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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 감옥에 들어간 바울
2016, 3, 20
행16: 19-40
오늘 본문은 빌립보 성의 간수와 그 가족을 얻는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 일행이 빌립보 교회를 세우게 된 것은 사도 바울 일행이 기도처를 찾아 가던 중 강가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여 그 중에서 루디아를 얻고, 그 다음은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그 여종을 얻고, 또 빌립보 감옥의 간수와 그 가족을 얻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주께서 역사하여 얻어서 세운 교회입니다.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먼저 초석을 놓지 않습니까?
교회의 기초 초석이 되는 일군들을 주께서 한 사람 한 사람 얻게 하심으로 그들을 초석으로 하여 세우신 교회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교회의 초석이 되는 이 일군들을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사도 바울과 실라에게 매를 많이 맞게 한 다음에 감옥에 넣으셨습니까?
대답은 빌립보 교회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빌립보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사도 바울과 실라가 매를 많이 맞고 감옥에 들어가야 하는 희생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만 간수와 그 가족을 얻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은혜와 능력으로 이 교회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성도들에게 깊이 깨닫게 하기 위해서도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부르신 사람들로 세워진 교회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항상 함께 하시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후 빌립보 교회는 다른 교회와는 다르게 바울 사도가 어려울 때마다 그들의 극빈한 가운데에서도 마음을 다해서 돕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순교하는 그 날까지 특별한 사랑으로 사도 바울은 돕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사도 바울이 귀신들린 여종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할 때 귀신이 즉시 그 여종에게서 나오게 된 것까지 보았습니다.
그 여종은 귀신이 나가자 제 정신이 돌아온 성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여종의 주인은 여종에게서 귀신이 나가자 점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을 알고 사도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관리들에게 끌고 가서 “이 사람들은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하는 자들.”라고 고발을 했습니다.
이 여종의 주인과 함께 무리가 일어나 사도 바울을 고발했습니다.
바울을 고발한 이 무리는 누구죠?
사도 바울 일행으로부터 복음을 듣고도 거절한 사람들입니다.
무리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라는 뜻이죠?
사도 바울 일행은 빌립보 성에 며칠 있는 동안에 온 빌립보 성을 뒤지며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온 빌립보 성을 뒤지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가 전하는 복음을 반대한 자들이 무리가 되어 일어나 바울을 고소한 것입니다.
빌립보 성에서 사도 바울 일행이 복음을 전하여 얻은 사람은 겨우 몇 사람뿐인데 그에게 복음을 듣고 반대하여 고발하는 사람들은 무리가 되어 일어났던 것입니다.
왜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거절한 그 무리들이 고발했습니까?
복음을 거절한 그 사람들의 영혼들은 하나님께 영원히 버림을 받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듣고 교회에 더해져서 참 되게 신앙생활 하는 이들은 적은 수에 불과 합니다.
주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도 그랬고, 사도 시대에도 그랬고, 초대교회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그래도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세상에 감추어져 있는 이 적은 수의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 얻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주님은 마태복음 28장 19절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참으로 믿는 사람들이라면 전도하라는 우리 주님의 부탁을 받고도 부탁을 받지 않은 것처럼 주님의 부탁을 외면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영생을 얻은 자가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가 행해야할 첫 번째 과제는 주의 명령을 따라 전도하는 것입니다.
점하는 여종의 주인과 무리들이 합세하여 바울과 실라를 장터에 있는 관리들에게 끌고 가서 고발을 했습니다.
그들은 “이 사람들은 유대인인데 우리 로마 사람이 받지도 못하고 행할 수도 없는 이상한 풍속을 전한다고 고발을 했습니다.”
로마 관리들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말은 로마 식민지 백성들에게 이상한 사상을 전하며 선동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의 식민지 땅에서 로마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는 일이 생기면 그 곳의 관리는 아주 중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기에 이상한 풍습이나 이상한 사상을 전하며 선동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관리들은 곧 바로 그를 채포하여 심한 매질을 하고 감옥에 넣습니다.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의 주인은 내 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 내 여종이 점하지 못하게 하여 내 수입을 막아 버렸다고 고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발하면 사도 바울을 감옥에 넣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관리들이 바울의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많이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깊은 감옥에 넣었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매를 많이 맞았다는 뜻은 심한 매를 아주 많이 맞았다는 뜻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아마 사도행전 14장에 기록된 사도 바울이 루스드라 성읍에서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은 그 상처와, 또 본문에서 옷을 찢어 벗긴 채 매를 많이 맞아서 난 그 상처를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이 외에도 사도는 복음을 전하다 매를 수 없이 많이 맞았고 감옥에도 수 없이 들어갔고 춥고 굽주리고 헐벗을 때가 아주 많았다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내 몸에 예수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사도의 그 말이 어찌 그리 부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몸에 예수님의 흔적은 갖지 못했다 해도 찬양의 가사처럼 우리의 삶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의 삶에 주님의 흔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관리들은 바울과 실라를 많이 때린 후에 감옥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승리하지 못합니다.
