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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제51회 베를린 인터스테노 국제속기대회
‘속기21’ 온라인 강사를 통해 처음 알게 된 국제속기대회. 그리고 협회 ‘취업면접교육’ 이수 중 국제속기대회가 곧 개최될 거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끊임없이 협회 홈페이지에 접속해 공고 확인을 했다. 처음 들었던 생각은 ‘내 실력을 검증해 볼까?’라는 마음에 무심코 도전을 했다.
그러나 예선부터 시작해 준결선 그리고 결선까지 연이은 성공 속에 세계속기대회 한국 대표로 선발된 나. 하지만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국회 필기시험과 세계속기대회의 일자가 완전히 중복된 것. 나는 최대한 합리적으로 생각해 세계속기대회를 택하였다.
그리하여 출마를 결심하고 대회 준비를 시작했다. 단 한 번도 해외 방문한 적이 없어 먼저 여권을 발급받고 원화로 약 38만 원 정도 환전을 준비했다. 그런 후 인터스테노를 방문하여 인터스테노 세계속기경기 등록을 마쳤다.
6월 7일 16:00. 협회에서 회의를 진행하여 협회 임원들과 한국 대표 선수들을 만나 단체 일정표를 받고 심사 기준을 확인한 후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해산했다.
그렇게 사전 준비를 마친 후 드디어 맞이한 한국 출국 날.
7월 19일 10:00 인천국제공항 3F 출국장 D 카운터 앞에서 미팅을 했다.
도착하여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필수품을 지급받은 후 한국 대표로서 대회에 임하는 각오를 인터뷰했다. 나는 ‘실수 없이 후회 없는 경기를 하고 오리라’는 각오를 다지고 그렇게 한국을 떠났다.
13:15 인천국제공항에서 SU 251을 타고 모스크바로 출발. 비행기라고는 제주도 방문으로 단 한 번 탑승한 게 처음이라 경유까지 포함한 약 11시간이 넘도록 기내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게 걱정되기도 설레기도 했다. 탑승 시 1등 · 2등석을 지나 이코노미석으로 오면서 나는 ‘하루빨리 경제적 여유가 생겨 1등석에 누워 갈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좌석에 도착하고 보니 내 옆자리는 외국인이 자리했다. 처음에는 눈인사로 인사치레를 했고 조금 지나 서로 서툰 외국어를 써가며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한 바 그 여성은 덴마크 출신이며 여행 차 한국을 방문해 부산, 경주, 제주 등을 4주 동안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에 응해 ‘나는 국제속기대회에 참가하러 베를린에 간다.’ 했고, 그 여성은 ‘꼭 좋은 소식 있기를 희망한다.’며 짧은 대화를 나누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렇게 헤어졌다. 기내식 두 번을 받고 장장 9시간 40분을 소요한 끝에 16:15 모스크바에 무사히 도착.
입국심사와 수하물 수취에 있어 너무나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 러시아 사람들을 보고 한편으로 신기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한국인은 뭐든지 빠르게 행동하는 것이 익숙해 바쁘게 하루를 살아가는 데 비해 러시아인은 일처리가 여유로워도 성질도 내지 않고 편안하게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배울 만한 부분이라 생각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러시아 현지 가이드 미팅 후 전용차량으로 이동했다. 이동 시 신기했던 점은 차가 너무 막힌다 생각했는데 도로 정체가 아닌 평소 모습이 이렇다는 말에 또 한 번 놀랐다. 게다가 지위가 높거나 유명한 인물이 지나갈 때는 모든 차가 정차하여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 후 제 갈 길을 간다는 말을 듣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답답함과 동시에 여유로움을 배워가는 것 같다.
그렇게 교통정체를 뚫고 약 한 시간 정도를 달린 끝에 어느 호텔 내에 있는 한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었다. 이제 10박을 하는 동안 한식은 못 먹는다는 생각만으로 한국으로 치면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피로감을 잊은 채 꿋꿋이 석식을 마쳤다. 그 후 전용차량으로 이동해 30분 정도를 달렸고 골목골목을 지나 도착 한 곳은 우리가 2박을 묶어야 할 호텔 BORODINO에 도착. 개별로 객실 배정을 받았고 나의 룸메이트는 제주도 의회에서 근무하시는 사무관님이다. 제주도라는 말에 괜스레 반가웠다. 학생 시절 제주도 호텔 실습을 했던 것과 속기사무소에서 제주어로 된 녹취록을 작성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 제주도 언어가 익숙하고 대화할 때도 낯설지 않았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짐을 풀고 일찍 잠을 청했다.
