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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전전야
쌍칼과 동생들을 다시 만난 마대위는 향아를 객잔에 맡겨둔 후, 다음날 곧장 제령으로 향했다.
쌍칼등은 마대위가 이미 심검의 단계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에 다소 불안한 표정이었지만,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꼭 갚아야만 할 복수며, 그걸 위해 지금까지 죽을 고생을 다해 무공까지 익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제령에 채 닿기도 전에 멈추어야 했다. 제령의 입구인 회운평이 멀리 보이는 관도 위에서
다부진 표정으로 길을 가던 마대위 일행들 앞에, 갑자기 나타난 거지 때문이었다.
“누구냐?”
왕곰이 눈을 부라리며 나섰다.
그들 앞에 나타난 거지는 봉두난발에다 누더기를 걸치고 있어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마대위는 즉시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바로 개방의 청년고수인 뇌풍개(雷風?) 장현(張炫)이었다.
당시 마대위는 천산에서 중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혈사방으로부터 쫓기던 무상파의 어린제자들을 구하여 종남파에 넘겨주었고,
곧바로 하남성으로 가려했다. 그때 뇌풍개 장현이 갑자기 나타나 홍소미에게 자신을 안내했던 것이다.
뇌풍개 장현이 마대위에게 가볍게 포권을 했다.
“안녕하시오. 오랜만에 뵙소.”
마대위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오랜만이오. 그동안 잘 있었소? 그나저나 개방의 정보력에는 감탄을 금치 못하겠군. 어떻게 찾았소?”
장현이 시익 웃으며 말했다.
“마형의 일행들이라면 어디가나 눈에 띄기 마련이오. 물론 본방에서 그걸 놓칠 리도 없고 말이오.”
마대위는 흠칫하는 표정을 짓더니 쌍칼등 동생들을 둘러보았다. 털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거인 왕곰,
묵인처럼 검은 애꾸눈에다 외팔의 사강룡, 그리고 쌍칼등을 봐도 하나같이 험상궂은 표정이다.
이만하면 어딜 가도 사람들 눈에 번쩍 뜨일만한 조합이니 어찌 개방의 이목을 피할 수 있었겠는가.
“후후, 과연 그렇군. 헌데, 무슨 일로 날 찾아왔소?”
뇌풍개 장현은 마대위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자신이 오히려 그에게 되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천외패황궁을 가던 길에 갑자기 실종되었으니 말이오.”
“광뢰마를 만났지.”
순간 뇌풍개 장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설마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광뢰마라면 혹시 사마들의 대형이라는…?”
마대위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정말이오? 정말 그를 만났단 말이오? 헌데 어떻게…?”
“거의 죽을 뻔했지. 운이 좋았소. 아, 그리고 내가 직접 찾아가서 해결하려고 했는데 기왕 만났으니 알려주겠소.
광뢰마는 천외패황궁의 태상장로라는 직책으로 숨어있더군.”
“처, 천외패황궁의 태상장로…? 그, 그럴 수가…….”
그는 믿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천외패황궁의 태상장로인 유문회는 궁내에서도 두세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대단한 무공을 지니고 있고,
사람됨이 후덕한지라 정파에서도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바로 암중세력의 수괴였다니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한동안 경악해 하던 뇌풍개 장현은 이내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랬군. 그가 그런 행동을 한 이유가 거기 있었군…….”
마대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그렇다는 거요?”
“소림의 백팔나한과 천외패황궁의 정예들이 정면충돌하여 상호 큰 피해가 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그 원인이 천외패황궁의 태상장로인
유문회의 다소 이해하지 못할 명령 때문이었소. 지금 마형의 말을 듣고 보니 그가 왜 그런 명령을 내려 정파와 천외패황궁에 깊은 상처를 입혔는지
이제야 납득이 가서 그러오. 그건 그렇고…….”
그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형이 지금 제령의 천외패황궁지부를 찾아가 복수를 하려 한다면 다음 기회를 미루는 게 좋을 듯 하오.”
순간 쌍칼등이 안색을 확 구겼지만 마대위는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유는 뭐요?”
“금마동에 갇혀 있던 오마왕들이 비천신룡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왔소.”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대위의 두 눈이 부릅 뜨였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가공할 기세가 피어났는데, 정파의 청년고수들 중 몇 손가락에 꼽힌다는 장현이,
두 무릎이 후들거려 자신도 모르게 뒤로 주춤 물러설 정도였다.
