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태교의 기원
이소연
은빛 잠을 수집하는 뇌의 바깥에는 조용한 산책과 쇼팽의 음악이 있습니다 나는 이
세계의 관념으로 머리카락이 자라는 시간을 좋아해요 덩달아 창을 물어뜯는 별자리의 감성을, 나무 위에 앉은 곤줄박이의 감정을, 마당 앞의 바위의 감상을 좋아해요
그때 뇌는 주글주글한 감성과 지성을 가공하고요 나는 뜨개질 가게를 드나들기 시작합니다 바늘 코에 걸린 실 한 가닥으로 일요일 붉은 공화국에 대해 점을 치는 거죠
그러나 굴뚝이 아름다운 공장지대로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는 것은 피해야 해요 뇌는 풍경을 쪽쪽 빨아 먹고 조금씩 단단해지거든요 참 연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면 뇌가 더디게 어제의 풍경을 음미할지도 몰라요
뇌를 호두알로 생각하면 위험해요 뇌는 오 분간의 육류를 꼭꼭 씹는 것을 황홀해해
요 하지만 나는 핏줄과 신경, 눈 코 입을 위해 십 분간의 채식을 하지요 식물성은 아이의 성격과 눈동자의 색까지 결정하니까요
나는 감상적인 욕조 속에서 돌고래들의 꿈을 꾸고, 뱃속의 아이는 벌써 뇌태교의 기원을 생각하는지 양수를 동동 차네요
―2014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첫댓글 이소연의 <뇌태교의 기원>은 시합평 세미나 3차시 수업 중 동미애 샘의 시 <말 없는 것이 말하다> 에 대한 피드백을 위해 준비한 시입니다. 두 가지를 제언해 드렸는데요, 개념어로 개념을 말하지 마시라는 것과 대상에 대한 층위가 같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목을 비롯하여 관념, 감성-감정-감상(모두 같은 층위입니다), 지성, 풍경, 기원 등의 개념어들이 위 시에서 구체어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뇌의 바깥"이라는 추상에 "조용한 산책과 쇼팽의 음악"이라는 구체적 대상이 포진하고 있어요. 이럴 때 시적 설득력이 강해진다는 사실을 공부하였습니다.
위 시는 2014년 신춘문예 시를 다루면서 살펴보긴 했지만, 오래 되었기도 하고 또 몇 분이 결석하셔서 수업 텍스트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