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30(월) 색다른 투어 cafe의 아침편지
필부지용(匹夫之勇)을 부리지 마라.
2016. 5. 29(일) 밤 10시 고속터미널 옥상에서 내려다 본 반포지역 일대의 야경입니다.
'필부지용'과 같은 작은 용기, '포호빙하(暴虎憑河)'와 같은
무모한 용기는 리더에게 유해무익하다.
병법서인 <손자(孫子)>에는, 장수가 지녀야 할 조건으로
'용기(勇), 지혜(智), 어짊(仁), 엄격함(嚴)'를 들고 있다.
이러한 조건들을 음미하면서, 난세를 헤쳐 나가는
리더의 조건에 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우선 '용기'에 관해서 알아보자. '용기'를 리더의 조건으로
꼽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며,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용기'의 실상은 갖가지이다. 달리 말하면,
'용기'에는 리더에게 없어서는 안 될 용기가 있고,
유해무익(有害無益)한 용기가 있는데,
리더에게 필요한 용기는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유해무익한 용기란 무엇일까?
맹자(孟子)는 이것을 '필부지용'이라고 했다.
맹자는 어느날, '과인에겐 나쁜점이 있소'.
'과인은 너무 용기를 좋아하오.'라며
용기를 자랑삼아 이야기 하는 제(齊)나라 선왕(宣王)에게
다음과 같이 유세(遊說)한다.
"부디 작은 용기를 삼가십시오. 두 눈을 부릅뜬 채
날이 시퍼렇게 선 칼날을 손바닥으로 쥐고,
'나처럼 할 수 있는 사람 있으면 어디 한번 해봐!' 하고
외치는 것은 필부의 용기에 지나지 않으며,
고작 한사람을 상대할 만한 용기입니다.
용기를 지니실 바에야 부디 큰 용기를 갖도록 하십시오."
이러한 작은 용기, 요컨대 '필부지용'은 리더에게는
유해무익할 뿐이다.
공자(孔子)도 이러한 용기를 '포호빙하(暴虎憑河)',
즉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걸어서 황하(黃河)를
건너려는 것과 같은 무모한 짓이라며 경멸했다.
어느날, 용기에 관한 한 공자의 문제(門弟) 중에서
으뜸이라는 소리를 듣는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집요하게 물었다.
"스승님께서 큰 나라의 총사령관이 되신다면 어떤 인물을
의지하시겠습니까?
자로는 은근히 '너처럼 용기있는 놈일 테지.'라는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걸어서 황하를 건너려는
사람은 사양하겠다. 오히려 겁쟁이처럼 보일지언정
주의가 깊고,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사람 쪽이
훨씬 믿음직스럽지."
이 말에 용기라면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던 자로도
그만 낯을 붉히고 말았다.
이처럼 '포호빙하'와 같은 용기도 리더에게는 유해무익
하다고 잘라 말할 수 있다.
또한 <孫子>에 필적하는 병법서 <오자(吳子)>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장수의 자격에 관해 논할 경우,
용기만을 중시한다. 그런데 용기는 장수가 갖춰야 할
여러 조건 가운데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용기를 과시하는 자는 앞뒤를 가리지도 않고 싸움을 벌인다.
이런 싸움은 어떤일이 있어도 피해야 한다.
- 모리야 히로시의 '성공으로 가는 길 리더십'중에서 -
책소개
기적을 만드는 리더의 용기『성공으로 가는 길 리더십』. 영웅들의 일화와 명저들 속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지식의 핵심만을 뽑아 정리한 책이다. 무한경쟁 시대의 리더, 또는 장차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기 계발의 지침서이다.
이 책은 중국 고전 연구가로 유명한 모리야 히로시의 "제왕학의 지혜"를 번역한 것으로서,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전후한 시기의 제왕들과 제자백가, 그리고 영웅들의 행동원리와 지도철학을 그들의 생애를 통해 재조명한 것이다. 여기에는 중국 최고의 성인인 공자를 비롯하여 제갈공명과 유비, 조조, 손권, 그리고 항우와 유방, 한신 등 영웅들의 일화와 논어, 손자병법, 한비자, 노자, 장자 등 불후의 명저 속에 깃들인 지혜로 가득 차 있다.
모리야 히로시
1932년 일본 미야기 현에서 태어나 1960년 도쿄도립대학 중국문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일본에서 중국 고전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그는 중국 문학자로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왼손에 ‘논어’, 오른손에 ‘한비자’ 右手に「論語」左手に「韓非子」》, 《알기 쉬운 ‘손자의 병법’ 「孫子の兵法」がわかる本 》, 《중국고전명언록 中國古典名言錄》과 역서로《정관정요 貞觀政要》, 《병법 삼십육계 兵法三十六計》, 《전국책》등이 있다.
일요일 오전, 고교 후배(45회 권혁빈) 아들의 결혼식이 남산의 예술원 훼딩홀에서 점심시간에 있기 때문에 오전 10시경 집을 나왓습니다. 시내버스로 경복궁역에 도착했고, 동국대학 방향으로 가는 3호선 지하철을 기다리며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플렛홈의 통로에 설치되어 있는 신라 5~6세기 경의 '기마인물형토기' 문화재를 감상했습니다.
경복궁 내에 국랍만속박물관, 국립미술관 그리고 국립어린이 박물관 등이 있는 관계로 관람객들이 찾기 쉽도로 하는 안내역할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역사 내에 비록 모조품이지만 문화재를 미리 전시해 놓은 것은 이 역사가 바로 경복궁이라는 것을 다시금 인식시키는 상징물로서 참 잘한 일 같았습니다. 결혼식 행사에 참가하는데는 시간적인 충분한 여유가 있어서 '기마인물형토기'에 대해 소개한 설명문을 읽느라고 그 다음 전철을 탔습니다.