“저, 정말인가? 그들이 대종사님을 모시고 밖으로 나왔단 말이…?”
“그, 그렇소.”
잠시 격동에 잠겨있던 마대위가 갑자기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거짓말. 그들은 무공을 모두 잃어 대종사님을 모시고 나올 수 없소.”
“북해성녀께서 들어가셔서 그들의 무공을 모두 회복시켜주고는 본인도 비천신룡과 함께 가사상태에 빠지셨소.
덕분에 오마왕들은 모두 초절정고수로 탈바꿈했고, 얼마 전에는 진주언가로 찾아가 쑥대밭으로 만들기까지 했소.”
“아, 그런 일이……. 사모님께서…….”
마대위는 갑자기 가슴이 뭉클하며 눈시울까지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심검의 경지에 오른 후에는 감정의 기복이 거의 사라졌지만,
이 두 사람이 자신에게 베풀어준 것만 생각하면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되었소?”
마대위의 재촉에 그는 오마왕이 광운마를 죽이고 금마동을 나온 후 지금까지의 행적을 모두 말해주었다.
사실 이러한 내용들은 오마왕이 홍소미를 신독문이 있던 당산에서 만나 알려주었고, 뇌풍개 장현은 그녀로부터 이러한 이야기들을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 마대위는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대종사님과 만년옥장을 미끼로 사마들을 끌어 모으겠다는 것이오? 도대체 그렇게 무모한 계획을 세운 사람이 누구요? 아니,
오마왕들이 그 계획에 동의를 했단 말인가?”
마대위의 서슬 퍼런 기세에 장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렇소. 그들이 동의를 했기에…….”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대위가 인상을 확 구기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영감들이 노망이 났나…, 어떻게 대종사님과 사모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그렇게 위험한 계획을 세워…….”
마대위는 순간 화가 났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사마들을 없애지 않는다면 언제 어디서든 그들을 만날 수 있고, 또 큰 해악이 되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오마왕들도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위험을 무릎서고라도 사마들을 제거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사마의 우두머리인 광뢰마였다.
‘광뢰마를 어떻게 할 건가…?’
마대위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광뢰마를 상대할 만한 고수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일대일이라면 광운마를 이길 정도의 고수도 천하에 없으리라 여겨졌다.
그러니 만약 사마들이 데려온 전력이 신독문의 비밀거처에 모인 정파의 세력과 조금이라도 엇비슷할 정도만 된다면, 오히려 역공에 밀릴 공산이 컸다.
‘광뢰마라면 나라도 싸워보기 전에는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대종사님께서 깨어나신다면…….’
마대위는 천외패황궁으로 가는 길에 만났던 광뢰마가, 이제는 설사 대종사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던 말을 상기했다.
그의 무공이 정말 그 정도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면 상상만 해도 끔직한 일이 벌어지리라.
“그렇다면 오마왕 일행은 언제쯤 그곳에 도착할 것 같소?”
“사오일 뒤면 도착할게요.”
“사오일이라…….”
“진주언가의 혈사 때문에 사마들도 오마왕의 행방을 파악하고 있을게 분명하오. 그리고 조금 전에 이야기 했듯이,
만년옥장과 비천신룡에 대한 거짓정보는 앞으로 닷새 후에 흘릴 예정이오. 그래야 오마왕들이 신독문의 비밀거처로 무사히 들어가고,
또 정파의 고수들이 그곳에서 기다릴 시간을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오.”
“그런 정보라면 흘리는 방법도 고심해야 할 거요. 물론 개방이라면 충분히 능력이 있겠지만…….”
마대위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려 쌍칼등 동생들에게 말했다.
“강룡이와 나만 가야겠다. 너희들은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가 제령의 천외패황궁 지부에 대한 정보를 계속 파악하도록 해라.”
사강룡을 제외한 쌍칼등이 흠칫하더니 소리쳤다.
“형님! 저희들도 같이 가겠습니다.”
“도와드리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형님!”
마대위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희들을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그곳에는 구파일방과 사대세가의 장로급 이상의 고수들만 모일 것이다.
너희들이 아무리 지옥훈련을 거쳤지만 그곳에 가면 헛되이 죽음을 당할 뿐이야. 게다가 무엇보다도 너희들 걸음으로는 시간에 맞추어 갈 수가 없다.”
“그곳이 어디기에…?”
“해남이다. 거기까지 열흘 안에 가야해.”
쌍칼등은 마대위의 대답에 할말을 잃었다. 해남이라면 잠을 전혀 자지 않고 말을 계속 바꿔 타며 달려도 꼬박 보름은 족히 걸릴 거리다.
