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수다!
특임장관 이재오를 중심으로 정치권에서 한동안 개헌 얘기가 오가더니
삼베바지 방귀 빠져나가듯 어느 순간 개헌론이 자취를 감췄다.
올해 안에 개헌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망하기라도 할듯 떠벌이던 장광설들이 무색하다.
고유가, 일본 지진에 이은 원자력발전소 폭발, 동남권 신공항 등 새로운 이슈에 떠밀려서다.
건망증 심한 백성들은 화재거리만 생기면 잠시 바르르 끓어오르다가 그 순간만 지나가면 그만이다.
“아나운서 하려면 다 줘야 하는데 할 수 있겠나?
숙명여대 이상은 자존심 때문에 안된다카던데.”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의 이 한 마디 망언을 두고도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당장 때려죽일 것처럼 오두방정을 떨었지만,
어느 사이엔가 꿩 구워먹은 자리가 되고 말았다.
제명 운운하던 한나라당이나 국회는 애초부터 1%도 믿지 않았다.
앞으로도 똥 묻은 망나니들이 겨 묻은 놈을 어찌할 수는 없으리라.
철면피 강용석은 비리를 저지른 다른 국害의원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임기를 다 채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결정은 역사에 남을 용단이다.
깊은 고뇌 끝의 결단이리라.
경남권과 경북권의 정치인들을 필두로 반발이 거세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지역발전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공을 내세워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허세에 불과하다.
적자투성이가 뻔히 내다보이는 국제공항이 지역발전에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물론 선거공약을 내걸 때 좀더 신중하고 면밀했어야 했지만,
다른 대통령처럼 정치적인 인기에 영합하여 경제성도 없는 공항을 건설한다면
장차 국가에 더 큰 짐을 지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無腦漢 김대중의 결정으로 지은 무안국제공항이 이를 대변한다.
3천억 원의 세금을 쏟아부은 무안공항에 드나드는 건 하루 이용객 270명과 파리밖에 더 있는가.
더욱 웃기는 일은 울진공항이다.
김대중이 영호남 화합 쇼를 위해 발탁한 울진 출신 김중권 비서실장 몫으로
장난치듯 덜커덕 건설한 공항이니 말이다.
김정일에게 5억 달러의 조공을 바칠 때와 마찬가지로 제 돈 아니니 물 쓰듯 써버린 것이다.
결국 울진공항은 개점휴업 상태로 방치되다가 비행훈련센터라는, 개도 웃을 용도로 전용되었다.
인구 5만의 군 단위마다 공항을 건설하고 유지하려면 얼마나 많은 세금이 낭비되겠는가.
야당과 박근혜 똘마니들의 반대로 무산된 일부 정부부처의 세종시 이전 백지화 용단 때처럼
이명박 대통령은 욕을 먹더라도 국가 장래를 위해 올바른 결정을 한 것이다.
각설하고,
다른 조항은 개정으로 덕을 볼 정치인들 몫이니 관심 없고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아니라
‘대한민국은 노래공화국이다’로 고쳐야 되지 않을까 싶다.
어제치 중앙일보에 보니 전국의 노래방 수가 3만 5684개, 기계는 28만 대란다.
등록이 되어 세금을 또박또박 내는 곳만 집계한 것일 터이니 실제는 훨씬 많으리라.
매일 190여만 명이 노래방을 이용하면서 연간 1조 3000억 원을 지불한단다.
참으로 못 말리는 노래사랑이다.
그런데 최근 5년 동안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를 보니
1위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에서부터 10위 백지영의 「사랑 안 해」까지
단 한 곡도 아는 게 없다.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세대차다.
잘 훈련된 남녀 아이돌 그룹이 우리나라처럼 난립하면서도 동반인기를 누리는 경우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도 없지 않았나 싶다.
TV로 중계되는 시상식 같은 데서 보면 남진·나훈아처럼 라이벌 의식도 심하지 않은 것 같다.
