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6일 감사주일예배 설교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감사드릴 수 있을까?
일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절기인 추수감사절에 “감사”를 주제로 설교하는 일이 힘들다고들 합니다. 절기 설교는 반복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지요. 대림절, 성탄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추수 감사절 뿐만 아니라, 삼일절과 광복절에도 절기설교를 해야 합니다. 신년주일, 어린이 주일, 어버이 주일, 종교개혁기념주일 등등까지 하면 절기 설교는 엄청나게 부담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한 20년 동안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새로운 것이 나올게 있을까요. 더구나 교인들 가운데는 벌써 50년 이상 절기설교를 다양한 목사님들로부터 들은 경험이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렇게 많은 절기들 가운데 오늘 우리는 추수 감사절을 맞았습니다. 제 경우에도 이렇게 저렇게 다 합치면 감사주일 설교를 한 30번 정도는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절기는 몰라도 “감사주일” 설교만큼은 절대로 설교할 것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감사주일 설교에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나에게 우리에게 더 이상 감사드릴게 없다는 말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또 반대로 교우들의 입장에서는 감사절 설교를 50번 넘게 듣고 살았다고 해도, 감사주일의 설교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감사정신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 목요일 새벽기도회 본문이 고린도전서 15장 54-58절이었습니다. 김소리 목사님의 묵상말씀을 눈감고 들으면서 57절 “우리에게 승리는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를 드립니다.”라는 말씀에 나오는 <감사>란 <은혜>를 뜻한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밴드에 오늘의 묵상말씀이 올라 온 후에, 장휘국 장로님께서 그 기도문에 이렇게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승리란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승리하게 하셔서 감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든 일에 감사를 드리는 것이 바로 승리라는 말에 또 한 번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목사들도 교우들의 고백 속에서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걷는 신앙의 여정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서로에게 배우면서 함께 성숙해 나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그 끝에는 하나님께서 두 팔을 벌리고 서서 우리를 맞이하실 것입니다.
오늘 제가 드릴 설교말씀은 본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이하인데, 한 눈에 보아도 감사주일에 자주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개역개정 성경으로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사실 새벽기도 때 고린도전서 15장을 묵상하면서 제 마음게 갑자기 든 생각이 “감사는 그릇이고 은혜는 내용”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은혜가 담긴 그릇을 말입니다. 누가 내게 은혜를 베풀어 그릇에 담아주는데, 그릇은 남겨 둔 채 은혜만 쏙 빼서 집어 간다면 어떻겠습니까? 이웃집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자고 그릇에 정갈하게 담아왔는데, 어차피 돌려줄 그릇이니 음식만 쏙 빼서 받고 빈 그릇을 그냥 가져가라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만일 그렇게 한다면, 우리에게 은혜를 그릇에 담아 가지고 주신 하나님은 이제 빈 그릇만 가지고 가겠지요. 그 빈 그릇은 이름뿐인 감사입니다. 우리는 그릇에 담긴 선물을 받아들고 나서, 그 빈 그릇을 돌려드릴 때에는 거기에 무언가 답례를 담아서 드리지 않습니까? 그때 우리의 진정한 감사도 함께 담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은혜를 제대로 받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받은 것이 확실한 은혜”에 대해서만 감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한 일이 기도 중에 해결이 되었을 때가 바로 그런 때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런 경험 많으시지요? 아니 적어도 한 번은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이 얼마나 선택적인 감사드림입니까?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건 정말 은혜라고 판단되면 그때만 감사를 드리게 되니까 말입니다.