그러니 결국 그곳까지 열흘 안에 가야 한다면, 열흘간 말보다 더욱 빨리 달려가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 그만한 내공을 갖춘 사람이라면
천하를 둘러봐도 몇 사람 되지 않을 것이다.
마대위가 갑자기 사강룡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두 사람의 옷이 약간 부풀어 오르는 듯 하더니 몸이 둥실 떠오르는 게 아닌가.
이 모습을 본 뇌풍개 장현은 기절할 듯 놀랐다. 저런 신법은 말로만 들어보았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던 것이다.
마대위가 허공에 뜬 채 다시 말했다.
“일이 끝나는데로 곧바로 돌아오마. 조용히 기다리고 있거라.”
말을 마친 마대위는 그들의 대답도 듣기 전에 사강룡과 함께 남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점점 멀어져가는 두 사람의 등 뒤로 장현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해남에 가면 운포라는 포구가 있소. 소방주께서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계실 거요!”
그의 말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마대위와 사강룡의 신형은 점차 멀어지더니, 어느 순간 까마득한 점으로 변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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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강룡의 손을 잡은 채, 매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가던 마대위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에 있을,
누군가와의 운명적인 만남에 대한 강한 예감이었다. 그리고 그가 누가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만남은 옛날부터 예정되었다는 것을 자연히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마대위는,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들과,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들은 세상이라는 거대한 기계를 움직이는 수없이 많은 톱니바퀴들 중 하나로서
꽉 맞추어지듯 짜여져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고아가 되어 은혜원에 들어간 것도, 그곳에서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잃어버린 것도, 그리고 구사일생을 살아나 겪었던 모든 일들도,
이 운명, 아니 세상천지나 혹은 우주라 불리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돌리기 위한 과정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처럼 사건과 사건, 그리고 과거와 미래의 연결고리들이 한순간에 이해되었지만, 마대위의 가슴 속에 단 하나의 의문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바로 그 세상이라는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이유였다. 도대체 왜 수많은 생과 사의 인연을 복잡하기 그지없는 방법으로 엮어 힘겹게 굴러가야만 하는지
그건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조물주가 장난을 치고 있거나 아무 의미 없이 그냥 흘러만 가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하찮은 돌멩이 하나에도 존재의 의미가 있는데
어찌 우주에 그 의미가 없겠는가.
마대위는 자신의 깨달음이 아직 그까지는 미치지 못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인연이 없으면 얻을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았다.
순간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어차피 알 수 없는 세상, 순간에 충실하고 후회 없이 살다 가면 될 것 아닌가! 그렇게 따지고 보면 건달로서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마대위의 신형은 갑자기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빨라지며 남쪽하늘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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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경방과 해룡방!
10여년전까지만 해도 남해를 한손에 주물렀던 흑도의 양대산맥이다. 그런데 삼년 전부터 팽팽하던 두 세력간의 힘의 균형이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단 몇달만에 거경방은 해룡방에 완전히 흡수, 통합되고 말았다. 흑도 방파들간의 싸움이라 그 규모가 작지 않았음에도 정파에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원래 흑도 세력이라는 게, 끊임없이 새로 자라나는 잡초와 같은 근성이 있어서 완전히 없애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하나의 세력이 지고나면
새로운 신진세력이 나타나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혈사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흑도인 당사자들 간의 일이라
양민들에게는 별 피해가 없다. 양민들은 누가 세력을 잡던 그들에게 일정액만 상납하면 무탈하게 지낼 수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거경방이 해룡방에 흡수된 일은, 그 과정이 드물게 신속했고 별다른 큰 싸움 없이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 의해 끝났다는 점에서
다소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귀계가 난무하는 문파간의 싸움에서, 한쪽이 힘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무너지는 일은 드물지 않았기에 남해에 있는 보타문이나 남해검문과 같은 대 문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청주. 광동성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로, 대륙의 가장 아래쪽에 삐쭉 삐져나온 꼬리 모양의 작은 반도 끝에 있다.
이곳은 서구와 왜국을 잇는 무역로의 중심에 위치해 수많은 내외국 상인들의 출입이 끊이지 않는다.
따라서 신기한 외국 문물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남해를 장악하고 있는 흑도의 거대방파인 해룡방의 본거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이곳 청주의 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선원과 상인들이 마셔대는 술로, 주향이 물씬 피어올랐다.