남산 예술원웨딩홀 식장으로...
곧 이어 '동국대학교역'으로 향하는 전철을 탔으나, 동국대학교 역 출구에 나와보니 도저히 '남산예술원 웨딩홀'을 찾을 수가 없었니다. 하여 결국 택시를 탔지요. 그런데 엄청 먼 거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택시를 타지 않았다면 찾지 못했을 지역이었지요. 한강진에서 웨딩홀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었으니깐요.
택시를 탔기에 결혼식 시간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지요. 신랑 아버지가 주례를 하는 것을 보곤, 곧 식당으로 달려가 민생고를 해결했습니다. 마나남이 여행중이라, 오늘 아침밥도 굶었기에 꿀맛 같은 점심을 먹었지요.
후배의 아들 결혼식장에는 몇명의 후배들만 있었고 선배님들은 한분도 없었습니다. 하여 45회 신랑 아버지 동기생들과 어울려 맛있게 식사를 하곤, 이어 웨딩홀에서 제공하는 '셔틀 버스에 승차해 10여분만에 한강진역'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다시 6호선으로 효창역으로 갔고 햇볕이 유난히 뜨거운 가운데 걸어서 용산전자상가로 향했습니다.
회사에서 집으로 귀가
회사에 들린 것은 주차장에 세워둔 승용차를 갖고 가기 위해서였는데, 회사 지하차고 옆의 무한창조공간에서는 아들녀석이 운영하는 '무작정 따라하기 대학생공모전' 회원들이 초빙강사를 모시고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어서 잠깐 둘러보곤 승용차를 끌고 귀가하였습니다. 집에서 편하게 TV "복면가왕"을 시청하였지요. 그런데 그 찰라 마나님으로부터 오늘 저녁 7시 30분 제주발 비행기로 김포공항에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하여 "무조건 김포공항으로 마중을 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마나님은 안와도 된다고 했지만, 억지를 내가 억지를 부렸지요.
용산 성당 6시 저녁미사 참례
한창 TV '복면가왕' 9연승 무패의 극적인 장면을 시청하던 중, 마나민의 연락을 받곤 서둘러 용산을 향했습니다. 저녁 6시 미사가 끝나면 7시쯤 될 것이고, 30~40분 정도면 김포공항에 도착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지요. 오랫만에 찾은 용산성당은 그저 정겹기만 했습니다.
김포공항 도착
용산 성당의 저녁 6시 미사는 6시 50분에 끝났습니다. 즉각 공항으로 출발했는데, 의외로 강변북로 도로는 뻥~ 뚫려서 불과 30분만인 7시 20분에 김포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김포공항의 주차장이 어디있는지 알지 못해 수없이 뺑뺑이를 돌다가 E-Mart와 한마음 병원 주차장에 세웠다가 뭔가 아닌것 같아 다시 나와서 하여간 어렵게 어렵게 김포공항 전용 고객주차장을 찾아 주차를 시키고 대합실에 입장했지요. 그런데 제주발 김포공항 비행기는 20분 연착이란 안내 게시판에 문자가 떠서 휴우~하고 안도했습니다. 결국 마나님 일행은 저녁 8시에 개찰구를 나왓고, 마나님은 저녁 9시 미사가 있는 강난고속터미널을 가야만 한다고 우겼습니다. 그리고 강릉으로 가야할 일행 몇명은 공항버스를 놓쳤기에 발을 동둥 구르고 있었습니다. 상기인이 안갔으면 정말 클 날뻔 했습니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을 향하여...
울 마나님은 강남고속버스 터미널엔 일요일 날 저녁 9시에 미사가 있다는 정보를 사전 획득하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성당에 다니는 순남이 언니랑 둘이 급히 서둘렀습니다. 때마친 강릉으로 가야할 친구 2명은 공항버스가 강릉까지 갈 줄 알고 기다렸다가 놓치곤 우리 승용차에 동승하여 강남고속터미널로 함께 갔지요. 다행히 김포공항을 출발한 우리 승용차는 마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역시 도로가 뻥~ 뚫려서 불과 40여분만인 저녁 8시 40분 여유있게 고속터미널에 도착했지요. 강릉행 고속버스는 밤 10시 30분 뿐이라서 동승한 마나님 친구 2명도 억지로 끌려서 '고속터미널 천주교회 저녁 9시 미사에 참례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강남 고속터미널 맨 꽅데기 건물 옥상에서 바라본 반포의 야경입닏. 정말 아름다웟습니다.
밤 9시의 미사는 1시간 정도 소요된 밤 10시 경에 끝났습니다. 상기인은 마나님의 친구분들을 모시고 터미널 상가의 작은 음식접에서 국밥과 비빔밥을 미리 주문하여 10여문에라도 허겁지겁 먹게한후, 강릉행 고속버스를 타게 하였고, 사당동에 거주하는 순남이 언니도 집까지 모셔드릴까 했는데, 극구 사앙하여 마나님과 둘이 오봇하게 야심한 밤 반포대교와 외부 순환도로를 경유하여 집으로 무사히 귀가했습니다. 울 마나님은 몇번이나 '당신 생각이 맞았다"며 엄청 칭찬을 해주어 그저 흐믓하기만 했습니다.
- 오늘의 일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