어느새 동이 트고 모스크바에서의 첫 조식을 맞았다. 조식 메뉴는 예상외로 다양하고 가짓수도 많고 입맛에 맞았다. 오트밀 수프, 베이컨, 햄, 채소를 섞은 계란찜, 청어회 등 디저트 메뉴도 다양했다. 키위랑 사과는 개별적으로 칼로 깎아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맛이 정말 신선하여 만족도가 높았다. 8시부터 한 시간 동안 조식을 하고 전용차량으로 이동해 모스크바 시내 관광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관람한 곳은 이즈마일롭스키 시장이었다. 러시아의 유명한 마트로시카 인형. 일명 ‘알까기 인형’이라고도 불리며 이 인형은 작가의 유명도 혹은 작품성 그리고 피스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난다. 값비싼 마트로시카는 원화로 18-19만 원 정도까지도 한다. 수많은 마트로시카 중 나에게 눈에 띈 것은 5피스짜리이며 귀염성 있는 외모를 가졌고 10유로의 가격에 비해 너무 사랑스럽게 생긴 인형이었다. ‘너로 정했어!’ 고민 없이 선택한 기념품이었지만 더 눈에 띄었던 것은 10피스짜리인데 다양한 표정을 가진, 게다가 마지막 10피스 인형마저도 섬세하게 묘사된 마트로시카를 보고 잠깐 흔들렸지만 그래도 가격 대비 예쁜 내 마트로시카를 예뻐하기로 했다.
또, 구매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마트로시카 중에 눈에 띄었던 작품은 한국의 대통령을 묘사한 것이었다. 알까기 인형답게 전직 대통령 순서대로 피스가 나눠지는 것을 보고 역사의 흐름을 잘 표현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비싸지 않아요’ 한 마디에 우리의 발길을 사로잡은 유쾌한 상인. 그 상인은 한국어를 서슴없이 구사하며 우리에게 호탕한 웃음을 주었다. 흥정해 달라는 한국인에게 원래는 8천 루블을 받아야 한다며 즐거운 분위기로 이끌어 주었다. 마트로시카 외에도 유명한 것은 호박으로 만든 귀걸이 등 장신구였다. 그 외에도 토끼털로 만든 모자와 목도리, 테이블보, 러시아Tree로 제작했다는 함, 손거울, 가재도구 그리고 체스판을 본뜬 함 등 다양한 물품을 매장에서 판매하는 것 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다. 그렇게 시장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아르바트 거리로 이동했다.
아르바트 거리는 한국의 명동으로 불리며 실제로도 비슷하여 왠지 모를 친숙감이 느껴졌다. 또한 예술의 거리인 아르바트에는 빅토르 최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의 벽을 지나기도 했고 푸쉬킨 집 박물관의 외관을 구경하였다. 빅토르 최 추모벽을 본 내 첫인상은 ‘벽에 왜 저렇게 낙서를 해 놓았을까?’였는데 그 진면을 알고는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거리마다 하염없이 모델을 기다리는 초상화 화가들. 약 1시간이 소요되며 100루블 정도 든다고 했다. 하지만 정해진 관광 시간이 있기에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점심으로는 고기완자와 감자, 수프, 빵과 샐러드를 먹었다. 고기완자의 맛은 동그랑땡 맛과 약간 유사했으며 수프 맛은 묘했다. 마치 물에 라면 수프를 탄 것처럼 살짝 매콤한 맛이었고 무엇보다 러시아의 감자요리는 맛이 정말 진하고 식감 또한 부드러웠다. 중식을 먹은 후로는 자유시간이 주어져 NIKE매장을 둘러보았고 다시 한 번 아르바트 거리를 활보했다. 아르바트 거리를 떠나기 전 레모네이드 비슷한 음료를 사주셨고 이것 또한 묘한 맛이었다. 수프와 마찬가지로 맹물에 레몬즙을 살짝 끼얹은 정도의 미약한 맛이 나 조금은 실망감을 안겨주긴 했지만 색다른 맛을 경험해 보았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시 전용차량을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이동 중 바라뵤비 언덕을 스쳤다. 하차하여 보는 것보다 버스에서 보는 광경이 높이가 맞아 스치듯이 구경하며 지났던 곳이다. 러시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와 버스에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확 트인 광경을 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바라뵤비 언덕을 지나 도착한 곳은 볼쇼이 극장과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볼쇼이 극장은 마치 로마의 판테온을 닮았고 고대풍 건물의 느낌을 받았다.