그때, 후끈하고 끈적끈적한 바닷바람이 괴수의 입김처럼 불어와 주향과 섞이면 느끼하고 기묘한 향취를 뿜어내었는데,
사람들은 이 독특한 냄새를 청주지향이라 부르기도 했다.
오늘 밤도 변함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마시고 떠들어대는 통에 청주는 복새통을 이루고 있었지만, 왠지 여느 때와는 다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니는 사내들이라면 이미 술에 취해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지나가는 아낙을 희롱하느라 바쁠 터였지만,
오늘만큼은 멀쩡한 정신으로 다니는 자들이 부쩍 늘었던 것이다. 차라리 길거리에서 큰 싸움판이라도 벌였더라면 그게 더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테지만,
이들은 차분한 걸음으로 자신의 갈 길만을 걸어갈 뿐이었다. 게다가 묘하게도 그들의 몸에서는 기이한 기세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아마도 무림인들이 보았다면 대단한 고수를 만났다고 감탄을 금치 못했을 정도였다.
이런 고수들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림잡아 세어보아도 백명은 족히 넘었다. 실로 천하에 산재해 있는 고수란 고수는
모조리 끌어 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숫자다.
그들은 조용히 한 곳으로 몰려들었는데, 그곳은 해안가에 바짝 붙어 지어진 거대한 장원이 있는 곳이었다.
해룡장!
편액에 쓰인 글만 보아도, 이곳이 바로 해룡방의 본거지임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청주에 모여든 고수들 모두 이곳으로 속속 도착했는데, 짙은 김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장원 안으로 사라졌다.
해룡장 안쪽 가장 깊숙한 곳에는 해왕전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는 넓은 대전이 있었다. 수십 명이 족히 들어갈 넓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작은 원탁 하나만이 덜렁 놓여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원탁 앞에는 세 명의 노인들이 품(品)자 형태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노인들 중 한 명은 바로 천외패황궁의 태상장로인 유문회라는 인물로, 바로 사마들의 대형인 광뢰마였다. 그렇다면 그를 제외한 두 사람이 광풍마(狂風魔)와 광우마(狂雨魔)가 분명하다.
노문사와도 같은 근엄함을 지닌 광뢰마와는 달리 광풍마 율무극과 광우마 종일기는 무척 독특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우선 광풍마 율무극은 체구가 무척 크고 검은 머리카락에다가 탐스러운 수염이 명치부근까지 내려와 있어 마치 관운장을 보는 듯 했으며,
광우마 종일기는 왜소한 체구에다 두 눈이 매우 작고 또 눈 꼬리가 쳐져 있어 며칠 안에 초상이라도 치룰 것 같은 병약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광풍마 율무극이 묵직한 목소리로 광뢰마에게 말했다.
“닷새 안으로 아이들이 모두 모입니다. 감숙의 아이들이 오진 못했지만 이 정도라 해도 천하에 두려울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해룡방이 가지고 있던 범선도 준비되어 있으니, 집결이 끝나는 대로 귀도(鬼島)로 출전을 하시지요.”
광오하기 그지없는 말이었지만 전혀 허풍처럼 느껴지지가 않는 다. 그러나 광뢰마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쉽게만 생각할 게 아니다. 만약 천산의 후예가 만년옥장의 힘으로 다시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상황은 충분히 변할 수가 있어.”
“하지만 대형. 대형께서는 이미 대공을 이루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건 본교가 천년을 이어 내려오는 가운데 그 누구도 이루지 못했다는
무상광천뢰가 아닙니까? 제 아무리 천산의 후예라 할지라도 대형을 당할 순 없습니다.”
“그렇긴 하다만…….”
광뢰마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때 조용히 앉아있던 광우마 종일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대형. 막내의 말이 옳습니다. 빙궁에서 온 계집이 아직까지 살아 있었다는 게 놀랍기는 하지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닐꺼외다.
설사 천산의 후예가 다시 깨어난다고 해도 대형께서 충분히 그를 제압할 수 있으리라 소제는 생각하오.”
두 사람의 확신에 찬 말에 광뢰마의 얼굴에 차츰 자신감이 살아나는 듯 했다. 아우들의 말이 한치도 틀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소 찜찜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신선과 같은 경지에 들었다고 자신하고 있던 자신에게
느닷없이 찾아왔던 지독한 분노의 감정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부동의 마음을 이루었다고 생각했건만……. 완전하지는 않았구나. 허긴 그까지 이루었다면
이미 우화등선을 하고도 남았을 테지. 그렇다면 인간인 이상 천하에 나를 이길 자가 어디 있으랴.’
