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만의 진단 (잠 9: 7-12)
이 시간에 “거만의 진단”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 육신의 진단도 중요하듯, 우리의 영적 진단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시간에는 거만의 진단입니다. 잠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했는데 교만이 무엇이고 거만은 무엇일까요?
거만과 교만은 비슷한 말인데 사전적인 뜻을 살펴보면 교만은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짐’, 거만은 ‘잘난 체하며 남을 업신여김’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만은 교만만큼 상당히 봐주기 어려운 어쩌면 교만보다 더 악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만이나 거만을 스스로 진단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남의 눈에는 잘 보여도 자기 눈에는 보이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형통 속에 교만이 혹은 겸손 속에 교만이 숨어 있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잔언에서는 거만을 진단하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거만을 어떻게 진단할까요?
1. 하나님 말씀 앞에서의 자세를 보면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7-8절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느니라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책망이나 징계해 보면 안다는 말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어린이가 말하더라도 옳은 말이면 받아들입니다. 비록 어린이지만 하나님께서 어린이를 통해서 내게 말씀하시는구나 깨닫기 때문입니다. 누가 말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거만한 사람은 옳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누가 말해도 속이 뒤틀립니다. 유대인들이 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요8:37에 보면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하셨습니다. 교만하고 거만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징계라도 하는 날이라면 겸손히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지 않고 온갖 방법으로 대항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을 보세요. 교만해 지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지 않고 제 맘대로 행했습니다. 그래서 잠언에서는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느니라.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7-8절)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두려운 것은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요한계시록에도 하나님이 침묵하신 후에는 무서운 심판이 뒤를 이어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도 원수들이 모함하고 죽이려 할 때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만 계시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께서 지적하시고 책망하시고 분초마다 시련하시고 징계하시고 사실은 이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히12:6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습니다. 습2:3에 보면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2. 거만한 사람은 생각의 온전하지 못함에서 볼 수 있습니다.
8-9절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여기 지혜롭고 겸손한 사람에 대한 내용이지만 뒤집어 해석해 보면 거만한 사람의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거만한 사람은 지혜도 부족하고 지식도 부족하고 학식도 부족합니다. 생각이 온전치 못합니다. 뭐든지 자기 생각대로 극단적 단정적으로 행하기 때문에 실패 확률도 높기 때문입니다.
또한 거만하면 학력이 높고 지식이 많을지라도 그 지식은 어디엔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지식입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하고 했지요? 그럴사한 지식, 그럴사한 학위를 가지고, 어떤 것을 전공했다 해도 이치를 꿰뚫지 못하면 쪼가리 상식을 뿐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천문을 연구하다가 아기 예수를 만나잖아요. 자기 분야에 진짜 전문가가 되면 하나님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멋쟁이 전문가들을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생물을 연구하다 하나님을 만나고, 농업을 하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병을 고치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철학을 하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학자들은 그래서 더욱 귀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과론으로 하나님 계신 것을 설명했습니다. 인과논이란 결과를 볼 때 원인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인데 철학적이기도 하지만 얼마나 과학적입니까? 많은 지식은 없어도 꿰뚫는 통찰력이 있다면 온전한 것입니다.
에든버러 대학의 제임스 심프슨 경은 진통제를 발견해서 고통 없이 수술을 받게 했습니다. 그것은 노벨의학상감이고 대 발견이었습니다. 그의 강의 시간에 한 학생이 노교수 심프슨 경에게 "선생님의 생애에 가장 뜻 깊은 발견 한 가지를 들라고 하면 무엇을 들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다들 진통제라고 대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한참 동안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발견은 나는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처럼 알면 알수록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배우려는 자세가 없는 것도 거만의 일종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혹시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어도 낮아져 배우려는 자세가 있기 때문에 비할 수없이 지식이 풍부합니다. 잠6:6에 개미에게서까지 배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겸손하기 때문에 귀에 지식이 솔래솔래 들어옵니다.
답을 알려주어도 탁탁 말을 끊어버리고 자기 주장만하는 일은 없으시기 바랍니다. 자기만 손해입니다. 거만한 사람도 지식이 있을 수 있지만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음에서 거만함을 알 수 있습니다.
11-12절 “나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네게 더하리라 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나 네가 만일 거만하면 너 홀로 해를 당하리라”
여기 “홀로”라고 했습니다. 거만하면 언제나 혼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도 하나님도 그와 함께 하지 않습니다. 사57:15에 하나님은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물리치십니다. 자꾸만 낮추십니다.
11절 12절 말씀을 바꾸어 말하면 거만자에 대한 메시지가 나옵니다. 거만하면 날이 짧아집니다. 반짝 성공일 뿐입니다. 생명적이지 못하고 은혜가 없습니다. 그리고 유익이 없고 홀로 해를 당하게 됩니다.
역사학자 찰스 베어드는 세 가지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중에서 첫째와 둘째만 말씀드리면, 첫째는 개인이나 국가가 권세욕에 날뛰게 되면 반드시 망한다는 사실, 둘째는 하나님의 공의의 맷돌은 천천히 도는 것 같지만 모든 악을 빠짐없이 분쇄한다는 것입니다. 교만하고 거만하면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글이 있어 가져왔습니다. “참 겸손은 '나는 겸손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단한 겸손은 '나는 교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교만은 '나는 교만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구제불능의 교만은 '나는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빌2:3 말씀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가장 낮은 자의 위치에서 섬김의 일생을 사셨습니다. 거만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생각의 온전치 못함에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심을 통해서 진단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 예수님 닮은 겸손의 사람이 되어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엘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