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
- 홍오선
늘 가는 길이지만 언제나 낯이 설다
먼 듯 가까운 듯 출발선도 삐뚤삐뚤
고빗길, 생의 언덕에 도사리고 있는 함정
오랜 약속이 듯 다 잊은 네 이름이
해종일 딴청부리며 코바늘에 걸려있다.
가슴에 품었던 날들 다 뜰 수는 없는 걸까
바늘이 놓친 한 코 어느 틈에 흠집 되어
가슴에 찬바람이 쉴 새 없이 들락인다
뒤늦게 메꾸어보는 내 상처의 이음새.
ㅡ『시조미학』(2019,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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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방문한 교대동기 부부의 자택에서 6년 공을 들인 퀼트자수 이불보를 보았습니다
3남매를 다 키우고 환갑을 지난 나이에 봉화 산골짜기로 귀의한 부부에게 소일거리는
그저 걷고, 텃밭 가꾸며 탁구나 치는 달디단 여일이었습니다
해종일 찾아가거나 찾아오는 이 없는 적적함도 32절지 크기의 퀼트조각들을 이어붙인 것처럼
아기자기 그 자체였습니다^*^
3년이나 걸렸다는 미국식 전원주택과 텃밭에 심은 온갖 초목들은 미래로 향하는 희망일 뿐-
친구가 먼저 수도(?)했다는 단칸 초막 귀틀집이 정착 당시의 어려움을 증거하더군요
그들 부부가 뜨고 있는 한 코 한 코의 뜨개질이 어떤 옷감으로 부활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