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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회생(起死回生) 진주 언가를 쑥대밭으로 만든 수라마왕등은 세가의 세력을 벗어나 한걸음에 태현까지 달려갔다. 혈영마왕 홀로 지키고 있는 대종사와 게다가 가주인 언철심이 수뇌부들과 함께 수라검문의 무공을 훔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쉽게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언가 내에서 두 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내분이 일어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수라마왕등과 싸웠던 태현에 도착한 수라마왕등 일행들은 즉시 옛날 수라검문 있던 폐가로 달려갔다. 대종사와 북해성모를 태운 가마는 “다녀왔는가?” 혈영마왕은 수라마왕의 안색이 다소 창백하다는 잠과 혼세마왕등의 옷에 격전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여 안도해했다. “모두들 무사해서 다행이군. 그래. 어떻게 되었나?” 수라마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한켠에 가서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태현까지 달려왔으니 비천마왕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언호심을 바닥에다 팽개치며 말했다. “깨끗이 쓸어버렸지. 아주 생똥을 싸더군, 그래. 크크크.” 원래 성격이 해학적인데다 허풍을 치는 경향도 다분히 있었기에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슷하긴 했지. 아마 앞으로 50년 이내에는 강호에서 언가의 무인들을 찾아보기 어려울 게야.” 혈영마왕이 머리를 끄덕였다. 혼세마왕의 말대로라면 적어도 언가의 전력 반은 사라졌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 정도라면 혼세마왕등의 그가 이번에는 비천마왕이 잡아온 사내를 가리키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놈은 또 뭔가?” 이번에는 비천마왕이 대답했다. “언가에서 잡아왔네. 자네에게 선물로 주려고 말이야.” 말을 마친 그가 한쪽 눈을 찡긋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혈영마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언호심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별로 신통치 않군. 꽤나 질기겠어.” 순간 언호심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강호에는 식인을 하는 마두들도 심심치 않게 있었고, 또 전대의 거마(巨魔)인 지옥마검과 “사, 살려주십시오! 저, 저는 원래 목욕을 거의 하지 않아서 냄새가 고약합니다. 게다가 피부병이 있고, 혈도가 짚여 움직이지도 못한 채 억지로 기침까지 해대는 그의 모습이 조금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흥! 내 보다보다 저렇게 악독한 놈은 처음 보았네. 같은 가문의 가솔이면, 모두 형제거나 친인척들일 텐데 제 한목숨 구하기 위해 잠시 언호심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혈영마왕이 입맛을 다셨다. “쩝! 아쉬우나마 오늘은 이놈으로 만족 해야겠군. 가만있자…, 오늘은 내장탕이나 한번 먹어볼까…?” 혈영마왕이 팔을 걷어붙이고 일어서자 언호심이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살려주십시오! 원하시는 게 뭡니까? 제, 제게는 은자도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오십만 냥은 됩니다. 은자를 오십만 냥이나 가지고 있다는 그의 말에 혈영마왕등은 깜짝 놀랐다. 그만하면 대단한 거부가 아닌가. 사실 그 돈은 과거 언호심이 태현에서 큰 도박장을 하던 양씨 부부를 살해하고 훔친 것이었다.
“시끄럽군. 나중에 수라노괴가 운공을 마치면 놈을 깨우지. 그만큼 겁을 줬으니 가만히 놔둬도 모든 걸 술술 불게야. 그건 그렇고…….” 그가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슬쩍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이젠 어디로 가야 하겠나? 언가에서 일도 저질렀는데…, 대종사님을 저렇게 모시고 다니다가는 정파놈들에게 금방 발각될 게 분명해.” 혼세마왕등의 시선이 일제히 만독혈왕을 향했다. “신독문으로 가세.” 비천마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겠나? 과거에 그곳에서 뛰쳐나올 때 완전히 제 정신이 아니라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른다면서?” 비천마왕이 혼세마왕에게 시선을 돌렸다. 