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2월에 수환형제, 보배자매와 함께 영화를 본 후, 카페에 올리려고 적어둔 글이었는데, 이제사 올립니다...
제목만 보고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우여곡절 끝에 본편 상영이 시작된 이후에야 보게 된 영화가 ‘울지마 톤즈’였다.(사실 상영관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에니메이션 영화인줄 알고 있었으니...고마워 수환형제...^^)
2010년 1월 14일 말기암으로 고인이 된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는 이미 KBS에서 관련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관계로 상당히 알려져 있고, 9월 개봉한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 덕분에 이후 각종 언론매체에서 이태석 신부의 삶을 재조명한 관계로 이제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고 이태석 신부의 성장배경과 가족이 이곳 참담한 도시 부산인데다 특히 그가 나서 성장했다던 남부민동의 6-70년대가 어떠했을는지 족히 상상이 되는 부산 생활이 제법 된 사람이라면 더더욱 감정이입이 쉬웠으리라 생각한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의대를 마치고 군의관으로 복무하다 신부서품을 받고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인 수단(종교문제로 남북으로 나뉘어 수십년간 내전을 벌이다 몇 년 전에야 평화협정을 맺은 나라다)을 지원해서 그곳에서 학교를 지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병원을 열어 나환자와 결핵환자를 돌보다가 막상 8년여 만에 자신의 몸에 퍼진 암세포 때문에 쓰러진 그의 길지 않은 생애는 굳이 잘 짜여진 신파극을 만들지 않아도 실제 이야기가 어떻게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감동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내 옆에서 휴지도 손수건도 없이 손으로 계속 눈물을 훔치던 청년을 굳이 돌아볼 수 없었던 것은 내 처지도 별 반 다를바가 없었으니깐...-_-a;;) 굳이 이 영화를 보고 카톨릭과 개신교를 구분하여 교리 논쟁을 벌일 필욘 없겠다. 고 이태석 신부의 생애는 그가 진정으로 믿고 따른 것이 특정 교단의 교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였음을 보여주었으니...
이 영화를 본 누적 관객이 30만을 넘어섰으며 그가 생전에 활동한 수단어린이 장학회 회원수도 만명을 넘어섰으며 그가 머물렀던 톤즈(Tonj)에도 봉사지원과 물품지원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10여년전이지 싶다. 내가 미국에서 생활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케빈 스페이시, 헬렌 헌트, 할리 조엘 오스먼트가 출연한 'Pay It Forward'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또한 시애틀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오스먼트가 맡아서 연기한 열두살 소년, 트레버 멕킨리는 학교선생님께 받은 프로젝트로 모르는 타인에게 선행을 베풀고 그것을 계속해서 릴레이로 연결해 나가서 사회를 바꾸겠다는 거대한 계획을 세우고 홀로 그 계획을 실천해 나간다.(내가 베푼 선행을 내게 pay back 하지 말고 그것을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베풀라는 의미에서 pay it forward 라 부른다) 오래된 기억이라 구체적인 스토리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트레버의 노력은 무모해 보이고 또 실패를 거듭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웃을 돌보기를 계속 하던 트레버는 누군가를 도와주려다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어린 나이에 갱스터들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다.(그때만 해도 난 영화가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인줄 알고 너무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어린 트레버가 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사회변화 프로젝트는 그의 사후에 지역사회에 의해 빛을 보는데...소설과도 같이 실제 이 영화와 책을 보고 감동한 사람들이 몇 년 후에 'Pay it forward Foundation'이란 재단이 만들어지고 몇몇 대학 캠퍼스를 비롯한 미국 전역에 확대되기까지 했다. 심지어 Craigslist (우리의 벼룩시장 비슷한 웹사이트)에도 내가 어떤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드릴테니 이걸 받은 분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다른 이에게 베풀어달라는(만약 물질이 없다면 누군가에게 일주일 동안 자동차 라이드를 해 주라는...) 항목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굳이 우리의 베품과 나눔이 어떤 목적 지향이고 결과 지향이어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것이 퍼져나가는 모습 자체는 분명 아름답고 감동스럽다. 이런 모습을 보고 우리가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곤 한다.(선행을 하는 모습이 아니라 선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점에서...) 두 영화 사이에는 10여년의 간격이 존재하건만 보편적 감동을 전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세상에서 빛과 소금처럼,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살아가는 자들의 아름다움에 다시금 감동한다. 때로 우리는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나누며 따지지만, 우리의 행위에 선한 것이 없음을 보고 탄식하며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지...
첫댓글 1월 14일이 이신부의 선종(카톨릭 용어입니다만...) 1주기였습니다. 행위가 신앙의 본질은 아니지만, 야고보 사도의 말씀처럼 참된 믿음은 행위로 나타날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요즘들어 B교회의 C목사님, J교회의 J목사님, S교회의 J목사님 그리고 수많은 장로와 집사들의 실족담에서 죄의 여러가지 면을 보게 됩니다. 언젠가 '미끄러지다'라는 의미도 죄에 있다고 한 아는 목사님의 설교를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 안에 거하며 실족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두 영화 다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