사단은 오히려 그렇게 하면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마귀가 그리스도인을 감옥에 넣을 때에 패배자는 오히려 마귀입니다.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마귀에게 패배당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말입니다.
마귀는 그들의 몸을 감옥에 넣을 수는 있어도 그들의 믿음은 감옥에 넣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종에게 십자가를 지게 하는 그 일은 곧 그들에게는 면류관을 얻게 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마귀는 패배하게 됩니다.
세상의 마귀가 힘을 합해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것은 사실상 그 일이 그를 하나님 나라의 권세의 자리에 밀어 올려놓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7, 18절에 우리들이 기억해 두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상속자,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된 상속자라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가 되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현재의 고난은 장차 그 나라에서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를 섬기면서 받는 고난을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과 실라를 감옥에 넣고 착고에 채워 놓았는데 밤에 찬송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그리고 곧 이어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마귀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을 감옥에 넣어 두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로마 감옥에 넣어 놓았을 때에 바울은 편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되었습니다.
그 편지에 기록된 말씀들은 온 인류를 하나님 앞에 인도하는 빛이 되고 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편지를 써서 세계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가 자유의 몸으로 있을 때 보다 감옥에 갇혔을 때 더 크고 놀라운 일을 했습니다.
존 번연을 감옥에 넣어 더니 그는 환상을 보았고, 교회가 거할 천상을 보았고 하늘의 영광을 보고 그것을 기록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렸습니다.
한 밤중에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며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기도 소리와 찬송 소리를 감옥에 있던 모든 죄수들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갇혀 있는 감옥은 감옥 중에서도 흉악한 죄인들만 가두는 가장 깊은 데에 있는 감옥이었습니다.
그 감옥은 어둡고 더러운 감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착고에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를 맞은 그 상처 때문에 몸을 몹시 쑤시고 아팠을 것입니다.
그들이 감옥 안에서 위로를 얻을 만한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기도와 찬송을 드렸습니다. 그들은 한번만 기도하고 찬송을 하나님께 올린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 감옥에 있던 죄수들은 그것을 들었습니다.
왜 사도는 평소처럼 조용하게 기도하지 않고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송을 올렸습니까?
바울 사도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시는지를 죄수들도 알게 하기 위해서 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서 였을 것입니다.
바울과 신라는 무엇을 위해서 기도했을까요?
어찌하면 그들이 깊은 감옥에 갇혀 착고에 채워 있는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를 드릴 수 있었고 기쁨에 넘치는 찬송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육신의 사람은 언제나 육신의 생각을 하고 영에 속한 사람은 언제 어디서 영의 생각을 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있으며 그들의 손과 발이 착고에 채워 있는 자기 상황을 보고 육신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그들은 결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를 할 수 없었고, 기쁨으로 찬송을 드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영에 생각을 하고 영에 말을 할 줄 알아야 합시다.
우리 주님은 영에 생각을 하는 사람을 통해서 주의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육에 생각을 하면 사단의 종이 될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단의 종이 되기를 원치 않지요?
바울과 실라가 무슨 기도를 드렸고 어찌하여 기쁨의 찬송을 올릴 수가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와 실라가 감옥에 들어오게 된 것은 여종의 주인도 아니요, 빌립보 성의 관리도 아니요, 그를 감옥에 넣으신 분은 주께서 그렇게 하신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매를 많이 맞고 이 감옥에 들어와서 착고에 채인 것은 아무 이유도 목적도 없이 주께서 사단에게 그냥 내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바울 그는 주께서 무엇을 위해서 그들을 감옥에 넣으셨는지는 아직 깨닫지 못한다 할지라도 주께서 그들에게 그렇게 하셔야만 이루실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것도 확신했을 것입니다.