또, 볼쇼이 극장 바로 앞 확 트인 도로가 있어 더 큰 관광의 묘미를 더했다.
볼쇼이 극장을 지나 도보로 레닌 묘, 국영 굼 백화점 그리고 둥근 양파 머리 지붕인 성 바실리 사원, 트로이츠카야탑을 차례로 관람하였다.
레닌 묘는 듣기로 작다고 했지만 내 눈에는 너무나도 광활한 붉은 광장이었다. 모스크바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명소를 꼽으라면 레닌 묘라고 말하고 싶다. 굼 백화점 또한 웅장했지만 러시아의 대표 칼라인 빨간색으로 된 강렬한 색이 아니어서 그런지 다른 건물들에 비해 약간 평범해 보인 면이 있기도 했던 것 같다. 성 바실리 사원이야말로 작지만 붉은 건물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트로이츠카야탑 내에는 푸틴 대통령이 직무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직접 대면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대통령 집무실이 서민들과 너무나도 친숙한 장소에 위치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아 모두 주머니에 소지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던 건물들이었다. 그렇게 하지 못해 너무 아쉬웠고 또 한 번 보고 들러보고 싶은 장소이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으로 찾은 곳은 모스크바 국립대학이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는 겉보기에 웅장하고 멋지다만 실내는 삐거덕 거리는 나무 바닥으로 되어 있고 벌레도 많이 나온다 하는 옛 시대 실내구조를 방불케 하는 반전적인 건물이라고 한다. 또한 이 대학을 다니는 자국 학생은 등록금을 받지 않고 외국인에게만 등록금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한국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 기분이 가라앉기도 했다.
그렇게 구경을 마치고 첫날 석식으로 먹었던 장소인 한식당으로 이동해 데리야키 메뉴를 먹었다. 보기에는 양이 너무 적어 보였지만 막상 먹어보니 포만감이 느껴졌다. 관광을 많이 해 배가 고파 그랬는지도 모른다. 석식 후 숙소에 도착해 다음 일정을 위해 서둘러 잠을 청하고 다음 날을 맞았다.
모스크바의 마지막 관광인 셋 째날. 우즈벤스키(성모승천사원) · 아르항겔리스키(대천사 사원) · 12사도 사원을 방문했다. 입구에서 티켓과 소지품 검사를 위한 줄을 기다리는 동안 외국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니하오’하며 중국어로 인사를 해 순간 내 얼굴을 되새겼다. ‘나는 중국인인가 한국인인가!’
모스크바 관광을 하는 내내 한국인으로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을 생각해 보니 ‘역시 동양인이 서양인 구별 못 하듯 서양인도 동양인 구별 못 한다.’는 생각을 했다.
입장을 한 후 처음 마주한 것은 근위병이었다. 웃지 않고 무표정으로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고 ‘아, 조심히 행동해야 하는 곳이구나.’ 생각이 들어 마음가짐을 바로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분위기는 달랐다. 맑은 날씨에 밝고 화사한 건물들이 즐비해 있어 탄성을 자아냈다.
두 번째 마주한 곳은 푸틴 대통령이 자주 찾는다는 극장이었고, 조금 더 걸어가 우즈벤스키사원과 아르항겔리스키 사원 그리고 12사도 사원이 몰려있는 광장이 등장했다. 아랍풍 건물을 보는 듯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꼭대기에는 십자가로 장식돼 있었다. 특히 12사도 사원은 내부 관람도 했지만 사진촬영이 안 돼 추억을 담아오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12사도 사원 안 무덤에 장식된 금 부품은 나폴레옹과의 전쟁 당시 나폴레옹이 수탈해 간 흔적이 남아있었고, 2천 년 된 그림이 아직도 실존해 있는 것 또한 관람하면서 역사를 눈으로 보고 느낀 순간이었다.
