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아도 힘든 세상에 또 우리들을 안타깝께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천을 출발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 가 어제 오전 진도 앞바다에서 좌초하고 말았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탑승 475명, 사망 9명, 실종 287명, 그리고 구조자는 179명이란다.
특히 제주로로 수학여행을 가던 어린 학생들이 많았다. 요즘처럼 애 낳기를 꺼려하는 세상에서 그 얼마나 애지중지하게 키워 온 자식들일까?
그 와중에 대책본부에서는 탑승자(이 문제는 선박회사의 소관이니 그렇다치고...)나 구조자 숫자파악이 제대로 되지않아 눈살을 찌푸르게 하였다.
이런 대형사고 발생시에는 보고체계를 일원화 하는 습관이 되어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혼란이 일어난 모습의 뉴스를 보는 우리들로서는 솔직히 믿음이 가질 않았다. 고귀한 생명들이 바람앞에 선 등불처럼 위기에 처한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동안 매년 실시하는 훈련이 이럴 때 빛이 났으면 좋으련만...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꽃잎피는 계절에 아름답게 피어난 아까운 꽃잎들이 지지 않았으면...
어린아이의 구조 사연이 마음을 슬프게 한다.(아래 기사내용)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승객들이 필사적으로 5살 아이를 구조했다. 하지만 부모와 오빠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김모씨 등 세월호 3등칸 플로어룸에 있던 승객들은 배가 가라앉을 때 혼자 있던 권지연양을 발견했다. 권양 곁에 있어야 할 부모는 보이지 않았다. 권양은 두려움에 떨며 눈물도 흘리지 못한 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김씨 역시 배가 급격히 기울며 바닥에 떨어지는 과정에서 머리를 다쳤으나, 아이를 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김씨 등 일행 4명은 권양을 안고 기울어진 배를 오르기 시작했다.
김씨 일행은 서로 밀고 당기며 권양을 위로 밀어올렸다. 김씨는 “눈에 보이는 건 모두 잡고 올라갔다. 혼자서는 절대 못 올라갈 높이여서 일행이 없었다면 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세월호 폭이 22m인 것을 고려했을 때 이들은 20m 이상을 올라간 것이다. 바닥에 물이 차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씨 일행은 “애 어딨어. 애 찾아”라며 끝까지 권양을 보호했다.
마지막 순간에는 수학여행을 온 여고생들도 힘을 보탰다. 김씨 일행이 20여m를 올라왔을 때 여고생들이 권양을 끌어올렸다. 한 여고생은 두려움에 떠는 권양을 꼭 안고 구조를 기다렸다.
무사히 구조된 권양은 이날 정오께 목포한국병원으로 옮겨졌다. 큰 부상은 없지만 현재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의 한 관계자는 “권양이 지금 몹시 불안한 상태여서 외래 간호사의 보호 아래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격이 가시지 않은 탓인지, 권양은 부모 이름을 기억하면서도 엄마·아빠를 찾지도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권양의 부모와 한살 터울 오빠는 16일 밤까지도 생사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권양 고모부가 서울에서 내려왔다.
김씨는 “아기를 구조한 건 다행이지만 아직 부모와 연락이 닿지 않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올겨 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