혼세마왕이 잠시 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만 괜찮다면 신독문도 좋지. 그쪽으로 가도록 하세.” 이렇게 해서 오마왕들은 신독문으로 가기로 합의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신독문조차 이미 멸문해 사라지고 없음을. @@@ 요동의 겨울은 정말 추웠다. 특히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설원 한가운데서 뼈를 깎아내는 듯 한 강풍을 만날 때면 한기가 온 몸의 신경을 따라 헤집고 다니는 듯 하다. 천외패황궁. 오백여 년 전, 천하제일인이었던 패존(覇尊) 연리무가 세운 궁이다. 패존 연리무는 전형적인 무도를 추구하는 무인이었다. 하지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당시 그의 무위를 경외한 무림인들이 떼로 몰려들었는데, 그렇게 되자 자연히 세력을 이루게 되었고, 결국 무림대전이 일어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자청해서 수하가 된 사람들에게 그때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던 패존 연리무가 하지만 점차 세월이 흐르자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무의 궁극을 깨닫는 목적, 그 한가지만을 바라보며 요동에 갇혀 있기에는 궁이 너무 커버렸다. 어쨌든 천외패황궁은 그렇게 세외의 하늘로 군림해 왔고, 오늘도 변함없이 요동의 넓은 설원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었다. 사사삭! 어두운 밤. 파란 달빛 아래 삼장 높이의 거대한 성벽이 나타났다. 곧이어 다섯 개의 인영이 아른거리더니 성벽아래 달빛이 미치지 못하는 그늘진 곳에 몸을 멈췄다. 그들은 입고 있던 흰색의 두터운 방한복을 모두 벗었는데, 그러자 모두들 몸에 착 달라붙는 백의 경장을 입고 있었다. 성벽 주위에는 삼엄한 경계가 펼쳐져 있음이 분명했지만, 그들의 신법은 극도로 은밀하고 빨라 아직까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다섯 개의 인영들은 소리 없이 성벽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얼음처럼 매끄러운 석벽에 두 손과 다리를 거침없이 찔러 넣었다. 하지만 그들이 성벽에 오르자 그곳은 횃불이 대낮처럼 밝혀져 있어, 근처 망루에 있던 천외패황궁 무사들의 눈에 띠지 않을 수 없었다. 피빗! 순간 공기를 가르는 작은 소리와 함께 그녀의 소매에서 암기가 발사되었고, 망루에 있던 천외패황궁 무사들 다섯이 비명한번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곧이어 복면인 다섯은 즉시 성안으로 뛰어들어 빽빽이 들어찬 전각들 속으로 소리 없이 스며들었다. 그들은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였고 복잡한 궁의 내부 길을 익숙하게 찾아내며 중심부를 향해 전진했는데, 혹 들키기라도 하면 약 반각 후, 그들은 마침내 패황전이라는 편액이 걸린 거대한 전각까지 접근했다. 하지만 패황이 거주하는 패황전은 하지만 이들은 대담하게도 경비가 가장 허술해 보이는 측면 어느곳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경비무사 둘에게 종적을 발견 당했지만 그런데 암중인들이 멈춘 곳은 석벽으로 지어져 있어 견고하기 그지없었고, 창문조차 없어 도저히 건물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때 그들 중 호리호리한 체격에 키가 큰 인물이 나섰다. 그의 허리에는 하얀 천으로 둘러싸인 길쭉한 물건이 걸려있었는데, 그는 천천히 검을 들어올리더니 수직으로 곧추세웠다. 그리고는 숨을 두어 번 고르고 난 다음 검을 석벽으로 찌르는 자세를 취했다. 검은 검강을 매단 채 석벽 깊숙이 박혀 들었고, 그가 크게 원호를 한번 그리자 석벽에 둥근 자국이 생겼다. 검수는 즉시 검을 뽑아 갈무리한 후 뒤로 물러섰다. 둥! 순간 가벼운 진동과 함께 검에 파인 부분에서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그그그그! 동시에 뭔가가 긁히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석벽의 잘린 부분이 서서히 밀려나오는 게 아닌가. 상황을 보면 이는 분명히 격공섭물의 수법이 분명한데, 잠시 후, 석벽은 둔중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쿵! 작지 않은 소리임에도 경비무인들은 아무도 달려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암중인물들 중 또 다른 사내 한 명이 근처에 가부좌를 한 채 앉아있었다. 석벽에는 직경 다섯 자(1.5미터)가량의 둥근 구멍이 났고, 다섯 사람은 지체 없이 그 안으로 몸을 날렸다. 