우리는 이제 모스크바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마감하러 공항으로 이동했다. 중식은 공항 근처에 있는 음식점에 들러 샐러드를 먹고, 트램으로 이동해 공항에 도착했다. 15:25 SU 2314를 타고 모스크바를 떠났다. 기내식은 역시 햄과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받았고 생과일 젤리와 비스킷도 포함 돼 있었는데 비스킷 맛은 특이했다. 감귤 맛이 진했고 촉촉했다.
그렇게 2시간 50분을 날아 착륙해야 할 시점에 비행 운전 실수였는지 갑작스러운 충돌이 난 것처럼 엄청난 진동이 일었다. 비행 사고인 줄 알았지만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조종사의 운전 미숙이었던 것 같다.
17:10 베를린 쉐네펠트 공항 도착 후 현지 가이드를 만나 공항버스로 이동하였다.
우리는 공항에서 빠져나와 중식을 먹었다. 메뉴는 한국의 족발로 불리는 독일의 슈바인 학센을 맛보았고, 음식점 분위기 또한 특이했다. 맥주 숙성 통 2대가 인테리어의 멋을 더했고 그 맥주의 맛은 진했다. 술의 나라 독일답게 맥주는 하나의 예술이었다. 슈바인 학센의 겉껍질은 바삭바삭하며 속살은 촉촉한 족발 맛이었다. 1인분인데도 양이 너무 많아 다 먹진 못했지만 그 맛은 만족스러웠고 상당한 포만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중식 후 전용차량을 기다리는 와중에 자전거 도로를 발견했다. 독일도 러시아처럼 자전거 도로에서만큼은 인간보다 자전거가 우선이어서 조심해야 했다. 자전거가 인간을 피하지 않고 무작정 달리는 모습을 보고 좀 놀라기도 했다. 신호등 건너는 시간 또한 너무 짧아서 금방 빨간 불로 변한 것 또한 신기했다. 그러나 도로에서는 자동차보다 인간이 우선이라 빨간 불로 바뀌어도 정차해 기다려 주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중식을 마친 후 앞으로 8박을 해야 할 호텔로 이동했다.
호텔의 이름은 Hampton이다. 러시아에서처럼 2인 1조로 방 배정을 받고 룸메이트는 같다. 객실로 들어가자마자 기찻길과 벽화가 보였는데 단조로우면서도 그림 같은 철길이었다. 그러나 뒤 이어 이어지는 고민. 시끄럽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방음처리가 잘 돼 있어 마치 소리 없는 기차가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고 밤이 되었다. 나는 소화가 안 됐나본지 소화제를 먹어야 했지만 객실에는 탄산수뿐이었다. 로비로 내려가 물의 가격을 물으니 2.70유로라 했다. 약에 먹을 적은 양의 물만 필요할 뿐인데 구매하자니 너무 아까워 망설이고 있었는데 ‘우리 물은 깨끗해 수돗물 또한 식용으로 가능하다.’라며 답을 주었다. 그것도 못 미더워 결국엔 포트에 물을 끓여 식힌 후 약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한국이 갑자기 그리워졌던 순간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 INTERSTENO 참가자 등록을 하러 Hollywood media Hotel로 이동했다. 우리는 출국 전에 사전 등록을 했기에 필요한 물품과 등록증, 그리고 기념품이 담긴 가방 하나를 받았다. 기념품은 보조배터리 · 하리보 젤리 · 인터스테노 티셔츠 · 연습장 및 펜이었다. 게시판을 보니 선수로 등록돼 있는 이름 한 줄을 보고 가슴이 설렜고 대회 준비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다. 세계 선수들 그리고 인터스테노 회장 등 임원들도 만나 인사를 나눴고, 그렇게 등록을 마친 후 인터스테노 개막식을 치르러 장소를 이동했다.