광뢰마는 애써 자위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 혼자의 힘만으로도 정파 전체를 쓸어버릴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완벽한 금강불괴를 이룬 신체에다 선천지기로 온 몸을 가득 채워 무한한 내공을 사용할 수 있는 진력을 가졌고, 고금제일의 신공인 무상광천뢰를 대성했으니
가히 일당 일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이다.
‘지금 무림에 있는 아이들을 잘 구슬려 다스려 보려 했는데…, 그건 포기해야겠구나. 이참에 모두 죽여 버리고 세상을 새로운 인물들로 다시 꾸며야겠다.’
광뢰마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떠올랐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절로 푸근한 마음이 들게 하는 그런 미소였다. 광우마와 광풍마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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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오, 홍소저.”
차분한 태도와 말투. 해남에서 오랜만에 만난 마대위의 모습은 많이 달라보였다.
“그래요. 마소협께서도 잘 계셨어요?”
예쁜 얼굴로 미소 짓는 그녀에게 사강룡이 허리를 숙였다.
“누님! 사강룡입니다.”
홍소미는 사강룡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뇌풍개로부터 전서를 받았을 때 사동생이라는 건 짐작했었어. 아, 정말…….”
그녀는 사강룡의 없어진 눈 한쪽과 얼굴 곳곳에 나있는 흉터를 보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사강룡은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광뢰마 같은 자를 만나서 살아남은 것만 해도 천운입니다. 비록 몰골은 이렇게 되었지만 형님 덕분에 새로운 힘을 가졌으니 조금도 아쉽지 않습니다.”
홍소미는 사강룡이 말한 새로운 힘이란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검수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팔과 눈까지 하나씩 잃고도
아쉬워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무척 대단한 것을 얻었으리라 짐작했다. 더구나 마대위가 그를 친히 데려온 것을 보면 사마의 주력을
상대할 능력이 있다고 보아서가 아니겠는가.
그녀는 일단 두 사람과 함께 가볍게 식사를 마친 후, 포구로 데려갔다. 신독문의 비밀거처인 귀도로 데려가기 위함이다.
귀도(鬼島)는 남쪽의 가장 하단부에 위치한 섬으로 일년 내내 여름과 같은 기온을 유지하는, 중국에서 가장 더운 곳들 중 하나였다.
따라서 그곳은 울창한 밀림이 우거져 있었고, 더운 곳에서 살기 좋아하는 독물들의 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뱃사람들이 그곳을 귀도라 명명한 후,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독물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한번 들어가면 귀신이 되어서야 나올 수 있으니 말이다.
신독문에서는 독물들을 수집하기 위해 제자들을 천하 각지로 꾸준히 내보내왔는데, 약 200년 전 귀도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귀도가 독물들의 보고(寶庫)임을 알고는 크게 기뻐하여 그곳에다 비밀 거처를 마련했다. 그래서 제자들을 내려 보내 귀도에서 독물들을 수집하게 했는데
50여 년 전부터는 아예 그곳에다 장원을 짓고 직접 독물들을 연구하게 되었다. 물론 독물들이 우글거리는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으니
강호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결국 신독문의 비밀거처는 이렇게 해서 탄생된 것이다.
포구에는 중형 범선이 한척 기다리고 있었는데, 간판은 무척 넓었지만 선수(船首)가 뾰족하고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급격히 좁은 선체를 가지고 있었다.
대양을 항해하는 서양의 범선과 전통적인 중국의 상선을 혼합시킨 모양이었다.
홍소미는 즉시 마대위와 사강룡을 데리고 배에 올랐다. 그러자 배의 선원들과 선장으로 보이는 노인이 그녀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는데, 상황을 보니
아마도 무림맹 소속의 범선인 모양이다.
범선은 즉시 출항하여 남쪽으로 선수를 돌렸다.
부서지는 파도와 눈부실 듯 푸른 물결. 그리고 훈훈한 바람. 겨울철임에도 여름과 같은 싱그러움이 느껴진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돛은
북풍을 가득 안고 범선의 속도를 더해주었다.
마대위와 사강룡은 뱃전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홍소미와 함께 서 있었다.
“천외패황궁과 마교에서는 누가 와 있소?”
마대위의 물음에 홍소미가 흠칫하더니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아셨죠?”
마대위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그랬을 것 같아서…….”
