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김제 능제저수지] 새벽 물안개, 어질어질 잠시 머물더니…
전북 김제는 우리나라 최대 곡창지대를 자랑한다.
이 지역이 예로부터 농경문화가 한껏 발달한 이유다.
김제 농경의 숨은 공로자는 생명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한 저수지다.
김제 지역에는 21개나 되는 저수지가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저수지가 김제시 만경읍에 있는 ‘능제 저수지’다.
‘능제’란 이름은 예로부터 이곳에 연꽃과 마름이 많아서
‘마름 능(菱)’을 붙인 것이 그 시작이다.
능제 저수지의 명성은 옛 문헌에서 잘 표현된다.
《동국여지승람》에 “현(縣)의 동쪽 2리에 있으며,
주위가 1만 8100척(尺)이다”라고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김종직의 한시
‘능제음(菱堤吟)’에서 소개됐을 만큼 유명세가 대단하다.
김종직은 ‘능제음’에서 “지나는 길손들이
타고 가는 말을 멈추고 해 지는 줄도 모르고
연꽃이 만개한 저수지 풍경을 구경할 정도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지역의 역사문헌을 살펴보면 능제 저수지가 있는 곳에는
둘레가 5.4㎞ 규모의 자그마한 방죽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둑을 뜻하는 ‘능제’가 독립적으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만경 능제 저수지 혹은 능제호로 널리 쓰인다.
물을 퍼올려 담수하는 몽리(蒙利) 면적은 1734㏊이며, 귀(굽이·귀퉁이)가 99곳이나 된다.
귀가 100곳이 되면 나라에 큰 경사가 일어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능제 저수지는 만경읍사무소에서 익산시(益山市) 쪽으로 3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1930년 동진수리조합(현 동진농지개량조합)에서
담수호로 축조해 지금은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김제시 만경읍과 청하면, 공덕면 등 13개 리에 지난 1927년부터 1929년까지
3년 동안 극심한 가뭄이 들었고, 농민들은 벼가 모두 말라죽는 상황이 매년 반복되자
저수지 확장공사를 시작했다.
이 공사는 1929년 12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11개월 동안 진행됐다.
저수지 확장공사가 완료된 뒤 농민들은 더 이상 물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됐다.
능제 저수지는 여타 저수지들이 홍수조절 능력 등을
갖추고 있는 데 비해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서만 활용된다.
일주일에 월·화·금요일 사흘 동안 제한적으로 물을 방류하며,
하루 15만 톤의 물을 하류로 흘려보낸다.
농업용수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조성된능제 저수지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다양한 활용가치를 찾아내고 있다.
특히 7월부터 연꽃 군락이 만개하며 출사 나온 전국의 사진작가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른 아침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분홍 빛깔, 하얀 빛깔,
노란 빛깔 연꽃의 어울림은 몽환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능제 저수지에 연꽃이 피면 이곳 사람들은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연꽃과 눈길을 맞춘다.
다소곳이 피어난 연꽃을 보며 더운 마음도 가라앉힌다.
연꽃은 더운 한여름을 우리와 함께 난다.
한여름 저수지 앞을 지나가다 꼿꼿이 여름을 나는 연꽃에 손이라도 흔들어줘야겠다
. 글: 박병수<시인> / 사진:박정철(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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