그들은 천외패황궁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패황전 안으로 숨어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패황전 안 넓은 대전에는 다섯 명의 암중인들은 이 뜻밖의 사태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위를 한번 스윽 둘러본 후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갔다. 그때 천외패황궁측에서 위맹한 인상의 흑의장년인이 나서며 소리쳤다. “멈추시오!” 침입자들이 대전 한가운데 멈춰 서자 흑의장년인이 굳은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누구시오?” 한밤중에 패황전까지 침입한 자객들에게라면 당장이라도 호통을 치고도 남을 일인데, 의외로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잠시 이들을 노려보던 흑의장년인이 뒤로 물러서며 명령했다. “쳐라!” 순간 주위에있던 흑의인 20여명이 일제히 이들을 향해 달려들었는데, 패황전을 지키는 호위무사들답게 개개인 모두가 대단한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퍼버버벙! 잇다른 격타음과 함께 흑의인들 모두는 태풍을 만난 가랑잎처럼 사방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이건 아예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다행히 쓰러진 흑의인들은 곧장 일어섰는데,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이 모습을 본 흑의장년인의 안색이 더욱 굳어졌다. 짐작을 하고는 있었지만 침입자들이 이만큼 강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십패천. 다시 자세를 가다듬은 흑의인들이 이들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흑의장년인이 소리쳤다. “멈춰라! 너희들의 상대가 아니다.” 흑의장년인이 즉시 검을 뽑아들었다. 패황전 수석호위검주이자 천외패황궁 서열30위 이내에 들어가는 실력을 지닌 그가 이대로 물러설 한 손에 검을 든 채, 투지를 불태우며 나서려던 순간, 흑의장년인의 두 눈에 이채가 흘렀다. 가장 왜소해 보이는 체격을 지닌 흑의장년인은 적어도 삼장의 거리를 떨어져 있는 자신에게 백의복면인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달밤에 체조라도 하겠다는…, 헉!’ 그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막강한 경력이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빠앙! 압축된 공기가 터져나가는 듯한 소리가 그의 가슴 한 치 앞에서 터져 나왔다. 동시에 흑의장년인은 뒤로 퉁기듯 물러섰다. “으음!” 묵직한 신음성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비록 상대의 경력이 정확하게 적중한 것은 아니지만 그 충격은 작지 않았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백의복면인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알기에 삼장을 격하고 이토록 강한 경력을 전달할 수 있는 “서, 설마 그건…….” 그때였다. 패황전 안쪽에서 칼칼한 노인의 감탄어린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역시 백보신권(百步神拳)은 대단하외다. 그래, 소림의 공상대사(空想大師)께서 무슨 바람이 불어 예까지 찾아오신 게요? 흑의장년인과 백의복면인들은 패황전 안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대여섯 명의 노고수들이 걸어 나오고 있었는데, 패황전 내에 있던 천외패황궁 무인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패황을 뵈옵니다!” 패황 연무종은 우수를 슬쩍 휘둘러 그들에게 일어서라고 한 후, 강렬한 눈빛으로 복면인들을 바라보았다. 백의복면인들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며 전음을 나누는 듯 하더니 일제히 복면을 벗어던졌다. 여섯 개의 계인이 머리에 뚜렷이 찍힌 노승 한명, 한림원의 노학사처럼 보이는 단아한 인상의 노인 두명, 강맹한 인상에 장대한 체격을 한 노인 한명, 패황 연무종 곁에 서 있던 창백한 안색의 노인이 예의 칼칼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클클클, 이게 누구들이신가. 소림의 공상대사로도 모자라 무당의 청진동주이신 청명진인, 화산 운현궁주이신 영운진인,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일한 여인, 개방의 홍소미가 생긋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천외패황궁 십패천의 한분이신 귀견수 오선배를 뵈옵니다. 후배는 개방의 홍소미라 하옵니다.” 홍소미가 다시 한번 깊숙이 읍을 했다. “패황의 존안을 직접 뵙게 되어 무한한 영광인가 하옵니다.” 귀견수 오진량이 감탄을 했다. “오호라! 개방의 만리신개 홍방주의 무남독녀인 취옥선녀구먼. 