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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칭찬신문에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생각하지 말고 보라. 그러면 이 세상 그 무엇도 아름다운 모습이 된다. 사랑의 눈으로 본다는 건 그런 것이다.”(2023,2.4) 글을 읽는 순간 제 마음에 이 글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목회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눈으로 차별 없이 사람이나 사물 모든 환경을 있는 그대로 보았는가?
그러나 돌아보면 설익은 생각의 판단으로 보고 말했던 모습이 있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얼마나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하고 있습니까?....아니면 포장해서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예수님은 세상을 보실 때 있는 그대로 보셨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실수투성이 제자 베드로, 십자가흔적 보여 달라는 도마, 일곱 귀신 들린 막달라 마리아, 간음한 여인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시기를 공중의 새를 보라(마6:26a) 있는 그대로 보셨습니다.
우리 예수님 마13:16...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매일 있는 그대로 예수님 사랑의 눈으로 보는 영적 레슨을 받으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한 소년이 엄마의 생일을 맞아 내의를 선물하려고 백화점을 찾았습니다. 점원 아가씨가 소년에게 엄마의 옷 치수를 묻자 소년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합니다. 점원 아가씨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엄마의 키가 크시니, 작으시니? 또 뚱뚱한 편이시니, 날씬한 편이시니?”그러자 소년은 활짝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우리 엄마는 완벽해요. 우리 엄마는 굉장한 미인이거든요.” 점원 아가씨는 완벽하다는 말에 가장 날씬한 치수의 내의를 예쁘게 포장하여 소년에게 건네 주었다.
그런데 다음날 소년이 가게 찾아와서는 내의를 바꾸어 갔는데 소년이 바꿔간 치수는 내의로는 가장 큰 치수였습니다. 대강 엄마 몸매를 생각 할 수 있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든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랑으로 세상을 바라보시는 우리 예수님 한 영혼 삭개오를 만나주셨고 지난 주 말씀에는 지식인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만나 뵙고자 밤중에 찾아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예수님 한 영혼 맹인 바디매오를 만나 주신 이야기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 시작도 보면 우리 예수님 여리고에 잠깐 머무시다가 이제 여리고를 나가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웅성웅성합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를 빠져 나가려는데 길에 소경 바디매오가 앉아 있었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볼 수 없지만 듣는 귀가 다른 사람보다 더 열려있기에 주변 사람들 속삭인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는 순간 주변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부르짖으니까 주변 사람들이 맹인 바디매오를 향하여 잠잠하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런데도 바디메오는 더 큰소리로 외치기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이 자기 앞에 계신지 안 계시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겨달라며 반복하여 부르짖었습니다.
그 순간 우리 예수님 바디매오 외치는 소리를 듣고 49절....“예수님 머물러 서서”....우리 예수님 가시는 길을 멈춘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바디메오를 부르라 제자들이 바디메오에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너를 부르신다 하니까 바디메오 보세요 입고 있던 단 벌 겉옷을 벗어 던지고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예수님께 갑니다. 이제 우리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네가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 예수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예수님말씀이 떨어지는 순간 바디메오 눈을 떴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보는 인생역전 드라마가 펼쳐지는 감격을 맛보게 되는 장면이 본문의 줄거리입니다.
바디메오는 예수님 가던 길을 멈추게 할 정도로 예수님을 감동케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 바디메오를 향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바디메오는 인생바닥에서 인생역전이 된 값진 구원의 선물을 받았습니다......우리 예수님 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헸던 바디메오의 어떤 모습을 보셨을까요?
첫째, 바디매오는 기회를 잡을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기회가 있습니다. 아무 때나 은혜 받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보면 은혜 받을 만 할 때요 지금 구원의 날이라고 했어요 은혜와 구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목회하면서 체험한 것 중 하나가 있습니다. 부목사 때 교회 가까이 사는 성도인데 전혀 나오지 않는 새벽기도회를 나왔습니다. 새벽기도회 나오셨네요 인사를 서로 하는데 목사님 몸에 암이 생겨 병원 진단 받기 전에 기도하고자 나왔다는 말을 들을 적이 있습니다. 그뿐 만이 아니지요 성도중에 어떤 분은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한 뒤에야 '아, 좀더 열심히 교회에 나갔더라면 좋았을걸. 이제라도 한번만 더 교회에 나가고 죽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하고 말 한분도 계셔요 그러나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건강할 때, 움직일 수 있을 때, 우리에게 은혜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 때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이런 영적차원에서 바디매오는 마지막 기회를 포착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지금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입니다.
읽은 본문 10장 52절을 마치고 11장에 들어가면.....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때입니다. 이 주 전 삭개오에 대해 말씀을 전 할 때도 말씀을 드렸지만 예수님이 이미 삭개오를 만났고 다음 바디메오를 만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두 사람은 다 예수님 다시 만날 수 없는데 그 기회를 붙잡은 것입니다.
