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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생명 말씀(2020.3.15.) 말씀/ 요한복음 3:16
최고의 기적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제가 인터넷 기사 좋은 글들은 식상해서 잘 관심을 잘 안 두는데 이 이야기는 너무나 감동되어서 나누려고 스크렙 해두었습니다. 오랫동안 살던 동네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된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초등학생 딸 안나가 있었습니다. 안나를 새 학교에 데려다 준 첫날, 아이가 학교에서 벌인 행동에 부모님은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친 뒤 가족은 다 같이 식당에 갔고, 안나는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사회 시간에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대한 시험을 보았다고 합니다. 안나를 뺀 나머지 아이들은 이미 배운 내용이었기에 모두가 바쁘게 답을 써나려 가기 시작했지만 배우지 않았던 안나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안나, 걱정하지 말고 아는 걸 쓰면 된단다.” 시험이 끝나자 선생님은 정답을 공개했습니다. 학생 대부분이 정답을 맞힌 듯했습니다. 정답은 페루의 잉카 유적지 마추피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예수상, 멕시코 치첸이트사 마야 유적지, 중국 만리장성, 인도 타지마할, 요르단 고대도시 페트라,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으로 이것은 2007년에 발표된 새로운 세계7대불가사의입니다. 저도 이 중에 인도 타지마할 묘와 로마 골로세움은 가보았습니다. 안나의 엄마는 배운 적이 없는 안나가 어떻게 썼을 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 “넌 어떻게 썼니?” “선생님이 그냥 아는 것을 쓰라고 하셔서 전 이렇게 썼어요. 세계 7대 불가사의는.. 볼 수 있는 것, 들을 수 있는 것, 말할 수 있는 것, 느낄 수 있는 것, 웃을 수 있는 것, 생각할 수 있는 것,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구요.” 안나가 들려준 이야기에 안나의 부모님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님 자신들 조차도 그동안 얼마나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이 소중한지 잊고 살았는지… 안나와 가족들은 즉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정말 할 말이 없는 답 이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아무 대가 없이 주신 모든 것들이 진정한 불가사의 인 것입니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어떻게 어린 아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지...
볼 수 있는 것 정말 불가사의 기적입니다. 우리 몸에 적은 두 개 눈으로 세상을 보고 마음에 담고 살아간다는 것이 참 신비한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느낀다는 것...요즘 코로나 때문에 온 세상이 난리 이지만 3월이 지나 산에는 연분혼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긴 겨울 모진 찬 바람을 이겨내고 꽃을 피워내는 것을 보면 기적입니다. 그 기적들이 모여 장관을 이루면 감탄 감탄입니다. 4월이면 주작산 진달래가 활짝 피는데 ... 이를 보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주작산 진달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여러분, 고대도시 페트라 잉카 유적지 맞추피추에 가본적 있습니까? 그곳만 불가사의겠습니까? 긴 겨울의 추위를 이기고 피어나는 매화꽃, 진달래, 춘란 모두가 불가사의한 기적입니다. 그리고 작은 두 눈으로 온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지만 헬렌 켈러는 태어날 때부터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장님 이었습니다.설비반 선생을 만나 그 희생적인 사람으로 일어나 눈 뜬 사람보다 더 큰 일을 했습니다. 그녀에게 ‘내가 삼일만 볼 수 있다면’ 이란 고백이 있습니다. 만일 눈을 뜰 수 있다면 많이도 아닌 3일입니다.