클클클, 그래. 무림맹의 꾀주머니가 되었다더니…,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일세.” 귀견수 오진량은 상대가 모두 각 문파를 대표할만한 최고수들인지라 그들 중 가장 연장자라 할 수 있는 소림의 공상대사에게 말한 것이지만 “만약 공상대사님을 비롯한 저희 정파의 여러 선배님들이 친히 오시지 않았다면 패황님을 뵐 수 없었겠지요. 귀견수 오진량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공상대사. 이 아이의 말이 사실이오?” 공상대사가 합장을 하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그렇소이다. 오늘 우리들은 패황을 만나러 온 것이외다.” 귀견수 오진량이 말을 하다말고 멈추었다. 패황 연무종이 우수를 휘저으며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팽황 연무종이 입을 열었다. “나를 만나겠다고 했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순간 천외패황궁 측 무인들 모두 얼굴에 분노의 빛을 띠었다. “이들을 패룡각에서 만날 것이다. 준비하라.” 패황의 한 마디는 바로 법이었다. 그의 간단한 명령에 모두들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무림맹에서 온 손님들을 패황전 안쪽으로 데려갔다. 이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그림자가 하나 있었다. 바로 천외패황궁의 태상장로인 유문회였다. 패황 연무종은 천외패황궁측 수뇌부들 모두와 함께 무림맹에서 온 특사들과 회의를 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회의는 모두 끝나고 밤이 찾아왔다. 정파의 특사단이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각자 방으로 올라가 쉬고 있을 무렵, 공상대사는 즉시 홍소미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고, 세 사람은 깊은 밀담을 나누게 된다. 어쨌든 이와 같이 무림맹 특사단과 천외패황궁의 평화회담은 아무 소득 없이 끝나고 말았다. 그녀는 한동안 깊이 생각하더니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라도 했다는 듯 다소 밝은 표정으로 특사단과 헤어졌다. @@@ 마대위가 영촌의 강가 높은 바위위에 침식을 잊고 앉은 지 벌써 칠일이 지나가 버렸다. 검게 탄 얼굴. 풍상에 시달려 걸칠대로 거칠어진 피부. 하지만 이제 그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 아니,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생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온갖 잡생각들이 떠오르면 거기에 마음이 빼앗겨 심력을 다 소모시켜버리곤 했다. 물론 황노인의 이야기는 과거의 위대한 성인들의 가르침은 아니었다. 단지 계절에 따라 강의 모습이 바뀌어가는 모습들, 시골에 가면 흔히들 들을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내용은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마대위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 했다. 그렇게 해서 마대위의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황노인은 그에게 이야기를 하나 해 주었다. [옛날에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고행을 하던 승려가 있었다. 오랫동안 불도를 닦은 그에게 어느 날 해탈의 깨우침과 함께 이야기를 마친 황노인은 마대위에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마치 무심히 흐르는 강물이라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바라보아야 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마대위는 마침내 어떠한 생각도 떠오르지 않도록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그는 결국 억매임을 버리지 못했다. 그의 온 마음과 정신이 오직 하나,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의지에 매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허탈한 마음에 세상을 다산 것 같은 노인의 헛웃음이 그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버리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마대위는 모든 걸 포기하는 심정으로 가부좌를 풀고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에라, 씨팔……. 내가 언제부터 부처가 되었다고……. 