갑자기 비가 억수로 쏟아졌고 그 때문에 분위기는 한 층 더 운치 있어졌다. 개막식 시작 전에는 젬베와 기타를 동원한 연주 그리고 샌드 예술을 했다. 또한, 영어 자막을 입력할 속기사도 자리한 모습을 보고 ‘나도 이렇게 큰 축제에 큰 역할을 할 속기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개막식을 치른 후 환영 다과회를 하러 장소 이동을 했다. 들어가자마자 웨이터에게 샴페인을 받고 각 나라마다 원하는 테이블을 골라 자리했다. 환영 다과회는 약간의 아쉬움을 주었다. 다과는 웨이터에게 받은 한 개가 전부였고, 그 이후엔 찾아볼 수 없었다. 앞쪽에 인원이 몰려있었는데 아마 그쪽에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나라마다 인사하고 대화하며 교류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모습이 아니어서 조금의 아쉬운 면이 있었다. ‘내가 영어회화를 잘 했다면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까?’하는 반성도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다과회까지 마친 후 우리는 석식을 하러 이동했다. 음식점은 호텔로부터 도보로 5분 거리였고, 이름은 ‘아리랑’.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한국 음식점이다. 생각해보니 독일에 있는 내내 현지 음식보다 ‘아리랑’을 더 많이 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맛은 최고였다. 타국에서 먹는 자국의 음식이라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그다음 날 23일, 임원만 참여하는 IPRS 회의가 있지만 선수들은 자유일정으로 진행을 했다. 오전에 Holly Wood Hotel로 이동해 외국 속기 Dictionary를 구경하고 직접 쳐보기도 하며 설명을 들었다. 영어로 설명을 해 주니 기억에 남는 내용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키보드의 방식은 한국 속기키보드와 유사했던 것 같다. 외국 키보드 전시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자유일정을 진행하여 먼저 ‘아이러브 베를린’ 기념품 가게를 들려 구경했다. 상점 가운데에 커다란 차에 인형들이 담겨있는 데커레이션이 눈에 띄었고, 자동차 장난감은 너무나도 튼실했다. 구경을 짧게 마치고 도보로 좀 더 이동하니 우연히 마주친 카이저 빌헬름 교회가 보였다. 2차 대전 때 포탄을 맞아 유명한데 가까이서 보니 건물 외벽에 총탄 자국이 아직도 남아있는 모습을 발견했고 입장을 하여 내부를 둘러보았다. 빌헬름 교회 바로 옆 신식 건물에서는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그리고 교회 뒤편에는 희생자들 추모식이 열려있었다.
또, 주변을 둘러보니 눈에 띄었던 것, 벤츠 회사의 로고가 회전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자회사답게 로고도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아코디언처럼 생긴 버스를 보고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고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요즘 가장 필요로 하는 것! 외국에는 자전거 신호등이 있다. 한국에 비해 자전거도로와 신호등이 활성화돼 있는 것이 부러웠고 한국이 배워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다음 날인 24일, 드디어 실시간 속기대회 경기가 있는 날이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이다. 아쉬운 성적을 내지 않기 위해 모스크바에서부터 시차 적응을 하는 순간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을 했다. 한국에서 인터뷰한 것처럼 ‘실수 없이 후회 없는 경기를 치르자!’ 또 한 번 각오를 다지고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11:00 입장을 하고 연습시간을 가진 후 시험을 치렀다. 헝가리 감독관이 봐 주셨고, 시험은 시작됐다. 그러나 음성 낭독문은 들리는데 나는 너무 긴장을 한 탓에 잘 듣지도 못했던 것 같고, 오청이 있었지만 내가 그 단어를 생소해 했기 때문에 잘 못들은 거라 생각이 든다. 평소에도 뉴스를 보며 속기를 하지만 아직도 내 견문의 범위는 좁은 것 같다. 앞으로 칼럼 등 시사적 기사 글을 통해 견문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가장 큰 실수를 한 것은 약어이다. ‘스트레스’라는 약어를 잘못 입력해 다른 언어가 나왔던 것이다. 그로 인해 당황하여 한 문장을 날렸기 때문에 되도록 독타로 입력하는 것이 낫다 생각했다. 너무 아쉬운 경기였고 내후년에 있을 이탈리아전에서만큼은 꼭 수상을 해야겠다.
그렇게 아쉬운 경기를 마치고 13:30부터 채점을 시작했다. 위원회에서 채점을 하는 동안 선수들은 자유일정을 진행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시티투어를 하기로 결정했다. 시티투어는 한국어 지원 가능한 버스로 이용했고, 하루권과 이틀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우리는 1day 16유로를 지불해 구입했다.