경쟁관계이면서도 서로 어울려 웃고 떠드는 모습이 천생 해맑은 소년소녀들이다.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 이상 단련을 거쳐 데뷔해서 그런지
가창력과 춤 솜씨뿐만 아니라 말도 잘하고 사고방식도 반듯반듯하다.
노래와 안무보다 노출로 인기를 지속하던 선배 아이돌 그룹에 비해 현격한 진보다.
팬 층도 다양하여 10대는 물론 나 같은 60대도 ‘소녀시대’ 하면 꺼뻑 죽는다.
다들 국적도 불분명한 요상한 이름으로 설치는 데 반해
소녀시대는 그룹 이름부터가 예쁜 우리말이니 더욱 정이 간다.
아홉 명의 멤버 가운데 한국계 미국인인 티파니와 제시카를 빼고는
선희 윤아 수영 태연 유리 서현 효연(내가 좋아하는 순서) 등 모두 우리말 이름이다.
지금은, 소녀시대!
TV의 음악 프로그램도 잘만 기획하면 대박이 난다.
이미 언급한 적이 있는 「남자의 자격」 합창단 얘기는
많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빅 히트를 기록했다.
음악 프로그램이 그처럼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치밀한 기획과 박칼린이라고 하는 출중한 인물의 리더십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배다해라는 아이의 다양성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학교는 다르지만 후배 성악인 선우와 솔로 테스트를 받으면서 보여준 강인한 내공,
합창 경연을 마친 뒤 대기실로 돌아와 오열하는 선우를 안고 함께 눈물 흘리며 등을 토닥여주던 포용력,
빼어난 미모에 천부적인 목소리로도 모자라 넓고 깊은 심성까지 갖춘 아이다.
딱 내 며느리 깜인데 내가 그 아이의 시아버지 깜이 못 되어 유감이다.
요즘도 이곳저곳 케이블 TV에서 이따금 그 프로그램이 재방송되곤 하는데,
볼 때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빠져들곤 한다.
「놀러 와」의 세시봉 스토리도 상종가를 쳤다.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온다.
그들의 히트곡을 들으며 함께 늙어온 우리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10대, 20대들도 그 프로그램에 열광했다니 새삼 주옥같은 그들의 노래가 고맙고 그립다.
어느 프로그램에서나 마찬가지지만, 유재석은 시종일관 진행에 찬물을 끼얹곤 했다.
노래가 끝날 때마다 분위기에 맞지 않게 혼자서 ‘와~’ 하며 고성을 내지르는가 하면
말끝마다 ‘에, 저기, 우리 조영남 씨는’ 운운하면서 판을 깼다.
저런 수준 이하의 진행자가 어찌 오래도록 인기를 누리는지 인간사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그나마 김원희가 조심스럽게 연배들을 배려하는 멘트를 하면서 근근이 어색해진 분위기를 되살렸다.
센스 있는 진행자다.
이후 이장희가 동참한 프로그램까지 알뜰히 챙겨보면서 향수를 즐겼다.
특히 송창식의 모든 노래는 내 척박한 인생을 적셔주는 정화수다.
그와 한시대를 살아가도록 점지해주신 삼신할머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핸드폰은 물론 집전화조차 없이 사는 괴짜 중의 괴짜 송창식,
그나마 저작권료로 해마다 1억 남짓 들어와 생계 걱정은 않고 산다니 다행이다.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1875~1937)이
「볼레로」 한 곡으로만 死後 6천만 달러가 넘는 저작권료를 벌어들인 데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TV 음악 프로그램들이 한창 잘 나가던 참에, 「나는 가수다」가 대형 사고를 쳤다.
「PD수첩」으로 광우병을 조작하여 이명박 정권의 개혁시동을 좌절시킨 MBC다운 짓이다.
음악 프로그램으로서 기획은 신선했다.
김건모 이소라 윤도현 박정현 백지영 김범수 정엽,
한자리에 불러 모으기도 어려운 각 장르의 최고 실력자들이다.
