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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첫째날
오사카 여행을 꿈꾼지 몇 달이 되었다.
혜원 아빠가 늘 이야기 하던 교토,나라,오사카의 모습을 실제로 느껴보겠노라고 이 노선의 여행을 선택하였다.
여행은 좋아하지만 유독스런 고소공포증으로 오랜 비행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지라 일본 여행은 최적의 여행코스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일본을 한 번 가보고 싶어하시던 친정엄마의 바램은 이 여행을 선택하게 된 커다란 배경이었다.
1월 2일 저녁 7시 인천 공항 출발.
오전 홈플러스에 가서 빠진 물건을 산 후 우리의 막내 영웅이(시추강아지)가 상태가 좋지 않아 집에 놔두고 가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동물 병원에 맡기고 돌아오니 오후 1시쯤이었다.
영통에서도 인천공항으로 가는 셔틀이 생겼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셔틀리무진이 정차하는 곳 호텔 캐슬로 향했다. 대충 짐을 꾸렸는데도 기내용 가방 4개가 되는 짐은 여행의 무게처럼 느껴진다.
일본, 가장 가까운 나라이면서 감정적으로는 가장 먼 나라인 곳.
늘 여행에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많은 생각과 액션을 구하지만... 일본은 나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른지.
3일동안의 여행이 과연 무엇인가를 얻고 느낄만한 시간이나 될른지.
지루한 비행과 수속과 여정을 마치고 오후 8시 40분 일본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였다.
땅이 부족하여 지가가 너무 비싼 탓에 바다를 메워 인공섬을 만들고 공항을 건설하여 이착륙비용이 세계적인 곳, 간사이공항.
간사이공항에서 숙소 오사카만 선루트호텔까지 30분간의 이동에는 어두워 전혀 경관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시를 가득 메운 불빛과 일본의 문자로 채워진 전광판과 도시의 스카이라인들, 이곳이 일본인가. 히라가나전광판이 아니었다면 서울이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오사카만에 자리잡은 호텔
도착한 숙소, 1701호, 들어선 순간 oh,my,god!
엄마,좁아요,답답해요, 일본이 왜 이래요? (잘 사는 나라인데 왜 이 모양이냐?)는 투로
지가가 비싼 오사카의 호텔이라는 것을 순간 나도 깜박하였나보다. 운동장 같던 규슈의 호텔을 생각하였으니.
그러나 문을 겨우 열 수 있을 만큼의 최대 절약의 공간, 그 절대 공간에선 없는 게 없었다. 침대 두 개, 화장대, 욕실까지.
일본 사람들의 공간 이용 방식을 한눈에 읽어버렸다. 오사카와 만난 처음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었다.
내일은 또 어떤 오사카랑 만날까? 그런데, 우선 교토랑, 나라를 간다고 가이드 김소미씨에게 들었다.
모닝콜이 5시 30분이란다. 7시 30분 출발.
조금 긴장한 탓에 일찍 잠을 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을 기대하며!
혜원이가 소리친다. 엄마 바깥 거리가 꼭 영어 마을 같아요! 불빛이 너무 예뻐요. 그래? 창밖 거리의 불빛은 깊은 바다처럼 유난히 푸른데 덧칠한 듯한 따뜻한 색감의 빛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일본의 밤은.
2.둘째날
어제 여행의 시작에서 조금 긴장을 한 탓인지 일어나기가 힘들었지만 기대감에 모닝콜에 얼른 침대를 떨치고 일어났다.
바다가 보이려나? 바다는 반대편이라.
아침 호텔 조식을 걱정하며 날이 밝은 호텔 주변 거리를 창 밖으로 내려보았다.
잠 많은 진규를 깨워 18층 라운지 식당에 가니 바다도 보이고 정박해 있는 배도 보이고, 어제 깜깜한 일본보다는 진짜 일본같다는 느낌이 확 몰려든다.