홍소미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마대위를 응시했다. 마대위가 직관적으로 자신의 실종 이후 일어난 모든 상황을 파악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정보를 분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수없이 많이 쏟아져 들어오는 소식들 가운데, 상호 관련이 있는 것들을 추려내고,
또 그 속에 숨어있는 본질을 파악하여야만 제대로 된 정보를 유추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파악된 정보도 절대적으로 옳다는 장담은 할 수 없다. 마치 키를 조금만 잘못 돌려도 오랫동안 항해하면 배는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방에서는 정보를 분석하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 그 분야의 대가는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할 정도에 불과하다.
정보 분석의 능력도,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가면 마치 무공의 깨달음과 같은 과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직관적으로 사물과 사물의 관계를 꿰뚫어보고,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 능력을 깨달아야만 최고의 정보분석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아무리 많은 정보가 쏟아져 들어와도, 그 정보들의 핵심과 연관관계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해 버린다.
이는 마치 무공의 고수가 어떠한 무공을 보던지 만류귀종의 원리에 입각해 그 무공의 장단점을 한눈에 파악해버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것이다.
홍소미는 마대위가 이전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고 할지라도, 설마 그런 경지에까지 이르렀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우연히 그런 생각이 들어 물어본 것이라 짐작했다.
그녀가 마대위에게 말했다.
“마교는 감숙성을 맡기로 했어요.”
홍소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대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혈사방 놈들의 배후세력이 바로 사마들이었나 보군. 어쩐지 그때 싸워보았던 놈의 무공이 심상치 않더라니…….”
“그들의 세력은 생각보다 더 가공했어요. 아마 그대로 내버려두었더라면 그대로 밀고 내려와 사천성까지 장악해버렸을 거예요.”
사천성이라면 청성파, 점창파, 그리고 아미파와 사천당문이 버티고 있는 정파무림의 요충지다.
구대문파의 세 개와 사대세가의 한곳이 그곳에 있으니 정파무림 전력의 삼분지 일이 그곳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사천성을 장악할 정도라면 그 세력이 얼마나 가공한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대위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훗! 천마존 영감…, 꽤나 골치가 아팠겠군.”
“마교에서는 거의 전력의 반을 쏟아 부어서야 그들을 고립시킬 수 있었어요. 어쨌든 덕분에 사마들 전력의 삼분지 일은 본대와
합류하지 못했으리라 봐요. 그리고 천외패황궁에서는 십패천들 중 다섯과 서열 오십위 내의 고수들 서른명이 와서 대기중이에요.
물론 우리 정파에서는…, 고수급 인물들은 모두 왔어요.”
홍소미의 말에 따르면 귀도에는 그야말로 추측불가의 엄청난 고수들이 떼로 모여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대위는 고개를 한번 끄덕였을 뿐이었다.
천군만마가 모여 있다 한들 정작 사마들을 상대할 고수는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홍소미는 다소 침울한 마대위의 표정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마소협. 사마들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천하를 상대로 이길 순 없어요. 더구나 무림맹주와 오마왕들께서도 모두 와 계시니
사마들은 그분들이 상대하면 될 거예요.”
“그렇구료…….”
마대위가 건성으로 대답하는 듯 하자 홍소미는 잠시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는 다시 말했다.
“사마들도 분명히 바닷길로 오겠죠. 본방에서는 남해 인근의 모든 항구를 철저히 감시하고 있어요. 비록 그들의 종적이 발견된다고 해도 해전은 하지 않을 거예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대위가 불쑥 말했다.
“귀도로 끌어들인 다음 신독문의 독을 이용할 생각인 듯 하구료. 하지만 독이란 게 어느 정도의 경지를 넘어선 고수들에게는 별 소용이 없을 텐데…….
허긴, 약간의 효과는 있겠지. 그럼 그 차이가 싸움을 승리로 이끌 기반을 마련할 테고.”
홍소미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마소협, 대단해요. 마치 무림맹의 군사가 된 것 같군요.”
마대위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대충 말했는데 홍소미가 군사까지 운운하자 얼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가 말머리를 돌렸다.
“그나저나 언제 도착하오?”
“한 시진 후에 도착할 거예요.”
“음…….”
마대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쉰 후 난간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는 먼 바다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운명적인 만남에 대한 예감이 점차 강해지고 있음을 느꼈던 것이다.
