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보여주기 위함과 진실 사이에서
대중의 견해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언론은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답게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언론이 '대중민주주의의 꽃'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것도 이러한 중요성을 단편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누구는 지금의 언론은 무소불위의 특권이라고도 말한다. 그런데 오늘날 언론은 본래의 역할을 제대로 다한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바로 NO라고 말하련다. 제 역할은커녕 대중을 지배, 통제하는 도구로 이용당하거나 적당히 활용되는 불쏘시개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를테면 공적 정보의 원천이 되는 정부부처와 정보기관은 그 자체가 권력기관으로서 자신들의 이익에 해가 되는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다. 반대로 이익이 되거나 부정적인 측면을 가릴 수 있는 자료는 적극적으로 제공해 논의의 중심으로 부각시킨다. 급기야 거대 기업들은 언론사를 통폐합해 독점하고 이들은 정부와 결탁해 자신들의 이권을 수호하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그들에게 광고는 최대의 공략 무기다. 또한 권력 집단은 눈에 보이는 언론 통제나 국민의 반발을 살 만한 가시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언론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이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해 자신들의 노선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언론을 유도하는 측면도 강하다.
저항하는 내부자들을 솎아내는데 혈안이 되었었다는 소식을 나는 자주 들어왔다. 그러기에 올바른 민주주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민 개개인이 고도의 정치적인 관심과 의식을 갖추어야 한다. 대중 매체가 낳는 부작용은 사회 구성원들이 대중 매체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 초래된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일부러 큰 이슈가 생길 때 의도적으로 오락성을 강조 시켜 진실을 호도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는 나약한 사회구성원들의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국가나 언론사가 의도적으로 정보를 왜곡하거나 은폐하여 문제를 은근슬쩍 희석시킨 결과다. 결국 대중이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 문제 해결의 관건일 것인데 지금 우리나라 현실이 어떠하다고 할 것인지 나는 되묻고 싶다.
권력은 언론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검찰까지도 시녀로 전락 시킨 사례가 제법 있다. 비근한 예가 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법무부 장관 당시 세월호 수사에 개입했다는 전ㆍ현직 검찰 관계자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광주지검 수사팀이 해경 123정장에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려 하자 법무부 검찰국장 등을 통해 대검에 혐의를 빼도록 지시했다는 것 등이다. 황 장관은 수사팀의 혐의 적용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당시 변찬우 광주지검장을 불러 크게 질책했다고도 한다. 같은 시기 우병우 청와대 민정비서관도 대검을 통해 변 지검장에게 동일한 지침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 지검장 등 수사 지휘부는 이듬해 정기인사에서 좌천됐다가 결국 옷을 벗은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청와대와 법무부가 해경 정장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을 극구 꺼린 것은 초동 대응과 구조에 실패한 정부의 책임이 부각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의혹 등 청와대의 부실 대응 논란이 커지는 상황을 차단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했을 개연성이 높다.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경 책임을 강조해 보도하도록 압력을 넣은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촛불민심이 얻어낸 수훈으로서 현 정부가 무엇을 해야할지는 자명해진다.
어느 특정 매체를 지적하기는 그렇지만 그 매체는 공영방송 시청율을 따돌리고 제일 공정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는 순전히 시민들이 지켜보고 제대로 선택한 또 다른 민주적 쾌거다. 아무튼 그런 대중 매체 속에 살다보니 섞여 살다보니 혼돈이 일어난다. 정치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포장을 스스럼없이 하고 포퓰리즘도 성행하고 있다. 시민들은 분별의 한계가 있다. 진실인지 단순히 보여주기 위함인지 교묘한 술수인지. 전임 대통령의 ‘불통’에 대비되어 지금 문대통령은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집무도 본관 집무실이 아닌 비서진이 있는 여민관에서 한 것도 잘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비정상의 정상화’일 뿐이다. 어느 세력들은 ‘정치는 쇼다. 이는 보여주기 식 행보다.’ 하는 말들을 스스럼없이 하고들 있다. 이 또한 혼돈을 유발하는 한 방식이다.
