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오는 큰 빛을 백성이 볼 것입니다.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쳐 올 것입니다.일찍이 2천 년 전 요셉이 임신한 마리아와 함께 여관에 머무를 곳이 없어 순한 양이 머무는 마구간에 그 맏아들을 낳음으로써 이 거친 세상에서 하느님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이제 우리에게서 생일 축하를 받으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가 알고 있듯이 동정녀의 태중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우리 인간 세계로 들어오십니다.비좁은 태중에, 위에서의 점령이라는 공경에 허덕이는 조국의 불행한 시대에, 편협한 이웃의 단죄된 육체 안에, 노동자의 단조로운 일상생활에 철저한 실패로 끝나는 일생에, 신이 죽을 황량한 세계의 죽음의 어두운 방 안으로 찾아오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역사의 이 비극을 무슨 희한한 구경거리처럼 굽어보시지 않으시고, 당신의 지엄하신 권좌에서 내려 오사 우리와 똑같이 이 인생의 무대 위에서당신의 배역을 몸소 진지하게 연출하심으로써 이 세상에 빛이 되어 우리 역사의 마지막 장인 비극으로 끝나는 것을 막아주셨습니다.그러므로 그분의 이름을 탁월한 경련과 용사이신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부르는 것입니다.그러나 그분은 여관에 머무는 방에 없어 마구간에 누워야 했습니다.여관은 세상의 소문이 모이는 곳, 그리고 세상의 쾌락과 부정이 시험한 곳이기도 합니다.그러나 마구간은 이 세상에서 버림받고 가난과 고통에 지친 사람들이 쉬었다 가는 곳, 구세주가 탄생하신 곳입니다.그렇습니다. 구세주의 성탄은 흥청거리는 파티에 징글벨이 울리는 호텔이 아니라, 헐벗고 굶주리며 이 추위에 떨고 있는 형제들이 마구간 구유 안에 있는 것입니다.이 땅에 천주 성자가 태어나실 장소로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던 곳이 있었다면 물론 그것은 인류 호텔이나 어느 고관처의 안방 아랫목 한잔이었을 것입니다.천주교 성자께서 마구간에서 초라하게 탄생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더욱이 태양을 창조하여 지구를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있던 하느님께서 당신 몸을 데우기 위하여 소나 양의 열을 필요로 하시리라고는, 그리고 우주 전체가 돌아가는 것을 멈추게 하실 수 있는 분이 또한 당신에게 손가락으로 우주 만물과 세계를 여신 분이 고사리같이 작은 손을 가지고 계실 줄은, 그리고 영원한 말씀이 벙어리처럼 침묵을 지키고 계시리라고는, 이 세상의 지혜만으로 결코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이 되신 천주 성자께서 빛이 되시고, 당신의 세계 이 땅에 오시는데도 뒷문으로 조용히 들어오시고, 이 땅에서 무지한 당신 백성들을 위해 가축들이 머무는 마구간에서 탄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둠 속에 빛으로 오시는 구세주를 배웠고, 새로이 태어나 성숙한 신앙인이 되려면 예수님과 같이 마구간으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그러나 마구간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누구나 말씀인 사람이 되시듯이 겸손되이 머리를 숙이고 몸을 굽혀야 합니다.그러므로 겸손으로 머리를 숙이고 몸을 굽히기를 싫어하는 교만한 사람은 결코 구세주의 성탄을 보지 못할 것이며 성숙한 신앙인이 되지도 못할 것입니다.성탄의 참된 기쁨과 평화는 그리스도와 같이 나 자신이 겸손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상 시인의 <성탄을 쉰 넘어 맞이하고도>라는 시가 있습니다.구상 시인은 지금 생존해 계시면 110살 정도 되실 겁니다.저도 이제 성탄을 쉰 번도 아니라 예순 번도 넘고 일흔 번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구상 시인이 이 시간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 것인지를 우리에게 생각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성탄을 쉰 번도 넘어 맞이하고도 / 구상
성탄을 쉰 번도 넘어 맞이하고도
나의 안에는 권능의 천주만을 모시고 있어
저 베들레헴 말구유로 오신
그 무한한 당신의 사랑 앞에
양을 치던 목동들처럼
순수한 환희로 조배할 줄 모르옵네.
성탄을 쉰 번도 넘어 맞이하고도
나의 안에는 허영의 마귀들이 들끓고 있어
"지극히 높은 데서는 천주께 영광,
땅에서는 마음이 좋은 사람들에게 평화."
그날 밤 천사들의 영원한 찬미와 축복에
귀먹어 지내고 있음네.
성탄을 쉰 번도 넘어 맞이하고도
나의 안에는 안일의 짐승만이 살고 있어
헤로데 폭정 속, 세상에 오셔,
십자가로 당신을 완성하신
그 고난의 생애엔 외면하고
부활만을 탐내 바라고 있음네.
성탄을 쉰 번도 넘어 맞이하여도
나 자신 거듭나지 않고선
누릴 수 없는 명절이여.
구상시인은 김수환 추기경님과 김남수 주교님 모두 소신학교 동창생입니다.시인의 고백처럼 우리는 성탄을 수없이 맞이합니다.문제는 우리가 어떠한 예수님을 기대해야 하는가가 문제가 될 것입니다.거기에 따라 성탄의 의미는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처지를 헤아리시어 가장 높은 분께서 가장 낮은 자리에 오신 그 크신 사랑에 고개 숙여 경배를 드리고 싶습니다.그러기에 성탄은 어떻게 왔을까, 마리아의 순종으로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겸손 없이는 우리의 신앙이 출발되지 않는 것이고, 겸손은 바로 덕의 근본이라고 말씀을 하셨던 점을 우리 기억하고 있습니다.
맑고 청정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반딧불이는 어두운 밤에 잘 보입니다.초롱초롱한 반딧불이 반짝이면 칠흙 같은 어둠 속에 더 잘 드러납니다.이처럼 깊은 어둠 속에서는 작은 불꽃 하나가 의외로 큰 빛을 발합니다.작은 불꽃 하나로 말미암아 순식간에 우리는 볼 수 있게 되고 우리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우리를 사로잡은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줍니다.어둠은 빛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지만, 빛은 어둠을 꿰뚫고 꿰뚫어 버립니다.어둠과 빛은 평화롭게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빛과 어둠의 싸움은 우리 인간이 놓인 상황과 일치하고 있습니다.빛은 어둠을 극복할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사랑의 힘을 누구에게서 받고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로 같은 삶의 여정에서 누구의 인도를 받으며 길을 걷고 있는가? 주님께서는 우리의 어둠을 비추시고 사랑의 온화한 빛으로 감싸주십니다.주님께서 계심으로써 세상은 더 밝아집니다. 주님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둠 속을 헤매지 않고 그 사랑 또한 밝고 행복해집니다.또한 우리의 죄와 허물을 태워 없애주시고, 우리의 모든 것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빛이 되게 하십니다.주님께서 우리에게 빛으로 오심으로써 우리 마음에 불을 지펴주셨습니다.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사랑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그 선물을 받는 날입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화, 여러분의 마음과 가정에 즐거운 성탄의 기쁨과 평화가 늘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해 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들 겸손을 통해서 성모마리아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우리들도 모든 것을 받아들일 각오는 되었는데 문제는 겸손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가져보게 됩니다.내 모든 것을 다 비우고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내 마음 한구석에 강물을 깨끗하게 잘 정리해 놓고, 아기 예수님의 탄생과 함께 나도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날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