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너무한다"…삼성 기술 베꼈는데, 자기가 피해자라는 중국
/사진 = 이지혜 디자인기자
중국 디스플레이 업계의 한국향(向) 기술 침해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국내 업체는 미국 등 주요 시장의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중국 업체가 자국 법원에 '맞불 소송'을 제기하면서 국제 분쟁으로 비화되는 모양새다. 소송 대상이 되는 기술이 스마트폰용 핵심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이라는 점에서 디스플레이 주도권을 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0일 업계와 미국 법원 등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는 최근 미국 텍사스 주 동부지방법원에 중국 징동팡(BOE)을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자사가 개발한 아이폰 12용 OLED 디스플레이 특허 4종을 징동팡이 무단 도용했다는 취지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징동팡이 특허 침해 제품을 박람회나 학회 등에서 사용했다면서 영구적인 판매·제조 등 금지 명령과 손해 배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징동팡을 상대로 특허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미국의 휴대전화 사설 수리업체가 아이폰 12 패널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중국산 제품 패널이 삼성디스플레이의 기술 4개를 베꼈다는 점이 드러났다. 징동팡은 사후서비스(AS)용 패널에 사용되는 '다이아몬드 픽셀' 기술 등을 침해한 혐의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피소자로 지목됐다.
불리한 처지에 놓이자 징동팡은 전략을 바꿨다. 자국 법원에 삼성디스플레이는 물론 삼성전자를 엮어 특허를 침해했다는 소장을 냈다. 징동팡은 지난 4월 18일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중국법인, 현지 주요 파트너사들이 자사의 특허 9건을 침해했다며 충칭 제일중급인민법원에 제소했다. 제일중급인민법원은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에서 중대한 영향력이 있다고 인정받은 사건을 기층인민법원 대신 심사한다.
업계에서는 징동팡의 적반하장식 제소가 OLED 주도권을 가져오려는 중국 디스플레이 업계의 계획이라고 평가한다. 중국 업체들은 정부 보조금을 앞세워 저가 공세로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장악했지만, OLED에 비해 수익성이 낮다. 세계적 수준의 한국 OLED 핵심기술을 베껴 경쟁력을 강화하고 OLED 시장마저 중국 주도하에 재편하겠다는 계획이다.
OLED 시장은 17년 동안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 업체가 주도해 왔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OLED 시장 점유율은 한국이 81.3%, 중국이 17.9%다. 하지만 중소형 OLED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은 추격의 고삐를 죄고 있다. 올해 1분기 중소형 OLED 시장 점유율 1위는 삼성디스플레이(54.7%)지만, 2위는 LG디스플레이(17.4%)가 아닌 징동팡(19.2%)이다.
미국에서는 징동팡의 특허 소송 승소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패튼리애플 등 현지 소비자매체는 "삼성디스플레이의 소송 제기는 징동팡에 보내는 경고"라며 "더 이상 중국 업체들의 빈번한 특허 침해에 대해 관대함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업계는 징동팡과의 분쟁을 계기로 OLED 등 디스플레이 분야의 핵심기술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다이아몬드 픽셀 등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패널 기술은 국내 업체가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 개발한 것"이라며 "중국 업체의 무분별한 베끼기를 허용한다면 LCD에 이어 OLED 주도권마저 내줄 가능성이 있다"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