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기자협회장, MBC 사장, 유정회 의원을 지낸 김영수님의 자서전이다. 격동의 해방 후 여러 사건들을 직접 현장에서 취재한 역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그의 기자로서의 삶을 읽어나가다보니 지금 한창 읽고 있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한강>의 시대적 배경과도 겹쳐 있어 시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1946년, 해방 직후 미 군정청은 친일 관료나 지주들을 처벌하기는커녕 그대로 중용해버렸다. 그들 외에 다른 사람들은 이렇다 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니 이방인인 미군 입장에선 당장 행정실무를 맡길 사람이 궁했다. 그러나 보니 과거 이력이야 어쨌든 당장의 자기들 편의를 위해 그들을 그대로 데려다 썼던 것이다.
게다가 자천(자기 스스로를 관료로 추전하는 제도)까지 있어서, 어제의 친일 관료가 스스로를 능력 있는 사람으로 내세우며 더욱 버젓이 활보하고 쉽사리 군림할수 있었다. 이게 문제였다.(19)
조정래의 대하소설<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벌교 경찰서장도 일본 순사 출신이었고 계속 승승장구한다.
한일회담 때 이승만대통령은 일본과의 동해 국경 문제를 일명 '이승만 라인'으로 정해버린다.
이승만 라인이라는 건 한반도 주변 바다에 한국의 주권이 미치는 수역을 선언한 경계선으로 해안에서 50~100마일, 평균으로는 60마일 범위 내의 수역을 배타적인 주권지역으로 설정한 것이지만, 실상 이 선은 어업 환경이 우리보다 월등한 일본으로부터 우리 바다를 지키고 독도를 우리 영토로 재확인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이 선은 더글러스 맥아더가 독도 바깥으로 그어놓은 국경선과 하등 다르지 않아서 선언적 의미는 컸지만 특별한 것은 없다는 걸 알고는 허탈하기까지 했다.(78)
4.19혁명 후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를 한다. 그리고 정권을 장악한 민주당은 구파와 신파로 계파 전쟁을 벌인다.
거기에 더해 계파 아닌 계파가 또 하나 있었으니, 소위 '무소속 구라브(그룹)'란 게 그것이었다. 신구파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던 50명 가량의 의원들이다. 이들 계파 간 알력은 가볍지 않았다. 애초 구파는 한민당 김성수 씨 계로, 대개 호남 쪽 토지자본가들이 많았고 신파는 영남 쪽 경제 관료라든가 산업자본가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지역감정은 전혀, 그 개념조차 없었다.
조병옥 박사 서거 후 구파는 윤보선과 김도연이 쌍두체제로 이끌었고, 신파는 장면이 부통령으로서 총리 취임하기 전부터 리더 역할을 했다. 4.19 후 내각책임제에서 빛만 나는 대통령보다 실질 권력자인 총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치열했다.
구파의 두 리더는 대통령과 총리 자리를 놓고 투표를 했다. 지는 사람이 대통령이었다. 이 투표에서 내 기억엔 23:21로 김도연이 승리했고 패배한 윤보선은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도연이 바로 총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신파의 리더 장면과의 선거에서도 이겨야 했다. 결국 총리는 단 몇 표차로 장면이 차지했다. (114~115)
조정래의 대하소설 <한강>에서 민주당 내의 구파 신파 계파 싸움으로 민생을 돌보지 않아 국민들의 원성이 전 정부보다도 더 컸다는 대목이 나온다. 총리의 권한이 대통령의 권한보다 컸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