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가 시작되었다. 2025년 3월에는 2006년에 태어난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매년 신입생들을 만나는 일은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다. 이 학생들은 내가 지구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오래 살아갈 텐데, 그들에게 낡은 지식이 아니라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고민이 크다. 대학에서 이들에게 어떤 지식을 전수하고, 어떤 역량을 길러주어야 할지도 늘 걱정이다.
특히 GPT(인공지능 챗봇)의 등장 이후, 내가 알고 익숙해했던 지식이나 대학에서 가르쳐온 내용이 앞으로도 유용할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GPT를 활용해 보면, 과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던 반복 작업을 상당히 단축할 수 있어서 사람들이 수행하던 일의 상당수가 줄어든다는 느낌이 든다. 나만 해도 GPT를 사용하면, 마치 능력 있는 조교 100명과 지구상의 지식을 집대성한 가정교사를 24시간 곁에 두는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GPT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GPT와 함께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는 점을 자주 체감한다. 이 글도 GPT와 함께 생각하며 썼다. ‘인공지능과 함께 생각하는 법’을 연구자로서 GPT를 도구로 활용하기 유용한 사례는 많다. 예컨대 기초 연구 조사, 녹취록 정리, 자료 통합, 맞춤법 교정, 글 스타일 정돈 등이 있다. 최근 GPT에서 출시한 ‘딥리서치(Deep Research)’ 기능은 기존 연구 검토를 꽤나 세밀하게 해주어, 내가 검색으로 찾다가 놓칠 수 있는 영역에 대해 인지하게끔 도와준다. 그러나 이 기능에만 의존하면 AI 알고리즘이 만들어 낸 세계관에 갇힐 위험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찾는 과정과 인공지능의 도움을 적절히 병행하고 반복적인 대화를 거듭하는(reiterative process) 태도가 필요하다.
나는 어느 정도 경력 있는 연구자여서 인공지능을 활용해 내 생각과 질문, 그리고 작업을 더 정교하게 다듬어 갈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결과를 그대로 ‘정답’으로 받아들이고, 그것만을 지식이라 여기며 습득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래서 오히려 대학에서 ‘인공지능과 함께 생각하는 법’을 체계적으로 훈련해야 한다고 본다.
학생들과의 세미나에서 내가 자주 활용하는 방법은, 학생들에게 특정 챕터를 읽도록 한 뒤 먼저 스스로 요약문을 작성하게 하고, 그다음 인공지능에게 똑같은 챕터를 요약하도록 시켜 보는 것이다. 이후 둘을 비교하면서 차이를 인식하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인공지능이 특정 부분을 간과하거나 단순화해 버리는 편향을 발견할 수도 있고, 자신이 어떤 영역에 더 관심이 있는지도 자각할 수 있다. 동시에 인공지능은 확률적으로 생성한 정보를 어느 정도 구조화된 형태로 보여주므로,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 속에서 누락되거나 불분명했던 부분을 찾아볼 수도 있다. ‘질문을 던지고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을 학생들에게 ‘자신의 관심사’를 스스로 질문하고 깊이 파고들도록 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최근 한국의 자유주의에 관심을 갖고 한국에 머무는 정치학자 사만사 프로스트는, 학생들이 질문을 던지는 훈련을 받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반복적인 상호작용과 독서, 질문, 개념 정립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궁금해하는가”를 더 뚜렷하게 파악하게 된다고 말한다. 앞으로 교육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정답을 찾는 기술’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질문하고 있는지”를 아는 능력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 문화에서는 학생들이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정해진 정답을 암기하고 선택하는 데 더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대학 신입생들은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무척 어려워한다. 아인슈타인은 “문제 해결을 위해 1시간이 주어진다면, 55분을 문제 정의에 쓰고, 나머지 5분을 해법 찾기에 쓰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제대로 된 질문을 설정하지 못하면 해법을 구해도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이 기계적으로 해오던 많은 반복 업무를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더욱 요구될 역량은 ‘질문을 던지고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일 것이다. 2006년생 새내기들과 인공지능을 친구 삼아 함께 사유하고 연구하는 훈련을 시작하는 활기차고 재미난 2025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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