버스는 10:00~17:00까지 운행하며 관광 스팟 마다 내려서 구경할 수 있고 다음 버스 탑승이 가능해 하루 만에 베를린의 가볼 만한 곳을 다 볼 수 있는 특장점이 있다. 시티버스에 탑승하면 보라색 이어폰과 책자를 받는데 한국어 지원인 15번 채널을 맞추면 한국어로 된 가이드 설명을 들으며 투어를 할 수 있다.
우리는 6번 스팟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내려 도보로 다녔다. 베를린의 유명한 곰 조각상은 어딜 가든 있는 것 같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브란덴부르크 문이다. 위에 있는 네 마리의 말 조각상이 곧 승리의 여신이 탄 마차를 끄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면서 허가받은 사람들이 이 문을 통해서만 동 · 서 베를린을 왕래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전승 기념탑도 멋있었다. 티어가르텐 중앙부에 우뚝 솟아 있는 석조 탑인데 탑 꼭대기에는 금색으로 된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가 서 있다. 도로 한가운데 당당히 세워져 있는 탑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투어를 하다 보니 어느덧 석식 시간이 돌아와 우리는 호텔로 향해야 했다. 4시간 동안을 도보로 다니며 관광하여 지치기도 했지만 보람찬 하루였다.
다음 날인 25일, 역시 IPRS 회의는 임원 참가이므로 우리는 자유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오전에 잠깐 Holly Wood Hotel에 들러 외국 키보드 전시를 구경한 후 우리 협회에서 준비한 한국 기념품과 외국 기념품을 맞교환했다. 외국 기념품으로 받은 것은 반짝반짝 빛나는 젤리 반지였다.
우리는 전철을 타러 장소를 이동했다. 중앙역으로 가기 위한 티켓팅을 하는데 티켓을 끊은 후 시간 체크를 위한 빨간 기계를 거쳐야 했다. 한국은 환승이 잘 발달해 있어 수동으로 체크를 안 해도 되지만 베를린은 아니었다. 티켓에 시간이 정해져 있어 출발시간을 꼭 체크해야만 했다. 이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 다시 또 한국이 생각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 비해 외국에서의 편한 점! 따로 티켓 검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적발되면 60배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는 어마무시한 말이 있다. 그렇게 하여 도착한 곳은 ‘중앙역’이다. 내일 의회 방문을 할 예정인데 중앙역에서 내리니 의회가 보여 미리 둘러보고 온 셈이 되었다. 중앙역 내부는 서울역을 방불케 하는 넓은 면적의 다양한 상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중앙역 앞에는 마술사가 마술을 선보였고, 다양한 이동식 음식점이 즐비해 있었다. 축제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다음 날 26일, 9:00~14:00까지 의회 방문. 궂은 날씨에 운치를 더해 주었다. 의회 출입 시엔 마치 공항에서 하듯 소지품 점검을 철저히 했다. 점검을 마치고 회의장으로 들어와 회의하는 것을 보고, 중식은 주최 측에서 마련한 샌드위치 등 간단한 다과였다. 중식을 마친 후엔 의회 투어를 시작했다. 가이드와 함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설명을 해 주었고, 돔까지 구경을 마치고 의회 투어를 끝냈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오후는 자유일정으로 베를린 장벽으로 이동했다. 장벽을 보기 전,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더 의미 있게 둘러보기 위해 베를린 장벽 박물관 먼저 관람했다. 티켓을 구매하니 베를린 장벽 알갱이 하나를 받았다. 또한, 베를린 영화에서 나온 장면의 명소도 보고 그 유명한 서독과 동독의 총리가 키스하는 벽화도 보는 등 역사의 한 장면을 보았다.
오후엔 이사회 만찬이 있었지만 임원 참석이므로 남은 인원끼리 석식을 해결한 후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펍에서 오늘 하루의 즐거움을 마무리 했다. 주문했던 메뉴 중 흑맥주 ‘둔켈’이 달달한 맛을 자아내 아주 맛있었지만 나는 논 알코올을 주문했다. 홍삼 맛이 나는 독특한 맛이었다. 안주는 돈가스와 유사한 ‘슈니첼’과 치즈가 곁들여진 야채 전으로 했다. 독특한 점은 독일에는 에어컨이 없다는 것이다. 분위기 있는 초까지 태우며 열기는 더해지는데 소음 때문에 창문을 열지도 못했고, 음악도 없이 외국어 수다를 들어야 했다. 너무나도 독특한 환경이어서 색달랐다.
