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임상 약리학자 J. 애런슨은 네덜란드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 고흐가 디기탈리스에 중독되었다고 주장해 주목을 받았다. 고흐가 그의 담당 의사였던 가셰 박사를 그린 초상화 속에서 가셰 박사 앞에 놓인 식물이 바로 디기탈리스라는 게 그 단서였다. 당시 디기탈리스는 안정제, 간질 치료제, 우울증 치료제, 수면제로도 쓰였는데, 고흐가 간질, 정신불안, 조울증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자 디기탈리스를 처방했다는 것이다. 특히 디기탈리스를 남용하면 사물이 노랗게 보이는 황색시증이 나타나는데, 고흐가 작품에 노란색을 즐겨 쓴 것도 즐겨 마시던 압생트와 더불어 이 디기탈리스의 영향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혈액은 몸의 조직세포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고 노폐물을 운반해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심장의 펌프 기능이 약해지면 울혈성심부전이라는 증상이 나타난다. 이때 펌프 기능을 보상하기 위해 심장은 더욱 열심히 일을 하고, 이 때문에 심장이 비대해진다. 또 혈액의 양을 절약해 심장이나 뇌로 가는 혈액을 우선 충당하고 다른 부위에 갈 혈액을 줄이는데, 이렇게 되면 신장이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 심장의 펌프 기능을 회복시키고 부종을 가라앉히는 약이 강심배당체다. 그러나 정상인이 강심배당체를 많이 섭취하면 맥박이 불안정해지고, 때론 맥박이 멈출 수도 있다. 디기탈리스에는 강심배당체인 디기톡신과 디곡신이 들어 있다. 특히 잎에 더욱 많다.
디기톡신은 에너지 대사에 관여하는 ATP를 분해하는 효소인 에이티피아제의 작용을 억제해 세포의 나트륨/칼륨 펌프의 정상적인 작동을 방해하고, 세포 내 칼슘 대사에도 관여한다. 이로써 세포 내 나트륨과 칼슘 이온이 증가한다. 이 같은 결과로 심근의 수축력이 늘어나지만, 과도한 심근수축력 증가는 결국 심장정지를 불러온다.
- 출처; 독을 품은 식물 이야기 中 -
민간에선 심장 자극제로 사용된 북반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대한약전에서는 극약으로 규정
다른 식물의 성장 촉진 기능도 있어
최근 관상용으로 많이 가꾸는 디기탈리스는 유럽에서는 주로 의약품 원료로 재배하던 식물로, 북반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명성을 얻을 만큼 화려한 꽃송이가 매력적이다. 디기탈리스는 라틴어 'digitus(손가락)'에서 유래한 것이다. 통 모양의 꽃부리(화관)가 손가락에 끼우는 골무와 비슷하다. 꽃 모양에서 '요정의 골무' '마녀의 종' '요정의 모자' 같은 여러 가지 별명도 나왔다. 실제로 디기탈리스는 오랜 세월에 걸쳐 민간에서 심장 자극제로 사용됐다. 심장풀이란 이름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재밌는 사실은 디기탈리스에 다른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는 효능이 있다는 점이다. 토마토, 감자 같은 식물 근처에 디기탈리스가 있으면 이들의 성장이 빨라진다. 특히 디기탈리스 잎을 꽃병 속 물에 섞으면 시들어 가던 꽃이 다시 생기를 찾기도 한다.
헷갈리면 위험해요
디기탈리스 잎은 컴프리와 비슷해 꽃이 피기 전에는 구별하기 어렵다. 디기탈리스 잎을 컴프리와 착각해 녹즙으로 복용하다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하지만 컴프리 역시 독성이 있어 디기탈리스와 마찬가지로 함부로 복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생태환경 전문기자와 응급실 의사들이 쓴 독초이야기
역사 이야기부터 과학 지식까지
약도 되고 독도 되는 식물의 박물지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임경수·손창환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김원학 전 환경전문기자와 함께 식용식물로 오인해 중독사고를 일으키는 식물을 소개하고 구별법을 담은 '독을 품은 식물 이야기'라는 책을 최근 발간했다.
이 책에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쉽게 발견되는 감자와 고사리, 수선화, 겨우살이, 양귀비, 목화 등 50여 종의 독초들이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함께해온 이야기들을 담은 인문 신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