하지만 앞으로 어떨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인간 문재인은 인간적이고 괜찮은 그래서 호감이 간다는 그런 이미지로서의 표 한 표는 확실히 받지 않을까 싶다. 이를 판단하는 데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문재인 후보의 안경은 덴마크 '린드버그'(Lindberg)의 '모르텐' 제품이다. 나사 없이 베타티타늄 재질로 제작돼 가벼운 게 특징이다. 둥근 형태의 프레임으로 부드러운 느낌을 내면서도 테가 얼굴을 거의 가리지 않아 인상에 변화를 크게 주지 않는다. 지난 대선 때는 그 안경이 고가라고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안경을 5년 이상 꾸준히 착용하면서 사치가 아닌 실용적인 사람으로 이미지가 확 바뀌었다. 안경이 시간으로서 문대통령의 확실한 이미지 하나는 확실히 심어준 셈이다. 어느 면 정치도 때를 만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유권자는 정치인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도 X 레이 투과하듯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 예전과는 분명 달라진 세상이다. 불통으로선 더더욱 말이 안되는 세상이다. 하나가 더 있다. 이는 아주 감동적이다.
사람은 사소한 데서 그의 진면이 보일 때가 많다. 계획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전주에 방문했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벗어놨던 구두 사진이 공개됐다. 해당 사진을 게재한 네티즌은 "문재인 대통령은 구두를 벗고 작은 연단에 섰다. 구두는 어느 집 가장의 그것처럼 낡았다. 나는 그가 평범한 아버지처럼 성실히 국민의 삶을 살피는 대통령이 되길 빈다."고 적었다. 이 사진이 화제가 되자 지난 18일 또 다른 네티즌은 지난해 5월 18일 광주 5·18 국립묘지에서 열린 ‘제36주년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의 영상을 공개했다.
올라온 영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무릎을 꿇고 참배하는 모습으로 그의 닳고 찢겨진 낡은 구두 밑창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이처럼 문재인 대통령의 구두가 화제가 되며 구두에 드러난 브랜드가 관심을 모았으며 해당 브랜드는 ‘아지오(AGIO)’라는 이름으로, 청각 장애인들이 만드는 수제화 브랜드이다. 문재인 구두라는 검색어가 등장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짝퉁 양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과거 일부 네티즌들은 문 대통령이 ‘서민 코스프레’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 문 대통령이 명품인 ‘조르지오 아르마니’ 양말을 신었다는 것이다. 서민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하면서도 비싼 명품 양말을 신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숙 여사는 자신의 트위터에 남편의 양말에 대해서 언급했다. 당시 김 여사는 “작년 7월 남대문 시장의 한 리어카 노점에서 2만원에 여덟 켤레를 샀는데 마음씨 좋은 주인이 한 켤레를 더 얹어줬다”고 설명했다. 시장을 지나가는 길에 저렴한 가격에 산 짝퉁 양말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김 여사는 “남편에게 짝퉁 양말을 신겨 미안하게 됐네요”라고 말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이 신은 구두 브랜드는 'AGIO(아지오)'로, 청각장애인들이 만든 수제화 제조업체 '구두 만드는 풍경'의 자체 브랜드다. 2010년 AGIO가 처음 출시됐을 당시 유시민 작가가 구두 한 켤레만 받고 모델로 활동한 곳이기도 하며 이곳에서 판매된 신발 수익금은 청각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사용돼 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AGIO를 제작했던 '구두 만드는 풍경'은 경기 침체로 인해 2013년 8월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덕분에 ‘문재인 대통령 구두’로 화제를 모은 수제화 브랜드 ‘아지오(AGIO)’ 광고 사진이 재조명되고 있다. 아지오를 만들었던 기업 ‘구두 만드는 풍경’의 유석영 대표는 2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2013년 폐업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이에 많은 네티즌이 해당 사실을 안타까워했으며, 아지오 영업 재개를 촉구하기에 이르렀으며 다시 회사를 회생시켰다는 말도 들린다. 여민관에 가는 출근길. 영상에 나오는 출근길의 화두는 바지 길이였다. 김정숙 여사가 달려와서 문대통령 바지단을 내려주는 그런 모습이 포착됐다. 뭐랄까, 중고등학생 아들을 처음 통학시키는 엄마 같은 모습.
