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이나교와 불교의 업과 윤회>
고행주의를 고수하는 자이나교는 고행주의로만은 불교와의 차별화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확인하신 자이나교의 업과 윤회에 대한 관념은, 지금의 한국불교의 업과 윤회에 관한 ‘틀’ 과 한치의 다름도 없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의도적으로 자이나교의 업과 윤회를, 그런 방향으로 설명을 했다는 의구심이 들면 차라리 인간은 달에 갔다 왔어도, 왜 방아 찧는 토끼 사진 한 장 못 찍었을까를 고민하시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그럼, ‘한국의 불교는 겉으로는 불교를, 속으로는 자이나교를 말 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심이 들어야 합니다. 우습게도, 그렇지도 못합니다. 자이나교는 참된 자아인 ‘지나’를 추구하는 종교이지 외적인 어떤 것에 의지하거나, 극락과 같은 세계나 보살의 위신력에 의지하는 타력적인(이 표현은 탄력적으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힘에 의한 구원救援을 바라는 교리가 없으니, 현 불교가 자이나교의 짝퉁을 자초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아주 인정하기 싫지만, 또한 승가의 동의를 구하기도 아주 어렵지만, 게다가 재가신도들에게는 아주 불편한 진실이지만, 한국불교의 행태는 힌두교와 거의 일치합니다.
실제로 저만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차분하고 반박하기 어려운 논리로 한국불교의 힌두이즘을 개탄한 충북대 교수의 『윤회와 반윤회』라는 책을 보시길 권합니다. 한국불교가 기복祈福이라는 폐해보다 얼마나 비불교적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한국불교의 재가 신도들의 문제는 붓다께서 재가자에게 요구했던 재가 신도들처럼 적극적으로 붓다의 가르침의 진수眞髓를 자기의 것으로 받아 들이려는 ‘의욕’조차 상실해 버렸다 는 점입니다. 기도에 의한 소원성취?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대학에 모두 합격해야 하고, 기업들은 취업에 성공한 신입 사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암으로 죽는 사람이 통계적으로 줄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