殺生簿)로
붉은 줄이 그어진 놈들은 어제부로 세상을 하직한 놈들이다.
그가 한참 책장을 보며 줄을 긋고 있는데 몇 명의 노인들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육방주...축하하오. 드디어 대업을 이루셨군요.”
“아~ 오서오세요. 안 그래도 오늘쯤 찾아뵈려던 참이었습니다.”
“아아~ 공사다망(公私多忙)하신 육방주께서 직접 찾아오게 해서야 쓰겠습니까?
할일 없는 늙은이들이 찾아와야지.”
육철량을 방문한 노인들은 사해방의 원로들과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사람들이다.
육철량은 그들에게 지금까지의 일을 소상하게 설명하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물어본다.
“상관장로님..금산반을 따르던 잔당들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좋지만
희생이 너무 크지 않을까요?
어제 하루 사이에 죽은 사람만 일천이 넘고 앞으로 죽어야 할 놈들이 이천이 넘습니다.
아무래도 살성부가 너무 포괄적으로 작성된 것 같습니다.”
“한번 시작했으면 뿌리까지 뽑아야 뒤탈이 없는 겁니다.”
“하지만 다 죽이고 나면 사람이 부족합니다.
장사라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모두 죽어버리세요.”
상관장로란 불린 노인은 차갑게 웃으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그런 저는 상관장로님만 믿고 나머지 놈들을 처단하겠습니다.”
육철량을 찾아온 노인들...
그들은 사해방의 원로들과 대륙상회의 원로들이었다.
반란의 무리들 중에는 사해방 무리들뿐만 아니라 대륙상회 사람들까지 끼여 있었던 것이다.
계 속
|
첫댓글
미진진,
독,

항상감사 



즐겁게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노인케들이 문제가 있다.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가면 또 다른 이익이 있을까요?
즐감
즐감!!!!
감사 ^^ 합니다
즐감~~~~.
잘봅니다..^^
감사히 읽습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감사
재미있게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 허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