첫째 날에는 친절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있게 만들어준 사람들을 보고 싶다. 설리번 선생님과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을 몇 시간이고 쳐다보며,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고 그들의 특징도 나의 마음 깊숙이 간직하겠다. 그러다 어느덧 오후가 되면 오랫동안 숲속을 산책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적셔지다가 나의 손끝의 촉감으로 아무리 만져서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었던 저녁의 황홀하게 불타오르는 노을을 보고 싶다. 둘째 날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밤이 낮으로 바뀌는 가슴 떨리는 기적을 보고 싶다. 산을 내려오면서 나무나 풀잎에 붙어있는 진주알같이 아름다운 이슬방울들, 아침하늘에 날아다니는 예쁜 새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집에 내려와서 아침을 먹고 싶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영화나 연극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내 손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알아차리지 못한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보고 싶다. 셋째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평범한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일상생활을 이해하고 싶다. 점심 즈음에는 영화관에 달려가 내 손가락 끝으로 아무리 만져도 알 수 없었던 대형 화면에 비춰지는 아름다운 신들을 감상하겠다. 그러다 밤이 되면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감상하고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지난 삼일동안 만이라도 이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기도를 드리고, 다시 영원한 암흑의 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느끼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적이란 행복도 마찬가지 이지만 저 먼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모든 삶 주변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상시 사사롭게 생각했던 것들이 헬렌켈러 입장에서 보니 다 기적이고, 다 감사제목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3일이 아니라 평생을 헬렌켈러가 보지 못했던 기적을 보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무슨 기적이 필요 합니까? 걷지 못하는 사람에겐 마음 것 걸어다니는 것이 기적이고, 치질 있는 사람은 마음 것 털썩 털썩 앉을 수 있는 기적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임재범 집사님! 마음 것 앉아서 식사하고, 마음 것 앉아서 책 읽고, 두려움 없이 마음 것 화장실 가서 배설 할 수 있는 것이 알고 보면 기적 아닙니까? 전에는 찬양이 입에서 나왔지만 이제는 밑에서부터 올라오지 않습니까? 건강 한 사람은 잘 모릅니다. 저도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몇 년 전 인덕원 유명한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았는데 얼마나 기뿐 좋고 상쾌한지 화장실 가는 자체가 행복했습니다. 그 병원 이름이 상쾌란 항 외과입니다. 이름 그대로입니다. 저는 이제 다른 기적이 필요 없습니다. 일상이 자 기적이고 감사제목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기적의 간증들 이제는 별로 관심 없습니다. 이미 그런 기적들은 성경에 수없이 나와 있습니다.
지난 주 수요일 광주로 임 재범 집사님 병문 가면서 저는 [데살로니가전서 5:16.17.18]말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왜 항상 기뻐하라고 하셨는가?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는가? 어떻게 범사에 감사하며 살 수 있는가? 그리고 비결의 답이 여기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병이 나아서 기뻐하고, 누군가에 좋은 선물을 받아서 기뻐하고, 돈을 많이 벌거나 성공해서 기뻐한다면 항상 기뻐하기 어렵습니다. 언제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나가 말한 것처럼 일상의 불가사의를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다리를 두 번 다치고 나서 마음것 걸어다니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고 행복인가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국 속담에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다니는 것이다”라는 말 이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갈비뼈가 나간 후에는 숨을 마음 껏 쉬고, 재채기를 마음 것 하는 것도 기적이며 행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위산 과다로 한 2년 입안 염증 등으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불편함을 느껴보니 평상시 마음 것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 기적임을 알았습니다. 피부로 고생하다보니 마음 것 머리감고 샤워하는 것이 기적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선물을 안줘도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밤에 잠 잘 때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 때 행복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God,s plan of salvation을 암송학, 창세기 1장을 영어로 암송하고, 새 날을 맞아 산을 오르며 기도 하고, 산장에서 떡을 떼고, 독서를 하고, 돌아와서 하루 일과를 해 나가다보면 감사밖에 없습니다. 