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27:1,2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않으려면.... 24.11.17 주일낮
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않으려면’입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애쓴 것이 언제나 헛되지 않고 좋은 결과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씨를 뿌렸다면 열매를 맺어야 하고 일을 했다면 일한 만큼 임금을 받아야 하고 투자를 했다면 손해 보지 않고 수입이 있어야 하고 공부한 만큼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하고 공들인 만큼 결과가 따라야 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삶이 다 그렇습니까. 일하고도 임금을 못 받고, 투자했더니 다 날리고 씨를 뿌렸는데 싹도 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바다에 그물을 쳐놓고 다음날 나가보니 고기는커녕 그물이 파도에 휩쓸려 가버리고 만선이라고 좋아했는데 배가 전복되어 선원들이 죽고 애써 잡아왔더니 값이 폭락해버리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우리 인생이 힘과 노력으로만 되지 않음을 살아갈수록 느끼실 것입니다. 세상살이가 참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헛되다, 헛 것이다'는 표현이 세 번 나옵니다. ‘수고도 헛되며 깨어있음도 헛되며 먹는 것도 헛되도다.’ 라고 합니다. ‘헛되다’는 ‘솨웨’라는 단어인데 허무, 공허, 허사입니다. ‘수고’는 ‘아멜루’인데 ‘고역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고역해도 허사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자주 한 사람이 솔로몬 왕입니다. 오늘 시편도 솔로몬이 쓴 것입니다. 전도서 1장에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다 헛되도다”라고 했는데 마지막 12장 8절에서도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로 끝납니다. 전도서에만 29번이나 헛되다고 고백합니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고 수고의 떡을 먹는 것도 헛되다는 말은 내가 아무리 잠을 안 자고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도 하나님이 은혜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만 골라 먹고 좋은 제품만 써도 하나님이 은혜 주시지 않으면 보신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전 6:2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아무리 수고해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누립니다.
누릴 수 있는 것이 정말 복입니다. 그러나 누리라고 해서 죄를 누려서는 안 됩니다. 지난 주 pd 수첩에 보니까 다락방 교회 목사들이 룸살롱 가서 2차, 3차 가자고 합니다. 성폭행을 하고도 다음날 찾아가서 내가 이렇게 좋은데 내 안에 성령님은 얼마나 기뻐하시겠느냐, 그러니 괜찮다,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합니다. 영적인 분별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양심의 마비란 이런 경우입니다. 이단들의 특징에는 꼭 성적 타락이 있습니다. 가장 바르고 건전해야 할 윤리도덕이 무너집니다. 죄악을 범하면서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누리는 것이 아니라 범죄일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바른 복을 받고 바르게 지키고 바르게 누리기를 소원합니다! 어제 다니엘기도회 강사로 나온 권오중 배우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주인이 바뀐 후 앞으로는 정말 바르게 살겠다고 다짐하고 기도했더니 십 년 동안 거의 무명이었는데 광고 섭외가 들어왔습니다. ‘바른 치킨’이었습니다. 그것도 맥주 배달해주는 거라 안 하겠다고 포기했더니 회사에서 콜라로 바꿔주겠다고 하고 광고료를 더 올려주었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빛과 소금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세상을 밝히는 작은 불꽃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이번에는 성탄 츄리 점등식 사회자로 선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살면 하나님이 은혜 주시고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인 되어 지켜주지 않으면 그가 쌓고 짓는 것도, 애써 지키는 것도, 수고하는 모든 것이 결국 헛될 뿐입니다. 힘들여 지은 집에 타인이 들어가 살게 되고 애써 모든 것도 타인이 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되면 우리가 수고하고 노력한 것이 결코 무용지물이 되지 않습니다. 물거품처럼 사라지거나 강풍에도 떠내려가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잘 되려면 더 많이 수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당연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능력과 지혜만으로 수고하여 이 세상을 살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세운 계획대로, 우리의 뜻한 바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시각각 상황이 바뀌고 시세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수능일에도 어김없이 고사장을 잘못 찾아간 학생, 신분증을 집에 두고 온 학생, 수험표를 안 가지고 온 학생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시험 당일 늦잠자서 시험을 못 치거나 지각해서 마음을 못 잡고 망치는 경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도 그에 따른 결과를 얻도록 하나님이 도우시고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전3:6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심고 물을 주고 수고했어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하나님이 지키시지 않으시면 자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고와 함께 그 소산의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의 수고도 헛되고 마는 것입니다.
