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대천성당에서의 아주 특별한 추억
발행일2020-12-20
[제3224호, 22면]
저는 대전교구 둔산동본당 신자입니다. 대전과 충남지역 교직에서 봉직하고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원로 교육자입니다.
60년 전 충남 대천에 있는 대천농고와 대천여고에 물리 교사로 근무한 시절(1960년 6월~1966년 2월)이 있었습니다. 대천에 부임했을 때 해수욕장 인근에 미군 미사일(유도탄)포부대가 주둔해 있었는데, 우연한 인연으로 가톨릭 신자인 부대장을 알게 되었고, 여럿 장병들과도 격의 없는 믿음과 친분을 갖게 되어 가족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미군 부대에 자주 출입하면서 때로는 식사나 술자리도 같이하고 부대 극장에서 한국에서는 개봉하지 않은 영화도 여러 번 본 기억이 납니다. 부임 후 2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1962년도 초에 대천본당이 설립됐고, 초대 김영곤 신부님, 2대 길 신부님, 3대 태 신부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당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이셨던 길 신부님과 태 신부님이 휴가를 가시면서 대리로 두봉 신부님이 오셔서 한두 달간 근무하기도 하셨습니다. 그 때 뵈었던 인연으로 지금도 두봉 주교님과 안부를 주고받습니다.
당시 인근 미군 부대에서 대천본당에 장병들을 위한 주일미사 지원 요청이 왔습니다. 제가 알기론 당시 미군 부대에서 한국인 사제가 주일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신부님과 함께 4년여 동안 매주 일요일이면 군용차량으로 부대까지 왕복하며 미사 전 부대 장교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미사 장소인 부대 내 영화관으로 이동하여 오후 1시 정각에 미군 장병 10~15명 정도를 대상으로 미사를 드리는 일을 도와드렸습니다. 그 당시 제가 했던 일들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미사 준비와 뒷정리, 영어로 문답식 고해성사표 작성, 헌금정리와 공지사항 전달 등 미사를 봉헌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일들을 도와드렸습니다. 그 당시에는 미사를 라틴어로 드리던 기억이 납니다. 또 냉담 하는 미군 병사와 자매결연도 맺어 주일미사에 참례하도록 이끌었던 일도 잊지 못합니다.
신자 뿐 아니라 비신자 장병들에게도 시간이 나는 대로 한국 문화를 소개해주었고, 장병들이 제가 근무하던 학교에서 영어 회화교육을 하도록 했으며, 심지어 한국 가정 방문을 위해서 고향집 대전까지 장병들을 수 차례 걸쳐 초대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또한 미군부대장과 협조해 장병들로부터 위문금과 위문품을 걷어 대천에 있는 보령원이라는 보육원을 함께 방문했던 일은 매우 특별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일들로 1966년 초 미군 부대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반세기가 훨씬 지났기 때문에 상기 일화들을 알고 있는 대천성당 신자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생존해 계신 신자분들이 있다면 거의 대부분 70~80대가 넘은 분들이고, 그 당시에는 초창기라 신자수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미사 드릴 곳이 마땅치 않아서 개인 주택을 개조해 경당을 만들어 미사를 봉헌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겠지만 과거 대천본당의 설립 초기 일화를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한국천주교회사에 이런 일도 있었다는 점을 알리고자 이 글을 씁니다.
김순양(요아킴·대전교구 둔산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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