다른 교회 설교하러 갔다가 자주 듣는 기도 중에 “알고도 지은 죄 모르고도 지은 죄 모두 용서해주십시오.”라는 말 표현에 저는 항상 놀라곤 합니다. 물론 그런 기도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잘 압니다. 사람이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실수하거나 잘못을 할 수도 있으니, 그런 것까지 용서를 구한다는 의미로 사용하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자신의 말과 행동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으로 저는 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도 예민한 마음이 있어야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가 정말 은혜라고 느낀 것만 은혜가 아니라, 내가 모르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감싸고 있다는 것 이것을 점점 더 많이 느끼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느끼는 방법이 바로 <감사>입니다. 그것도 “범사에 감사”입니다. 오늘 데살로니가 전세에 나오는 말씀 중 핵심 단어가 세 가지인데, 첫째는 항상(always), 둘째는 끊임없이(unceasingly), 셋째는 모든 일(everything)입니다. 세 단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쭉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중단이 없다는 말입니다.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일은 했다 안 했다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인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만 기도하고, 내 마음에 드는 결과를 얻었을 때만 골라서 선택적으로 감사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빌립보 4장 12절에 나오는 바울의 말입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공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바울이 자신은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배웠다는 말은 알게 되었다는 의미로서 깊이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깨달은 진리는 “스스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감사절을 주제로 하여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먹음직한 칠면조 요리 그림을 그렸습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하는 즐거운 그림도 그렸습니다. 그들은 감사절에는 칠면조 고기를 먹는 것이 일상적이니까요. 그런데 기대와는 다르게 동네에서 제일 가난한 집 아이 하나가 “손”을 그렸습니다. 선생님이 그 이유를 물으니까 그 손은 선생님 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는 자기를 불쌍히 여겨서 만날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고 안아주던 선생님의 손에 감사하고 픈 마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언제 쯤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설문에 60퍼센트 이상이 “평생 불가능”이라고 답했습니다. 언젠가 언급 드렸던 <부자학회>에서 말하는 부자의 정의는 “더 이상 돈을 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부자의 정의인데, 더 많이 더 많이 벌어야 부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생 부자가 될 수 없다고 답한 것입니다. 하지만 부자학회가 말하는 부자의 정의대로라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스스로 만족”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이미 부자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발견했는데, 부자학회 말고 <행복한 부자학회>라는 것도 생겼습니다. 학술대회 포스터를 보니, 그리스도인들이 만든 학회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부자가 돼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해서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살면서 중단 없이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자신이 그렇게 살았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살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우린 우리 인생은 항상 기쁠 수만은 없고, 일도 해야지 기도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더구나 내게는 그렇게 크게 감사할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데살로니가전서의 말씀은 그 생각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것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라는 하나님의 뜻인데,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는 뜻이라는 말입니다. 무슨 의미인가 고민해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그리스도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개인의 일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인 교회의 일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습니다. 교회의 모임은 기쁨이 되어야하고, 항상 기도가 토대가 되어야 하며, 동시에 감사가 넘치는 모임이 되어야 하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교회 다니면서 우울할 수 없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고, 불평하며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끊임없이 하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를 항상 유지하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그리스도를 통한 전화선이 연결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은 그 연결을 통하여 우리의 고통을 함께 겪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그 어려움과 고통을 당장 없이 해주셔서가 아니라, 나의 고통과 더불어 계신다는 확신만 들어도 우리는 버티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드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비록 힘들어도 우리는 기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감사주일 예배는 자신의 일 년을 뒤돌아보는 시간입니다. 2025년 한 해의 삶은 어떠하였습니까? 원망이 아닌 감사였습니까? 나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함께 하시는 주님을 보았습니까? 정말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과 나를 끊임없이 항상 연결시켜서 절망하는 나를 일으키며 우리를 일깨워 주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는 삶의 스승이고, 그분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줍니다. 그 믿음의 길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은 우리를 언제나 승리의 길로 이끌어줍니다. 싸워서 이기는 것만이 승리가 아니라, 견디어 내는 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우리가 얻게 되는 승리는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한 승리”입니다. 나 혼자의 싸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싸우는 것이고,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고통과 고난이던, 민족의 고난이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세계의 고난이든 그 고난을 이겨내는 승리는 모두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승리이고, 우리는 그 속에서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드리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감사의 예물입니다.
평화목 교우 여러분, 지금 그릇에 은혜를 담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는 하나님께 그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기쁨을 돌려드리면 좋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덕분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기쁨을 잃지 않고 살게 하시니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입니다. 오늘 함께 나누는 성만찬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몸과 피를 받을 때에,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리는 마음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025년 11월 16일
홍지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