여리고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마지막 길 그순간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붙들었습니다. 얼마나 소중한 일입니까?....... 일생에 딱 한 번이자 마지막인 기회를 잡았으니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을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디메오는 예수님께서 장님을 눈뜨게 하시고, 문둥병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길거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지구촌 모든 사람에게 많은 정보가 끊임없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땅끝 복음을 전혀 들을 수 없는 미전도 종족인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2022년 자료의 의하면 전 세계 인구의 42% 차지하는데 77억 인구 중 30억 이상이 미전도종족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알고 같은 동족이고 가장 가까운 내 동포가 살고 있는 북한 땅에 복음이 열리지 않는 안타까움이 있지 않습니까? 바디매오는 앞을 보지 못하지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대한 소문을 들었고, 들으면서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바디매오는 가능성을 극대화 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있는 것은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없는 것만 달라고 합니다. 현실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바디매오를 보십시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귀와 입이 있습니다. 이것이 보배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없는 것만 생각합니다.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모두 없는 것 투성합니다. 더 심하게 가진 것까지도 그 능력을 부인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잘못입니다. 우리는 없는 것도 많지만 가진 것이 더 많습니다. 할 수 없는 것도 많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습니다.
작년일까요 부산에서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열렸습니다. 우리나라와 브라질선수가 시합을 하는데 특히 서브를 넣을 때는 두 손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선수는 두 손으로 서브를 넣는데 브라질 선수는 한 손으로 라켓 위에 작은 공을 올렸다가 서브합니다, 우리가 볼 때 저게 가능 한가 했더니 브라질 선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는 거예요
우리나라 선수 당연히 응원하지만 자연스럽게 한 손으로 탁구를 치는 브라질 선수에게 마음껏 박수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선수는 요 생후 3개월 만에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혈전증으로 오른팔을 절단한 28살 브라질 국가대표 알렉산드르입니다.
탁구 국가대표가 되고자 피나는 노력을 했는데 국가대표가 됐습니다. 그녀가 말하기를 “한 팔로만 공을 서브하는 것이 너무 어렵지만, 훈련을 통해 누구와도 싸울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탁구 하는 것이 행복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디매오는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귀도 있고, 입도 있고, 손발도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지체를 극대화 한 것입니다.
바디메오의 극대화했던 최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 가시는 길을 멈추게 했던 그의 부르짖음 입니다.
47-48절....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소리지른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크라제인' 이 말의 뜻은 보통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것입니다. 바디메오 예수님께 나아왔는데 체면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다윗의 자손이여"하고 목청껏 예수님을 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란 이 말속에는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야의 별명입니다. '예수여 당신은 메시야입니다' 이 말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했던 베드로의 고백이 여기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복된 부르짖음의 내용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두 번이나 반복된 외침 예수님께서 들으실 때까지, 예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소리지르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바디매오는 겉옷을 버리고 뛰어나왔습니다. 50절.....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가던 길을 멈추신 우리 예수님 제자들에게 바디메오를 부르라고 하시니까 바디메오 보세요 입고 있던 단 벌 겉옷을 벗어 던지고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옛날에는 옷이 참 귀했습니다. 더구나 거지의 겉옷이란 누우면 이불이고, 일어나면 옷이 되니 항상 둘러메고 다녔습니다. 이렇게 중요하고 하나밖에 없는 재산을 내버리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바디매오를 보십시오. 겉옷을 벗어 던지고 다시 입을 생각도,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거지생활은 이제 끝이다 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대로 예수님을 향해 뛰어갈 뿐입니다.
이 모습을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강렬하게 달려가는 행동적인 믿음 예수님은 머물러 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이런 바디메오의 모습을 보신 것입니다.
이런 바디메오를 보신 우리 예수님 51절을 보세요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다시 바디메오를 보십시오 51절 하반절을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바디매오는 예수님께 다른 소원을 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바디메오의 행동이라면 예수님께 '돈 한푼 주세요.' '옷 한 벌주세요'라고 할 수 있는데 전혀 다른 차원의 높은 소원을 구하고 있어요 보기를 원하나이다~~~!!
성도 여러분!! 나의 소원을 무엇입니까? 우상 앞에서 구하는 소원과 예수님 앞에 나와서 구하는 소원이 같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구하는 소원과 하나님께 구하는 소원이 같을 수 없습니다.
섭섭하게 들릴 수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당 앞에서나 부처 앞에서, 세상에서, 교회에서도 똑같이 달라고 하는 게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머니 돈입니다...... 절대로 안 될 일입니다.
오직 예수님께 나와서 구할 수 있는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어야 합니다. 돈이 아닌 사람 됨 구원인데 예수님께 내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바디메오는 소원을 이루고 인생제일 밑바닥에서 인생역전을 이루며 환호하기 보다 그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5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저와 여러분이 주님을 만났다면 이후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 가던 길을 멈추고 바디메오를 향하여 선포하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즉시 세상을 보게 되는 바디메오 제일먼저 예수님을 보았겠지요
그런데 그 순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자기일 보러, 애인 만나러, 사업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눈을 뜨게 해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다른 데로 눈길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복음으로 사는 것이 내 인생의 최고의 축복으로 알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한 영혼 바디메오를 찾으신 예수님 그는 “성경에 기록될만한” 존재감이 없는 사람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는 소경에 불과한 “outsider”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미미한 사람이 예수님의 천국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놀랍게도 바디매오는 예수님께서 치료하신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 이름이 언급된 유일한 인물입니다. 정말 밑바닥 인생이 하늘에 별처럼 빛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보배로운 자녀가 되었습니다.
지난주 월요일 QT를 마무리하면서 우리교회 세례교인 명부를 확인했습니다. 한영혼 한영혼 이름이 작성된 사람 지금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분이 있는가하면 그러나 세상에서 배회하고 있는 성도 잠시 쉬고 있는 성도들이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했습니다.
절대로 세상 사람들에 의해 밟히는 이름이 아닌 바디메오처럼 인생역전의 이름을 되도록 오늘도 주님은 찾고 또 찾고 계심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