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재협상 유례없는 헌정유린, 폐기해야”/야 의원들, 한미FTA 비준 막겠다 선언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 정동영 민주당 의원 등 야당 의원 40명으로 구성된 ‘한미FTA 전면 폐기를 위한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는 15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국회를 우롱하는 한미FTA 재협상을 전면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번 재협상은 미국의 이익, 미국의 시한, 미국의 절차에 의한 굴욕적 재협상”이라며 “미국의 통상법에 맞추기 위해 아직 비준동의도 받지 않은 한미FTA 협정문에 대해 통상장관의 서한 교환 형식으로 수정을 가하는 기이한 꼼수를 썼다”고 비난했다.
날 기자회견에서 강기갑 의원은 한미FTA 반대 방미 결과를 전하기도 했다. 강기갑 의원은 “미 하원 의원들은 한국 국민 90% 이상이 미국이 한미FTA에 큰 혜택을 받고 비준해 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며 “래칫 조항이나 최혜국 대우 등 그 나라의 자주권과 노동권 까지 침해할 수 있는 독소조항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이 얘길 듣고 깜짝 놀라면서 만난 의원 7명이 강하게 문제제기 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고 전했다.
유선호 민주당 의원은 “시국회의는 한미FTA 재협상 졸속 추진을 막아낼 비상한 각오로 하고 있다. 이미 통외통위를 통과한 FTA가 있고 일부 상반된 재협상 안이 있을 때 입법절차로 보면 다시 일괄해서 제출해야한다. 분리처리는 입법 절차상 상상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날 시국회의 소속 의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한미FTA는 명백히 대한민국의 국가주권을 침해하는 조약”이라며 “미국의 절차에 맞추기 위해 한국 국회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편법을 동원하여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이런 식의 재협상이 한미FTA가 발효된 다음에는 국회의 절차를 생략한 채 무한 반복될 수 있다”며 “한미FTA 협정문 제22.2조 제3항 다호는 양국의 통상관료로 구성된 공동위원회가 협정상의 약속(commitment)를 국내절차 없이 수정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번 재협상 합의문서가 바로 협정상의 약속 수정에 해당하기 때문에 앞으로 통상관료들만 합의하면 얼마든지 재협상을 계속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원들은 이어 “이미 한국 정부는 대다수 상품 분야, 농업분야, 서비스와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대폭적인 양보조치에 합의하고도 재협상을 통해 국민과 국회와의 동의 없이 유일한 흑자품목이었던 자동차 분야의 추가양보에 합의했다. 자동차는 대미 무역수지의 96%, 대미수출의 60%를 차지하는 핵심분야”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미국의 통상법 절차에 맞추기 위해 헌정 사상 유례가 없는 편법을 동원한 이번 한미FTA 재협상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하고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즉각 해임하라”고 촉구했다.
비상시국회의는 오는 21일 오후 2시 국회도서관 4층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2011년 국민들과 함께하는 한미FTA 재검증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한미FTA가 무상의료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어”/건강보험보장성 강화, 막대한 규모의 손해배상 각오해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가 최근 복지 논란의 중심에 있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등 ‘무상의료’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 다시 나와 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한미FTA가 시행 된 후에 건강보험의 암에 대한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경우, 미국계 보험회사인 AIG 등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규정은 한미FTA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에 담겨 있어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추진에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이 지난 20일 발표한 ‘한미 FTA의 ‘조작된 경제효과’비판과 본질적 문제점‘이라는 정책 보고서는 이 같은 한미FTA와 무상의료관련 문제점을 조목조목 정리했다.
민주노총은 한미 FTA가 ‘무상의료’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로 △민간의료보험 포괄적 허용과 규제 불가에 따른 공적 건강보험 침해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에 따른 손해배상소송 피소 가능성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의 존재 자체로 인한 정부 규제 위축 효과 △경제자유구역법 및 제주특별자치도법에 따른 영리병원 허용에 한미FTA가 시행되면 부작용을 되돌릴 수 없는 점 등을 들었다.
한미 FTA 금융서비스 협정(협정문 13장)은 민간의료보험상품을 포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 규정을 두고 “이미 지나치게 비대해져 공적 건강보험 영역을 침범하고 있는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공적 규제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어, 건강보험제도의 발전에 큰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우리나라 민영의료보험의 규모는 약 12조원으로 약 30조인 국민건강보험의 30%에 달할 정도로 성장한 상황이라 민간의료보험의 규제가 절실하다. 민간보험 규모가 더 성장할 경우 국민건강보험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미 FTA는 새로운 규제조치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해 공적 건강보험제도의 발전과 보장성 강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 한미 FTA 투자 협정(협정문 11장)에 포함되어 있는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nvestor-State Dispute ISD)는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을 추진할 경우, 보험회사들은 보장성 강화에 따른 민간의료보험 시장 축소를 정부의 ‘간접수용’으로 간주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런 문제제기는 오래전부터 관련 단체들이 제기했으나 정부는 “한미 FTA 협정상 공중보건, 안전, 환경 및 부동산가격안정화와 같은 정당한 공공 복지를 위한 조치는 원칙적으로 간접 수용이 되지 않음을 명시하고 있다”며 공중보건정책은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에 따른 제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 보고서는 “실제로 FTA 협정문에 위와 같이 보건, 사회복지, 환경 등에 관한 정부조치는 간접수용을 구성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더라도, 공공정책을 이유로 한 제소 사례는 다수 발견되고 있다”며 미국 폐기물 처리업체 메탈클라드(Metalclad)사의 사례를 소개했다.
멕시코 내에서 폐기장을 운영하고 미국의 메탈클래드는 폐기장 주변 환경이 급격히 악화되어 멕시코 정부가 폐기장 허가를 취소하자 메탈클래드는 자신들의 투자에 대한 부당한 침해라고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 제도를 발동했다. 결국 메탈클래드사는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승리해 자신의 이익을 보장받았다. 민주노총은 “메탈클래드사 사례를 보면 투자자-국가 제소제도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현재 이상으로 강화하는 것을 대단히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또 한미 FTA가 공중보건 정책을 위협하는 또 다른 경로로 개방 유보의 예외로 인정된 경제자유구역특별법과 제주특별자치도법에 따른 영리병원의 확산과 고착화를 들었다.
한미 FTA는 보건의료서비스를 ‘앞으로도 개방을 유보한다’는 ‘미래 유보’로 인정하고 있지만 경제자유구역특별법과 제주특별자치도법에 의한 관련 특례는 예외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미 FTA가 통과되면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에 영리병원, 약국 혹은 이와 유사한 시설이 설치될 경우 이에 관한 규제 조치는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더라도 되돌릴 수 없게 된다.
민주노총은 “한미 FTA 체제하에서 정부가 건강보험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규모의 손해배상을 각오해야 추진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며 “‘무상의료’는 한미 FTA 체제 하에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