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단상(落葉斷想)
金榮東
바람이 '으시시' 분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날씨는 '스산하다'. 찬바람에 몸이 '으스스' 느껴지고 낙엽밟는 소리 '바스락 바스락' 들린다.
아~ 11월이다. 가을의 끝자락, 만추(晩秋)를 알리는 대명사는 역시 낙엽이 아닐는지!
사람은 누구나 낙엽의 계절에 상념(想念)에 젖곤한다.
삶을 뒤돌아보기도 하고
사색(思索)에 물들기도 하며
철학도, 낭만주의자, 그리고 누구나 한번쯤은 '시인'이 되어보는 계절이기도 하다.
감성은 '센티' 해지고 정서는 한없이 풍요롭고 넉넉해지며 아름다워지는 늦가을의 정취이다.
오래전 고등학교 3학년 때 11월 늦가을 어느 일요일 오후 시간, 나는 빵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허름한 잠바하나 걸치고 한쪽 어깨에 가방을 메고, 끈이 약간 풀린 운동화를 신고 손은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약간 숙인체 낙엽이 쌓인 길을 걸었던 적이 있다. 가다가 낙엽이 쌓인 곳에 이르러서는 죄없는 낙엽을 발로 한번 휙 걷어차기도 하고 걷다가 조금 지치면 낡은 의자에 앉아 가방에서 시집과 수필집을 꺼내 읽는다.
구르몽의 시 <낙엽>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밢는
소리가?" 반복되는 시를 목소리 톤을 낮추어 읽기도 하였고, 이효석의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를 읽으며 '갓 뽂아낸 커피향기' '메케한 연기냄새'를 간접적으료 체험키도 했다.
이때는 내가 마치 사색가인양, 낭만주의자인양, 문학도인양 그렇게 행세하였으니 참 얼마나 어리석고 부질없고,유치하기 그지없는 미성숙된 나의 모습이었던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했던지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한 때 감수성이 예민했던 학창시절의 연민의 정을 느껴보기도 한다.
이제, 인생 80에 즈음하여 낙엽 길을 걷는다 고3 때와는 몸가짐, 마음가짐이 사뭇 다른 '나' 를 발견한다. 조금은 성숙해진 모습으로~
대자연의 웅비앞에 나는 한없이 왜소함을 느낀다. 모자도 바로 쓰고, 도타운 잠바도 매무새를 갖춰 입고, 운동화 끈도 가지런히 하고 가방도 없이 그냥 그저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낙엽길을 걷는다.
'바스락,바스락' 소리도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울림이 있는 영혼의 목소리인가?
낙엽이 쌓인 곳에 가서는 낙엽을 손으로 안움큼 고이 담아 '훅' 하며 날려보내기도 한다.
어느새 벤취 가까이 왔다. 좀 곱고 큰 낙엽잎을 하나 주웠다. 검붉은색, 노르스름하며 까무잡잡하고 그리고 회색빛이 많이 감도는 그런 낙엽이다. 아직은 지난 날의 화려했던 시절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 이 낙엽속에는 한편의 시가 있고 산문이 있으며 소설이 있고 삶의 노래가 있다.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낙엽의 지난 생애를 더듬어 본다.
이른 봄이 되었다. 들에는 뽀족뽀족 새싹이 나오고 산에 연두빛 새잎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모습은 생명과 기쁨과 환희를 안겨주어 탄성을 발하게한다.
아름답다 연두빛 봄동산이여!
이제 연두빛 잎새는 금방 진한 녹색잎으로 변하며 튼실하게 자라 여름에 번쩍이는 천둥 번개와 우레소리에도 굴하지 않으며 작열하는 태양과 소낙비도 온몸으로 막아준다.
나뭇잎은 온갖 생명체들의 삶의 터전이요 보금자리인 거처를 마련하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게한다.
녹색의 나뭇잎은 청춘의 푸른 열정, 풍성한 여름을 자아낸다!
봄이지나 여름이가고 가을이 오면 연두빛, 녹색의 나뭇잎은
대 변신을 한다 화려한 붉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단풍의 계절이다. 장관이다.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산행> 시에서 "수레 멈추고 앉아서 단풍숲을 바라보니 2월의 꽃보다 더 붉고 아름답구나" 라고 노래했다
停車坐愛楓林晩 霜葉紅於二月花 (정거좌애풍림만 상엽홍어이월화)
그렇다 가을의 단풍은 환상적이요 누구나 탄성을 발한다. 한번쯤 단풍구경 안가본 사람이 그 어디 있던가?
이렇든 아름답던 단풍잎은 차가운 바람이 불면 회색으로 변신하고 그 화려했던 시절을 저만치 뒤로하고 서서히 바람과 함께 사라지기 시작한다.
갑자기 바람이 '쌩 '불더니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그동안 동고동락 했던 친구들과의 이별이다. 어떤 낙엽은 길바닥에 더러는 가시밭에, 돌밭에, 숲속에 더러는 차가운 개울물가에 떨어져 이별을 고하며 묘연(杳然)히 훌러가기도 한다.
나는 왜 길바닥에, 나는 왜 가시밭속에, 나는 왜 차가운 물속에 떨어졌느냐고 원망하는 법이 없다. 그저 각자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 안다.
어느 늦가을 오후 산책로에 도시환경미회원 이저씨가 큰 빗자루를 들고 낙엽을 쓸어 모아 큰 부대에 담는다. 이 낙엽은 어디로 갈 것인가?
아마 불에 태워져 한줌의 재도 될 것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 썩어 거름도 될 것이다.
우리가 어린시절 낙엽은 밥을 짓고 쇠죽을 끓이는 유일한 땔감으로 사용되었다. 재가 아궁이에 가득차면 끌어 모아서 뒷간에 보관했다가 봄이되면 밭에 뿌려져 씨앗이 싹이트고 자라는데 거름이 되는 것이다.
다시 낙엽이 쌓인 동산으로 가보자. 낙엽이 수북수북 쌓여있고 수북이 쌓인 곳을 파 헤쳐보니 낙엽은 거름이 되어 새까만 모습으로 변해있다. 몇년이 되었는지!
그렇다 나무가 자라는데 거름이 되어주고, 차가운 겨울속 나무뿌리가 얼지않도록 이불이 되어 덮어주고 감싸주는 낙엽들!
그리하여 다시 봄의 부활의 생명과 횐희와 기쁨을 인간은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생명의 대 법칙이 봉사의 법칙이요, 자아희생의 법칙은 자아보존의 법칙이다"(교육 93,96)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다.이 모든 만물은 서로 봉사하고 희생함으로 존재한다
꽃과 나비, 작은 풀잎, 공중을 나르는 새, 숲속 나무들, 물샘도 시내도 호수도 대양도 서로 봉사하고 나누어 준다.
짧은 인생!
희로애락을 싣고 서로 각축(角逐) 하다가 한웅큼 부토(腐土)로 돌아 간다면 이 얼마나 암연(暗然)하며 안타까운 일일까?
'낙엽의 일생'
그대의 삶은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우며 갸륵한 삶인지
나도 남은 삶 그대처럼 살고 싶다.
마음모아 그대를 '예찬'하노라
고즈넉한 늦은 오후 시간에 낙엽길을 걸으여 나의 삶을 반추(反芻)해 본다.
"하나님 나도 이런 삶을 살게하소서"
2025. 11월 늦가을 어느날에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