한 시진은 금방 흘렀다. 마침내 마대위를 태운 배는 귀도에 다다르게 되었는데, 별다른 정박시설은 없었으나,
해안 곳곳에 평평하고 널찍한 바위가 툭 튀어나와 있어 배를 쉽게 댈 수 있었다. 게다가 섬 주위의 수심이 매우 깊어
대형 범선도 쉽게 접안(接岸)할 수 있을 정도였다.
홍소미가 가장 먼저 하선하자 사내들 몇이 기다리고 있다가 허리를 숙였다. 사내들은 홍소미와 잠시 몇 마디 주고받더니 다시 예를 갖춘 후 섬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마대위에게 손짓을 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마소협.”
마대위는 사강룡과 함께 하선해 그녀에게 다가갔다.
홍소미가 섬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독문의 비밀거처는 너무 작아, 모두들 섬 가운데 있는 분화구 안쪽에 있어요. 우리도 그쪽으로 가요.”
말을 마친 그녀는 즉시 신형을 날렸고, 마대위와 사강룡도 즉시 그녀의 뒤를 따랐다.
섬 안쪽의 수림은 무척 울창했고, 이름모를 기화이초가 만발해 있었다. 꽃이나 열매는 색이 화려했으며 나무의 잎도 중원과는 달리 크고 두툼했다.
한동안 밀림을 헤치며 나아가자 가파른 산이 나타났다. 거무스레한 돌이 곳곳에 널려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 화산이 있던 장소가 분명했다. 경사가 무척 급해 험난한 길이었지만 마대위를 비롯한 세 사람은 그야말로 나는 듯이 올라갔다.
잠시 후, 정상에 오르자 마대위와 사강룡은 아래에 드러난 광경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언덕 안쪽 분화구에는 넓은 초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고, 가운데에는 맑은 호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 초지가 얼마나 넓었던지 수백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음에도 마치 넓은 정원에 개미떼가 모여 바글거리고 있는 듯 보였다.
홍소미가 그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귀도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저곳에 모여 있어요. 그리고 이 분화구에서 사마들과 일전을 치를 거예요.”
그녀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다시 신형을 날렸다. 마대위와 사강룡도 그녀의 뒤를 따라 분화구 안쪽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곳에 도착한 세 사람은 그곳에 있던 모든 고수들의 눈길을 모두 사로잡았다.
그들 모두 미리 소식을 전해 들어 마대위와 사강룡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 보였는데, 호감을 가진 눈길보다는 다소의 적대감이나 거리감을 가진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미간이 따끔거릴 만큼 강한 기운을 눈빛에 실은 채 마대위를 노려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무당파의 장문인인 청학진인이었다.
청학진인 주위에는 정파의 최고 수뇌부들이 모두 모여 있는 듯 절정고수가 아닌 자들이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 중 유일하게 마대위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이가 있었는데, 마대위가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소림의 공성대사였다.
공성대사는 몇 달 전 마대위와 함께 제령의 천외패황궁 지부로 특사의 자격으로 동행했었다. 그때 마대위는 연운비와 싸운 후
승패를 가리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다가 구전서생 연호비의 죽음에 광분한 천외패황궁 무사들의 협공을 받기도 했다.
마대위는 그가 마교의 오흑마들의 구원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오늘 무사한 것을 보니 무척 반가웠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공성대사도 미소를 가득 띤 채 합장을 해 보였다.
그때였다. 괄괄한 노인의 목소리가 사위를 울린 것은.
“이놈 대위야!”
마대위가 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오마왕들이 모두 나와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영감님들!”
마대위가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소리치며 달려갔다.
그는 오마왕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엉겼다.
“영감님.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어디 아픈 곳은 없소?”
혼세마왕이 마대위의 머리를 소리가 나도록 쥐어박으며 말했다.
“네놈도 이렇게 팔팔한데 우리가 어찌 먼저 갈수 있겠느냐!”
마대위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한 채 오마왕들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모두들 두 눈에 물기가 맺혔지만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때 갑자기 마대위가 뭔가가 생각난 듯 정색을 하며 물었다.
“잠깐! 대종사님과 사모님은 어디 계시오?”
혼세마왕이 말없이 뒤쪽 천막을 가리켰다. 그러자 마대위의 신형은 바람처럼 그 천막안으로 사라졌다.
천막 안으로 들어간 마대위는 한동안 나오지 않았는데 오마왕들도 그를 찾아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잠시 후, 마대위가 다시 나왔는데, 그의 두 눈 주위가 붉게 상기된 것으로 보아 눈물을 흘린 모양이었다.
