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9.27.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창 30:37~43
*제목; 창세기 읽기(34) 죄된 본성을 극복하라!
1. 공평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신다(욥 1:8). 그러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한다.
욥은 이 사실은 너무도 잘 알았기에 “온전하고 정직하고, 악에서 떠난 삶”을 살았다.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이다(욥 1:1).
그리고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가져가실 자도 여호와”(욥 1:21)시라는 것 즉, 하나님이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욥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욕심(내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함)을 이기고 믿음을 지키며 살 수 있었다.
이런 하나님을 우리는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우리를 너무나 잘 아셔서 각 사람의 필요한 것대로 채우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평이다.
그러나 우리는 공평을 우리 식대로 이해한다. 모두가 다 똑같은 받아야 공평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평이 아니다. 하나님의 공평은 모두가 다 같은 것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에게 꼭 필요한대로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에게 필요하다면 반드시 주셨을 것이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포도원의 일꾼’ 이야기가 나온다.
아침 일찍, 그리고 3시, 6시, 9시, 그리고 해질녘(11시)에 데리고 온 모두에게 ‘한 데나리온’을 준다. 우리의 공평대로 이해하면 맞지 않다. 마칠 때 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으면, 아침 일찍 나온 사람들은 최소한 서너 배는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 맞는 것을 주신다. ‘한 데나리온’ 즉, 일용할 양식을 모두에게 주신 것이다. 이것은 천국은 우리의 수고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가는 것임을 알리신 비유이지만,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오늘 레아와 라헬은 서로 경쟁한다.
원래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여 그를 위해 14년을 하루 같이 일한다. 그러나 라헬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그 사이 레아는 자식을 네 명이나 낳게 된다. 라헬에게는 남편의 사랑이, 레아에게는 자식의 사랑이 허락된다.
이후 경쟁하는 이들은 자신의 여종들까지 가세하여 출산경쟁을 한다. 그래서 야곱의 자녀가 12명이나 된다.
결국 하나님께서 라헬에게도 자식 ‘요셉’을 주신다. 각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공평이시다.
하나님의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신다. 그래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평이다. 욕심부리지 마라. 남에게 있는 것이 없다고 속상해하지 마라.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것이다.
2. 라반과 야곱
두 딸을 야곱에게 주고, 야곱을 종살이 시킨 라반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서 복을 주시는 것을 깨닫게 된다. ‘27절’을 보자.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창 30:27)
하나님께서 벧엘동산에서 서원한 야곱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베필과 자녀들을 풍성히 주셨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그의 일에도 복을 주셔서, 라반까지 부요한 자가 되게 하셨다.
믿음이란 이런 것이다. 내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세상이 이를 목도하고, 나를 통해서 세상도 그 복을 누리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만일 믿음을 가지고도 내가 그리고 나화 함께 하는 곳이 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 믿음의 진위가 의심되기에 마땅하다.
욥처럼 참된 믿음(하나님 경외+하나님 주권 고백)으로 주의 풍성한 복을 누리는 자가 되시길 기도한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야곱’을 삼촌이자 장인이 라반은 붙잡는다. 이제부터는 “품삯”을 주겠다는 것이다. ‘28절’이다.
“또 이르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창 30:28)
그 동안 공짜로 부려먹은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야곱의 대답이 이상하다. ‘32절’이다.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창 30:32)
흠이 있는 양과 염소를 품삯으로 받겠다는 것이다. 그 속샘이 ‘37~43절’에 여실히 드러난다.
“37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38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39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40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을 라반의 양과 서로 마주보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41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 떼의 눈 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이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42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43.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 (창 30:37~43)
속이는 자, 야곱의 본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본성은 바꿀 수 없다. 우리는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처럼(잠 26:11), 돼지가 씻고 나서 다시 더러운 우리에 눕는 것처럼(벧후 2:22) 다시 본성대로 돌아간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잠 26:11)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벧후 2:22)
그러므로 늘 “기도하고 깨어 있지”(골 4:2) 않으면, 하나님을 떠나는 삶이 되게 마련이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골 4:2)
믿음과 순종으로 복을 누리고, 기도로 이를 완성해야 한다. 아니면 우리는 처음으로 다시 돌아간다. 우리의 죄된 본성은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기억하라!
첫댓글 이 설교는 공평하신 하나님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며 신앙인의 올바른 태도를 제시합니다. 하나님이 정의하시는 공평은 모두에게 똑같은 양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형편과 필요에 따라 최선의 것으로 채워주시는 세심한 돌보심을 의미합니다. 설교자는 성경 인물인 욥과 야곱, 레아와 라헬의 사례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특히 야곱이 인간적인 술수와 탐욕으로 회귀했던 실수를 지적하며, 성도들이 과거의 죄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매일의 기도를 통해 영적인 파수꾼의 역할을 다해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