그런데 저게 연출한 모습이라면 자연스럽지 않아서 기자들이 보기에나 국민들이 영상을 통해서 보기에나 어색하다고 할 텐데 너무 자연스러웠다. 이를 본 사람들은 바로 느꼈다. 저 연세에 두 분이 저렇게 금슬이 좋다는 것. 요즘은 저런 내용을 주변에서 보기도 어렵다. 어쨌든 금슬 좋은 대통령 내외 분을 보는 것도 초기에는 참 재미가 쏠쏠하고 가화만사성,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가정의 화목한 모습이 바로 느껴졌다. 영부인이 저렇게 소탈하고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저런 모습을 거침없이 보이는 게 상당히 소탈하게 보인다는 말이 많았다.
이렇듯 영상 매체는 보는 단 몇 초 사이에도 많은 것을 전달한다. 그것이 단순이 보여주기 위함인지 진실인지는 잘 모른다. 그러니까 본다는 것은 사실이니 보이는 사실이면서 진실일 수 있고 사실인데 진실이 아닐 수는 있는 것이다. “사실과 진실은 같은 것인가?” “다르다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럼, 언론이 보도하는 건 다 사실인가, 진실인가, 아니면 거기에 가까운 것인가?”늘 우리는 이를 생각하고 또 따지며 진실에 접근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은 제왕으로 군립하거나 아니면 검찰 말고도 또 하나의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월터 리프먼은 1922년 명저 ‘여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거의 100년 전 어록이다.
<“뉴스와 진실은 동일하지 않다. 뉴스의 기능은 사건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다. 진실의 기능은 감춰진 사실들을 밝혀내 그 사실들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시키는 것이다.”
언론학자들도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뉴스가 보여주는 건 실제가 아니라 유사환경에 불과하다”는 말을 한다. 완벽하게 사실적이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뉴스란 당초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언어가 지닌 태생적 한계도 있다. 한 사물이나 현상에 대칭하는 유일무이한 단어는 없으니까. 그래서 뉴스란 결국 “최대한 사실에 가까운 것”이며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지난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실화 바탕의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언론이 팩트를 긁어모아 진실로 가는 험난한 길을 보여주었다. 진실이 점점 우리 곁을 떠난다. 언론은 어찌 보면 그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다. 정권이 바뀌었다. 과거의 것들에 대한 진실 규명의 목소리가 논란 속에 커지고 있다. 사실은 이미 무수히 존재했다. ‘사실이 밝혀진다.’란 말은 쓰이지 않는다. 밝혀지는 건 사실이 아니라 진실이다. 물론 당대에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고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 진실은 시간과 노력과의 싸움이다. 국정농단 사태의 발단은 언론사들이 이념과 정파성을 떠나 경쟁하면서 모처럼 저널리즘의 역할과 힘을 증거 해 준 사례다. 누구는 그걸 ‘기레기의 복수’라고까지 표현했다. 이제 언론이 대적할 것은 진실이다. 개인 미디어의 시대에 팩트는 수없이 조각나 날아다니고 원하는 사람에게만 소비된다. 그걸 꿰어서 맥락을 밝히는 게 정통 언론의 책무이고 정치인을 바라보는 유권자의 자세다. >(위에 사실과 진실을 말하는 부분은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의 사설을 일부 인용한 것이다.>
꼼꼼하게 아주 꾸준히, 5년 전 비쌌다는 문대통령의 덴마크 '린드버그'(Lindberg)의 '모르텐' 제품 안경이 이번 선거에서는 아주 착실히 표 모으기에 일조 했다는 것에서 보듯이 매스미디어 시대에서는 정치인은 보여주기 위함과 진실 사이에서 샐 틈 없는 그야말로 ‘꼼짝 마라’로 묶여 있기도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