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산책(146)
누구의 영광을 구하고 사는가?(6)
신앙이 바리새인처럼 위선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말씀대로 살아온 행위가 더 소중하고 가치 있게 여겨졌으니 누가 내 열심과 정성에 태클을 걸면 화가 나고 미워지는 것입니다. 속으로 저 인간은 예배도 제대로 안 나오고, 주일성수도 못 하고, 전도도 못 하고, 기도도 안 한다고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헌금도 못 하고, 방언도 못 하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즐길 것 다 즐기고 개판으로 살면서 남 시기한다고 욕을 바가지로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더 풍성한 것이란, 주 예수님처럼 사도 바울처럼 본받아 사는 것입니다. 낮엔 해처럼 밤에 달처럼 그렇게 살고 싶어 합니다. 무소유로 살고 모두 사랑하고 살고 싶어 합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살겠다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들의 잘못은 오직 예수만 바라보아야 할 외눈박이가 되어야 하는데, 두 눈으로 주 예수님도 보고 자신도 보는 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철저한 외눈박입니다. 오직 십자가 이외는 전하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얼마나 외눈박이였으면, “누구든지 자기가 전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하늘로서 온 천사라 할지라도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도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징그러울 정도로 주 예수 십자가만 바라보는 외눈박이들입니다.
“주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는 의가 없다.”라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이 오해하기를 “착하게 사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라고 합니다. “아니 성도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뭐가 그렇게 잘못된 일이냐?”라고 따집니다. 선하게 살고, 말씀대로 사는 그것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신앙이고 믿음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테클을 거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이 착한 삶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도리어 제자들에게 그들의 의로운 삶은 본받으라고 하십니다. “누구든지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은 의가 없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하십니다.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義)가 있어야 천국에 간다고 하십니다. 이는 바리새인의 의(義)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바리새인들과 같은 율법을 지키는 삶 속에는 의(義)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리새인들과 같은 삶을 신앙이라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義)는 주 예수님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만 있습니다. 믿음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를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 속에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 없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은, 나로 살지 않습니다. 내가 사는 것은 불법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말하고 그리스도로 생각하고, 그리스도로 행하는 삶이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이렇게 살 것을 주 예수님이 피로 언약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새 언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과 새 언약을 맺을 때 열두 제자들이 행함과 맺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 예수님의 피로서만 맺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이 죗값으로 대신 십자가에 죽어 주신 희생으로 맺었습니다.
새 언약 속에는 인간의 열심히나, 인간이 노력해서 하나님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하십니다. 내 안에 오신 주님이 나로, 하여금 이 일을 하십니다. 나만 주님께 비켜 드리면 주님이 친히 행하시어 말씀을 이루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은 배제하신 것입니다.
인간을 할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주 예수님 하고만, 예수의 피로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피로만 죄 사함을 얻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인간의 노력이나, 행함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주 예수님과 접촉되어서 주님과 붙어만 있으면 주 예수님으로부터 주님의 것들을 저절로 공급받게 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공급을 받아야 그 공급받은 것들로 내 영이 자라고, 내 생명이 자라납니다. 자라나면 저절로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리스도를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나타내 보이며 사는 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성화 주의자들, 개혁주의자들, 율법주의자들을 비성경적이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대로 살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리스도의 의가 없고, 그리스도의 나타남이 없고, 자기의 노력만 나타나고 있어서 그것이 신앙이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신앙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자꾸만 신앙으로 인정해 달라고 하면 어찌합니까? 신앙은 오직 주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서 의롭게 된다는 것을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이외는 없습니다. 처음도 십자가 피이고, 나중도 십자가 피입니다. 끝까지 십자가 피만 내어놓아야 합니다.
자기 노력으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자기 노력으로 말씀대로 살아진 것도 아니고, 의로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소관입니다. 사람의 영역이 아닙니다. 사람이 자꾸 성령님의 영역에 들어가서 성령님이 하시는 일을 자기가 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의로워지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지키고 안 지키는 것과는 상관없이 예수의 피로서만 의로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이고, 생명이고, 길입니다. 이것 말고 하나님께서 인간이 의로워지는 것을 허락한 것이 없습니다. 천하 만민에게 구원 얻을 이름은 오직 주 예수님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피로서만 의롭게 된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것은 다른 노림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 예수님에게만 영광이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산 자기에게도 영광을 달라는 것입니다. 나도 좀 알아 달라는 것입니다. 날 칭찬 좀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꼐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