범사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사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는 주여 주의 뜻대로 감옥에 들어왔으니 이제 주께서 계획하신 그 다음 일을 행하시고 이루시옵소서 하고 기도하고 또 찬송을 드렸을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을 부를 때에 홀연히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흔들리고 감옥의 문이 다 열리고 그들은 메인 착고도 풀리게 되었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해서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 고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옥문도 열리고 그들을 채워 놓은 착고도 풀렸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도망가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도 뜻도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주께서 그들을 다만 놓아 주려고만 하셨더라면 베드로 사도에게 행하셨던 것처럼 천사를 보내서 모두들 잠들게 하고 옥문도 열어 주고 착고도 풀어 주어 그들을 조용히 나가게 하실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진을 일으켜 옥터를 흔들고 옥문을 열고 그들을 메어 놓은 착고를 풀어 놓으신 것은 이렇게 하셔야만 이루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간수와 그 가족을 택하시고 얻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간수로 하여금 지진이 일어나 그 옥터를 흔들어 옥문을 열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옥문만 아니라 그들 매인 것까지 다 풀어 놓은 것은 간수로 하여금 이 일은 우연이 아니요,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그 간수로 하여금 분명히 깨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매어 놓은 쇠고랑까지 풀어 놓으심으로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간수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간수만 아니라 주님은 항상 주의 종들에게 은혜로 행하시는 것을 알리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주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께서 그들 가까이 계시며 그들을 돌보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기 위해서 였을 것입니다.
나는 젊었을 때에 이 대목에 이르러서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만일 내가 바울 대신에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고 쇠고랑에 묶여 있다가 기도하여 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흔들리고 감옥 문이 열리고 나를 채워놓은 쇠고랑까지 풀어진다면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쳐 나왔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다니면서 우리 주님의 크신 은혜와 능력으로 나를 풀어 주셨다고 기뻐하며 간증하며 자랑하고 다녔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께서 이 일로 인해 그 다음에 계획하신 일은 어그러지게 한 것은 꿈에도 모른 채 말입니다.
죄수들이 다 도망간 줄 알고 자결하려던 간수는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 하는 사도 바울의 소리를 듣고 등불을 들고 감옥 안으로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습니다.
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하기 보다는
그 간수가 왜 두려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게 되었니다.
왜 두려워하며 그들 앞에 엎드리게 되었습니까?
간수는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들어오게 된 것은 점하는 귀신들린 여자에게서 귀신을 쫓아 보내었기 때문이라는 그 진상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응답하심으로 이 감옥에 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흔들리고 감옥 문이 여리고 착고가 풀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손과 발에 매인 것이 다 풀린 것은 누군가 풀어주기 전에는 결코 우연히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간수는 말로만 듣던 그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그 역사를 본 것입니다.
그래서 간수는 바울과 실라 이들이 하나님의 종인 것을 알았고 두려워 떨려 그 앞에 무릅을 꿇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과 경건한 사람들은 분명한 하나님의 증거 앞에 두려워하며 무릎을 꿇습니다.
사도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증거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그가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이라는 아주 분명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이들은 다 그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택함 받지 못한 저 가련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보고도 무릎을 꿇지 않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잠시 기이하게 생각할 뿐 다른 생각을 하며 그것을 곧 잊어버립니다.
택함 받지 못한 사람들은 다 이렇게 행동함으로 그들이 택함 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나가면서 “선생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게 된 간수는 관심은 구원에 있었습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이다.” 하고 대답하고 주의 말씀을 그 간수와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 그는 아직 매를 맞은 자리의 상처를 치료 받지 않은 채 먼저 주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주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주께서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이시고 베드로 사도를 불러서 주의 말씀을 듣도록 준비시켰던 것처럼 이 간수와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준비시켜 복음을 듣게 하신 것입니다.
그 밤에 그 시각에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나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또 간수와 그 온 가족이 다 침례를 받았습니다.
간수는 두 사람을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크게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날이 새자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서 바울과 실라를 놓아 주라는 연락을 보냈습니다.
상관들은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묻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떼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 가만히 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상관들 너희가 와서 친히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당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을 그 죄를 묻지도 않고 공중 앞에서 사람을 떼리고 감옥에 넣는 것은 관리들도 크게 문책을 받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로마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그 상관들은 크게 두려워하여 그들이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나가며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했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시민권자라는 것을 밝힌 것은 아마 사도가 다음에 빌립보 성에 다시 들어올 때 그곳 관리들이 그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옥에서 나와서 루디아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빌립보 교회는 루디아와 귀신을 쫓아낸 그 여종과 간수와 그 가족이 초석이 되어 빌리보 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말씀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과 깊은 사랑을 나누는 교회였으며 사도에게 항상 기쁨을 주는 교회요, 사도가 죽는 날까지 끝까지 그를 도왔던 특별한 관계를 가진 교회가 되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