식사를 걱정했는데, 다행히 조금은 달은 기무치도 있고, 밥도 있고, 잘라진 미역을 넣어 먹는 미소된장국이 있어 적당한 수준으로 식사가 가능하였다. 애들도 고추장을 달라고도 하지 않아 슬그머니 가지고 간 고추장은 가방으로 넣어 버렸다.
가이드는 경희대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새댁 김소미씨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환하게 자주 웃는 얼굴이 참으로 다정해보인다.
하루 일정을 설명하는데, 일본 지도를 차 맨 앞에 붙이더니, 일본 날씨, 일본의 4개의 섬, 일본사람 이야기까지 오토매틱처럼 쏟아낸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나는 잠깐 저렇게 사회 수업을 한다면 애들이 무척 재미있게, 즐겁게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왜 국명이 일본인가를 들으면서 해의 나라 그래, 우리나라와 시차는 없지만 독도보다 일본의 제일 서쪽도 해를 먼저 만나겠구나라는 생각이 언듯 스쳐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조용하고 사람들의 움직임이 없어 가만 생각하니, 신년이라 휴일을 보내는 듯 싶었다. 우리가 가는 절 청수사는 일년의 복을 빌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일본! 잡신이 존재하는 나라, 잡신을 믿는 나라이다.
끊임없이 화산 활동이 일어나고, 지진이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도 모르는 늘 불안한 자연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엔 신을 받아들여 마음의 위안을 삼고 싶은 그들의 욕망으로 잡신들이 탄생하였으리라.
교토 청수사에 도착하였다. 고도의 경주같은 도시 교토.
주차장에 내려 청수사까지 오르는 길은 민예품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였다.
절 입구에서부터 신사 앞에 붙여진 종이부적들, 그 조각조각에는 소망하는 글귀가 쓰여있겠지.
신년이라 이른 아침인데도 청수사엔 우리와 얼굴빛과 표정이 다른 일본인들이 바쁘게 관람하고 있었다.
8세기에 청수사가 창건되었다고 한다. 목조건축물임에도 지붕의 소재가 마치 보드라운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질감으로 느껴진다. 절벽과 같이 어우러지는 절의 위용에 고대의 절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멀리 교토 시내도 보인다.
과거의 건축물과 역사, 현대의 도시모습이 함께 하는 교토.
일본은 가게든 장인이든 전통을 지키는 모습을 무척 존경하고 가치 있게 여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전통의 가치보다 훨씬 절대 가치로 여기는 일본.
그것은 역으로 전통적인 것의 부족이 더욱 그것을 가치있게 보존하고 섬겨야 한다는 지나친 관념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닐른지.
그런 의미에서는 교토는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일본인들의 자존심이 아닐까?
우리도 전통있어요! 하고 외치는 일본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거리 상점에서 기모노를 입은 인형4개를 4천엔에 샀다.
금각사로 향한다.
아름다운 정원이 볼만하다. 전형적인 일본식 정원은 아닌 것 같았다.
중국 쑤저우의 졸정원과 상해의 예원을 보아서인지 깔끔하기는 하여도 장대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다만 여백의 미가 느껴져서 좋은데, 자연스러운 멋은 부족한 듯 싶다.
그러나 금빛 금각사와 어우러지는 연못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교토 시내에 있는 호텔 연회장에 마련된 식사를 하러 갔다.
주황빛 조명으로 음식이 아름다이 비치는 식당.......
조그마한 접시에 살짝 걸쳐진 듯이 나온 반찬과 밥은 또 한 번 일본인들의 실용성과 야박한 인심(우리의 관점에서)을 함께 느끼게 한다.
추가를 하면 비용을 다시 치루어야 하지만 아까운 음식을 버리는 일은 없을 것 같아 그들의 실용성이 은근히 부러웠다.
잠시 후 2층 면세점에 들러 물건을 고르다 시간을 허비하고 있던 혜원이를 찾으러 가이드와 나는 호텔 쇼핑센터를 오르락내리락하며 헤매고 다녔다.
