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불과 불도깨비
나의 유년시절, 저녁 먹고 앞마당 밀대방석에 앉아 도란거리노라면 건너 마을 언덕배기 따라 파란 불 빨간 불이 출몰하곤 했다. 하나로부터 시작해 둘이 셋이 되는가 하면 다시 하나로 합쳐지고, 갈라지는가 하면 또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현란한 불꽃 춤을 추어댔던 것이다.
형들의 말로는 그게 도깨비불이라 했다. 납득할만한 설명을 듣지 못한 어린 마음으로서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세월을 보냈다. 유년시절을 지나 청소년시절을 보내면서 간간 어린 시절의 그 도깨비불 이야기를 해보면 아무도 이해하지 않으려 해 답답했다. 그걸 사진으로 찍어놨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만 안고 지냈다.
학창 시절 방학을 맞은 어느 여름날, 나는 어머님으로부터 도깨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열다섯 식구의 대가족 종갓집에 맏며느리로 시집와 방아 찧고 밥 하고 빨래하고 밭 매고 길쌈하고 나서 밤이슬 내리는 어스름한 때에 뒷산 넘어 뙈기밭에 고추 따러 가는데 도깨비가 달려들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해도 자꾸 달라붙기에 이판사판 한번 붙어보자는 심정으로 도깨비 앞자락을 잡아채니 그것 말고 다른 도깨비들이 어머님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정신을 빼가더라는 것이었다. 급기야는 혼절해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는데, 한참 뒤에 기운을 차려 일어나니 도깨비는 간데없고 저고리며 치마가 너덜너덜 찢기고 손엔 피까지 낭자하더라는 것이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땐 학창 시절인지라 과학적 사고를 하는 터이지만 그래도 어머님의 이야기이기에 나는 그럴 수 있느냐고 물을 것도 없이 그냥 귀에 담아두고 지냈던 것이다.
한 번은 여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밭 매러 가신다는 어머님을 따라 그 밭에 가봤다. 밭 매다 하시는 말씀이 “저 노인네 점심 먹으려고 삐그덕 문을 열고 들어오시네.” 하시더니 이어서 “밥 다 먹고 담배를 피우는지 재떨이에 재 떠는소리가 톡톡 하고 나네.”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듣기로는 비가 콩잎 위에 떨어지면서 톡톡 거리는 소리를 낼뿐, 이웃에 우리 모자(母子)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밭이래야 공동묘지 기슭에 일구어 놓은 오십여 평 남짓한 뙈기였는데, 그 옆으로는 돌무더기와 오래된 대추나무도 한 그루 서있는 풍경이었다.
인체는 산소, 수소, 탄소, 질소, 칼슘, 인의 6가지 원소가 질량비로 98.5 프로를 차지하고 있다 한다. 그중 인은 인체의 뼈 조직과 유전자 DNA를 구성하는 필수 원자로서, 자연 상태에서 습기를 만나면 자연 발화한단다.
사람이 생명을 다 하면 어찌 될까? 서서히 분해되어 본디로 돌아가지 않는가. 본디란 말은 원자상태로 화하는 걸 말하는데, 그렇다면 6가지 원소 중 인은 육신에서 떨어져 나가다가 자연 속에서 습기를 만나면 자연발화하지 않을까? 그게 도깨비불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자연 속에 인이 많은 곳은 어디인지 상상하기 쉽다. 오래된 공동묘지, 시체들이 많이 묻어있었을 산기슭이나 개울가, 성황당, 오래된 고목 주변 등등...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분리되어 하나는 하늘로, 다른 하나는 땅으로 스며든다 한다. 죽은 사람의 집에서 불덩이가 지붕으로 오르는 모습을 보았다는 이야기도 촌로(村老)로부터 간간 듣는다. 매장하기 위해 관을 열 때는 관 앞에 불을 피우기도 한다. 그건 육신에서 분리되어 나오는 인을 인위적으로 태우기 위한 제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의 어머님은 어려운 시집살이 하면서 기진맥진할 때면 가끔 헛것을 보신 것이리라. 그게 아예 헛것도 아닌 도깨비불을 보신 것이리라. 그걸 자연현상으로 보지 않고 콩잎에 떨어지는 빗소리조차 사람이나 사람의 혼령 소리로 환각 하신 것이리라. 이런 현상은 서양에서도 나타나는데, 근대 독일의 낭만파 시인 빌헬름 뮐러와 음악가 슈베르트의 연가곡에서도 보인다.
