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30일 (월)
제목 : 먼저 될 자 나중 될 자
오늘의 말씀 : 누가복음 13:22-30 찬송가: 521장(구 253장)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의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중심 단어: 너희, 문, 주
주제별 목록 작성
너희
2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할 자
25절: 종말에 후회하게 될 자
27절: 주님과 인격적인 교제가 없던 자
28절: 천국에서 쫓겨나 슬퍼할 자
도움말
1. 힘쓰라(24절): 고대 헬라의 운동경기에서 사용되던 표현이다. 권투, 달리기, 레슬링 등 선수들이 승리를 위해 분투하는 것을 뜻하나, 영적으로는 믿음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내하는 것을 의미한다.
2. 나를 떠나 가라(27절):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범죄자들을 추방할 때 사용하던 관용적 표현이다. 완전한 분리를 나타낸다.
3. 나중 된 자(30절): ‘마지막 사람들, 새로운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구원의 기회가 나중에 주어진 이방인들을 말한다.
말씀묵상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길에 어떤 사람이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23절)라고 질문했습니다. 당시 유대교 내에서는 극악한 죄인을 제외한 대다수의 유대인이 구원받을 것이라는 견해와 극소수의 유대인만이 구원받을 것이라는 견해가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비유로 대답하십니다. 종말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먼저, 집 주인이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자들입니다(25절). 이들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뒤늦은 후회를 하지만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25절)는 주님의 단호한 외면과 “나를 떠나 가라”(27절)는 완전한 분리의 선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분명 그들은 주님과 함께 교제를 나눴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주님의 외면을 받는 일방적인 교제였기 때문에, 그들은 문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
또 다른 부류는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할 사람들입니다(29절). 이들은 이방 민족으로서 유대인들의 편협한 구원관에 의해 구원받을 수 없는 자들로 낙인찍혔던 사람들입니다. 이 모습은 이사야가 예언한 하늘 잔치의 이미지(사 49:12)와 사도 요한에 의해 예언된 어린 양의 혼인 잔치(계 19:7)의 이미지와 일치합니다. 이는 먼저 된 자, 즉 왜곡된 선민의식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은 나중 되고, 이방인들은 구원에 이르는 현상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까지 인내하며 구원의 좁은 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너희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예수님은 유대인의 구원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셨습니까(24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여러분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더욱 힘써 순종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2. 여러분은 하나님과 어떤 교제를 나누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제공:프리셉트
<오늘의 묵상>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 하나님의 마음으로 말씀을 전해 보려고 하지만 나의 부족함으로 한계를 느낄 때가 너무 많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성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머리가 숙여지곤 한다.
말씀을 전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전하고자 하시는 말씀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듣는 분들의 마음에 공감되어 말씀이 심령 속에서 역사하므로 변화될 수 있을까?를 묻고 기도하며 전해왔었다.
주님이 일하시지 않으면,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대한 것만큼,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때 역사가 나타나지 않을 때 실망하게 된다. ‘주님 왜 일하지 않으십니까? 성령님 왜 역사하지 않으십니까?’ 그럼에도 주님은 여전히 내 마음을 만족시켜 주시지 않았다. 주님은 이런 나를 왜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작은교회 목회자들을 가르치는 곳에 세워주시는 것일까?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죽임으로 저주받고 버림받은 것처럼 보였지만 바울은 하나님이 동족을 포기하지 않으셨음을 알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구원받을 자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롬11:7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
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쳐버린 것일까? 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기회를 붙잡지 않는 것일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래서 영적인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말씀이 그 심령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그 영혼을 깨우고 그 영혼이 성령과 만나 성령을 붙잡고 말씀을 붙잡아야 비로소 역사하심이 나타나기에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묻는다.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러자 예수님은 ‘그래 적다!’ 아니면 ‘많다!’라고 대답하셔야 맞을 텐데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질문하는 자의 마음을 시원케 해 주시지 않고 오히려 의문을 더 갖게 하신다.
그렇다면 들어가기를 어떻게 힘써야 한다는 말씀인가?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문이 열려있을 때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집 주인이 문을 닫기로 결정하고 닫은 후에는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말씀을 많은 사람을 통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전하고 계시는가? 그 중에 ‘나’도 사용하고 계심을 깨닫게 하신다.
‘마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기회를 많이 주시지만, 그 기회를 영원토록 주시지는 않는다. 기회를 주실 때 꽉 붙잡지 않는다면 어쩌면 다음 기회를 오지 않을 수 있다.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다음에 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들어갈 다음 기회가 없어지고, 다음은 없다 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지금 들어갈 기회가 열린다’
사랑의 주님. 어떻게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방법과 모략을 다 알 수 있으며 어떻게 그 뜻을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오늘 저에게도 주님이 일하고 계심을 분명하게 보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곳에 그 말씀이 역사하고 계심을 분명하게 보여 주시옵소서.
제발 말씀을 듣는 영혼들이 ‘다음에’라는 생각을 버리게 하시고 ‘지금’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하옵소서.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거두어주시고 그 심령에 성령을 부어주셔서 하나님 나라를 보며,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리며, 하나님 마음을 품은 영혼들로 세워질 수 있도록 이 종을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마귀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옵소서. 영적인 군사들로 세워져서 절대로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빼앗기지 않게 하옵소서.
금주에 주신 미션 수행합니다. ‘예수님 저에게 생명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늘을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