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패망 직후, 철원군 일원이 소련군정을 거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실효 지배 영역에 속하던 1948년 한탄교(漢灘橋)라는 이름으로 착공되었습니다.
철원농업전문학교 토목과장이었던 김명여의 설계로 러시아식 공법의 아치교로 설계된 이 다리는
동송읍 쪽의 아치교각만 완성된 상태에서 한국 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952년 주한 미군 79공병대와 대한민국 국군 62공병대가 갈말읍 쪽 교각과 보를 완성,
1958년 개통하고 승일교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철원군 지역 주민들 사이에는 김일성이 시작하고 이승만이 끝냈다고 하여 이승만의 '승(承)'자와
김일성의 '일(日)'자를 한자씩 따서 승일교(承日橋)라 했다는 설과 '김일성을 이기자'고 해서
승일교(勝日橋)라고 했다는 설이 전해지나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한국 전쟁 중 큰 공을 세우고 조선인민군에게 포로로 끌려간 박승일(朴昇日, 1920년 ~ 몰년 미상)
연대장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승일교(昇日橋)라고 지어졌다는 것이며,
1985년 세워진 승일교 입구의 기념비에도 이를 정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같은 시기에 포로로 끌려간 고근홍 연대장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의 근홍교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