나 같은 대중가요 문외한도 가수 하나하나와 그들의 노래는 다 좋아할 정도니 말해 무엇하랴.
그들에게 서바이벌을 시도한 것 자체가
간이 배 밖에 나오지 않은 PD라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아이디어였다.
이경규를 쥐락펴락하던, 서울대 출신 김영희 PD나 되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당초 시청자들에 대한 약속이나 500명 평가단의 견해보다는
김건모라는 이름 앞에 지금까지 최고 PD로 군림하던 김영희의 성가가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졌다.
그 신선한 역작을,
재도전을 통해 막내 정엽을 탈락시키는,
결론이 뻔한 3류 드라마로 전락시킨 것이다.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5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평가단은 왜 동원했는가?
그들은 가수의 경력이나 앨범 판매량보다는
얼마나 성실하게 준비했고 무대에 진지하게 임했는가에 초점을 맞춰 평가했다.
대중음악 수요자로서 전문 음악가들보다 더 공정한 잣대였다.
그래서 전국적인 호응을 얻었다.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부른 뒤 입에 립스틱을 칠하는 奇行으로 공감을 이끌어낼 자리가 아니었다.
김건모는 사전 준비가 부족했던 듯 노래도 가장 시원찮았다.
재도전을 택한 김건모는 결국 두 번 죽은 셈이다.
PD를 교체하여 새로운 포맷으로 명맥을 잇겠다지만, 글쎄…
어쨌거나 서바이벌이라는 모험에 동의한 일곱 가수의 용단에는 박수를 보낸다.
「내가 진짜 가수다」
「나는 가수다」가 용두사미로 끝나는 해프닝을 지켜본 뒤 문득 떠오른 제목이다.
출연자는 이미자 패티김 남진 나훈아 조영남 송창식 조용필.
이들 중 누구라도 영어권에서 태어났더라면 엘비스 프레슬리나 카펜터스를 능가하는 명성을 누렸으리라.
한 무대에 세우기도 어려우려니와 서바이벌이란 얘기는 입도 뻥긋 못할 전설의 가수들,
그러나 이들을 한 무대에 올려 서바이벌을 관철시킬 수 있는 인물이 딱 한 사람 있다.
TBC와 KBS를 거쳐 SBS에서 정년퇴직한 예능계의 대부 이남기다.
그는 노름빚에 쫓겨 일본에 도피 중 간암 말기로 冥府에 이름을 올린 길옥윤을 초청하여
‘길옥윤 쇼’로 장엄한 이별의식을 치러줬다.
젊은 시절부터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음악천재 길옥윤은
실생활에서는 죽는 날까지 철들지 않은 어린아이였다.
주색잡기와 외박을 밥 먹듯 했고, 이에 패티김이 이혼통보를 했지만 자극이 되지는 못했다.
“선생님, 왜 시시하게 아프고 그러세요?”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패티김은 길옥윤이 작사, 작곡한 「이별」을 부르는 도중
間奏 부분에서 웃는 얼굴로 농담까지 던졌다.
고별무대가 끝난 뒤 길옥윤이 휠체어에 실린 채 구급차에 오를 때도 미소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곤 대기실로 들어가 문을 잠근 채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예능국장 이남기가 어렵사리 문을 열고 들어가자
패티김은 벌겋게 충혈된 눈을 감추기 위해 끝내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사랑했던 사라~암~을 잊을 수는 없~을거야.’
길옥윤은 그길로 일본으로 돌아간 뒤 1주일 만에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SBS 10년사」를 집필하면서 이남기 본부장을 인터뷰할 때
나는 그 얘기에 진한 감동을 받고 따로 박스 기사를 만들어 실어주었다.
인터뷰 도중 패티김이 문을 걸어잠근 채 길고 서럽게 울더라는 대목에서
우리는 동작을 멈추고 서로를 외면한 채 한동안 천정을 올려다봐야 했다.
누가 그를 부추겨 「내가 진짜 가수다」를 한 번 만들어봤으면…
남성원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