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방앗간 친구
정군수
김제 시장통에서 아버지 대를 이어
육십 년간 떡방앗간을 하는 친구는
떡을 빼서 한 입 베어 물고 쩝쩝 맛을 보면
만경면 쌀인지 진봉면 쌀인지 귀신같이 안다
만경면과 진봉면은 물길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사질토고 하나는 간석지라 맛이 다르단다
그걸 아는 사람은 육십 년간 떡방앗간을 한
자기밖에 없다고 자랑하는 걸 보면
막 빼놓은 가래떡 같이 따끈한 맛이 난다
친구집은 떡 빼는 값이 싸고 맛이 좋다고 소문나서
김제 근동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친구는 큰 고무통에 담긴 떡쌀을 불끈불끈 들어서
떡솥에 붓는다 아직도 힘이 짱짱하다
명절 때면 늙은 아내와 장가 못간 아들과 떡을 빼고
다음날 하루 종일 그 일을 해도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고 인사 대신 그냥 웃는다
떡살로 찍어낸 하얀 절편 같다
친구는 오래 살아서
만경면 쌀과 진봉면 쌀도 구분해 주고
장가 못간 아들 장가보내서 떡방앗간도 물려주고
떡 빼는 값도 올리지 않으면 좋겠다
친구는 옥수수로 만든 막걸리를 마실 때
쌀막걸리를 마시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지금은 딱 한 병이 정량이란다
봄이 오면 떡방앗간 안집 목련꽃나무 아래서
김이 나는 떡 안주로 쌀막걸리를 마셔야겠다
목련꽃도 희고 가래떡도 희고 막걸리도 희고
우리는 희미하게 잊혀져가는 옛이야기를 나누며
젊었을 때 먹었던 술 자랑을 해야겠다
마누라나 손주 자랑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떡방앗간 기계소리가 땅거미에 굴복할 때까지
너 한 병 나 한 병 그러다 목련꽃이 붉어지면
딱 한 병 더 먹자고 해야겠다
* 주제 접근 : 오래된 친구는 맛이 심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