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노자 편-제4회:<도덕경>의 탄생
(사진설명: 노자의 동상)
제4회 <도덕경>의 탄생
3년간 모친의 묘소를 지키면서 노자의 깨달음은 더 깊어갔다. 머리 속에 철학적 사고를 가득 담은 노자는 낙읍에 돌아가 주 나라 왕실의 수장실 태사를 지내며 본격적으로 철학연구에 몰두했다. 기원전 516년 주 나라의 왕실에서 내란이 발생해 왕실은 많은 경전을 가지고 초(楚) 나라로 도주했다. 그러지 않아도 벼슬하기 싫었던 노자는 그 김에 사표를 던지고 청우(靑牛)의 등에 올라 낙읍을 떠났다.
왕궁을 나오니 황량한 벌판에서는 소가 밭을 매는 대신 군마가 그 벌판을 달리고 있었다. “천하에 도(道)가 없으니 나라가 혼란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구나!” 노자는 이렇게 탄식하며 먼 곳에 가서 은둔하기로 마음을 먹고 서역을 향해 걸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서 노자는 진(秦) 나라의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다.
이 때 함곡관을 지키는 관령(關令) 윤희(尹喜)가 성루에 올라 바라보니 동쪽에서 상서로운 보랏빛 기운이 밀려오는 것이었다. 동쪽에서 오는 보랏빛 기운 즉 자기동래(紫氣東來)는 귀인의 도래를 예시하는지라 윤희가 함곡관 밖으로 눈길을 돌리니 수염과 눈썹, 머리가 모두 하얀 노옹이 푸른 소를 타고 유유하게 오는 것이 보였다. <관윤자(關尹子)>라는 저서를 펴낸 윤희는 주 나라의 수장실에 가서 자료도 찾아보고 노자에게서 가르침도 받은 적도 있었다. 윤희는 함곡관에서 노자를 만날 줄은 생각도 못한 지라 기쁜 나머지 한걸음에 성루를 내려와 노자를 맞이해서 거처로 안내했다.
윤희는 좁쌀로 밥을 짓고 닭 한 마리를 잡아 요리하고 산사나무 열매주도 식탁에 올려 멀리서 온 노자를 환대했다. 노자가 식사를 끝내자 윤희는 죽간을 한 아름 가지고 나와 노자에게 내밀었다.
“이건 제자가 쓴 졸작 <윤관자>입니다. 스승님의 지도와 가르침을 바랍니다.”
노자는 죽간을 힐끗 쳐다보고 말했다.
“내가 벌써 보았는데 자네 잊었나? 잘 썼네.”
윤희는 그제서야 인편에 노자에게 자신의 저서를 보냈었다는 기억이 났다. 스승의 칭찬을 받은 윤희는 즐거운 마음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스승님께서는 이번에 어디로 가실 예정이십니까? 멀리 가실 모습입니다만.”
노자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네. 서역(西域)으로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예정이네.”
“스승님, 그러시다면 저서라도 남기셔야죠.”
윤희의 말에 노자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은둔과 무명(無名)을 주장하지만 자네 말에도 일리가 있네. 그럼 여기서 뭘 좀 써서 기념으로 남기겠네.”
노자는 함곡관에서 며칠 머무르는 동안 글자수 5천에 상하 2편으로 된 그 유명한 저서를 펴냈다. ‘상덕불덕(上德不德), 시이유덕(是以有德)’으로 시작되는 상편(上篇)에 후세 사람들은 <덕경(德經)>이라는 이름을 달았으며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로 시작되는 하편(下篇)은 <도경(道經)>이라 불렀다. 그 뒤 한(漢)나라 때에 누군가가 상하편을 합쳐 <도덕경(道德經)>이라 불렀으며 노자의 저서는 그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노자가 한 글자씩 쓰고 곁에 시립한 윤희가 한 글자씩 읽어 내려갔다.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 명가명(名可名), 비상명(非常名). 무명천지지시(無名天地之始), 유명천지지모(有名天地之母). 고상무(故常無), 욕이관기묘(欲以觀其妙); 상유(常有), 욕이관기미(欲以觀其微). 차량자(此兩者), 동출이이명(同出而異名), 동위지현(同謂之玄). 현지우현(玄之又玄), 중묘지문(衆妙之門).”
윤희는 읽어 내려갈수록 글의 심오한 뜻을 알 듯 말 듯 했다. 그는 애써 풀이했다.
“도(道)를 도라고 말하면 벌써 본질적인 도가 아니고 어떤 이름을 붙이면 벌써 그 본질을 담지 못하느니라. 도가 없을 때 천지가 시작되고 도가 있으면 천지의 어머니, 만물을 키우는 어머니가 되느니라. 그러므로 허(虛)의 시각으로는 오묘함을 탐구하고 실(實)의 시각으로는 흔적을 찾느니라. 허와 실은 이름만 다르고 사실상 뿌리는 같으니라. 같은 뿌리의 허와 실, 하나가 된 유(有)와 무(舞)를 현묘(玄妙)하다 하느니라. 현묘하고 또 현묘함은 바로 우주와 같은 현묘함의 뿌리이니라…”
노자가 쓰는 대로 따라 읽어 내려갈수록 윤희는 그 내용에 점점 깊이 매료되었다. 윤희는 소리를 높여 마지막 구절을 읽었다.
“신언불미(信言不美), 미언불신(美言不信). 선자불변(善者不辯), 변자불선(辯者不善). 지자불박(知者不博), 박자불지(博者不知). 성인불적(聖人不積), 기이위인이유유(旣以爲人已愈有) 기이여인이유다(旣以與人已愈多). 천지도(天之道), 이이불해(利而不害); 인지도(人之道), 위이불쟁(爲而不爭).”
윤희의 머리 속에 섬광이 비껴갔다.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하지 못하느니라. 선한 자는 변론하지 않고 변론하는 자는 선하지 않느니라. 아는 척 하는 자는 박식하지 못하고 박식한 자는 아는 척 하지 않느니라. 성인은 남김이 없이 다른 사람을 돕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으로써 스스로 가지니라. 자연의 도는 만물에 이로우면서 서로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고 인간의 도는 일을 하면서 서로 다투지 않는 것이니라.”
갑자기 큰 깨달음을 얻은 윤희가 입을 열었다.
“스승님의 지혜는 참으로 대단하시고 저서도 너무 심오하시어 제가 평생 배워도 다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관령직을 내놓고 스승님을 따라 하늘 끝까지라도 가겠습니다.”
노자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윤희는 자신의 저서인 <윤관자>와 노자가 쓴 <도덕경>을 자신의 제자에게 남기고 노자와 함께 표연히 사라졌다. 전한데 의하면 중국철학의 비조 노자와 그의 제자 윤희는 백 세가 넘도록 선풍도골(仙風道骨)을 자랑하며 신선 부럽지 않게 살았다고 한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도경>은 우주의 근본과 천지변화의 오묘함, 음양변화의 오묘함을 설명하고 <덕경>은 사람은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알아야 한다는 등 사람 사는 세상의 처세방법을 설명한다. 그러니 <도덕경>은 우주와 인생의 두 명제를 탐구한 철학저서이다. 노자의 철학은 선진(先秦)시기 도가의 근본이었고 중국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중국인들의 성격형성에도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철학자 노자는 이제 없지만 노자가 남긴 <도덕경>은 오늘날까지 전해지며 온 세상의 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