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5:14-19
달란트가 있어야
기독교 내에서 달란트란 말은 재능이란 뜻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흔히들 TV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을 탤런트라고 한다.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뜻이다. 이 탤런트가 바로 달란트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특별한 재능이나 특별한 능력으로 사용되는 이 말은 예수님 당시에는 금으로 된 화폐 단위로 쓰여 졌다. 구약시대에는 무게를 재는 단위였다가 신약시대에 와서는 화폐를 세는 단위가 된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는 헬라 돈과 로마 돈 유대 돈이 동시에 사용되었는데, 이 중 달란트는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로마화폐였다.
본문에 나오는 이 달란트도, 재능이라는 뜻이 아니라 화폐단위의 의미로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재능으로 해석하면 틀린 것이다. 만약 본문의 달란트를 재능으로 해석한다면, 15절은 “각각 그 재능대로(능력에 따라)…재능(달란트)을 주고 떠났더니?”라는 말이 된다. 전혀 논리에 맞지 않다. 그래서 본문에서 말하는 달란트는 그 당시 통용되었던 화폐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뜻이 제대로 맞다.
본문에서 달란트 뜻이 화폐를 설명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본문 15절을 보자면, 어떤 돈 많은 주인이 그 종들을 불러 각각의 능력을 보고, 각자의 능력정도에 맞게 자기 소유를 다섯, 둘, 하나의 달란트씩 맡긴다. 그런데 이 달란트가 상당히 큰돈이다. 그 당시에 화폐로서의 달란트는 돈의 단위 중에서도 가장 높은 금화의 단위였다. 한 달란트의 무게가 무려 34.272Kg가 나갔다. 골드바(순도 99.99%의 순금덩어리) 1kg이 266.666돈인데 1돈 값을 요즘 시세로 17만 원 이상으로 본다면, 1kg당 적어도 4천5백만 원 이상이 된다. 그러면 34.272kg이 나가는 한 달란트의 값은 우리나라 돈으로 어림잡아도 15억 이상 될 만큼 상당히 큰돈이다. 한 달란트의 무게가 예수님 당시에는 20.4kg라 주장하는 학자도 적지 않다. 그래도 한 달란트 값이 최소 9억이 넘는다. 가각에게는 9억, 18억, 45억이 되는데 이 액수도 꽤나 큰돈이다. 이 엄청난 돈을 주인이 특별히 사업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고 확신이 가는 종, 세 명에게 사업자금으로 대준 것이다. 그렇다면 이 종들은 단순히 힘든 육체노동만 한 사람들이 아니라, 주인의 재산을 유능하게 잘 관리해 온 사람들이었을 거다.
이런 배경을 갖고 주인이 지원한 사업자금의 ‘의미’를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종들은 서로가 사업능력에 차이는 있었지만 그 세 명 모두가 사업을 잘할 수 있는 능력(재주, 실력)이 있었다. 이런 능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날 수도 있고, 아니면 후천적으로 남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애써서 얻을 수도 있다. 그런데 타고난 재능은 그렇다 치더라도, 성장하면서 뭔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서 소위 남이 못하는 무언가를, 내가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한마디로 실력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 만큼 실력이라 하는 능력은 그것을 갖고 있는 자신에게 아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이 종들은 남보다 월등히 뛰어난 사업수완이나 또는 사업능력이 있었기에 15절 말씀대로 “그 능력(ability)에 따라” 자금이 건네진 것이다(cf. ability /재능, 수완, 솜씨, 역량/ 선천적 또는 노력하여 얻은 육체적·정신적 능력).
뛰어난 사업능력이 있다면, 사업으로 성공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이 보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숱한 어려움을 헤쳐 오며 내게 그런 능력을 쌓아왔는데도, 어떤 경우에 내 실력과 능력을 펼쳐갈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종들은 사업에 관한 한 어떤 주변 사람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사업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래서 여러 종들 중에서 발탁되어 주인의 재산을 특별관리 해왔던 것이고, 그 모습을 지켜본 주인이 이들의 장사실력을 인정하고, 마침내 수십억이나 되는 큰 규모의 사업자금을 지원해준 것이다. 이제 이들에게 사업자금이 확보되었다는 것은 물 만난 물고기가 됐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이들은 그 사업자금을 활용해서, 마음껏 자기의 사업수완을 발휘할 수 있게 됐고, 주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상당한 수익도 마침내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아무리 장사능력이 뛰어난 사업가라 해도 사업을 시작할 사업자금이 없으면 그 사업을 일으키거나 지속적으로 운영해 가기 어렵다. 내가 3년 전 중국 상하이에서 <상하이 한인기독인사업가> 조찬기도회 때 설교를 한 적이 있었다. 조찬기도회 겸 예배를 끝내고 아침식사를 임원들과 하게 되었는데 그들끼리 오고 간 얘기 속에 사업은 무일푼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사업가에게 사업자금이 확보되지 않고서는 아무리 뛰어난 사업능력을 지녔다 해도 사업을 번창시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만약 능력 있는 이 종들에게도 만약 달란트가 제공되지 않았다면 이들의 뛰어난 사업의 재능은 결국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믿는 사람에게 이 달란트는 무엇으로 봐야 하겠는가? 우리가 아무리 재능/능력/이를 위해 여러 제반 준비를 잘 해왔다 해도, 우리의 이런 능력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달란트와 같은 외부의 강력한 도움이나 지원은 과연 무엇이라 봐야 하는가? …그 답은 다름 아닌 ‘은혜’라 보면 된다!
