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사부리( 정읍시 고부의 옛지명)성 속살 보기 >
(고사부리성 성벽 정밀발굴조사 현장 공개)
* 옛성의 속살을 보기는 쉽지 않다. 문화재나 유적지는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발굴되기 때문에 일반인을 포함해서 아무나 언제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발굴결과를 공개하는 자리가 있다면 가볼 일이다.
아파트단지 개발이나 도로 개설, 등 우연에 의해서 발단되는 것이 보통이다.
직접 찾아가보기 전에는 볼 기회가 없다. 발굴도중에는 접근이 금지되다시피하고, 공개적인 발표회가 있을 때 현장과 발굴유물도 직접보고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발굴 후에는 다시 복토로 덮어버리거나, 보존가치가 없다면 보고서로 끝내버리고 다음 건축 공정이 진행되기 때문에 사라지는 경우조차도 있기때문이다. 산성이나 읍성 발굴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전주 야매산성 발굴 현장도 찾아갔을 때는 이미 다시 덮어버린 뒤여서 발굴문화재단에 전화를 이야기를 나누는 수밖에 없었다.
고사부리성은 근대 동학농민운동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유명한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에 소재한 읍성이다.
말로만 들어오던 축성기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아래 글은 연합뉴스와 뉴시스 보도자료와 전라문화유산연구원 홈피 자료를 이용했다.
<제목: 정읍 고사부리성 성벽 정밀발굴조사 현장 공개>
- 일시 : 2019. 05 .02(목) 14:00
-장소 : 전북 정읍시 고부면 고부리 산1-1번지 일원 발굴조사 현장
- 참석 : 사업시행자, 조사기관, 학계관련전문가, 일반 시민 등
- 연락처 : 박영민(010-6679-4682)
*전라문화유산연구원 홈피에서 고사부리성 발굴결과 보고회 내용 일부 인용
-----------------------------------------------
출처: (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백제 지방 행정구역인 오방(五方) 중 중방(中方)으로 비정되기도 하는 전북 정읍 고사부리성(古沙夫里城, 사적 제494호)에서 백제시대에 돌로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정교한 성벽이 발견됐다.
전북 정읍시와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전라문화유산연구원(원장 천선행)은 전북 정읍시 고부면 고사부리성 남문터 동쪽 900㎡ 부지를 발굴해 잔존 길이 45m, 높이 3.5m, 최대 폭 5.4m인 백제 석축(石築) 성벽을 찾아냈다고 1일 밝혔다.
해발 133m 정상부 두 봉우리를 감싸는 고사부리성은 백제시대에 처음 조성한 뒤 조선시대에도 1765년까지 읍성으로 사용했다고 전하는데, 이번 조사에서도 백제가 최초로 성을 쌓은 뒤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각각 수리한 양상이 드러났다.
이미지 크게 보기
사진 1...2 참조
정읍 고사부리성 백제 석축성벽 [전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백제시대 성벽은 3∼4개 구간으로 나눠 외벽과 내벽을 쌓은 뒤 중간을 흙이나 돌로 채우는 협축(夾築) 기법으로 축조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연 지형을 계단식으로 파낸 뒤 바닥을 구축하고 그 위에 성을 쌓았다.
조사단은 백제 성벽에서 성돌을 약 3∼5㎝씩 안쪽에 들여 넣어 쌓는 퇴물림기법, 품(品)자 모양으로 돌을 올리는 바른층쌓기, 모양이 제각각인 건축 부재를 서로 맞대어 면을 맞추는 그랭이 기법이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또 성돌 하나가 다른 돌 6개와 맞물리도록 하는 이른바 '육합쌓기' 양상도 확인됐다. 육합쌓기는 고구려 성벽에 주로 쓴 축성기술이라는 점에서 백제 석성 기원과 고구려의 관련성을 알려주는 자료라고 연구원은 강조했다.
연구원 관계자는 "내성벽은 외성벽보다 직사각형 석재 사용 횟수가 많고, 현재 1∼4단 정도 남았다"며 "외성벽과 내성벽 사이는 석재를 넣은 적심(積心) 구조로, 성벽과 동시에 쌓아 올린 듯하다"고 주장했다.
이미지 크게 보기
사진 3..4
정읍 고사부리성 통일신라시대 수구 [전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통일신라시대에는 성 안쪽에 많은 토사가 퇴적하면서 수리를 진행했는데, 전반적으로는 백제 석축성벽 전통을 유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성곽 일부를 제거한 뒤 물을 배출하는 수구(水口) 시설 2기도 확인됐다. 수구 규모는 길이 7m, 너비 0.8m 정도다.
성벽 바깥쪽에서는 지름 20∼30㎝인 나무기둥 자국이 3∼4줄 정도 발견됐다. 나무기둥은 성을 쌓을 때 동원한 시설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가 되면서 성벽은 토성으로 변했고, 조선시대에는 흙과 돌을 모두 사용한 성곽이 들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유물로는 다리가 세 개인 삼족토기·항아리·접시·병 등 백제 토기와 기와, 고구려계 토기로 알려진 암문(暗文) 토기를 출토했다. 암문은 흑색 마연토기에 그린 검정 선 무늬를 뜻한다.
연구원 관계자는 "고사부리성은 백제가 견고함과 안정성을 극대화하는 축성기법을 동원해 쌓은 성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며 "이후에도 조선시대까지 장기간 이용했다는 점에서 고사부리성이 지리적 중심지이자 통치의 핵심적 장소로 사용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지 크게 보기
정읍 고사부리성 출토 유물 [전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psh59@yna.co.kr
---------------------------------------------
정읍 고사부리성(사적 제494호) 성벽 정밀발굴조사 현장공개 안내
1. 개최일시
◎ 일 시 : 2019년 5월 2일 목요일 / 오후 2시
◎ 장 소 :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고부리 산1-1번지
◎ 대 상 : 관련 전공자, 문화원, 일반시민 등
2. 발굴개요
◎ 허가번호 : 2018-1470호
◎ 조사기간 : 2018년 10월 15일 ~ 2019년 5월 2일 ◎ 조사기간 ◎ 조사기관 : (재)전라문화유산연구원
3. 조사결과 :
◎ 2019년 「정읍 고사부리성 발굴조사」결과, [삼국시대(석성-초축)-통일신라시대(석성 -1차개축)-고려시대(토성-2차개축) -조선시대(토성-3차개축)]의 4시기에 이르는 고사부 리성의 성곽 변화양상을 분명하게 밝힐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삼국시 대 외성벽, 내 성벽, 협축부 채움시설, 외성벽 외측으로 연결되는 배수구, 통일신라시대 성내 건물 지, 내성벽 일부, 수구시 설 2기, 외성벽 보축시설, 주공열, 고려시대 체성부, 수구시설 1기, 성내측 박석유구, 조선시대 체성부, 석렬, 구상유구(해자) 등을 확인할 수 있었 다.
4. 기타 참고사항
◎ 연락처 : 책임조사원 박영민(010-6679-4682), 조사원 박춘규(010-9041-8404)
<붙임> 유적전경 및 세부 사진
* 아래 뉴시스 자료와 동일 사진 첨부
출처: 아래 사진자료는 뉴시스에 실린 것들에서 이용한 것임
사진 1
정읍 고사부리성(남-북)
2
정읍 고사부리성, 백제 시대 축성 성벽 노출(서-동)
3
통일신라 시대 수구시설, 협축부 채움시설 일부를 파내고 설치
4
정읍 고사부리성에서 나온 백제 시대 유물