1절 하반절에서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깨어 있음이 헛되다”라고 했습니다. 국가의 흥망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한 파숫군이 되셔서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셔야 견고히 설 수 있습니다. 시33:16에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나갈 때는 여리고성도 무너뜨렸고 삼백 용사로 미디안의 대군도 이겼지만 자기들의 강함을 믿고 나갔을 때는 작은 아이성 전투에서도 패하고 말았습니다. 자기 힘만 믿고 나간다면 누구라도 골리앗처럼 쓰러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겔2:6이하에 보시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너희가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 거주할지라도 두려워 마라"고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요.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저들을 버리시면 어떠합니까. 겔15:7에서 “너희가 불을 피해 나와도 불이 따라와서 너를 사를 것이라”라고 경고합니다. 불을 피해서 도망가도 그 불이 따라와서 사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애굽으로 피난 가 봤자 칼이 애굽까지 따라갈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렘42:16).
요아스왕때 여호야다 제사장의 아들 스가랴를 성전에서 돌로 죽이는 장면이 나옵니다(대하24:24). 스가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니 저들이 회개해야 하는데 듣기 싫다고 도리어 선지자를 돌로 죽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아람군대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치게 하는데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니...”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넘겨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넘겨버리면 끝난 것입니다. 또 렘37:10입니다. “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 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 적군이 패하여 부상자만 남았으니 다 이기고 끝난 줄 알았는데 적군의 부상자만으로도 성에 불을 질러 태워버리도록 하겠다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전쟁의 승패가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하다고 말합니다. 군대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에 달렸다고 골리앗을 향해 나아가면서 선포한 것입니다. 삼상17:45~47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야곱을 보십시오. 20년 동안 외삼촌 집에 양떼를 돌보았지만 그의 것이라고는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이후에 외삼촌의 사위가 되었어도 그의 몫을 따로 떼어주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야곱이 꾀를 써서 그의 몫을 챙기고 결국 외삼촌 집에서 야반도주하여 나왔지만 형 에서가 사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나와서 그를 죽이고 양떼를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야곱은 얍복강을 건너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창32:26이 그가 드린 기도입니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다고, 나를 축복하기 전에는 결코 보내드리지 않겠다며 동이 틀 때까지 천사를 붙잡았습니다.
야곱이 왜 이렇게 했을까요?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외삼촌 집에서 자기 몫이라고 겨우 챙겨 도망쳐 나왔지만 이것이 내 것인 것 같아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지켜주시지 않으시면 아직도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은혜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님을 야곱은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지켜주셔야 진정한 내 것이 됨을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도 아무리 수고하고 애써도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은혜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길 축복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구하시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본문 2절 뒷부분을 보시면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잠은 평안과 쉼을 의미하는 말로 수고에 대한 보상, 결과를 얻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지 않으면 온갖 수고와 노력을 다하여도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되지만, 하나님께 순종하여 사랑 받는 자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지키시므로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리게 된다, 전전긍긍하지 않고 단 잠을 자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믿음을 지키고 믿음으로 사는 것,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의지하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른 1등보다 정직하고 진실한 2등이 더 잘 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눈에는 때때로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그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손해 보더라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어찌 재물과, 명예와, 권세와 안락과 바꾸시겠습니까.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므로 노력하고 수고한 것에 대한 결과를 얻게 되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평안과 안식을 주시는 분입니다. 잠잘 시간이 없어서 못 자는 게 아니라 염려와 근심에 둘러싸이면 잠이 오질 않습니다. 그런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서 거둬가실 때 평안한 잠도 자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않으려면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도우시는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