슈베르트는 30 세에 불후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를 작곡하고 곧 운명했다. 몸도 약한 편에다 가난과 고독에 시달려 요절했던 것 같다. <겨울 나그네>는 독일의 낭만파 시인 빌헬름 뮐러의 연시인데, 슈베르트는 이 시인의 시를 흠모하다가 여기에 곡을 썼다한다. 이게 시인과 음악가의 작품이 결합된 불후의 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모두 24개의 노래로 되어있는 것 중에 아홉 번째 노래가 <도깨비불>이다. “깊은 골짜기 저편에서 도깨비불이 나를 부르고 있다. 기쁨도 슬픔도, 모든 것은 도깨비불의 소행. 그러나 개의치 말고 나아가자...”
마지막 24번째의 노래에선 거리의 악사를 만나게 된다. “마을 저편 어귀에 손풍금을 켜는 사람이 서있다. 얼음 위를 맨발로 이곳저곳 비틀거리며 찾아다니고 있으나 그의 작은 접시는 빈 채로 있다. 누구 하나 들으려 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다... 노인이여, 저와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제 노래에 맞추어 손풍금을 연주해 주지 않겠습니까.”
이렇듯 도깨비 이야기는 나의 유년시절 체험에서도, 나의 어머님의 이야기에서도, 실연의 슬픔을 겪은 뮐러의 시에서도, 가난과 고독 속의 짧은 삶을 살다 간 슈베르트의 음악에서도 나타났던 것이다.
삶이란 어찌 보면 도깨비에 홀려 끌려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꿈을 그리며 찾아가거나 절망 속에 비가(悲歌)를 부르는 것일 수도 있을게다. 어느 길을 가든 운명의 여신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비켜갈 수는 없으리라. 때론 삶을 해부해 볼 필요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삶이 더 윤택해지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옛날 어머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 자연의 신비 속에서도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도깨비불은 그렇다 치고 자연의 섭리는 얼마나 신비스럽고도 현묘(玄妙)한가.
이곳 삶의 이야기방에 도깨비불이 있다. 닉네임이 그렇다는 거다. 태생은 우리나라인 것 같은데 현재 미국시민인 듯하고, 정신병동인지 수양시설인지 모를 곳에 있다던가, 나왔다던가, 여하튼 글 잘 쓰고 사진도 잘 찍는 분의 닉네임이 도깨비불이다.
미국식으로 도깨비불이라면 이름이 도깨비요 성이 불일 텐데, 이를 우리식으로 부르면 성은 불이요 이름은 도깨비가 되는데 우리나라엔 예로부터 불도깨비와 청도깨비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청도깨비는 해약만 끼친다고 하나 불도깨비는 장난스럽긴 하지만 복(福)도 가져다 준다고 하니 가까이해도 좋을 성싶은데, 그래서 그런지 도깨비불 님의 글이 올라오면 늘 만석을 이루는 건 장난스러워서 그런지 재미있어서 그런지 복을 내려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여러 회원들과 즐거운 교감이 이뤄지고 있으니 오래오래 머물러 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첫댓글 어릴 때 여름 밤
이웃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강 건너 행상 집에서 불이 왔다 갔다 했어요
그 불을 귀신 불이라고 했는데
인 불이라고 했어요.
사골탕이 좋다고 해서
가을 김장 끝 나고 나면
단골 메뉴였는데
인이 나와서 칼슘을 뺏어 간다고 해서
요즘은 하지 않아요.