우리가 살고 이 세상은 남보다 월등한 실력이나 능력이 있다고 잘 풀리는 것도 아니다. 또 무엇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추진한다고 해서, 계획한대로 그 일이 잘되는 것도 아니다. 이 말에 반대한다면, 그런 사람은 다 잘되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 주변을 보면 그가 가진 능력으로 볼 때 앞서고 뭔가를 이루어 내는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심지어는 폐인까지 되어 있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성경 전도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도서 9:11,12
“내가 또 이 세상일을 자세히 살펴보니 빠르다고 경주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며, 강하다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다. 슬기롭다고 부유해지는 것도 아니며 솜씨가 있다고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더라.
전도서 10:8,9
“웅덩이를 잘 파는 사람도 웅덩이에 빠질 때가 있으며, 담을 잘 허무는 사람도 뱀에게 물릴 때가 있다. 돌을 능숙하게 떠내는 사람도 돌에 다칠 때가 있으며 장작을 잘 패는 사람도 장작에 맞을 때가 있더라. 말씀하고 있다.
아무리 내가 준비를 잘해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해도, 또 내 가진 것이 앞선다 해도 믿는 사람에게는 주님의 은혜가 공급돼야 일이 성사되고 생명력이 있게 되는 것이다. 설령 실력이 좀 못 미쳐도 그 은혜의 역사로 길이 열리는 것이다.
간증) 대전 오정교회 최세영 담임목사
고등학생시절 교회봉사를 너무도 열심히 해오다가 예비고사(수능)를 치름. 그런데 제한시간을 잘못 봐서 끝날 시간 때에 남은 마지막 국어문제 8개를 풀지도 못한 채 시험지를 제출해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 처함. 그래서 엉겁결에 여덟 문제 모두를 1번에 동그라미를 찍어 겨우 제출했다는 것. 그런데 나중에 채점해 보니 그게 다 정답이었다는 것. 그래서 원하는 대학(장신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함. 그래서 그는 수능찍기 8문제는 공부점수+은혜점수였다고 고백함. 그로 인해 “실력 있어도 은혜가 없으면 열리지 않는다(되지 않는다!)”, “실력보다는 은혜로 나가자!”고 하는 게 그의 신앙 모토가 되었다고 함.
결론을 맺겠다. 우리에게 경력과 학력 등으로 형성한 능력이나 실력, 간판이 있다 해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지원돼야 그 일과 계획이 제대로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은혜를 힘입지 않는다면 세상 식으로 해결해가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시 127편(1절)을 상기해보자. “여호와께서 집을 짓지 아니 하시면 집을 짓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 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분명히 수고하며 집을 짓고 있는 자들은 우리인데, 그런데도 하나님이 집을 지어주지 아니하면 집 짓는 자의 수고가 허사라는 것이다. 또 파수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 서 있다 한들 여호와께서 지켜주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견고한 성이라도, 적들에게 뚫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베드로도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 3:18) 한 것이고 디모데를 향해 바울도 다른 것으로가 아닌 바로 ‘은혜’로 강해지라 권했던 것이다.
우리가 어떤 한계에 이르렀을 때, 또 힘들어 고달파 할 때 왜 더 기도하게 되는 건가? 나로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 아닌가! 그게 은혜를 구하는 것이다! 은혜가 알아서 온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그런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은 힘써 모든 일에 간절한 마음으로 은혜를 구하며 나갈 때 그 은혜가 우리의 삶의 현장에 임하는 것이다. 자녀의 앞길이 예비되고, 나의 장래와 우리 각자가 계획하고 시도하거나 하려는 그 일이 잘 펼쳐지고, 가정의 화목과, 특히 교회가 더욱 영적으로 무르 익어가길 원한다면, 힘써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나가야 할 것이다. 사실, 돌아보면 내가 노력하고 준비를 해왔다고 해도 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우리가 있는 이 자리까지 온 것 아니겠는가! 그런 만큼 은혜라는 달란트가 늘 우리의 모든 삶에 채워지도록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하며 나가야만 할 것이다. 모쪼록 그 은혜라는 달란트가 있게 하는 가운데 삶의 현장과 앞길에 열매를 맺고, 그렇게 해서 일군 생명력 있는 열매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