마음은 무슨 놈의 얼어 죽을 마음이야! 캬악, 퇘!” 고개를 돌려 신경질적으로 침을 한 차례 뱉은 마대위는 여전히 자신의 곁에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황노인을 바라보았다. ‘혼자서나 실컷 바라보슈…….’ 마대위는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는 게 더 쉬우리라고 생각했다. 도무지 그 의미도 해석이 불가능한 마음을 그의 공허한 두 눈에 두둥실 떠가는 흰 구름들이 보였다. ‘구름 한 조각, 구름 두 조각, 구름 세 조각, 구름…….’ 하나 둘씩 지나가는 구름들을 새다 보니 어느 듯 잠이 쏟아졌다. “아함!”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한 마대위가 흐르는 눈물을 손을 슥 닦았다. “젠장, 멍하니 구름만 보고 있으니 잠밖에는……. 가만!” 마대위는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는지 했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그의 입에서 뜻 모를 말들이 흘러나왔다. “사념은 단편적인 구름과 같다. 구름을 깨끗이 걷어내지 않고서는 태양을 볼 수 없듯이, 사념을 없애지 않고서는 진정한 영혼의 빛을 밝힐 수 없다. 마대위의 안색이 갑자기 밝아졌다. 그가 읊은 이 구절은 태극해검의 후반부에 나오는 부분으로 황노인이 말했던 부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두 있었다. 물론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쳐 준 오마왕으로부터 들었던 내용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갔던 부분은 단 하나도 없었다. 마대위는 그때 들었던 내용들을 다시 기억해 보았는데, 당시에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던 내용이 지금은 어렴풋이 무엇을 말하는 만류귀종이라 했던가. 결국 무학의 최고 경지는 자연을 벗 삼아, 그 속에서 함께 호흡하며 수십 년 간 평온하게 살아온 촌부의 삶과 정확히 일치되는 것이었다. 다시 가부좌를 하고 앉은 그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피어나는 순간, 곁에 있던 황노인이 마침내 눈을 떴다. 그 구슬은 황노인의 미간에서 툭 튀어나와 천천히 마대위의 얼굴쪽으로 날아갔다. 그러더니 마대위의 미간 두치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한편 마대위도 이러한 상황들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상단전이라 할 수 있는 미간으로 스며드는 이 힘은 분명히 내공과 같은 기(氣)와는 마대위의 온 몸이 한 차례 부르르 떨리는 듯 하더니 잠시 후,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간을 통해 들어온 황노인의 영혼이 마대위는 곁에 있던 황노인이 바로 자신에게 있어 유일한 사숙임을 알았다. 한 여인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사형을 암습하고 말았던 죄인이기도 하지만, 한 인간이 순간의 실수로 저지른 잘못 때문에 짊어져야만 할 죄악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는 당사자가 아닌 한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마대위가 작으나마 깨달음을 얻어 마음의 평정을 찾기 전이었다면, 사숙의 선천지기에 실린 고통을 체험하는 순간 그러고 보면 황노인이 마대위에게 마음의 평정을 그토록 요구했던 것도, 자신이 얻은 평생의 심득을 마대위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 분명했다. 마대위의 눈물은 금방 말랐고,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심했다. 결국 사숙과 관련된 생각도 마대위에게 있어서는 한 조각의 구름이 그는 어느 사이엔가 너와 나의 구분이 사라지고, 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되는 깊은 대도의 세계로 침잠되어갔다. |
첫댓글 ㅎㅎㅎ
즐감하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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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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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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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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