같은 체험을 했나보네요.
요즘엔 왜 없는지~
참 신기했는데요.
@석촌 행상 집은 상여 나간 후
장식품은 태우고
나무로 된 뼈대만 보관 하는 곳이예요.
@석촌 도깨비한테
홀린얘기 어릴 때 많이 들었어요.
밤 새 싸우고 새벽에 보니
부엌 비엤다는 얘기
되깨비한테 홀려서 산 천을 헤멨다는 얘기.
@별이님 맞아요.
행상집이라고도 하고
상엿집이라고도 하지요.
저도 나홀로 산길을 걷다보이 어느덧 캄캄한 밤이 되었는데요
그때는 손전등이 없어서 더듬더듬 지파이로 짚으면서 걷다가
한순간 시퍼런 도깨비불이 날라다니는것을 보았습니다
쫓아오는듯한 시퍼런 불빛에 등짝이 오싹하드랍니다
실제로 그런 상황에서는 멘탈이 약한분은 졸도하지 싶습니다.^^
체험자가 많네요.ㅎ
제 주위사람들은 하나도 믿지 않는데도.
@석촌 캄캄한 밤에 산속에서는 더러 겪을수가 있다 싶습니다
혼자서는 등짝이 오싹하고 정신 놓치기 쉽상,도깨비불하고 싸우다가 죽는거죠.
@섭이. 담이 약한 사람이 그런거 같습니다.
@혜원7 무슨 환하게???,,,ㅎㅎ
푸르스름한 빛이 날라다닙니다.겁나죠.
@혜원7
@혜원7
요즘 젊은이들 은 절대로 이해하지못할 도깨비불 이야기 입니다 ^^
말씀처럼 정체불명의 불빛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할아버지들의 단골 이야기 거리 였습니다~~
고들빼기님은 들었을 뿐이라는 이야기.ㅎ
도깨비불이 과학적분석이되듯이,
전설의고향도 잘하면 과학적분석이 되지않을까요?
그것도 뭔가 실마리가 있게 마련일겁니다.
우리동네에 옛날에 물레방앗간이 있었던 자리에서
도깨비불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한 여름밤 마당에서 덕석위에서 들려주시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갑자기 몸이 오실오실 떨려서 방으로 들어간 기억이 납니다 ㅎㅎ
이것도 들은 이야기군요.
신세대라는 거죠.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에 이것도 들은 이야기로군요.
신세대라는 뜻이겠지요.ㅎ
아마도 미리 겁을 잔뜩 먹은 상태로 어둠 속에서 짐승 눈이라거나 실체는 없었지만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 등을 접했을 때 그런 기이한 현상들이 나타나지 않았었을까 하고 추리를 해 봅니다.
물론 순전히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
맞아요.
그런 착시 착각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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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과 댓글에서 나오는 낱말에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우리 토박이말이 잔뜩 들어있기에 엄지 척! 합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꾸벅 꾸벅 ~
오랫만에 듣는 옛말이기에 엄지 척!합니다.
위 낱말들은 중국 한자로 표현이 가능할까요?
덕분에 글감 하나 얻었습니다.
못난글에 너무 관심을 주셔서 부끄럽네요.
그런데 재털이는 재떨이가 맞아요.ㅎ
@석촌
고맙습니다.
지적해 주신 '재털이'를 '재떨이'로 고쳤습니다.
저는 이런 지적을 정말로 고마워하지요. 덕분에 글쓰기 공부를 더 하니까요.
위 댓글 쓰면서 고개를 갸우뚱했지요. 그런데도 글 고친다는 사실을 깜박 잊어버렸군요.
석촌 님의 글에서 나오는 옛 토박이말..
덕분에 저는 글감 하나 얻었지요.
대선배님입니다만
저도 대동소이 경험한 바 있습니다.
한여름날 밤 밀짚방석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데..
내 건너 건너편 간사지쪽에서 반짝이는 불빛들...
