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베클리 테페는 언덕 위에 스톤헨지처럼 원 모양으로 세운 돌기둥이 특징인데, 기둥들에는 여러 가지 곤충과 동물 형상이 양각되었다. 돌기둥들은 T자 형상을 하였는데 사람을 나타낸 듯하다. T자형 돌기둥의 몸통 부분(ㅣ부분)에는 손과 인체형상이 조각되었지만 얼굴 부분(ㅡ부분)에는 아무 조각도 없다. T자형 유물은 한국의 솟대나 일본의 토라이에서도 볼 수 있는데, 새가 하늘과 인간을 연결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가 앉는 횟대를 형상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이 일상생활을 위한 장소가 아님이 유력하다. 굳이 중간에 T자형 돌기둥을 세워 몸통 부분에 손 모양을 조각한 점을 볼 때 신앙을 위해 신을 형상화했지만 얼굴은 조각하지 않았다고 추정한다. 유적지 주변에서는 농사를 짓거나 사람이 거주했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학자들은 수렵채집에 의존했을 건립집단이 이곳에서 연중 어느 정도는 머무르며 종교적 행사를 치렀으리라 본다. 이는 주변에서 잡아서 이곳으로 가져와 먹고 묻은 야생동물들의 뼈가 대량으로 발견된 점에서 유추된다.
돌기둥을 세우고자 인근에 위치한 석회암 언덕에서 바위를 떼어내 운반했는데, 기둥 하나의 무게가 10~20톤에 달하기 때문에 운반과 조각, 건설에 적어도 체계적으로 집단화된 인력 5백 명 이상이 필요했으리라 보인다. 이 시기는 겨우 원시적인 농업이 시작되려던 신석기 시대 초기로 추정되는 시기인데, 고고학계의 기존학설에 따르면 인류가 이러한 거대유적을 조성하려면 체계적인 노동력이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하려면 농경생활에 따른 체계적 사회조직이 등장해야 한다. 그런데 괴베클리 테페에서 문자 나 바퀴, 토기, 청동기의 사용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점, 그리고 농업이나 가축 사용을 짐작하게 할 만한 유물도 발견되지 않은 점이 기존 신석기 혁명과 농업발전을 통한 인류의 집단사회 구조형성과 충돌한다.
사실 집단사회 형성이 농경보다 앞설 수 있다는 것은 학계에서는 이미 20년 이상 전부터 논의되어 충분히 받아들여진 내용이므로 그 자체가 그렇게까지 충격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농경 이전의 집단사회가 이러한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체계적이고 대규모일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놀랍다.
2. "괴뵈클리 태페"의 쇠퇴와 몰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