혜원이를 찾고는 일본 사람 많은 데서 한국아줌마 목소리 큰 것 광고하며 "너 때문에 다 기다리잖아" 하며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한편 진규는 여행 내내 모자를 푸욱 눌러쓰고 다니면서 청개구리마냥 속을 썩인다.(약간 사춘기를 겪는듯)
"먼 곳까지 와서 엄마 성질 돋구네? 집에 가면 아빠에게 다 이른다."
주변에 있는 일본 사람들이 우리말은 알아 듣지 못하겠지라고 생각하며 야단을 친다.
어느덧 교토를 벗어나 나라에 도착하였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가장 한국적인 절의 모습을 하고 있는 동대사를 본다고 하였다.
그런데 도착예상시간을 40분정도 초과한 시간에도 도착하지 못하고 차는 거북이 걸음이다.
일본도 교통 체증이 심한가? 이유는 신년에 동대사를 찾는 인파의 차량 행렬 때문에 겪는 체증이란다.
가이드는 아예 내려 동대사까지 1km를 걷자고 한다. 모두 흔쾌히 동의하여 온화한 날씨덕에 즐거운 마음으로 동대사 후문쪽으로 걸어들어갔다.
불쑥 나타난 사슴과 조우하여 인사를 나눈다. 동물과 만나니 갑자기 병원에 놔두고 온 영웅(강아지 시추)이 생각이 간절하다.
동대사는 청수사와 거의 같은 시기에 지어진 절이었으나,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18세기 초에 다시 재건되었는데 세계최대의 목조건물이라 한다. 동대사가 소유한 많은 문화재가 있다고 하나 일반인에겐 공개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라 한다.
동대사는 마치 우리나라 궁과 같은 느낌도 있고, 불국사와 같은 느낌도 있었다.
교통체증으로 허비해버린 탓에 동대사는 관람을 자세하게 못하고 나라 온천으로 향한다.
우리나라 대형 찜질방같은 느낌의 온천에 도착하였다.
내겐 일본 온천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나무 냄새나는 다다미화실의 전통료칸에다, 꽃잎과 나뭇잎이 띄워진 자연 그대로의 노천 온천.
그러나 그런 온천은 아니었으나, 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녹여주는 따뜻한 온천에서의 1시간은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고,
우리 아이들은 온천라운지에서 400엔 스티커 사진을 찍으며 원수지간처럼 지내다 갑자기 남매애를 과시하며 다양한 포즈를 연출하였다.
시골 같은 도시 아름다운 나라에서 1시간 이동, 다시 오사카로 향한다.
조도를 최대로 낮춘 고속 도로가 너무 어둡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일본! 이건 아끼지 말아라)
차창 밖으로 일본의 밤은 점점 조용히 깊어간다.
3.세째날
나라를 떠나 1시간 후 오사카시내에 위치한 호텔 신오사카도큐인에 도착하였다.
오사카시내에 들어오니 자유롭게 시내를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같이 하는 유치원선생님들의 그룹인 젊은 분들은 짐만 놔두고 서둘러 주변 오사카거리로 몰려 나갔다.
늦은 밤에 거리에 나간다는 것이 위험하지 않을까? 란 마음이 들었지만 혜원이와 지갑을 챙겨들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주변 쇼핑센타 지하먹거리를 파는 가게들을 기웃거리기 시작하였다.
'오사카중심지 신사이바시와 도톰보리까지 30분 이상 걸리니 가지 마라'는 가이드의 조언에 호텔 주변을 헤매며 다니는데 시간이 늦어서인지 문을 닫은 상점이 너무 많다.
호텔라운지에서 국제전화카드를 하나 샀는데, 전화를 아무리 걸어도 신호음만 들리고 통화는 되지 않는다. 천엔을 주고 샀거늘 카드가 무용지물이다. 그러다 겨우겨우 거는 방법을 구안해서 결국 통화에 성공하였다. 왜 이렇게 불편한것이야!
편의점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눈요기라도 할터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흔한 편의점을 찾을래야 찾을수가 없다.
