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석은 자꾸만 기차를 흔든다
김연화
미리 예매하지 못한 자리는 모두 입석이다
서울에서 구미까지
크고 작은 산들 틈으로 열린 철로는
강과 그 강물이 키운 들녘을 호령하며 간다
서서 보는 차창 밖 풍경
더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는 친구를 얻었다
풀리는 다리 힘 너머로 완강히 버티고 선
철교를 지날 때면 세상마저 흔들렸다
내 시선이 가 닿은 옆자리 주인 일어서면서
“여기 좀 앉으세요”
하고 내 환절기 옷자락을 끌어당길 것 같은데
내가 감은 눈을 뜨면 그가 뜬 눈을 감는다
세 시간을 침목처럼 버텨온 다리로
남은 하루를 지탱해야 하는가
영법(泳法)을 익히지 못했는데도 강을 건너는 오후가 부끄럽다
빈틈없이 앉은 사람들
가까울수록 먼 풍경을 그리는 것일까
또 하나 낯선 강을 건너는가 보다 철거덕철거덕
물결 소리로 강을 건너는 피로가 짐짝처럼 졸립다
먼 산의 무게로 매달린 입석이 자꾸만 열차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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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란 없는 거예요
김연화
흰나비가 흰민들레꽃에
앉는 것이 그러하고 노랑나비와
자운영꽃이 함께 손잡고 춤추는 것이 그러하고
구름이 빗방울로 도랑물에 뛰어들어
버들치를 키우는 것이
그러하고
그렇게 기름진 옥토에 모내기를
하여 달이 차서 곡식을 거둠이
그러하고
느닷없이란 없는 거예요
⸺계간『詩하늘/통권 100호 특집』(2020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