다음 날 27일, 오전엔 인터스테노 차기 회장을 선출하는 회의를 가졌고 장소를 옮겨 15:30~17:30 동안 시상식을 했다. 꼭 우리 선수들 중에 수상자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한국 2위! 우리 한국을 빛내준 김봉철 씨, 정말 위대하다! 아쉽게도 나는 상장만 수여했는데 80개국 선수들 중 25위 했다. 또다시 아쉬웠던 경기 장면이 떠오르며 울컥했지만 이미 끝난 일. 내후년에 다시 도전하리라!
시상식 때 가장 눈에 띄었던 인물은 마이클이다. 미국 의회 속기사인데 미국 전통의상을 뽐내다 오늘은 정말 화려한 금장식된 옷을 입고 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또, 체코의 한 어린 선수는 메달 10개 정도를 획득해 부러웠다. 각 부문에서 1등을 도맡더니 결국 종합 1위까지. 우리 한국도 리얼타임뿐만 아니라 각 부문에도 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상식이 끝나고 무려 1시간 정도 차량으로 이동해 송별 만찬식에 참석했다. 19:30~11:00까지였고, 바비큐와 각종 음식 그리고 맥주가 있었다. 외국 선수 또는 임원들과 사진 찍으며 추억을 담았고, 송별 만찬이 끝난 후 클럽 분위기를 방불케 하는 축제를 즐겼다.
다음 날인 28일, Hollywood media Hotel로 이동. 차량을 타고 슈프레발트로 이동해야 하는데 운전기사의 실수로 뒷 유리창을 깨뜨리는 사고가 발생해 예상시간보다 1시간 정도 지연돼 11:00 넘어 출발했다. 그렇게 베를린에서 100km 떨어진 거리의 슈프레발트로 가는 데 두 시간 소요.
13시가 넘어 슈프레발트에 도착. 슈프레발트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구역으로 지정돼 독일의 아마존이라 불리는 곳이며 보트 투어와 오이가 유명한 곳이다. 우리는 중식을 미루고 일정대로 보트를 타러 도보로 이동했다. 보트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아이들이 보였는데 문득 ‘저 아이들은 학교를 안 다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배 타고 통학할까 등 의견이 분분했지만 아직도 의문이다.
2시간 정도 보트를 타며 관람을 하고 사전에 예약해 둔 메뉴로 주문이 들어갔다. 내 메뉴는 사슴고기. 참치 맛이 나며 육감도 비슷했다. 또 보랏빛 양상추와 같이 곁들여 나왔는데 같이 먹으니 피클과 함께 먹는 것보다 더 맛있었다. 그렇게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돌아왔던 길을 똑같이 2시간가량 이동해 어느덧 출발지점에 도착. 다시 전용차량으로 이동해 숙소로 간다.
다음 날 29일, 짐을 정리하고 내려와 11시에 체크아웃한 후 가이드 미팅. 차량으로 이동하여 공항으로 출발. 차량으로 이동하는 동안 가이드가 했던 말 중 기억에 남는 말은 ‘베를린은 역사가 없다’였다. 역사적 건물이라 해도 다 새로 지은 건물이라 역사가 살아 숨 쉬지는 않는다는 말에 공감했다. 하지만 외관보다는 실질적인 역사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아무리 새로 지은 건물이라 할지라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변하지 않는 거니까.
공항으로 가기 전 중국 음식점에 들러 중식을 먹은 후 공항에 도착. 14:10 SU 2319를 타고 쉐네펠트공항 출발. 17:45 모스크바 경유해 20:55 SU 250타고 모스크바공항 출발.
7월 30일 11:15 드디어 인천국제공항 도착. ‘내후년에 있을 이탈리아전에서 기량을 발휘하겠다.’며 인터뷰를 마치고, 인터스테노 한국 대표단은 해산했다. 비록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 아쉬움이 크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앞으로 부족한 부분 채워나가 다음에 있을 대회에서는 수상자가 돼 노력의 결실을 맺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12일 동안 함께한 일행분들께도 아쉬움과 고마움을 전합니다. 다들 수고 많으셨고 나중에 기회가 닿는다면 또 뵙겠습니다. 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