특히 봄이 되니 주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매일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마스크 안기고 마음 것 호흡할 수 있다는 것,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미술작품들을 감상하고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며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 모든 것들도 다 불가사의 기적입니다. 요즘은 청소 정돈 하면서도 행복 합니다. 2층 3층을 바꾸고 변화시키면서 새로운 창조와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늘상 뭘 먹을까 고민을 하며 식사를 얼른 마치고 내려오던 3층이 이제는 더 눌러 앉아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는 북 카페가 되었고, 3층 현관을 입구부터 쓰레기통이 입을 크게 벌리고, 20년 넘은 신발장, 중고 냉장고, 철제 녹슨 케비넷들이 들고나는 나에게 지저분한 메시지를 보냈는데...싹 갈아 버렸습니다. 이쁜 쓰레기통, 하얀 색의 깰끔한 신발장, 옛날 보조 식탁으로 쓰던 식탁을 페인트 칠하고, 연록색 책장을 주문하고 , 버리려던 쌀통은 꽃꽂이 병으로 만들고, 보물과 같은 믿음의 동역자들 사진을 앞에 크게 걸고 나니 오고가며 바라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제 생각에도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가? 이렇게 기적은 멀리 있지 않고 우리 마음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구나 알았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일상의 감사함과 행복을 모른 채 너무 먼 곳을 향하여 바둥바둥 살아온 것같습니다. 기적은 나 가까이에 있고, 내 주변에 어디던지 있습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호흡하며 살아있는 동안에 먼 나라로 가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데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감사는 기적을 만드는 첫 걸음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빗어진 불가사의 존재들입니다. 지금도 나 자신을 봐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내 안에서 불가사의 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최고의 기적은 단연 사랑입니다. 저는 안나가 칠대 불가사의 중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을 넣은 것을 보고 놀랬습니다. 안나는 저 어린 나이에 사랑이 기적이라고 깨달았지만 저는 오랜 삶을 산 후에 비로서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죽은 것을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세계 칠대 불가사의가 아무리 신비해도 기적이 아닙니다. 불가사의도 아닙니다. 그저 죽은 것들입니다. 기적은 변화하는 것이고 생명입니다. 기쁘고 즐겁고 웃고 보고 느끼고 행복해 하며 사랑하는 것들 모두가 살아 있는 것이며 그게 기적입니다. 지금 새로워지고, 조금이라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면 기적 입니다. 그 중에 최고의 기적이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바로 웃게 하는 힘, 감사하게 만드는 힘, 행복하게 하는 힘의 소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세상에 최고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한번은 바리새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주시기를 청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이 무엇입니까? 바다에 던져저서 고래배 속에서 3일을 살다 나온 요나의 사건을 말 합니다. 이는 죽으시고 무덤에 갇혔다가 3일 후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최고의 표적이요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홍해가 갈라지고 광야의 반석에서 물을 마시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나를 먹는 등 숱한 기적을 체험했던 이스라엘은 달라지는데 실패하였습니다. 계속 어려울 때마다 원망 불평 반복하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은 사람들은 죽지 않습니다. 죽어도 다시 삽니다. 그리고 계속 새로워집니다.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기적 입니까? 요한은 3: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사건의 중심에는 위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 수 있으셨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인류를 대신하녀 죄를 뒤집어쓰시고 죽으실 수 있으셨는가? 어떻게 죽고 다시 사실 수 있으셨는가? 어떻게 아직 죄인 되었던 원수 같은 나를 대신해서 죽으실 수 있으셨는가? 어떻게 죄로 죽을 자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사랑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랑하사. 사랑이 이모든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지금도 계속 죽은 자들을 일으키고 살아있는 자들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가장 큰 힘이며 기적인 것입니다. 이보다 불가사의한 일이 세상에 있습니다. 이 사랑이 기적임을 깨닫는 사람은 반듯이 변화됩니다.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결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기적을 일으키셨고 지금도 기적을 일으키고 계십니다. 그동안 도저히 해도 해도 안 되는 일들이 우리 삶속에 많이 있었지만 사랑으로 하면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말 합니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하라” 사랑으로 일상의 삶 속에 변화의 기적을 보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상의 삶 속에 주시는 주님의 은혜 매일 매일 감사하고 행복과 기쁨을 누리며 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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