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팔려서 어떻게?
대학산행으로 대모산을 가는 날이다.
월삭기도가 있고 성찬담당이라 내 경우 새벽 네 시에 일어나야한다. 밤 열시에 잘 계획을 세웠으나 새벽 한시가 되어야 잠자리에 들었다. 네 시에는 일어나야하는데 하고 생각하다보니 잠이 다 달아나 버렸다.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아 거실로 나오니 두시반이다. 틀렸다 싶어 책을 읽었다. 새벽 네 시가 되어 교회 갔다가 집에 오니 일곱시다. 자리에 누워 잠이 들었다가 여덟시에 일어나 준비해서 아홉시가 안 되어 전철을 타고 일원역으로 출발했다. 한 시간 자고 산을 오르는 셈이다. 낮은 산이니까 별 문제야 없겠지?
대모산 정상 전망대에는 등산객들로 북적거렸다. 한쪽벤치에 모여 앉았다. 겨울임에도 날씨가 춥지 않고 눈도 없다. 중국 인공강우 때문에 기후가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한반도로 와야 할 수증기가 중국에서 미리 떨어지거나 중국으로 넓게 퍼져서 한반도로는 오지 못한단다. 정말 그렇다면 미세먼지보다 더 심각해지는 것은 아닐지? 이래저래 중국은 참으로 골칫거리다. 모두들 배낭에서 간식을 꺼내놓으니 먹음직스럽다. 동대가 고급스런 보온병에 어묵을 끓여왔다.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의중이가 준비해온 팩소주가 금방 동이 났다. 영빈이가 가져온 조니워커 블랙은 목구멍에서부터 뜨거웠는데 뱃속까지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운암이 곧잘 마신다. 날씨가 추웠으면 더 운치가 있었을 터인데 그래도 미세먼지가 없어서 다행이다. 운암이 주말마다 손자를 데리고 백운대에 오르는 속내를 이야기 했다. 큰아이가 둘째보다 약해 보여 안타깝게 생각되던 차에 아이를 좀 강하게 키워야겠다고 생각하고 백운대에 데리고 다녔는데 지금은 아주 잘 올라간단다. 아이를 보고 “지금은 할아버지가 너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지만 10년 후에는 네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백운대에 올라가주어라” 했더니 손자가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한다. 참으로 푸근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다.
이런저런 이야기에 이어 호이야기가 나오자 동대가 친구들을 위해 지어준 호의 내력을 이야기 했다.
평해 황씨 황의중에게는 평해의 드넓은 바다와 고매한 성격을 감안해 ‘海峰’으로 지었다. 최종순은 평소 말이 없지만 입을 열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의미 있는 말을 한다. 구름처럼 자유로운 의지에 바위처럼 엄중한 무게를 생각해 ‘雲巖’으로 작호 했다 한다. 재담의 달인 양평거사 홍인기는 유모어와 재담이 호수처럼 가득하여 항상 우리를 즐겁게 해주십사고 ‘潭源’으로 작호 해 주었다. 동대선생은 내 호도 지어주었다. 작호의 출처가 되는 한시를 수려한 예서체로 써왔었다. ‘山中好友 林間鳥 世外淸音 石上泉’, 거기서 따온 ‘石泉’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산중에 좋은 벗은 숲속의 새요 세상에 제일 아름답고 맑은 소리는 바위 위를 흐르는 물이어라’ 어릴 때 어머니가 늘 ‘너는 자라서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 세상을 유익하게 해라’하시던 말씀이 생각나 더욱 마음에 와 닿는 이름이었다. 동대선생은 정태가 맑은 소리를 잘 하는데 바위에 샘솟아 흐르는 물보다 더 맑은 소리가 어디 있겠냐며 작호의 동기를 말해주었다. 東臺선생은 갈수록 엄청난 내공으로 베풀고 나누며 주변을 밝게 해주고 있다. 그 박식함과 패기와 열정, 깨닫고 실천함이 세월이 갈수록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더 좋은 쥐덫 이야기의 실제를 보는 것 같아 흐뭇하다.
나는 동대의 폭넓은 식견도 놀랍지만 친구를 향한 온정이 너무나 푸근하다. 친구들 만나 한잔 먹고 털고 일어나면 그만인 각박한 세상에서 동대선생 같은 저 숭늉같이 구수하고 따뜻한 정감을 감히 다른 어디서 찾아볼 수 있으랴.
우리는 대모산을 내려와 석천이 재건축으로 분양받았다는 개포동 디에이치 아너힐즈를 둘러본 후 버스를 타고 수서역 전주집으로 갔다. 전주집에 갔을 때는 점심손님들이 끝난 시간이라 식당이 비교적 여유로운 탓도 있었겠지만 해봉의 인기에 힘입어 엄청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 편하고 친절한 식당문화가 정착되는 듯했다가 조선족 종업원들로 인해 많이 퇴색되어지더니 촛불정부 들어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일반음식점의 분위기는 더욱 망가지기에 이른다. 이제 서민들이 식당에서 대우받으며 기분 좋은 식사를 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삶의 질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제대로 기분 좋게 식사를 하려면 비싼 음식점을 간다거나 해봉처럼 좋은 음식점에 터를 닦아놓아야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힘드는 일이냐?
분위기가 좋아서 그런지 운암이 계속 소주를 마신다. 식당을 나와 노래방으로 갔다.
술 두 잔만 먹으면 어김없이 꼬박꼬박 졸던 운암이 산에서 식당에서 그렇게 술을 잘 먹더니 노래방에 가서는 노래가 나오기 무섭게 한손으로는 마이크를 잡고 한손으로는 맥주한잔을 들이킨다. 노래를 부른 후 나에게 다가와 “술을 아무리 먹어도 취하지가 않아요” 하고 말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모두들 지치고 있는데 운암만은 세월을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해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라 보여진다. 해봉이 노래 부를 때는 화면에 뒷 소절이 시작되는데 아직 앞 소절을 부르기가 일쑤다. 그렇거나 말거나 점수는 만점 대다. 95점이 나오면 고개를 갸웃하며 기계가 이상하다고 한다. 그럴 때 마다 좌중은 열기가 치솟곤 한다.
노래방이 끝났는데 맥주 두캔이 남았다. 동대 배낭에 넣어주었다. “어부인과 나누어 마시며 ‘당신을 만난 것을 하늘에 감사하노라’ 하고 손잡아주어라” 했더니 “아이고 난 쪽팔려 그런 짓 못해” 했다. 그것이 왜 쪽팔리고 쭈글스런 것일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선비의 성숙된 용기요 멋이어서 부인들에게 큰 감동을 줄 것이다. 그러니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해보시기 바란다. 사실 나는 아직 해볼 엄두를 못 내어 보았다.
2020.1.4. 石泉
대모산 정상에서
개포동 구룡마을
개포동 디에이치 아너힐즈 석가산 앞에서
수서역 전주집에서
첫댓글 저위에 줄그어놓은 부분은 동대선생이 좀 완성해주시오
나는 내일 눈구경하러 북해도 갑니다 갔다와서 수정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