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공사에서 지정해준 코스 이외의 답사지로
나는 예산 성당을 찾았다.
첫눈에 봤을때,아~어디서 많이 본 건물이다~~
명동성당의 축소판 같기도 하고,
아니,풍수원 성당을 보는것 같기도 하고.....
오래된 지기를 만난듯 반갑기만 하다.
빨간
벽돌을 보면 우선은 친근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오래되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은근한 아름다움...
대전교구 소속본당. 주보는 예수성심.
예산본당은 합덕(合德)본당 산하의 예산읍 간량리(澗良里) 소재의 공소였는데,
1928년 합덕본당에서 분할, 본당으로 창설되었다.
초대 주임으로 합덕본당 보좌신부이던 구천우(具天祐, 요셉) 신부가 부임,
1934년 예산읍 오리동에 현 성당 건물과 사제관이 준공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프랑스인인 5대 리샤르(Robert Richard, 李) 주임신부는 6.25전쟁 때 순교하였으며,
현재 본당주임은 19대 (이상호,세례자 요한) 신부가 맡고 있다.
산하 공소는 11개소이며,
경내에 예수성심시녀회 수녀원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
요즘 성당 입구에는 성모님상이 있는데 이곳은 예수님께서 반겨 주신다.
잠시 성호를 긋고 주일을 지키지 못함의 용서를 빌고,
건강하게 여행을 다닐수 있음에 감사 하며,
80 여년을 이 자리에서 아니 항상 우리들을 지켜 주심에 감사 기도를 드렸다
성당과 함께 살아온 향나무, 그 굵기와 용트림이 오랜 세월의 흔적을 말해 주는듯...
1933년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일제 강점기에 이런 성당이 생기기 까지
얼마나 많은
고충과 사연이 있었을지.......
문틀위마다 벽돌을 아취형으로 두르고,
처마옆까지 예쁘게 모양을 낸것을 보노라니
건물을 지은 그분들의 센스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벽돌로 모양을 낸 아취형의 창과 처마 밑 무늬들......
옛날엔 함석 지붕으로 지은것이 오래되어 낡고 구멍도 나고 하여
작년에 걸쳐 올 2월에 동판으로 지붕 개량 공사를 하였다고 한다.
도 지정 문화재로 등록 되였기에 허가를 받아야 보수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조촐하고 소박한 성당 내부 아취형의 천정,
내부에 세워진 나무 기둥도 옛 그대로라고 한다.
스텐드 그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성당안이 더 아름답기만 하다.
옛날 일제강점기 우리의 선조들은 목숨을 걸고 믿는 신앙이였다.
굳은 의지가 아니면 그 믿음을 지켜 낼 수 없는 순교의 신앙,
많은 선교자들의 피로 이루어낸 오늘날의 교회 역사다.
80 여년전에 이 성당이 세워 졌고,
일본의 양식을 배제한 순수한 서양식으로 지어졌다
열어논 성당 옆문,
가을빛은 완연하고 어린이 놀이터의 한가로움은
이젠 평화로운 시절 이라는것이 고맙기만 하다
"수녀님,
제가 한 오십여년만에 이 성당에 다시 와 보네요...
예산 중학교 다닐때 성당에 다녀 볼까하고 기웃 거려 봤지요...
그땐 저 입구에 프라타나스가 쭈욱 서 있었는데
지금은 안 보여서 이 성당이 아닌가 헷갈렸지요..."
"그럼 지금은 다니시나요?"
"아뇨.....아직 못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나가세요..."하면서 주보를 건내신다.
그리고 이 성당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신다.
성당내부의 목재 기둥과,제단,마루바닥등 옛것 그대로이고.
이 마루바닥은 적송으로 쓸수록 자연 스런 색갈이 나며 아름다워
사찰에서 거금을 줄테니 떼어 팔라고도 했다고.....
이층 성가대 석이다.
길이 들어 더욱 예쁜 색갈이 나는 소나무 기둥들과 난간들을 보니
교회에서 성가대의 일원으로 활동 하던때가 떠 오른다.
저렇게 아담하고 예쁜 곳에 앉아 성가를 부르면.
절로 화음이 맞을것만 같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면 칸타타도 연습하고.....
어여 마음을 가다듬고 믿음 생활 잘 해야겠다.
교회는 앞쪽에 성가대석이 있다.
80 년전의 그 모습 그대로의 제대라고 한다.
그 시대엔 어떤 분이 미사를 집전 하셨을까?
그리고 신도들은 어떤 복장을 하고 있었을까?