내일 고베에 큰 쇼핑 센타가 간다 하니 그때 실컷 구경하자고 혜원이를 위로하였다. 유난히 예쁜 것 좋아하는 혜원이는 일본 물건을 못 사는 바람에 입이 툭 튀어나왔다.
객실로 돌아와 보니 tv에 한국 채널이 있어 뉴스를 보게 되었는데 뉴스에 감동이 전해 왔다. 뉴스를 보며 감동이라니.
이래서 외국에 오면 애국자가 되나 보다. 한국을 떠나온지 겨우 이틀만에 말이다.
다음 날 아침. 가이드가 들려주는 일본 3대 명장, 오다노부가와,도요토미히데요시,도쿠가와이예야스의 철학을 들으며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축성하였다는 오사카성으로 향했다.
일본을 통일한 장본인 도요토미히데요시장군,우리나라조선을 공격한 임진왜란의 인물..우리에겐 원수이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위인인 인물. 전국 시대를 통일하고 불평 세력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일으킨 전쟁, 임진왜란.그 결과는 조선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동북아시아의 정세의 판도를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되었다.
중국 명의 쇠퇴와 후금의 성장, 일본의 정권교체, 조선의 사회적혼란 등
거대한 규모의 오사카성으로 들어서니 도요토미히데요시(풍신 수길)의 권력을 가늠할 수 있는 거대한 바위(영주들로 부터 상납받은 바위)가 보였고, 오사카성을 지켜주는 두 개의 해자(웅덩이)를 보았다. 두개의 해자를 통해 얼마나 치밀하게 적을 막기 위한 방법을 사용하였는가를 알 수 있었다.
성의 천수각엔 도요토미히데요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유물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마침 오사카성 그리기대회에서 입상한 학생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오사카성을 아주 세밀하게 표현한 초등학생작품(지나치게 세밀한 묘사)들을 보니 매우 놀라웠다. 어린 학생들의 오사카성을 표현한 모습에서 오사카시민들의 성곽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지를 느낄수 있었다.
수원이라는 성곽도시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수원성(화성)도 세계문화유산인데, 나는 내고장의 문화유산을 얼마나 많이 알고 사랑하고 있는것인지? 수원으로 돌아가면 수원성을 꼼꼼히 살펴보리라하는 결심과 함께 나의 머릿속엔 아름다운 수원성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일몰의 수원성, 밤의 빛을 받은 수원성도 눈부시게 아름다운데 말이야.'
성곽 맨 꼭대기 8층 전망대에서는 오사카를 한눈에 내려다 볼수 있었는데, 오사카를 보며 오사카성에서 역사의 시간여행을 잠시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다.
천수각은 규슈 구마모토성의 천수각과 구조와 외형이 비슷하였다. 진규와 혜원이가 규슈의 천수각이 생각났는지, 엄마 옛날에 한번 온 적이 있는 것 같아요! 라고 이야기 한다.
1995년 고베대지진이 발생한 일본의 아름다운 항 고베로 향한다.
나는 처음 여행사와 면담을 할 때 고베로는 여행을 가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말하였었다.
막연히 지진이 일어난 곳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내가 처음으로 만난 고베는 지진의 흔적이라고는 메모리얼파크라는 기념지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다. 세련되게 도시 이미지를 제고토록 구현한 랜드마크건설이며, 고베의 밤의 빛을 아름다이 연출하기 위해 정박한 유람선의 불빛까지도 신경을 쓴 연출력의 도시 고베, 더 이상 6000여명의 사망자를 낸 지진의 도시 고베가 아니었다.
고베항 모자이크 쇼핑센타에 들려, 나는 조카 예진이에게 줄 인형을 사고 할머니는 혜원이에게 줄 500엔 반지를 사셨다.
점심은 간단하게 일본식 돈까스를 먹었다. 우리나라 돈까스보다 맛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가격은 다소 비쌌다.
1인분에 천사백엔.
