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여행 - 의성 장날의 구수한 풍경
뻥튀기는 펑펑 폭죽을 튀겨내고 아이들은 잉어 구경에 날이 새고
마지막 성냥공장을 간직하고 있는 의성 땅엔 시간을 붙들어 맨 또 다른 풍경들이 가득하다. 만일 2,7일 장날이 열리는 때 의성을 들렀다면 의성장터를 그냥 지나치지 말자. 의성전통시장을 중심으로 풍성한 장터가 펼쳐진다.
↑ 장터에 나온 물고기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아이들.
↑ 폭죽처럼 터지는 뻥튀기가 의성장터의 흥겨움을 더한다.
↑ 탑리 오층석탑 앞에서 만난 간판도 정겹고 주인 할머니도 정겨운 미용실.
시장의 볕 좋은 골목엔 묘목상들이 묘목들을 담벼락에 기대 늘어뜨려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할머니들이 좌판 위에 과일 채소 한 묶음씩 올려놓고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시장통 안 커다란 잉어와 붕어가 들어있는 물통 앞에선 어린아이와 상인간의 재미난 신경전이 펼쳐졌다.
신기하게 쳐다보는 아이에게 상인은 "한번 쳐다보는데 100원이다. 니는 두번 쳐다봤으니 200원 내야 한다. 돈 있나? 없음 보지마라"다그친다. 아이는 제 엄마를 애원의 눈빛으로 쳐다보지만 부모는 "내 돈 없다. 니가 알아서 해라"며 싱긋 웃는다.
뻥튀기가 펑펑 폭죽을 튀겨내고 의성장날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연탄불 닭발석쇠구이의 굽는 연기가 시장 지붕 위로 퍼져 오른다. 감기만 하면 머리가 까매진다며 염색약을 파는 상인, 직접 쑤어온 묵을 들고와 썰어 내놓는 아낙도 시장의 활기를 돋운다.
시장 입구 철공소 앞에는 빈 의자 9개가 줄지어 놓여있다. 장보러 온 이들 잠시 쉬었다 가라는 배려일 것이다. 구경할 게 많은 장날이라서인지 빈 의자엔 따뜻한 봄볕만 내려앉았다.
의성 금성면에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화산이라는 금성산(531m)이다. 그 산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재를 양분 삼아 자라는 것이 유명한 의성 육쪽마늘이다. 금성면의 중심 마을인 탑리는 마치 드라마 세트장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단층 건물이 늘어선 동네의 세탁소, 미용실, 사진관 등 삐뚤빼뚤한 글씨의 간판들이 그리 정겨울 수 없다.
국보 77호인 탑리 오층석탑 바로 앞의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코가 매캐했다. 파마약 냄새 때문이 아니라 미용실 안에서 담그고 있는 고추장 때문이다. 미용실 주인인 임길자(78) 할머니가 동네 사람들과 함께 고추장을 담그다 객을 맞았다. 손님은 많으냐 물었더니 "다 늙은 할미가 하는 데 누가 오겠나.
친구들이나 찾아와 놀다 간다. 오면 같이 국수도 끓여먹는다"고 했다. 할머니는 "메주까리(메주가루) 들어가야 맛이 있다. 색깔은 좀 까무리하지만 그래야 잘 삭카진다"며 열심히 고추장을 저었다. 한두 마디 건넸을 뿐인데 할머니의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많이 심심하고 많이 외로우셨나 보다.
탑리 오층석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면서도 벽돌탑인 전탑의 수법을 모방하고 또 목조건축의 양식도 띠고 있는, 우리나라의 석탑 양식의 변화를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한 문화재다. 첫눈에 "참 잘생겼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탑에는 황톳빛 시간의 색이 곱게 내려앉아있다.
탑은 서있는 곳은 여학교 바로 옆. 홀로 선 탑은 여학생들의 생기발랄한 수다 소리를 들으며 외로움을 달랜다. 이 탑은 천 년이 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노래를, 많은 이야기를 듣고 서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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