수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와서 미사 드렸을텐데
사람들은 세월따라 오고 가고.....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것은 예수님의 사랑.
참으로 많은것을 생각케 하는 제단이다.
성당 입구에 심어져 있던
형아님이 기억 하고 있는 그 가로수..
밑둥만 봐도 나무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겠다.
뿌리 까지 파면 엄청 큰 공사가 되니까
남겨진 밑둥 근처엔 노오란 금잔화를 심어 놓은 센스가 돋보이지만
우람한 나무들을 볼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어쩐지 쓸쓸하다.
이 큰 나무를 수용 하기엔 너무 작은 길이 되어 버린 성당 입구길....
세월의 무게만큼 커버린 나무들의 수난은 어쩔수가 없는것인가?
성당 건물과 함께 도 지정 문화재인 사제관.....
단촐한 건물은 소박한 사제들의 생활을 엿 보는것 같다.
사제관 지붕은 아직도 헐은 함석 지붕이다.
예산 성당에서 한 5분거리에
경찰서앞 사거리에 있는 옛 호서 은행 본점,그러니까 성당보다
한 십여년 먼저 지어진 건물이다
지금은 새마을 금고가 그 건물을 쓰고 있지만 현대의 건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것 같다
1922년에 세워진 호서은행 본점 건물이다.
이 건물은 일본이 한국을 합병하고 금융권마저 장악코자 했던
1913년 5월 21일 예산에 본점을 두고 민간유지들이 설립한
민족금융기관인 호서은행 본점으로 설립되었으며
총독부가 들어선지 3년후의 일로 대구은행과 더불어 민족자본에
의해서 세워진 은행으로 당시 인구 1만도 안되는 예산면 농촌마을에
세워진 금융사상 유례가 없는 건물이다.당시 호서은행은 충남도
서북지역의 교통 및 상업중심지에 위치하여 일본의 금융압박
속에서도 민간자본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2층의 양식건물로 중후하고 비례감각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세부를 간결하게 장식하고 1,2층의 창문을 대흥하게 하나로
연결하여 구성하여 근대적인 감각을 살렸다.
입구부분을 돌출시키고
지붕을 곡선으로 처리하여 정면을 강조하였으며 일본인
건축가 中村興資平이 설계하였는데 규모가 작으면서
당당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골조는 철근콘크리트이나 벽체는 회벽으로 만들었다.<자료참조>
글과 사진/향기야
06-10-15
첫댓글 고향 옆동네에 이렇게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있는걸 몰랐어요...시골 내려가는 길에 꼭 들려봐야겠어요..이래서 답사기가 필요한거랑깨요. ...향기야님, 밥줘님이 발품 판 덕분이야요. ㅎㅎ
조용한 성당에서 무릎끓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싶어집니다.... 너무 구하려는 것이 많은지.... 모두 비울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시라고...늘 평안한 마음으로 일상을 일궈갈 수 있는 소박함을 주시라고... 간절하게...두 손을 모으고 싶습니다... 향기야님~!!! 좋은 곳에 다녀오셨네요... 늘 힘든 여정이겠지만... 건강한 삶을 엮어가시는 형아님과 향기야님이 존경스럽습니다... 늘 건강 기원합니다..
향기야님께서 숙제를 착실히 하시는 바람에 우리는 앉아서 이런 구경을 하게 됩니다. 그저 마음이 편안~~해 지는 그림들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맞아요...제가 장내동 성당에서 세례받고 나서 그 멋지던 건물을 철거되었답니다..저도 못내 아쉬워요. 성당 마당에 큰 은행나무랑 어우러져서 고풍스럽고 멋졌었는데....그래서 요즘은 하우현 성당으로 가끔 간답니다.
우아~~향언니도 여행작가로 움직여도 손색없어여~~~음악좋고...사진좋고....멋집니다.^^*
우아 정진하는 향기야 언니 이래서 난 언니가 좋더라
직접보았을때와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한층 가깝게 느껴집니다. 사진찍으신분의 마음이 듬뿍담았기 때문이겠지요
익숙한 단어에 잠시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은 기억에서 억지로 지워진 사람이 예산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고, 저는 62년에 합덕 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았고, 공소에서 공소예절을 하다가도 가끔씩 20리길을 걸어서 어머님 손잡고 다녔던 합덕 성당..., 얼마전 가보았는데 제가 생각했던것 보다는 훨씬 적어졌고 대신 제마음만 잔뜩 커져 있어서 슬펐던 기억도 새록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