마대위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킨 후, 사강룡의 손목을 잡고는 수라마왕 앞으로 데려갔다.
“인사 올려라. 네 할아버님이시다.”
순간 수라마왕의 두 눈에 번쩍 뜨였다. 사강룡은 그 자리에서 무너지듯 쓰러지며 소리쳤다.
“할아버님, 소손 사강룡이옵니다!”
수라마왕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했다. 세상천지에 단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말이다.
어느 순간 수라마왕이 털썩 주저앉더니 사강룡의 얼굴을 두 손으로 매만졌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과 팔. 그리고 묵인처럼 검은 피부. 아무리 좋게 보아도 강호에 나간다면 괴물이라 불리고도 남으리라.
하지만 수라마왕에게 있어서 그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
수라마왕은 사강룡의 온 몸을 만지고 보고 하더니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어떤 놈이 너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느냐?”
그의 물음에 사강룡은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광뢰마가 그랬다고 대답한다면 수라마왕이 목숨을 돌보지 않고 그에게 복수를 하려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사강룡은 다소 당혹한 표정으로 마대위를 바라보았다.
마대위가 입을 열었다.
“죽지 안은 것만 해도 천행이었습니다. 비록 검을 쓰기는 어려울지라도…….”
“잠깐!”
마대위가 채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만독혈왕이 달려와 사강룡의 맥문을 움켜쥐었다.
수라마왕이 안색을 구기며 소리쳤다.
“이 독충이 노망이 났나…, 남의 손자에게 무슨 짓이야?”
만독혈왕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동안 사강룡을 진맥하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대위를 바라보았다.
“서, 설마 독인…?”
“살리려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무슨 독을 기반으로 했느냐?”
“독지(毒芝)였는데 정확한 명칭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냐? 내 직접 찾아가야겠다.”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수라마왕이 나섰다.
“도대체 무슨 소리냐, 독인이라니?”
마대위는 그에게 사강룡을 살릴 당시의 일을 모두 설명해 주었다. 수라마왕은 마대위의 말을 듣고 난 후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독인이 되었으니 후사를 볼수 없을 것이요, 따라서 수라검문의 대는 여기서 끊어지는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사강룡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독인으로라도 살아남았으니 하늘에 고마워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마대위는 사강룡이 꾸준히 증진하여 활도를 깨우치기만 한다면 독인의 제약에서 벗어나 후손을 볼 수도 있을 것이라 말해주었다.
그러자 수라마왕은 두 눈을 빛내더니 만독혈왕에게 말했다.
“독충, 자네가 대위에게 독공을 전해준 거 맞지?”
“그렇네.”
“그럼 대위가 손주 녀석을 독인을 만든 것도 자네 책임이라 할 수 있겠군.”
“책임? 그건…….”
만독혈왕이 어물거리자 그가 다시 말했다.
“원래대로 돌려놔.”
말을 마친 그가 사강룡의 팔을 끌어다 만독혈왕의 손에 쥐어주는 게 아닌가.
만독혈왕은 당황한 표정으로 어찌해야 할지 몰랐지만 잠시 생각하더니 혼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꿈이 완전한 독인을 이루는 것이었고, 지금 그 꿈에 근접한 사람이 손안에 쥐어져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보다 더 좋은 연구대상이 어디 있겠는가.
수라마왕이 사강룡에게 당부했다.
“너는 오늘부터 독충영감 곁에 찰싹 달라붙어 있도록 해라.”
사강룡이 당혹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 하지만 사마들이 오면 싸워야…….”
“턱도 없는 소리! 이 할애비가 혀를 물고 죽는 꼴을 보아야겠느냐?”
사강룡은 한동안 수라마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처자식은 물론 가솔들을 모두 잃은 외로운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사강룡은 저도 모르게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수라마왕과 가문의 염원을 한 몸에 지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할아버님.”
사강룡이 수긍을 하자 수라마왕의 얼굴은 그제서야 펴졌다.
만독혈왕은 사강룡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흩어지기 시작했다.
마대위와 풀어야 할 은원이 많은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지만 최후의 결전을 앞둔 시점에서 내분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무당파의 문인들도 마대위를 힐끗 바라보기만 했을 뿐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마대위는 오마왕들과 함께 대종사와 북해성녀가 있는 천막안으로 들어갔다.
첫댓글 즐독!!!!!!!!!!!!!11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즐감
ㅎㅎㅎ
즐감하고 갑니다.
잘읽었습니다
wmfehr
즐감요~~
즐독입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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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즐감 하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