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은 자아가 제어할 수 없는 무의식의 정신 요소들 중 하나를 그림자(shadow)로 보았다. 그것은 인간의 부정적인 심리이며 동물적 본성을 내포한다. 상황이 좋을 때는 발현되지 않다가 어려운 상황이 되면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 정신분석가 로버트 A 존슨도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에서 그림자를 심리의 어두운 측면이라고 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어두운 그림자는 무엇일까. 내 안에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는 무의식. 유년기부터 사춘기와 청년기를 지나 지금의 삶까지 밑바닥에 차례로 가라앉은 상처와 억압. 그것은 그림자처럼 지금도 나를 따라다니겠지. 그러다가 어느 날 불쑥 콤플렉스나 피해의식으로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러니 마음을 단단히 죄어야겠지. 나오지 못하도록.
어떤 사람의 그림자가 생각난다. 덩치가 큰 사람이었는데 이런 말을 했다. 몸집이 큰 사람은 그가 가진 그림자도 크고 깊다고. 많은 인구와 영토가 큰 중국도 다민족 통제로 애를 먹고,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미국도 인종차별과 빈부격차가 심하지 않은가. 빛을 많이 받는 만큼 그늘도 그에 못지않겠지.
그런 당연한 말을 왜 했을까. 그 말을 할 때 그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허공으로 가던 눈빛, 그 너머에 있는 어떤 말을 기다렸지만 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는 과거, 혹은 내면의 그늘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사람마다 그런 그늘이 있겠지. 제 그림자만한 크기나 혹은 그보다 더 큰 그늘을 가지고 사는 것이겠지. 나도 내가 질만한 무게의 그늘을 지고 살아왔으니까. 그 그늘이 있어 오늘도 빛을 받아 그림자를 밟으며 서 있는 것이겠지. 그러니까 그늘도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빛이 없으면 그림자도 없었을 터이니.
산책을 끝내고 집 앞 골목으로 들어선다. 어둠이 들어선 골목 가로등에 그림자도 모습을 다시 드러낸다. 색깔과 윤곽이 낮보다 부드럽다.
나의 그림자. 아무런 불평 없이 발에 밟히며 내게 붙어살다가 육체가 사라지면 나와 함께 바닥으로 스미겠지.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고, 앞으로도 밝고 환한 곳으로 다녀 보자고 허공을 껴안는다. 그림자도 나를 따라 엉거주춤 양팔을 포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