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25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이야기 이야기
벧후 1:16
오늘 설교 제목이 “이야기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으로 보입니까?
① ‘이야기’를 강조하고자 두 번 붙여 적었다.
②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다’라는 뜻이다.
③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다!
잘 들으시고 은혜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플라톤이 대단히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그렇지요?
지금 한국에는 트롯트가 대세입니다.
가장 선두주자는 송가인, 임영웅입니다. 여기에 김호중이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은 노래 실력도 출중하지만, 각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래 실력 이전에 이야기로 대중에게 접근한 사람으로는 김호중이 있습니다.
김호중은 할머니 손에 크면서 고교 시절에 이미 조직폭력배와 맞짱을 떴습니다.
그러다가 김천예술고등학교 서수용 선생님을 만나서 극적으로 테너 가수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고딩 파바로티’라는 영화입니다.
김호중은 기승전결이 탄탄한 이야기를 가지고 대중에 다가갔는데, 노래 실력도 출중합니다.
미국 카네기 홀에서도 인정하는 실력을 가졌습니다.
김호중이 지금 공익복무요원으로 근무하는데, 복무를 마치면 카네기 홀에 와서 공연하자!
참 매력 있는 이야기입니다.
플라톤이 말한 ‘이야기를 만드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수긍이 가지요?
<한 평생 이야기>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이야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아무개가 무엇을 어떻게 어떻게 했대!” 이야기입니다.
저는 장례 예배를 집례하게 되면 유가족에게 꼭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유가족들에게 ‘돌아가신 분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껏 나누시라고 권면합니다.
물론 이야기할수록 슬픈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 상을 치르는 유가족에게는 꼭 “이야기 하십시오!”라고 당부합니다.
“고인은 이제 이야기가 되셨습니다.”라고 말해 드립니다.
살아계실 때는 부모님을 찾아가 뵈어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례를 치르고 나서는 찾아뵐 수 없습니다.
돌아가시면 고인은 ‘유가족들의 이야기 속에 계신 분’이 됩니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잊혀진 분’입니다.
이야기하면 ‘되살아나시는 분’이 됩니다.
자녀들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이야기를 많이 할수록 효도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착하게 살라 하셨어!”
“할머님은 저에게 남에게 칭찬받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자꾸 이야기하다 보면, 점점 착한 사람이 되어갑니다.
점점 남에게 칭찬받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이런 고백이 나옵니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이 증명될 때는 언제입니까?
사람들이 하나님 이야기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신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독생자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구원하셨다”
“외아들 예수는 죄인을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 못박혔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었으나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을 때 우리는 구원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사람들이 모여서 이러한 이야기를 나눌 때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믿음이 좋아도, 하나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무의미합니다.
하나님 이야기를 평생 하지 않는 이에게 하나님은 죽은 분입니다.
평생 하나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들을 우리는 ‘불신자’라고 말합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죽어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야기를 늘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독교 성도입니다.
모이면 하나님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예배로 모이는 것도 하나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살아계신 주! 복음 성가집 45장 한번 불러보겠습니다.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날 위하여 오시었네
내 모든 죄 용서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나의 구세주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에 기쁨, 늘 충만하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예배하지 않는다면,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하나님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삼성 창업가 이병철의 하나님>
저의 여섯 번째 책 「이병철의 하나님」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작년 12월에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는데, 천신만고 끝에 이제야 나왔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1987년에 작고했습니다. 만날 수 없는 고인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가능합니다.
그래서 책을 시작하면서 한 페이지를 할애하여 이렇게 적었습니다.
가슴 설렌다.
호암 이병철과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그와 점심은 같이 할 수 없다.
이야기는 할 수 있다.
이야기가 있어 다행이다. 「이병철의 하나님」 13쪽
그리고 마무리도 이야기를 주제로 합니다.
시작과 종말에 관하여
우리는 두 개의 이야기를 가진다.
주어가 있는 이야기와
주어가 없이 전개되는 이야기다. (243쪽)
우주의 탄생에서 종말에 이르는 이야기는 두 가지가 있다는 뜻입니다.
두 가지 이야기가 각각 특색이 있습니다.
성경에 근거하는 하나님의 창조와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주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하여 창조하셨습니다.
특별히 사람과 사랑을 주고받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이 주어입니다.
성경을 믿지 않는 세상에서 말하는 창조와 종말에 이르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빅뱅이론과 진화론에 입각한 시작과 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주어가 없습니다.
왜 우주를 창조했는지 목적도 없습니다.
빅뱅에 의해서 탄생한 우주가 진화하면서 흘러가다가 언젠가는 소멸될 것이다.
시작과 끝에 대한 인과관계도 희박합니다.
우주가 왜 탄생했는지, 어떤 원인에 의해서 어떤 결과를 빚어내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이대로 가다가 어떻게 소멸될 것인지, 왜 소멸되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병철 회장은 예수믿는 성도는 아니었습니다.
평생 주어 없는 시작과 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세상을 살았습니다.
주어 없는 이야기는 밤새도록 해 봐야 허망합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이 회장은 자신이 주어 없는 이야기 속에 있음을 알았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생전에 하나님에 관한 스물네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그가 주어 있는 이야기를 바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설을 읽었는데, 그 소설에 주어가 없다면 어떻게 됩니까?
영화를 봤는데, 거기에 주인공이 없다면 얼마나 허망합니까?
이병철 회장은 한국 제일의 경제계 거목입니다.
그의 업적은 아마도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병철 이전에 이병철 없고, 이병철 이후에 이병철 없다” 이렇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에 대한 질문 24가지를 가지고 답을 찾아 교회로 성당으로 헤맸습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세상이 ‘주인공 없는 이야기’라는 알았기 때문이라고 저는 보았습니다.
<책 쓰는 목사 이야기>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주인공 없는 이야기 속에 있다가, 주인공 있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 것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후세대에게 남겨줄 이야기입니다.
후세대는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또 하나님의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속에 살아있는 조상을 느끼고,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능력과, 존귀와, 영광과 사랑을 받는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
벧후 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베드로 사도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전파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사도입니다.
그는 지금 무엇을 강조합니까?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예수님 이야기가 교묘히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르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가장 복되며 유일한 생명의 이야기>
우리가 만드는 이야기도 세상에 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의 ‘주인공 없는 이야기’도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있는 이야기 중에서,
주인공이 분명한 이야기,
살아 숨 쉬는 이야기,
능력과 권능으로 섭리하는 이야기,
이야기 하는 이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이야기,
구원으로 인도하며, 천국으로 인도하는 이야기,
그 이야기는 오직 하나님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허탄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없습니다.
그 이야기에는 주인공이 없을 뿐 아니라,
생명도, 구원도, 천국도, 영생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이야기를 가장 잘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로 초청하시고,
우리는 예배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 이야기,
구원과 천국과 영생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갑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