모자이크 쇼핑 센타의 쇼핑을 즐기는 일본 사람들의 표정엔 자유로움이 묻어 있었다.
격식과 체면을 고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서는 자유는 어려운 이야기인데.....
어쩌면 이기적인 것 같지만 자기 삶에 충실한 모습이 일본인에게서 가장 배워야 할 덕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 피해주는 것도, 피해를 받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들. 인정은 없으나, 최소한의 양심은 갖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
그러나 !
그런데 정작 사과를 꼭 해야만 하는 2차 세계 대전의 책임이나 위안부의 문제에 대한 사과는 지금까지도 회피(도피)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찮은 일에도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가볍게 사과하는 일본인이 진정 역사의 책임자로 서야 할 상황은 절대적으로 피하고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우리 조선보다 문화적 수준이 낮아 14세기부터 통신사(조선외교문화사절)를 일본이 받아들여 조선의 선진 문물을 흡수하였고, 조선과 일본은 임진왜란을 치루었고, 조선보다 유교문화의 깊이가 얕았던 탓에 일본은 서양의 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여 메이지유신이라는 근대화에 성공하였으나, 군국주의라는 전체주의사고에 빠져 세계를 장악하기 위해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며, 그 댓가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피해를 받았으나, 이웃 나라 전쟁(6.25전쟁)에도 기회를 만들어 다시 일어나 세계 최고의 공업국으로 성장한 괴물 같은 나라 일본.
내가 만난 일본은 일본은 없다 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본이 위대하다도 아닌 그저 사람 사는 동네, 우리의 모습이 있듯 그들의 모습이 존재하는 아시아의 한 나라로 생각하고 싶다.
이제는 아픈 역사를 되씹기 보다는 잊지 않고 그들과 나란히 경쟁하는 동반자의 길을 .
간사이 공항을 떠난다. 인천 공항을 향해. 1시간 40분의 비행!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길이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따뜻한 일인가 !
" 잠시 후면 대한 민국 인천 국제공항에 이륙하겠습니다" 기장의 안내 멘트가 들려왔다.
먼 어두운 하늘, 불빛으로 아름다워진 인천바다의 밤이 보인다.
첫댓글 라임오렌지님 글 잘 읽었습니다. 재미난 일상 예기라서 허락없이 자게판으로 옮겼습니다. 이 코너가 울님들이 가장 많이 접속하는 코너라서~~~ 양해해주세요*^*
선입관만버리면 괜찮은여행지라고하던대요 ..
진지한 글이라서 시험공부하듯 읽었습니다.
유럽인의 아시아 여행 코스가 일본 한국 중국이라면 일본을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일치합니다.
항상 미소 짓지만 진실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말로 느끼한 모양입니다.
"하이! 아링아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이 간지럽다.
대체로 이런 말들을 합니다.
그래도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의 작은집 자손들입니다.
종갓집을 몰라보는 일본의 무지는 우리가 회초리들고 올바로 교육시키지 못한
우리의 허물과 자책도 있습니다.
그들이 빨리 철들어 조상의 나라 한국을 잘 받들면
일본이 더 복을 받을 일인데..
대형의 입장에서 일본도 형님들을 본받아 16강 들기를 바랍니다.
고맙네요,제작년 12월에 일본동지사대학에 정지용문 학술 세미나때문에 2박3일 다녀와 기행문을 남겨두지못했었는데 그때의 시간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신 의 문화, 절에는 부처님이 없는것도 저는 이상했었는데그리고 금물입혀져있는 금각사 절 ...즐겁게 읽고 갑니다
매우 사적인 이야기들을 담은 저의 블로그가 있습니다. 생활의 단상들을 쏟아내며 애들 커가는 것, 놀러 갔던 일, 기념할 만한 일들 일기처럼 보관하고 있는데 회원은 거의 만들지 않습니다. 공개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여행기들은 문수 사랑 카페에 올려도 될 듯하여 졸필에, 살짝 챙피하지만 꺼내 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