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구
김 나 영
햇살 고운 담장 안에 꽃 분홍 망울이 터트려져 꽃이 되었다. 매화처럼 고고하지도 않고 이화의 도도함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화사한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어느 것에도 뒤지지 않는 살구꽃이었다. 꽃피우는 시기를 따지지 않고 아우르면 언뜻 매화가 도화 같고 행화(살구꽃)가 앵화(벚꽃) 같아서 도통 모르겠다.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여 어느 순간까지도 구분이 어려운데 매실과 복숭아가 그렇고 살구가 그러한 것이 같은 장미 목 족속들이이어서 그런가 보다. 남쪽의 매화꽃 나무는 키가 작고 옆으로 가지를 뻗은데 비하여 내가 따온 매실이 열렸던 나무는 위로 가지가 뻗은 키가 큰 나무여서 다른 종류로 알고 있었다.
집 주변에도 살구나무가 여러 그루 있어서 매일 조금씩 커가는 열매를 바라보면 뿌듯해지곤 했다. 남편과 산책을 나가다가 아주머니 세분이서 종이 봉지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아무래도 살구를 매실로 알고 따러 나온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키가 닿는 부분에 있던 열매를 따고 나서는 나무를 마구 흔들어 댔다. 손이 닿지 않자 나무 가지 위에까지 올라가 악착같이 열매를 따고 있었다. 그것을 본 남편이 무엇을 할 건지 넌지시 물으니 매실 엑기스를 뽑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살구나무라고 가르쳐 주고 싶었다. 따놓은 살구를 버릴까봐서 그럴 수가 없었다. 모르고 먹으면 약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난해 여름에 노랗게 익은 살구를 따는 것을 목격하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도 매실이려니 했을 것이다. 매화꽃이 피었던 나무에 열매가 달린 것을 본 적이 없고 매실이 달렸던 나무에 꽃이 핀 것을 본적이 없어서 같은 나무일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으니 한계를 느낀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좀처럼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이니 낸들 뭐를 알까.
몇 해 전 어머니를 모시고 산사에 다녀오던 길이었나 보다. 어느 시골 동네 앞 가로수에 온통 매실이 달려있는 것을 보았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여서 그런지 키가 닿지 않아서 도로가의 가드레일을 밟고 올라서서 따야 했다. 높은 구두에다 정장을 입어 불편하기도 했지만 이왕 고생하는 것 필요한 만큼 봉지 가득 담아서 돌아왔다. 산사에서 욕심을 버리게 해 달라고 수없이 되 뇌였건만 견물생심이라 그새 잊어 버렸던가 보다. 산 매실은 버릴 것 하나 없는 약재라며 무척 좋아하는 어머니를 뵈니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매실 청을 내어 배드민턴 회원들에게 자랑삼아 얘기하며 흡족해 했고 매실 장아찌를 담아 여기저기 나누어 주었다. 장아찌가 잘 씹히지 않고 질긴 맛이 있어도 고생한 보람도 있고 담아주신 정성을 생각해서 두고두고 아껴 먹었다. 두통에 시달리는 나를 위해 어머니께서는 손톱이 들뜨면서까지 깨끗하게 손질한 씨앗으로 베개까지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그 열매가 어이없게도 매실이 아닌 살구였다는 것을 훗날에 알게 되었다. 그 때 마시고 먹었던 매실 청이며 매실 장아찌가 살구라는 것을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된다 해도 헛웃음 밖에 나올 것이 없을 것 같다. 어머니는 지금도 매실로 알고 있어서 늦은 봄만 되면 그 곳에 가자고 하시니 난감해진다.
길가에 심어졌다고 해서 주인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개인 소유는 아니더라도 관공서에서 심어둔 것으로 분명 남의 것이 맞다. 차라리 시장에 가서 가격을 치루고 구입을 했으면 고생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테고 마음에 걸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공짜라면 독약도 마신다던 옛말이 욕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따왔어도 해가 되지 않아 감사할 따름이다. 두 번 다시는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하지 않으리라.
살구 씨앗 베개든 매실 씨앗 베개든 어떠랴. 움직일 적마다 씨앗이 부딪히는 소리가 어머니의 야윈 뼈마디 뒤틀리는 소리 같아 가슴이 에인다. 어머니의 정성 가득한 손길이 닿은 덕분으로 뒷목덜미의 긴장을 풀어 주어서 그런지 매일 같이 숙면을 취하기는 하지만 죄송스런 마음은 크기만 하다. 꽃 분홍 살구꽃이 피었다 지고 연한 초록의 열매가 영글어 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매실인 줄 알고 욕심내어 따던 그 날이 생각나 허허롭게 웃는다.
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선생님 얘기는 교수님께 들었습니다.
매실이나 살구나 작은 게 닮았나 봅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자주 만나요.
정말 닮았다니까요.ㅎㅎ
재미있는 추어이군요 처음보시는 분들은 착각하기 쉽지요 벗꽃과 살구꽃은 같이 피지만 매실꽃은 그보다 먼저피고 꽃이 작지요 감사합니다.
자세히 보면 다르긴 한데...그냥 그게 그것 같아서요.선생님께서는 아시는군요.고맙습니다.
전 지금도 살구꽃, 벚꽃, 매화꽃 구별 잘 못해요. 물론 푸른 살구랑 매실이랑도 구별못하고요. ㅎㅎ
많은 사람들이 그런것 같아요.고맙습니다.
저는 해마다 매실즙을 담는데 매실속에 살구가 끼어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얼핏보아서는 잘 구분이 안되더군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도 들었답다. 일부러 섞는 사람도 있다구요.고맙습니다.
ㅋㅋ...재미있게 일고 갑니다 선생님. 늘..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문학기행때 뵙기를 소원합니다.
네.고맙습니다.저도 뵙게 되기를 바란답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저도 음식할 때에 매실즙을 넣습니다만, 살구와 구별을 잘 못하겠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그러시군요.동감입니다.감사드려요.
살구와 매실 저도 잘 구분이 안가던데요 ㅎㅎ 어떻튼 정성이 깃든 살구 글 잘 읽엇습니다
몸이 좀 좋아지면 살구 따러 갈까 싶네요.감사합니다.
매실과 살구는 사촌간인가 봅니다. 무성선생님 반갑습니다. 재미있는 추억 잘 읽었습니다.
네. ㅎㅎㅎ그런가봐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