석촌님 글로부텨
아련한 옛추억의 불빛을 만나 봅니다.
간사지란 표현을 보니 동향임이 틀림없네요.ㅎ
석촌님의 글에 대한 열정 늘 놀랍니다 어찌 이리 세세하게 과학적이다가 자연 현상으로 가는가 하면 옛 시절 호롱불밑에서 자불자불 졸면서 듣던 이야기꾼이었다가 종횡무진 전개에 독자들을 홀려냅니다
캄캄한 밤에 보이는 🔥 인 이맞다고 생각합니다 묵호에 오징어 많이 날때 지금의 등대 부근 논골 산등성이에 오징어 건조로 꽉 차있었지요 그 물 흥건한 오징어를 꼬챙이에 끼워 장대에 매달아 밤새 놔두면 밤임에도 숱한 불빛을 만들어 냅니다 생물 오징어 살에서 나오는 인 이라하나요 그 몸에서 파란 불이 캄캄할 수록 빛을 내고 생물이 흐르면 불도 따라 뚝뚝 떨어집니다 오징어 인줄 모르는 나그네들은 영판 도깨비 불이라 믿지요
우리같은 내륙지방과 바닷가는 체험이 이렇게 다르네요.
오징어떼도 그렇고 바다에 떼로 몰려다니는 고기떼도 그렇다는데
아마 어린시절부터 늘 그렇게 체험했다면 저처럼 호들갑떨지 않겠지요.
저는 전쟁통에 시골로 피란 내려가 체험해서 신비했고요.
글을 읽으면서 집중을 하다보면 모르는 단어 하나에서 전체글을 놓친다. 현묘라는 단어 하나가 그랬습니다.
그 뜻을 알아내려고 파고들었는데 연결고리가 끝이 보이질 않고 아직도 내가 그안에 있는 가운데 일단 댓글을 씁니다.
현묘를 끝내고 현동도 끝내고 아인슈타인과 베르그손이 시간의 개념에서 충돌하던 삼스크르타라는 ‘유위’와 아삼스크르타라는 ‘무위’는 시간과 공간의 정의 상식이 좀 있는 내용이라 편했고요.
칸트의 선과 악이나 플라톤의 시간개념에서 부동의 무존재에서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멸까지도 좀 편하게 접근하였습니다.
다음은 ‘오묘’라는 챕터를 열어놓고 읽으려고 앉아 있어요. 개인적 탐구욕심, 동양철학 오묘하구나..하면서
특별히 불도깨비 눈에 들어오는 불교철학 하나를 재미 삼아서 꺼내 보자면 일적과 곡신의 결합 부피를 느끼는게 윤리요 결합상태의 초월적론은 철학으로 정의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ㅋㅋㅋ
더 많은 탐구 보고서를 댓글로 하기엔 수적천석이오라 이쯤에서 하직을… ㅠㅠ 글 가운데다 이렇게 심오한 ‘현묘’ 한 단어를 던지시는걸 보니 석촌님 지적능력이 참 대단하십니다. 스승으로 모실까 생각중. ㅋㅋㅋㅋ
댓글을 써 올렸더니 관리자에 의해 규제되었다 하여서 중요한 포인트 몇개를 빼고 올렸네요. 개인적으로 좋은 단어였는뎅 ㅠㅠ
석촌님 덕에 날마다 발전하고 있어요. 탐구하는 중인데 화장실에 가는 것도 귀찮아지네요. ㅋㅋ 감사 감사합니다.
동양사상은 이를테면 아날로그의 안개 속 같지요.
서양사상은 디지털카메라 같지만요.
그대는 뿌리가 동서양에 걸쳐있으니 사고도 표현도 색다른것 같아요.
연구 많이 하시길~
어릴때 할매한테서 도깨비 이야기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신세대시군요.ㅎ
저는 앞산 도깨비 불에 대해 어른들로부터 인광이라고 들었습니다.
들은 이야기뿐인가요?
그러면 신세대에 해당하지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